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요한복음 16장 12절(지적질)180206b-이 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 하겠습니다.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세상을 책망한다 할때는 이것은 어느하나 빠짐없이 세상 전체를 심판하는 거예요. 세상전체를. 일괄해서 일괄적으로 다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한번 생각해보세요.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하신다가 그게 의고 그게 제대로 된 죄의 기준이고 그게 바로 심판에 대한 기준이 되겠지요.일괄적으로. 성령께서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하기 이전에 먼저 하나님이 먼저 인간들로부터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이미 심판을 받아버렸어요.받고 난 뒤에 그게 아니야 라고 함으로서 어떤 인간도 구원 받을 수 있는 자격이나 그러한 자질이나 능력은 있어요? 없어요? 아무도 없지요.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그런데 구원될수 있는 자격과 능력과 그것도 없을뿐더러 그게 없다는 말은 뭐냐 하면은 구원을 시도 하겠다는 그 노림수. 나는 세상에서는 고생했지만은 죽어서는 편하게 한번 살아보자라고 하는 그 의도자체 조차도 이게 악에 해당되는 겁니다. 그 의도 자체가. 그런데 그 의도를 인간이 타고 났기 때문에 나 그 의도 없다 라고 할수 있는 사람 있어요? 없어요? 아무도 없어요.
젊을때는 세상을 향하여 뭐 이렇게 가지만 늙으면 슬슬 다른 세계를 생각을 하잖아요. 생각하지요. 그게 뭐냐 하면은 바로 그게 상상입니다. 상상. 상상의 세계는 자기만이 꾸민 소꿉놀이. 자기만이 꾸민 소꿉놀이예요. 자기는 현실세계라 하지만 현실세계라는 것을 포함시킬 변수를 모든 인간이 공유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만이 상상한 현실세계를 고려하지 못하고 자기가 필요하다고 자기의 상상에 필요한 것들만 골라서 나는 이것을 현실로 간주한다 라고 딱 규정해버리는 겁니다.
예를들면 이렇습니다. 차를 타고 가로수길을 온다 이 말이죠. 가로수길을 쫙 달려가지고 오니까 주인이 물어요. 당신은 오면서 가로수에 나뭇잎이 총 몇 개 입니까? 물었단 말이죠. 그거 가로수 나뭇잎 그거 헤아려서 뭐 할건데? 그러면 몇 개인지 몰라요? 그러면 색깔은 어떻습니까? 색깔도 모르죠. 색깔 알아서 뭐할건데. 난 이 사람 만나러 왔지 뭐 색깔보러 왔습니까? 그런데 같이 차 타고 온 사람이 그거 노란색이였습니다 라고 하는데 그 사람이 전공이 뭐냐? 산림학 전공이예요. 자기가 관심두는곳으로 세상을 거기에 패턴화 시켜서 보는 거예요. 인간은. 인간은 자기가 관심있는 곳에 늘 주의깊게 보고 그 사람은 저 사람이 관심있는 곳, 이사람은 이 사람이 관심있는 곳으로 그런 요소를 뽑아 뽑아서 꽃다발을 만드는 식으로 자기나름대로의 세상을 사는겁니다.
그러니까 어떤 부자는 집에 먹을거 입을거 있는데 자살하잖아요. 왜요? 왜 자살합니까? 자신의 명예를 돋우기 위해서 해야 되는데 집에 통장에 돈 있어요. 세끼는 먹을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이들면 노후연금 나와요. 그런데 자살해 버렸어요. 못살겠다고.
여기에 쌀 있고 라면 있는데 못살겠다는 거예요. 그러면 아주 어려운 노숙자 같으면 그걸 왜 못살까? 가스 넣어가지고 이렇게 돌리면 불 나오고 라면 물 끓을 때 넣으면 되잖아요. 그런데 그걸 왜 못살아요?
미국에 어떤 유명한 여자 모델은 맨하튼 고급 아파트 살면서 자살했어요. 옛날처럼 인기 없다고. 옛날처럼 인기 없다고 자살해버렸어요. 옛날처럼 인기 없다고. 연예인 보면 그런거 많지요 그런거. 뭐 김광석부터 해가지고 죽은 사람 많습니다.
뭐 점점 더 30대 점점 더 멀어진다고 자살해요. 점점 더 멀어져~ 점점 더 멀어져 간다고 안그런 사람 누구예요. 자고 나면 점점 더 멀어지는데. 인간이 세월 헤아리기가 참 이게 이상해요. 보통 숫자는 1 다음에 2, 이래 쭉쭉 가가지고 16다음에 뭡니까? 16다음에 17이죠. 40다음에는 41, 52 다음에는 53 쭉쭉 간다 이말이죠. 그런데 90다음에는 91. 죽어버렸다.그러면 뭐 됩니까? 제로가 되거든요. 이게 이상하잖아요. 91다음에 92되야되는데 왜 제로가 되요? 제로란 말은 없다잖아요.
