강남-요한복음 17장 17절(세대 구원)180717a-이근호 목사
시작합시다. 요한복음 17장 17절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그렇게 되어 있지요. 보통 세상에서는 진리의 반대가 뭐냐 하면 반진리 또는 비진리 이렇게 이야기 하는데 요한복음 17장에서 ‘진리’의 반대를 ‘세상’으로 봅니다.
요한복음 17장을 왜 자꾸 이렇게 더디 가느냐 진도가 나가기에 더디 가느냐 이렇게 할 수 있는데 17장이 예수님께서 기도한 내용이에요. 예수님의 기도는 모든 이 세상의 성경 해석에 성경해석에 그 함축해 있습니다. 하나님의 그 세상과 하나님, 이 모두를 해석하는 함축된 해석이라 하는데 함축된 해석이 여기서는 뭐냐 하면 여기서는 진리가 됩니다. 그리고 진리의 반대말이 비진리가 아니예요. 진리의 반대말은 뭐냐 하면 ‘세상’으로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뭐가 되느냐 하면 내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내 제자들도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했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세상에 속하지 아니했다. 이게 말이 안 되지요. 우리가 아는 세상은 반드시 뭐를 포함하고 있느냐 하면 우리가 아는 세상은 나를 포함해서 이 전체 눈에 보이는 이 대자연을 세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만약에 세상에 나를 보낸다고 했을 때는 나는 일단은 세상 바깥에 있는 존재인데 주님의 특별한 뜻이 있어서 세상 속으로 들어와서 사는 그런 양상이 되고 말아요. 마치 예수님께서 세상 밖에서 세상 안으로 들어온 것처럼 똑같이 내가 너희들을 세상 안으로 들여보내겠다는 겁니다. 그러면 세상 눈에 보이는 세상 이게 전부인데 영어도 ALL인데 모두인데 그럼 세상 밖에 다른 세상이 있느냐 했을 때 그걸 다른 세상이라고 하지 않고 이걸 진리라고 합니다. 다른 세상이 아니고 진리입니다.
다른 세상이 있으면 만약에 다른 세상이 있다고 한다면 이 세상에 살다가 죽으면 다른 세상에 가면 되는데 진리라는 것은 다른 곳이 아니예요. 세상에서 말하는 그 지정된 장소, 장소를 표현하듯이 진리를 곳으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어느 네가 몇 번지냐 동네가 어느 동네냐 어디에 사느냐 하는 것은 이 세상을 설명할 때는 그렇게 이야기를 하지요. 데카르트의 공식에 의하면 x y 그리고 하나의 z 세 가지의 변수로서 삼차원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이차원은 z가 없지요. x y 이 두 좌표 데카르트 좌표라고 하는데 수학에서 어느 지점에 있던 5,7 같으면 x5 y7해서 반드시 한 그 지점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진리에 대해서는 이렇게 어떤 내가 특정지점을 이렇게 할 수가 없는 이유는 진리는 뭐냐 하면 우발적이거든요. 우발적. 쉽게 말해서 뭐와 같으냐 하면 바람 같다고 합니다. 하나의 그걸 사건이라고 하는데 사건은 종잡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성령 받은 사람의 특징이 뭐냐 하면 종잡을 수 없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어디로 튈지를 몰라요. 중구난방이라고 하지요. 예상 밖으로 이끄십니다. 왜 그렇게 예상 밖으로 이끄시냐 하면 우리가 세상에 살던 그 풍습이라든지 그 습관이 그대로 우리 몸에 녹아져 있거든요. 우리가 일상에 살던 그 모습 그대로 녹아져 있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진리 속에서 끄집어 낼 때는 우리는 항상 이 세상에 살면서 이 세상에 사는데 좀 어렵게 해 볼까요?
이 세상에 우리가 어떻게 존재하느냐 하면 두 가지로 존재하는데 하나는 공간적으로 존재합니다. 아까 x y z 했지요. 그러면 시간적으로 또 이야기해요. 과거와 현재 미래. 이 두 가지 시공간 이걸 합쳐서 시공간이라고 하는데 이 시공간을 통해서 뭐가 생성되느냐 하면 나, 자아 또는 나 여기 있다 라고 이야기하고 더 나아가서는 나 여기 이만큼 보내면 나 여기 늙었다 이곳에 있었는데 이만큼 세월 보내고 이렇게 있다. 나 여기 이 땅에 사는데 늙었으니까 이런 사고방식 가지고 그러면 죽으면 다른 곳에 꼭 내가 살던 식으로 아마 살게 될 걸 이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 땅에서 만약에 같은 아파트 옆 동에 있다면 우리 천국에 가서도 같은 옆 동에 살자 이런 말을 한다 이 말이죠. 그 점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아주 초를 쳤습니다. 남녀가 평생을 부부라고 해도 그것은 살 때 까지만 부부고 그 다음 같으면 남편 아내라는 것은 없어요. 없어요. 그러면 어떤 사람이 그럼 무슨 재미로 사나 그런 소리 하는데 천국 가면 재미 되게 없겠다. 천국에 당구장 있어요? 월드컵해요? 이렇게 한다 이 말이죠.
그게 왜 그런 생각을 하느냐 이 땅에 살던 그 사고방식이 자아를 구성한 내용이 되요. 그런데 그 자아가 수정이 되어야 되는데 그 자아가 그대로 천국 가서 연속되어서 또 사람들은 오해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천국 갈 때 어떤 모습으로 바뀝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답변을 주세요 한다면 간단해요. 예수님처럼 이 땅에 와서 예수님처럼 사는 사고방식이 바로 천국가는 사고방식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사고방식은 어디 학교에서 학원에서 배웁니까? 어디서 배웁니까? 성령이 오게 되면 예수님의 영이기 때문에 성령이기 때문에 성령이 오게 되면 예수님이 어떻게 산 그대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착하게 사는 것을 말합니까? 바르게 사는 것을 말합니까? 경건하게 사는 것을 말합니까? 이렇게 이야기 하는데 그게 아니고 ‘~~는 아니다’ 하고 살아요. ‘~~는 아니다’
거룩이라든지 성경에 나오는 경건이라든지 성도의 삶이라든지 하나님의 형상이라 하는 것은 이렇게 하라가 아니라 이것은 아니다가 되요. 이것은 아니다. 뭐가 아니냐? 내가 이 땅에 사는 식은 아니다가 되어 버립니다. 내가 이 땅에 사는 식은 뭐냐 하면 시간과 공간을 통해서 자기를 규정하는 겁니다. 규정이라고 하는 것은 뭐냐 하면 내가 여기 있다 있음을 계속 있음으로 고집하는 겁니다. 한번 있으니까 계속 끌고 가겠다는 거예요.
그러나 있음이 존재가 있음인데 있음이 주님한테 갈 때는 뭐로 바뀌어지느냐 하면 있음이 사건으로 바뀌어야 되요. 그러면 있음을 사건으로 바꾸려면 망치 가지고 자기 몸을 이렇게 해가지고 조각조각 해야 되느냐. 조각 내봐야 그 뼈조각도 존재인데요. 뼈조각 하나도 존재잖아요. 권총 가지고 자기 머리에 쏴도 그게 존재가 된다 이 말이죠. 그런데 이 사건은 내가 사건을 만들면 안돼요. 내가 내 사건을 만드는게 자살이라는 건데 그런 식으로 들어간다고 해서 내가 분해 되는게 아니고 이 사건은 바로 하나님의 모든 율법을 완성시킨 사건이어야 됩니다.
모든 말씀이 완성되는 것이 이게 우리는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 하는데 예수님이 곧 모든 율법의 완성이라고 하는데 이건 사실은 잘못된 말이에요. 예수님이 다 이루어 버리면 우리는 예수님 혼자 구원받아요. 우리는 구원 못 받아요. 그러면 예수님은 뭘 이루느냐 예수님 혼자 존재가 이룬게 아니고 예수님이 뭘? 언약 사건을 일으켜요. 언약 사건을 일으키면 그 사건은 단회성이 아니고 한번이지만 그 한번이 모든 세상을 세상 끝날까지 다 적용되는 한번으로 한번의 사건이 되는 겁니다. 갈라디아서 3장 1절에 ‘십자가가 눈앞에 보이거늘’ 이렇게 되어 있잖아요.
예수님과 사도바울 사이에 나이 차이가 한 4살쯤 되잖아요. 그러면 십자가 사건할 때 사도바울은 없었고 돌아가시고 난 뒤에 사도바울은 나중에 알게 되었지요. 그래서 갈라디아서 3장 1절에 십자가가 눈앞에 보인다 할 때에 이거는 무슨 뜻인지 몰라요. 만약에 촛불집회가 눈앞에 보이거든 이러면 그러면 서울광장에 가봐야 되요? 가보면 뭐 있는데 지금? 지금 가보면 쌍용 자동차 다른거 데모한다고 바빠요 거기에. 동성애 그거한다고 엉뚱한거 있단 말이죠. 촛불집회 끝났어요. 없어요. 사건이기 때문에 끝났다 이 말이죠.
그러면 이 몸 가지고 현재 이 세상의 존재가지고 어떤 특정 내가 예상하는 사건에 합류하려면 내 쪽에서 다가서는 방법은 없는 겁니다. 바람이 불어야 되지요. 십자가에서 불어대는 바람이 불어야 되는 겁니다. 이 바람 부는데 저해 요소가 있어요. 십자가 바람이 불어야 쉽게 말해서 성령세례 받아야 같은 말입니다. 바람이 성령이니까. 성령으로 불어오게 되면 이 성령의 특징이 뭐냐? 어디서 왔는지를 몰라요. 그리고 어디로 튈지를 몰라요.
어디서 왔는지를 알게 되면 우리는 평소에 버릇이 뭔가 얻으려면 그 지점에 공간이니까 그 지점에 그 시간대에 가서 얻고자 하는 겁니다. 기도원 앞자리 이런거. 특정 기도원 갈멜산 기도원 가면 항상 성령이 있다하면 그 버스 타든지 차타고 갈멜산 기도원 가게 되고 거기서 아이스크림 푸듯이 퍼 담으면 성령 받는 식이 되지요. 하지만 그런 식으로 하는게 아니예요.
왜냐하면 성령을 방해하는 것이 성령을 제일 크게 방해하는 것이 뭐냐 하면 법과 제도예요. 조직, 조직체예요. 조직체의 법과 제도의 특징은 이게 존재의 입장에서 납득이 되는거예요. 한번 장로는 영원한 장로고 한번 목사는 영원한 목사고 한번 은혜 받으면 영원히 계속 갈 거라고 남들이 그렇게 짐작하고. 고린도전서에 나오는 성령의 그 봉사를 가지고 성령의 봉사라고 하잖아요. 성령의 봉사의 특징이 뭐냐 하면은 이게 사건적이에요. 남을 위해서 아낌없이 희생하고 봉사할 마음이 있거든 그때만 그 티를 내는 거고, 그러다가 쫌 했다 이제는 하기 싫다 하면 그러면 안해야 되지요. 하기 싫은데도 장로이기 때문에 계속해야 된다. 이거는 하면 안돼요.