없으면 계산을 이렇게 해야죠. 인간들의 논리에 의하면 이게 맞는다 이말이죠. 이게 맞아요. 이러한 방법이 있어요. 뭐냐하면은 더하기를 하지 않고 빼기를 하는 거예요. 나는 이제 두 번남았다 세 번남았다. 이런식으로 계산해야되는데 이런 식으로 계산하면서 사는 사람 없지요. 왜? 죽는 것이 소원이 아니니까. 60대에 어디에서? 날더러 날 불러 오라 하거든 아직 애가 못커서 못간다고 아뢰라 이런식으로. 그 백세 인생 노래 나오잖아요. 60세에 뭐~~날 보러오거든 아직 애가 안커서 못간다고 아뢰라. 가사 그대로 아닌데 바꿔보면 그런 가사예요.
인간은 얼마나 보세요. 주관적이고 착각속에서 평생을 착각속에서 살아갑니다. 세상을 보는데 이렇게 보니까 자기가 말하는 진리, 이게 진리겠어요? 욕심이지. 일방적인 우김이죠. 우김. 일방적 우김이다 이말이죠. 그러면 교인들이 무슨 성경을 보겠습니까? 자기 우기는 거 해달라고 부처한테 빌 듯이 빌뿐이지. 나는 성경이 궁금해? 그렇게만 된다면 희한한 사람이예요. 왜 성경이 궁금하죠? 의도가 수상하다니까요. 성경 알아서 뭐할건데? 잃어버린 청춘을 또 보상해달라고 하는가?
현실세계에서는 문제는 뭐냐? 이 상상이예요 상상. 상상함으로 말미암아 자기 나름대로 이걸 꾸며요. 꾸밀 때 자기가 관심있는것만 뽑아서 꽃다발 만들어 놓고 나름대로의 나는 잘살았다고 우깁니다. 그래서 제가 어떤 강의인가 그런 강의했죠. 강의도 그런 얘기 했습니다만은 설교도 그런 얘기 했어요. 자기는 잘샀다고 하지만 홈쇼핑하는 순간 재래시장 상인들 4명 죽어나간다고 했지요. 제가. 홈 쇼핑, 인터넷 쇼핑 많이 해버리면 영세민들 죽어요.
그 뻔하잖아요. 추운데 누가 바깥에 나가서 삽니까? 백화점도 안나오는데. 집에서 택배 받아가지고 택배 쌓아가지고 문도 안열리게 이 만큼 쌓아가지고 하잖아요. 그러면 시장에 재래시장에 아주머니들 나와가지고 자기 가족들 못 먹고 살잖아요.
그래놓고 나는 오늘 참 값 싸게 샀다 하고 자부심을 갖지만 그 자부심 때문에 두세명은 벌써 문닫았어요. 그 자부심 때문에. 나 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굶어 나가 떨어지는 지를 그런 변수는 고려하지 않고 왜 나는 성실하게 살았노라. 성실하게 살아가지고 몇 사람들 굶어 죽었어요 그래. 성실하게. 인간이 존재한다는 자체가 남한테 피해주는 겁니다. 피해주는 거예요.
그 상상을 아주 예민하게 하는 사람 이런 사람 있어요. 인간의 간 이식하는거 있잖아요. 간이 반 없어져도 살 수 있다는 이것이 그걸 듣고 난뒤에는 이 간 반을 도대체 누구한테 줘야된다는 것 때문에 늘 이렇게 양심에 짐을 지고 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혹시 장로님 아니십니까? 이걸 누구한테 떼어주느냐. 후보감을 정해요. 사촌이냐, 삼촌이냐, 동네 이웃집이냐, 교회 장로님이냐 반 떼어주고 반 떼어줘도 살수 있다는 이것이 그 이론을 듣는 순간 자기는 죄인이 되어 버리는 거예요. 이걸 간 이식을 못해서 환장을 하는 거예요. 간 이식을 못해서.
착한게 취미가 되는 사람있잖아요. 착한게. 착한게 취미가 되는 사람들. 남 못도와줘서 정신병 지금까지 가는 사람들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 우리 가운데 그런 사람 없어서 다행입니다. 그런 사람 있으면 저 큰 교회 가야되요. 거기가면 앞자리에 다 앉아 있어요. 전부 다. 결국 간 떼어주고 주여 간 떼주는거 천사보고 스냅 사진 찍으라 하고 떼줍니다 주여 하고 나는 이 사람한테 간을 떼주는 대신 첫시간 했지요 누구는 잘된다? 내 자식은 잘 됬으면 좋겠다. 간 떼줬는데 삼대가 작살났다. 아무도 간 안떼줍니다. 자기 마음속에 내가 원인자가 돼서 착한일을 하게 되면 삼십배, 육십배, 백배나 주님께서 갚아줄줄로 뭐하다? 믿습니다 하거든요.