우리교회 장로님 장로하다가 힘들어서 못하겠다 해가지고 성령의 뜻이라고 생각해가지고. 성령의 뜻이었다. 왜냐하면 봉사이기 때문에 그래요 이게. 자기 위신 챙기고 이거 해서 수입 얻고 이런게 아니거든요. 시작할 때도 내가 하고 싶어서 시작했다면 하기 싫으면 안하면 되고 안했는데 그러면 다른 사람이 스스로 하고 싶어서 봉사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어떻게 되겠느냐. 없다는 것도 주의 뜻이잖아요. 그러면 안하면 되는 거예요. 목사가 설교를 30년 했는데 어느 날부터 하기 싫어 그러면 안해야지요. 하기 싫은데 왜 섭니까? 봉사인데. 봉사라는 말은 내 소유가 아니라는 뜻이에요. 그 교회가. 내 존재와 관련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십자가 사건에 반복과 관련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십자가 사건이 나한테 설교하기 싫다 이렇게 되면 그 사건에 순복해야지요. 십자가 사건에 순복해야 되요. 내가 이 교회와서 30년 해서 교인이 20명 되는걸 500명 됐으니 가만있어 보자 이 교인들 가운데 십일조하는 머릿수가 양수가 150명이니까 한 달 수입이 얼마니까 퇴직금 3억 줘야 되고 이렇게 계산할 필요가 없다고요. 그런 계산을. 내 후임자 올래? 그러면 5600만원을 줘야 내 후임자리 줄게. 권리금 받는거요. 자기가 궁중족발입니까? 뭡니까? 왜 자릿세 받아요?
다시 이야기합니다. 사건을 방해하는 것은 존재예요. 어느 교회가 있다는 겁니다. 어느 교회가.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건물이 있겠지. 부동산이 있겠지 부동산이. 부동산이 있겠지요. 더 나아가서 봅시다. 말 잘해야돼요. 어떤 사람이 젊은 남녀가 사랑해서 결혼을 했어요. 했단 말이죠. 결혼을 왜 했느냐? 좋아서 했다는 거예요. 그러면 결혼한지 몇 년 됐어? 16년인가 예를 들어서 20년됐다 합시다. 지금 좋아? 안 좋아. 그럼 왜 안 헤어져? 왜 안 좋은데 왜 안 헤어집니까? 억지로 산다. 아니예요. 무슨 이익이 있어요. 자식 때문에 산다. 그럼 자식도 없는데 왜 사나? 자식도 없는데 왜 사느냐 하면은 바로 자기 의 때문에 살아요. 자기 의.
이게 과거의 시간이잖아요. 과거 한 것에 지금 내가 책임지는 면을 보이겠다는 거예요. 그럼 왜 보이는데? 책임지는 면은요 예수님이 다 보여 줬어요. 예수님이 한 걸 자기가 왜 그걸 깎아냅니까. 예수님이 모자랍니까? 뭐 구원은 되겠지만 인간으로서 자기 책임을 다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라고 하는데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에 만들 때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하나 밖에 없어요. 이게 하나님의 영광이 되느냐 안 되느냐 그것뿐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율법 앞에서 자기가 죄인인 것을 아는 것이 영광이에요. 그리고 화목제물을 받아들이는게 영광이고 다 이루었음을 받아들이는게 영광이에요. 그거 외에는 다른 영광은 없어요. 다른 영광은 없어요. 봉사한다고 영광 되는거 아닙니다. 자발적으로 희생한다고 영광 되는게 아니예요. 영광이라고 하는 것은 안 되는걸 내가 안 되는걸 내 존재가 죽었다 깨어나도 안 되는 것을 성령께서 주님의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음을 저한테 덮쳤다는 그 사실을 그 사실 안에서 우리는 비로소 주께 영광이 되는 겁니다.
그걸 오늘 본문에서 거룩이라고 하는겁니다. 거룩이라는 것은 분리되는 겁니다. 어디와 분리되는거? 세상과 분리되는 것을 거룩이라고 합니다. 그걸 진리 안에 있는거예요. 진리 안에 있는 것, 세상에 살면서도 진리 안에 있는 것이 이게 거룩이에요. 이 진리가 너희를 거룩하게 한다 나오지요 오늘 본문에 17절.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이 거룩이 그 개념이란 말이에요. 세상에 속하지도 않으면서 세상에 살면서 사는데 사실은 세상에 사는 것이 아니고 진리 안에 사는 모습이다. 사건 안에 사는 모습이다 이 말이죠. 그런데 남들 보기에는 그냥 세상 안에 평범하게 같이 사는 존재의 군상으로 보이지요. 지지리 궁상으로. 배고프면 밥 달라 하고 그것도 없으면 라면 끓여 먹고. 사는건 똑같은데 더우면 잠 못자고 똑같은데, 똑같은데 진리 안에서 움직여요.
그래서 지난 오후설교때 제가 했잖아요. 지중해 크루즈 여행가도 그게 주의 일이라고. 골프 쳐도 주의 일이라고. 지중해 크루즈 여행이 1인당 2500쯤 될걸요? 엄청 비싸요. 가려하다가 못 간사람 내가 알고 있거든. 골프 쳐도 그게 진리예요. 그게 거룩이라구요. 주의 일이다 이 말이죠. 조건이 붙어요. 주여 골프 치면서 후딱 죽게하옵소서 이런거. 어쨌든 간에 이 세상과 떼어놓는 방식이 골프라면 허리 아프도록 치겠다는 거예요. 크루즈 여행이 이 세상에 미련두지 않는 거라면 따라라라라~~~이런거 하면서 세상 빨리 떠나고 싶다면 그게 주의 일입니다.
주의 일은 쉽게 말해서 주의 일은 이런거예요. 세상 떠날 생각 없거든 남 만나지도 말고 말도 하지 마세요. 세상을 떠날 생각 없거든. 세상 떠날 생각 없거든 설교도 하지 말고요 전도도 하지 말고 부부간에 말도 하지 마세요. 더울 때 잘됐다. 잠자리 더운데 너는 저쪽에서 자고 시원하니. 삼베 깔고 하면 되지. 뭐가 죄냐 하면 이 세상에 하루라도 더 살려고 하는 것이 죄가 되는 겁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자꾸 존재를 붙잡고 있기 때문에. 진리의 우연성 우발성을 내 존재가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법과 제도가 이게 잘못이라고 했지요. 주님이 하신 일이라고 했지요. 법과 제도에 이렇게 하는 이유가 뭐냐 그 주인공이 누구냐 하면은 나의 생존이에요. 내가 이 법과 제도를 주장하는 그 안에 누가 들어 있는가? 나라는 덩어리가 들어 있어요. 덩치가. 나라는 괴물이 들어있다고요. 그러니 여기서 뭐가 나오느냐 하면은 자기 의가 나오는 거예요. 자기 의, 자기 평가, 자기 잘남 그리고 자기 연속성, 자기 지속. 세월호 아이 물에 빠져 죽었다고 몇 년째 우려먹고 있는지 몰라. 몇 년째. 4억 받았잖아요. 왜 그렇게 그걸 가지고 못 잡아 먹어서 그렇게 괴롭히냐 말이죠 왜.
존재의 연속성이에요 존재의 연속성. 누가 죽였습니까? 유병우가 죽였습니까? 구원파가 죽였어요? 누가 죽였어요? 아무도 죽인 사람 없어요. 왜냐하면 이미 태어날 때부터 이미 죽은 존재이기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이미 죽은 존재예요. 하루라도 들풀이 태어날 때부터 주께서 키워줘야 되듯이 참새도 키워주듯이 주님의 공로라는 것을 그 사람들은 몰라요. 주님의 은혜도 모르고 주님의 공로도 모르고. 은혜 모르고 공로 모르고 그러면 뭐냐 하면 이 세상에 속한거죠. 이 세상에 속한 자들은 뭐냐 하면은 이 세상 그 자체가 뭐가 되느냐 하면은 죽음의 세계입니다. 이미 죽었어요.
죽은 자가 뭐 구원받겠다고요? 죽었으면 죽었다 하는 그게 자기 그 본성에 부합되는 거예요. 살려주는 것은 바람이 불어야돼요. 바람이 불면 법과 제도는 가지고 자기를 살려낼려고 아둥바둥 애를 씁니다. QT할거 다하고 교회 가가지고 열심히 장로 목사 집사 다 되고 뭐 할건 다해요. 흉내는 다 내. 시키는대로 다 하고 구역 권찰회에다가 물론 취직하면 못하지만. 취직 안하고 집에서 노니까 자꾸 불러내는 겁니다. 그렇게 해봤자 자기의 과거에 그렇게 공들였던 것이 아까워서 공들인게 아까워서 본인을 점점 더 본인을 놓치를 못해요. 아까워서. 수십년 오십년 육십년 살아온게 그게 얼마나 공들인겁니까. 먹을거 안 먹고 쓸거 안 쓰면서 그렇게 아껴서 십일조 냈는데 십일조 없다 해보세요. 헛짓이다 하면 진짜 격분할거예요. 분노할겁니다.
오늘 강의 주제는 ‘재림’입니다 재림. 이 재림이라는 이 주제가 오늘 본문과 관련되지 않으면 재림이라는 그것이 풀리지를 않아요. 왜냐하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했는데 재림이 왜 필요하냐. 다시 오실 이유가 하등 없어요 다시 오실 이유가 주님께서. 재림이 만약에 다 이루었다 되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거짓말 한거예요. 새 언약이 재림이 새 언약의 핵심이 되어야하지 예수님의 살과 피가 새 언약 되면 안돼요.
새 언약이 뭐냐? 새 언약의 완료는 뭐냐? 내 살과 내 피가 새 언약이 되요. 거기 재림이야기 일언반구도 재림이야기 없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뭐냐? 다 이루었지요. 살과 피를 흘렸기 때문에. 다 이루었으면 그 다음부터는 재림이라는게 또 다른 순서가 없어야돼요. 에피타이져입니까? 뭐 다른게 없어야돼요. 만약에 십자가 믿는데 재림 안 믿는다 탈락이냐? 이런 문제가 또 생겨 버립니다.
구원을 사람들이 구원을 생각할 때 딱 두 가지 밖에 생각 못해요. 나의 구원. 나의 구원을 생각합니다. 종교 기존의 종교 아까도 이야기 했지만 자기 존재만 살면 그만이니까 내 존재 죽어서 좋은 나라 가면 그만이니까. 나의 구원이 우선이에요. 이게 이천년 교회 역사가 전부다 나의 구원입니다. 거기서 파생된게 구원파가 나오지요. 박옥수나 뭐 유병언이나 나오는데. 구원파가 어디서 나왔느냐 하면은 기존 교회에서 나오잖아요. 우리 기존 교회에서 나온거예요 구원파가. 그거나 그거나 신천지나 구천지나 다 같은 이단천지예요.