그럼 내가 건방지게 하나님이라면 내가 그거 채워줍니다. 그 사람이 이렇게 있는데 간 떼줬다. 뭐라고 하느냐. 삼십배, 육십배, 백배를 줄줄로 믿습니다 하는데 내가 하나님같으면 백배가 뭐냐 천배나 갚아주께 해가지고 오늘 아침에 영하 15도. 서울지방. 왜? 영하 15도라고 하는 것은 그 안에 뭐가 있다? 공기가 있고 질소와 산소의 혼합체가 있잖아요. 몇배로 줬어요? 내가. 천배나. 만약에 광주나 제주에는 뭐가 온다? 눈이 오지요. 눈이 어떻게 옵니까? 천배의 은혜로 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미 우리는 뭐냐 하면은 선함의 값없이도 이미 천배나 하나님의 복을 은혜를 지금받고 있는 중이예요. 받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니까 간 떼줬나? 난 이미 다 줬는데. 내 피까지 줬는데. 그 피 말고 내 자식 잘되는거 그거 줘야지요.
그게 바로 뭐냐하면 바로 그게 뭡니까? 내 몸 중심주의의 죄를 발각당하는 거예요. 죄를 발각 당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까 배웠던 공식을 써 봅시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진리의 나라 또는 하나님의 나라는 원래 없는건데 어디서 생긴다 했습니까?
마귀의 세계가 먼저 있고 그것이 들이댈 때, 하나님의 나라는 보이지 않는 건데 어디서 보인다 했던가요? 먼저 선제된 마귀나라가 있음으로서 그걸 부정함으로서 하나님의 나라가 비로서 현상적으로 나타나죠. 그게 바로 하나님의 구약의 하나님의 신이 작용하는 작업이 그 작업이예요. 이 구약에는 하나님의 신, 신약에는 하나님의 성령. 자, 신에서 성령으로 차이가 나고 어떻게 바뀌는가? 신은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 성령은 새 언약을 드러내기 위해서. 이게 차이점 나지요. 이것은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의 신이 가동되는 겁니다.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의 예를 들면 다윗 있잖아요. 소년 다윗. 소년 다윗이 블레셋의 골리앗하고 이쪽에는 사울이 진두지휘하는 이스라엘하고 전쟁할 때에 다윗이 소년다윗이 여기서 끼어들어요. 끼어들므로 말미암아 두 성인들이 소년 다윗과 이 골리앗과 사울관계가 이 관계가 철폐되고 다윗으로 말미암아 다윗과의 어떤 새로운 관계가 정립이되요. 그러면 하나님이 누구와 함께 합니까? 소년다윗과 하는 순간 이쪽에서의 승패, 이쪽에서 누가 옳았고 누가 그르다는 것은 이것은 무색케 되지요. 무의미하게 되는 겁니다. 성신의 역할이예요. 성신의 역할은 니가 옳다 내가 옳다 하는 가운데서 성신이 임하므로 말미암아 둘다 옳지 않았다를 드러내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뭐에 대해서?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하는 기능이 이미 구약때부터 이미 있었던 거예요. 그 대목을 한번 보자 이 말입니다. 민수기 9장 22절 한번 보겠습니다.
민수기 9장 22절 보기전에 제가 민수기 9장 15절부터 한번 읽어 볼께요. 성막을 세운 날에 구름이 성막 곧 증거의 성막을 덮었고 저녁이 되면 성막 위에 불 모양 같은 것이 나타나서 아침까지 이르렀다
그 다음에 항상 그러하여 낮에는 구름이 그것을 덮었고 밤이면 불 모양이 있었고 17절에보면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진행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으니.
자, 이스라엘 자손들이 사람들이 50만 어떨때는 60만됐는데, 50 만내지 60만되는 사람들이 움직일 때 본인이 야 가자가자해서 움직였습니까? 모세가 가자가자해서 모세가 가자해서 움직였습니까?
누가 뜨면? 누가 움직이면 가자해야 되요? 누가? 여기보면? 누가 움직이는 거예요? 구름기둥과 밤에는 불기둥, 낮에는 구름기둥이 이끄는데로 가야되요.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떠오르는 지점이 있어요. 어느 지점입니까? 성막이예요.