구원만 들어가면 전부 나의 구원이에요. 이렇게 하시면 구원받는다 이렇게 하면 천국간다. 이걸 상품으로 미끼 상품으로 내세운 겁니다. 그래서 양떼같이 예수님 믿고 구원받으니까 구원받았습니다. 도망치거든요. 도망치면 또 잡아요. 구원 해줬는데 그냥 가면 안돼지. 십일조 하고 가야지. 이건 뭐 손님 미끼 상품이에요 구원이.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 주께서 십자가 피 줬는데 당신은 뭐 줬습니까? 피 드릴까요? 아니 돈 주세요. 이건 뭐.
나의 구원은 그리고 또 뭐냐 하면 교회 구원. 또 교회 구원을 이야기해요. 나의 구원보다 이게 버전이 업그레이드 된 버전이에요.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 있잖아요. 나의 구원 여러분 너무 하지 마세요. 이거는 잘못된 겁니다. 교회 구원해야 됩니다. 이게 말리는 시누이라. 더 미워. 더 미워요.
어떻게 교회와서 예수 믿고 자기 맘대로 살려고 합니까. 그러면 교회는 어떻게 하고. 여러분들이 구원받고 예수 믿는다하고 구원받고 끝, 나는 구원받았다고 집에서 나태해져버리면 그러면 여러분 후손에 여러분 다음 사람들에게 불쌍한 이웃사람에게 어떻게 복음 전합니까? 여러분이 소속된 교회가 여유만만하게 이렇게 유지가 되어야하고 풍성하게 되어야 그래야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이 될 때 마귀는 물러가고 하나님의 일은 계속돼야 되지 않습니까 라고 이렇게 교회구원하는거예요. 또 구원보다 밉상인 시누이가 있어요.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 그 시누이보다 맞장구치는 더 못된 시동생 또는 시누이 친구라고 합시다.
이런게 있어요. 뭐냐 하면은 한국교회는 썩었다. 빛과 소금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 어떻게 교회는 이렇게 됐는데 사회는 흥왕이냐. 우리 스스로 반성하자. 뭐냐 하면 너무 교회가 양적팽창에 추구했다. 개인구원이라 해서 양적팽창했는데 양적팽창은 주의 뜻이 아니다. 뭘 해야되느냐 교회를 어떻게? 공동체 운동해야된다. 공동체운동. 진짜 말씀으로 돌아가서 복음학교인가? 김용의. 이거는 더 미워요 이거는.
공동체 운동하고 있어요 공동체운동. 진짜 하나님께서 사도행전에서 원하는 것은 떡을 떼며 뭐 그런 것만 해요. 뭐 떡 떼며 서로 내 것이라고 하지 않고 이번 수련회 할 때 다 설명할거예요. 얼마나 엉터리인지 그 해석들이. 떡을 떼며. 그런데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이 있어요. 그 안에 전부 다 나라는 존재가 들어있어요. 남 공동체 도와줍니다. 소속이 자기 소속이라.
교회구원 이 공동체 운동하면서 뭔가 공동의 실 내용이 있어야되지 않겠습니까. 그래 공동체 운동했다 그러면 교회는 나한테 해줄게 뭐가 있나? 또 이렇게 나오면 장사 안 될 수가 있어요. 교회만 도와주시면 교회는 또 이런걸 도와줍니다 라는게 뭐냐 하면 행복한 부부되기 이런거. 착한 남편 되기 10계명 이런거 있잖아요. 아내 십계명은 없어요. 남편 십계명만 있지. 하도 남편이 말 안 들어 문제니까. 남편 10계명. 행복한 가정이 우선 돼야 하늘나라가 된다 이런거. 하늘나라는 가정부터 시작되야지 이런거. 전부다 그 안에는 나라는 존재가 들어있습니다.
그러면 구원은 뭐냐? 세대구원입니다. 없는 세대가 새로 만들어져서 세대 자체가 그냥 통으로 구원받습니다. 세대 자체가.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했잖아요. 세대 자체가 구원해버리면 이거는 뭐로 구원이 몇 명이냐든지 누가 구원받았느냐가 아니라 너는 소속이 이 새로운 시간대에 소속되냐를 물어요. 어느 단체 어느 공동체에 속했느냐 묻는게 아니고 어떤 세대에 소속되어 있느냐? 십자가와 재림이라는 그 세계에 구성된 세대, 시간대에요. 그 시간대는 앞뒤를 뭐로 막느냐 하면 예수님의 약속으로 막아버립니다.
예수님의 오심과 그리고 다시 오심, 그 사이에서 형성되는 것이 이 세대예요. 오늘 본문도 이 세대구원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나의 구원아니예요. 교회 구원아닙니다. 공동체 운동 아닙니다. 세대구원이에요. 이 세대를 구원하는 겁니다. 그러면 이 세대구원이 이 세대구원이라는 것이 그동안 그렇게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뭐냐? 그것은 바로 초대교회 때 예수님의 재림이 곧 일어날 줄 알았어요. 초대교회 때. 데살로니가전서에 나오잖아요.
그리고 에베소서도 나오고. 깨어있으라 도적같이 온다. 그렇게 했는데 백년 지나고 이백년 지나도 오지를 않아요. 오지를 않으니까 많이 당황했어요 교회가 많이 당황을 했어요. 당황하니까 그래서 교회에서 만든게 뭐냐? 교회사가 나옵니다. 교회 역사가 나와요. 교회역사는 메뉴얼 만들기 메뉴 만들기 매뉴얼 만들기거든요. 앞에서 했던 그 매뉴얼을 그 후손들에게 전해주는 겁니다. 앞에서 단계를 계급을 세단계로 했어요. 하나는 주교 그 다음에 주교 장로 부주교 그걸 주교라고 다른 말로 하면 장로 집사 평신도 뭐 이렇게. 계급을 계급으로 해서 예배인도는 제일 요즘 말로 하면 사제라 하는데 또는 목사는 개신교니까 사제가 하고 나머지는 부사제는 요새 말로 하면 집사, 그 다음에 일반 평교인 해서 그들 내에 뭐를 만드느냐 하면 법을 만들어요. 그 법은 뭐로 만드느냐 하면 신앙고백으로 만들어 지는 겁니다. 신앙고백. 굉장히 건전해보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신앙고백으로 만들어 지는데 구체적으로 뭐냐 신앙고백서가 되어버려요. 신앙고백서. 제일 처음에 나온 신앙고백이 사도신경이거든요. 처음에 이렇게 여러가지 있다가 나중에 굳혀진 것은 A.D 한 4세기경이 굳혀졌지만 그전부터 있었어요. 사도신경같이 신앙고백 그 전통을 16세 가기 개신교, 루터 칼빈하면서 신앙고백서가 스물몇가지의 신앙고백서가 마구마구 나오기 시작한겁니다.
신앙고백서 하나 될 때마다 나라 하나가 다 떨어져 나가요. 네덜란드가 독립했지요. 스위스 독립했지요. 독일도 독립했지요. 전부다 신앙고백서 따라서 한거예요. 신앙을 묻는게 아니라 신앙고백서를 네가 읽을 줄 아느냐? 그래서 싸인하느냐 그래서 싸인만 하면 돼요. 신앙고백서. 그 중에서 제일 유명한게 영국에서 나온 신앙고백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648년. 그거 인정 안하면 장로 안돼요. 개신교에서 장로교에서 장로 안돼요. 목사도 물론 안 되고.
내가 그 신앙고백서를 건드렸습니다. 어떻게 건드렸냐? 이렇게 건드렸거든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보게 되면 나보고 하는 말이 당신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선서해서 목사되었는데 지금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아직도 인정하느냐? 인정안하면 당신을 면책시키겠다 이렇게 나왔어요. 내가 그랬어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뭐냐 하면 성경이 최종 권위가 있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거기에 보면.
그러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최종 권위예요? 성경이 최종 권위예요? 그 사람들 답변하기 곤란하게 되었어요. 그들 말대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최고라면 그걸 지켜야될게 아닙니까? 그러면 내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대로 산 사람이 되어 버렸네. 왜? 성경보다 웨스트민스터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이야기 했으니까. 성경보다 항상 위라고 이야기 했으니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안식일 언급했지만 주일 언급했지만 성경은 뭐냐 하면은 어떤 율법으로도 의롭다함을 얻지 못한다가 안에 들어 있어요.
결국은 이것은 개신교 신앙고백서는 결국은 뭐냐 하면 프렌차이즈 가게의 계약서예요. BBQ, 처갓집 통닭, 파리 바게트. 사람을 죽이겠다는 건지 사람을 천국 보내겠다는 건지 보낸 사람을 짓밟겠다는건지 모르겠어요. 에스겔에 있지요. 살리려면 죽이고 죽이려면 살린다고. 누가? 이 세상이 이 세대가, 이 세대가 반드시 그렇게 하게 되어 있어요.
그렇다면 왜 초대교회 끝나고 난 뒤에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그들이 제대로 파악을 못했느냐 하면 개인구원 위주거든요. 내가 개인구원이니까 재림을 뭐라고 하느냐 하면 개인존재는 뭐로 보느냐 하면 시간상 과거 현재 미래 이렇게 돼요. 과거는 이미 지나간거 현재는 지금이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가 되는 거예요. 그러면 재림은 뭐냐? 아직 오지 않았다의 거기에 포함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세대는 그게 아니예요. 세대는 재림이 아직 오지 않았다가 아니라 재림 자체가 이미 박스 세대 안에 이미 포함되어 있는 내용입니다.
약속을 믿을 때 주님의 약속을 믿을 때 이것을 한꺼번에 다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러나 주님의 입장에 서 있지 않고 나의 입장 나의 존재 입장에 서버리면 나는 몇 일 전에 예수 믿었다 지금은 내가 성령을 받았다. 남아 있는게 있네? 그 재림이 있는데 만약에 내가 도적같이 되지 않고 만약에 잠을 잔다든지 기름을 준비 하지 않는다든지 주유소 가까운데 이렇게 된다면 나는 아무리 성령 받고 내가 예수 믿어도 재림하는 순간 깜빡 졸아 버리면 두 사람이 밭을 갈다가 한 사람만 데려가고 두 사람이 맷돌을 갈다가 한 사람만 가게 되어 나만 손해잖아 정신 바짝 차리라 이 말입니다. 정신 바짝 차려라.
그럼 정신 바짝 차리려면 차릴 수 있는 어떤 자극제가 있어야 되겠지요? 그 자극제가 뭐냐 하면 마지막 때의 징조 파악하기예요. 마지막 때의 징후 파악. 마지막 때의 징후 파악이 뭐냐 하면 바로 이슬람하고 이스라엘하고 중동하고 제 3차 전쟁 이런거. 황금돔 성에 이스라엘 군대가 침공한다든지 이제 성경에서 그 정보를 찾아내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사람은 그 숫자를 알아냈어. 1998년 10월 18일 이장림은 알아냈어요. 하얀 옷 입고 전부 다 하얀 옷 입고 그때 한복 대목봤습니다. 전부 하얀 옷 입는다고. 그리고 이장림 자신은 실은 12개월째 계속 적금 넣고 있었어요. 어차피 목회는 장사니까.
왜냐하면 그 이장림이나 목회자가 양심의 가책 안 느끼는 이유가 내가 하는 말로 위로 받았잖아요. 그러면 그 값 했잖아요. 십일조 한 값 했잖아요. 인간은 자기 소망 미래에 대한 소망가지면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지고 우울증도 나았고 그러면 목사가 돈 챙기든 말든 네꺼 얻었으면 됐지 뭐. 약사가 약 지어줬으면 됐지 뭐 약사가 바람 피우고 뭐 그거 왜 신경쓰는데 약만 타가면 되지. 어차피 돈 먹고 돈 먹는 장사인데. 아이고 우리 속았습니다. 속은 본인이 잘못이지요. 속은 본인이 누구 탓 합니까. 지금 와서 다시 이야기 하지만 속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똑같은 한통속이라는 것을 깨우치는 주님의 뜻인 것을 아시길 바랍니다.
교회 이용해서 내 구원 챙기겠다는 것, 지옥가도 마땅한걸 왜 구원을 챙깁니까? 지옥 가도 마땅한데 왜 구원을 챙겨요? 그냥 살던대로 지옥가지. 뭐 어떤 희망있다고. 희망 없어요. 하는 행세 보세요. 본인이 본인 행세봐도 이 모습 천당 가겠습니까? 주 예수 보다 더 좋은게 없다고 그렇게 노래 노래 불러놓고 막상 남편이 여보 이번 주일날 놀러가자 하면 가정행복위해 놀러갈거면서. 뭐가 주 예수 보다 귀한게 없어요. 우리 가정이 더 귀하지. 그래가지고 천국 가면 잘 할께요. 천국가면 그때서 잘하는게 아니예요. 이 세상에 살면서 다른 세대에 속하지 아니하면 끝났습니다.
요한복음 5장 한번 보겠습니다. 이제부터 좀 어렵습니다. 과연 그런지 한번 들어보세요. 요한복음 5장 25절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그 다음에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곧 이 때라. 곧 이때라. 지금 말하는 이때라. 곧 이때라. 더 놀라운거 말씀드릴께요. 마태복음 10장 23절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언제 왔는데? 언제 왔는데요? 안 왔는데. 왜 성경에 빼지 이거. 안 맞으니까 수정하지요. 이스라엘 동네 다 다니지 않아서 내가 오리라 했습니다. 언제 왔습니까? 안 왔는데. 아직도 안 왔는데 벌써 이천년 지났는데. 이천년 더 지났다. 주님이 구라하신거예요. 지금 거짓말 하신거예요.
근원적인 문제가 성령을 받았다는 말을 이해 못해서 그래요. 성령을 받게 되면 성령을 받는 것에 대해서 로마서 6장에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성령을 받게 되면 그리스도와 합하게 되면 이미 우리는 죽었어요.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가 그리스도와 함께 산다고 했어요. 그러면 죽을 때 예수님과 함께 죽을 때 죽은 예수님과 함께 죽었던 자가 어떤 모습으로 죽느냐 하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세대에서 살면서 우리가 형성된 시간과 공간 개념을 품고 죽어요. 시간과 공간개념.
나는 어디 있다 가 남들에게 알려줄 수 있는 어떤 고정된 장소에 내 자리를 이야기 할 수 있는 그런 존재적 표현이 가능하고 시간도 마찬가지예요. 지금은 몇 년도고 몇 일인 것을 과거가 있기 때문에 현재가 되요. 2018년도가 뭡니까? 2018년도라고 하는 것은 2017년도가 있다는 조건하에 2018년도가 된다고요. 그래서 옛날에 일본이나 동양의 왕들은 뭐냐 하면 자기가 왕 되고 난 뒤에는 년도가 어떻게 됩니까? 년도가? 다 저로 시작하죠. 일본도 마찬가지고 중국도 마찬가지고 한국도 마찬가지고 고종5년. 이렇게 하잖아요. 왜 그렇게 합니까? 새 시대다 이 말이에요. 시간을 자기 중심으로 하는 거예요.
그러면 이스라엘은 어떠냐? 출애굽기 12장 봅시다. 출애굽기 12장, 이거는 쉬는 시간에 찾아야겠네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나오면서 이스라엘 첫 달이 되요. 이게 원래 4월달에 나왔거든요. 이게 첫 달이 되요. 첫 달. 이 근처에 있을겁니다. 첫 달이 되요. 왜냐하면 기존의 애굽의 세월은 과거는 옛 세대에 속해요. 새 세대라고 하는 것은 인간보다 시간이 우의를해서 그러는게 아니라 무엇을 모든 시간과 공간은 어떤 하나님의 언약이라고 하는데 하나님의 언약과 관련된 사람의 움직임 따라서 시간과 공간이 새롭게 창출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언약과 관련된.
하나님의 언약이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레코드 판에 침 같아 가지고 침을 이렇게 레코드 판에 침을 놓는 순간 음악이 나오잖아요. 그냥 다이아몬드 침이 닿지 않으면 음악이 안 나와요. 그냥 판이에요 그냥 판. 피자 판 같은 판이라고. 거기에 그 레코드 판 침이 다이아몬드 침이 딱 닿을 때는 거기서 음량이 나오잖아요 음량이. 하나님의 뜻이 나온다 이 말이죠.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하나님의 언약을 가지고 이 세대에서 무빙, 움직일 때 거기에서 하나님의 뜻이 나오고 하나님의 영광이 속속 나오는 겁니다.
그것이 예수님에 의해서 마무리 사건 지어지면서 그걸 그 가운데 폭을 세대라고 해요. 새로운 세대예요. 로마서 12장에 보면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했지요. 마태복음도 거기에 마태복음 12장 39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고 했지요. 세대 자체를 하나님의 그냥 세상이라고 하면 하는데 요한복음은 세상인데 마태복음은 이걸 세대라고 해요 세대. 예수님께서 새로운 세대를 옛 세대 가운데서 새롭게 창조하고 다니시는 거예요.
새로운 새대가 예수님이 등장하지 않으면 있다 없다? 없지요. 왜냐하면 예수님이 오시면 언약의 완성이 되지 않기 때문에. 세상 끝날 일을 미리 이 땅에 세상 끝나지도 않았는데 미리 아는 그게 바로 새로운 세대에 속한 사람의 특징이에요. 세상이 끝나지 않았는데. 끝나기 전에 이미 끝을 아는 사람이요. 그게 베드로후서 아닙니까. 마지막 때에 모든 지구가 불탄다 이미 알고 있잖아요. 노아보세요. 노아가 홍수 오기 전에 방주 만들었잖아요. 빗방울 떨어질 때 방주 만들었습니까? 빗방울 떨어질 때? 아이고 급해가지고 빗방울 떨어질 때 방주 만들면 물 다 새가지고. 참 창창한 비 올 김새가 안보일 때 했어요.
방주 만드는 자체가 너희들이 모르는 너희 세대가 끝나고 난 뒤에 이 세대가 어떻게 끝이 나느냐를 방주 뚝딱뚝딱 방주 만드는 그 소리가 들려주는 겁니다. 그 소리가 말해주는 거예요. 노아 방주는 잣나무로 만든 방주가 언약 내용이라면 오늘날의 내용은 뭐냐 하면은 예수님의 살과 피예요. 누구든지 살과 피가 없으면 영생이 없느니라 그 말씀입니다. 그럼 살과 피라 하는 것은 뭐냐? 그럼 살과 피를 어디 선지국이라도 어떻게 몸보신 하듯이 정육점 가가지고 삼겹살이나 사태살이나 먹어야 되느냐.
그게 아니고 아까도 이야기 했지만 우리 몸 자체 시공간 의식하는 우리 몸 자체가 나 어디 산다 나 몇 살이다 자체를 죽은 몸으로 생각하라 이 말이죠. 죽은 몸으로. 아까 동영상할 때도 그런 이야기 했지만 아담의 몸이거든요 제가 아까 강의 했잖아요. 몸이 아프세요? 본인 책임 아닙니다. 왜냐하면 아담의 몸이기 때문에. 내 몸이면 내가 잘못해서 아프겠는데 아담의 몸이기 때문에 아담의 몸을 물려 받았기에 아플 때는 아파야 돼죠. 왜? 아담이 받은 벌이 있기 때문에. 나는 남자로 태어나고 싶어 여자로 태어나기 싫어 그럴 수 없어요. 그건 아담의 몸이기 때문에 내가 바꿀 수 있는 몸이 아니잖아요. 키 작고 크고 이런 것도. 그래서 인간의 몸이 아담의 몸으로 끝. 이 세상은 이걸로 끝 이것은 언약적 관점에서 못 본거예요.
언약적 관점에서 보게 되면 아담과 하나님과 아담의 언약 때문에 그렇게 됐다고 인정한다면 그 사람 눈에는 언약이 그것뿐이냐 이렇게 하겠지요? 언약이 어떻게 그것뿐입니까? 사는 몸이 있는 반면에 살려주는 몸이 있는데요. 그게 두 번째 아담 아닙니까? 그게 예수님의 몸이란 말이죠. 성령 받아야 알 수 있는거예요. 성령 받아야. 성령 안 받아도 잘 아는데. 잘 알지요. 잘 알지만 그건 지식으로 아는거고. 성령 받게 되면 이 고물단지는 고물단지 가지고 쓸모 있는 것은 뭐밖에 없느냐 하면 누굴 만나고 뭘 이야기해도 나는 죽은 몸이다 그렇게 될 때만 쓸모가 있어요. 그래서 죽었다고 생각 안 하면 설교하지 말란 말이에요 그런 뜻이에요. 설교뿐만 아니고 누구 만나지도 마세요. 죽은 몸이라고 생각 안 하면 선도 보지마.
선 보면서 그런 이야기하지 말고요. 선볼 때는 아이고 어머님께서 참 훌륭하십니다. 남자가 왜요? 이런 훌륭한 아들을 이렇게 잘 키워줬는데 그 어머니가 훌륭하지요. 본인을 칭찬하지 말고 우회해가지고 칭찬하는게 더 커요. 데미지가 더 커요. 그럼 좋은 관계가 유지되는 거지요. 거기서 뭐 첫 번째 아담이 어떻고 그런 얘기 개한테 진주 던지는 거예요 왜 그런 이야기를 왜 거기서 합니까? 그러면 아이고 또 받았으니까 남자가 예의상 그쪽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쪽 어머니도 이렇게 이쁜 딸을 키웠는지. 사실은 이렇게 이쁘다 하지만 사실은 죽었다 하고 살아갑니다. 이런 식으로. 아이고 겸손까지 하시네요. 이러면 성사되는 거죠. 그 심각하게 선 본다고 간단하게 그러면 되는 거예요. 10분 쉽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