그런데 성막은 거기에 누가 있어요? 없어요? 아무도 없어요. 거기에 상주하는 사람 없지요. 제사장이 왔다갔다 하지 출퇴근하지 거기 상주하는 사람 없지요. 보세요. 이스라엘 나라의 특징을 보세요.
없음이 있음을 새롭게 생산해 낸다니까. 있음을. 그런데 없음이 있음을 생산할 때 있는 이스라엘이 말 안들으면 없애버리죠. 자, 그렇다면 하나님 입장에서 있는 것이 기본입니까? 없는 것이 기본입니까? 없는 것이 기본이예요.
그런데 우리의 사고방식이 뭐냐? 나는 없다. 나는 이땅에 없어도 괜찮다 부터 시작해야되요. 없는데 햇빛 주시고 공기 주시고 부모 주시고 태어나게 DNA주시고 정자 난자 결합해서 애 태어났다. 항상 출발점을 없는 것으로 출발해야 되요. 없는 것으로.
90다음에 92가 아니예요. 91다음에 제로가 되버린다니까요. 다시 환원되어 버려요. 없을때로 돌아가는 겁니다. 그러면 1살부터 91살 까지는 이건 뭐냐? 임시땜빵이라. 이거는 내가 꼭 살아야 될 이유가 나한테는 없어요. 나한테는. 이게 세상 사람하고 차이점 아닙니까?
세상사람들은 태어나게 해주니까 그다음부터 우기는 고집이 무슨 고집이냐? 남은 죽어도 남은 굶어 죽어도 나는 꼭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우리 외손녀 관찰해보거든요. 본의 아니게 관찰을 오래하게 됬는데.
관찰을 해보게되면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에 뛰어 놀면서 내 밥달라 내 밥. 밥 먹는 시간 한시간이예요. 밥 먹고 그 다음에 엄마 까투리. 엄마 까투리 30분 보고 그 다음부터 저한테 달려들어서 컴퓨터 올라가가지고 컴퓨터에 있는 자기 얼굴 보여 달라고 하는데 그게 벌써 한시간 넘어가요.
해가지고 넘어가면 간식달라고 오거든요. 간식먹고 자러가요. 보세요. 도대체 왜 태어났습니까? 도대체. 왜 태어난건데. 뭐 할라고 태어나요?
그러니까 어릴때부터 계속 순환적으로 머릿속에서 나오는 것은 나는 마땅히 먹어야 마땅하고 나는 내가 즐기고 싶은거 즐겨야 마땅하고 내가 보고싶은 것은 봐야 내가 만족스럽고 무조건 나는 부모가 나는 키워줘야 되고 나는 행복해야되고 이거하다가 자러가다가 히히 이러거든요.
그게 커서 어른되도 또 마찬가지예요. 어른되도. 어른되도 꼭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나중에 91되서 죽었다. 그러면 왜 왔어? 이 세상에. 이 세상에 왜 태어났는데요? 이 세상에 왜 태어났어요? 돈 벌을려고? 돈 왜 벌어야 되는데? 남줄려고? 미쳤어요?
그러면 나 살려고. 그거는 뭐냐 하면은 결국은 자기 사랑이죠. 제가 지난 오후설교에 하지 않았습니까. 사랑이란 것은 직불카드라고. 사랑사랑같은 소리 하지말고 현찰주고 사랑해라. 현찰 보더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현찰. 그것도 약속어음도 안되요. 손에 딱 쥐어줘야되요.
사랑은 돈으로 하는거지 말로 하는게 아닙니다. 왜 그러냐 하면 어릴때부터 우리는 어릴때부터 그런식으로 커 왔어요. 팩트입니다. 우리 외손녀를 봐도. 이것은 사실이예요. 그런데 이스라엘은 뭡니까? 명령을 받아요. 어떤 상태에서? 명령이 어긋나면 광야에서 죽여버립니다.
그러면 죽여버리면 인간으로서는 손해입니까? 본전치기 입니까? 예? 답이 굉장히 간단한데. 내가 죽으면 손해예요? 본전이예요? 본전이잖아요. 그런데 본전 같으면 주님은 손해냐? 주님은 손해가 없어요.
없는 것을 만들어서 없애는 그 과정속에서 없애야 될 이유가 나오지요. 그 이유가 뭐냐 바로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하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안에 있는 하나님의 취지입니다.
하나님의 자기 취지를 표현하기 위해서 없는 인간 만들어서 90평생 살다가 없앰으로서 너는 죄값으로 죽고 의가 없어서 죽는다 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명령자를 줬는데 그 명령자는 없어요.
없어. 그냥 불기둥은 있는데 구름기둥은 있는데 그 안에 나같은 형상의 사람은 거기에 들어 있지 않습니다. 모세는 그냥 예예 알았습니다. 모세는 지금 누구 보고 이야기 하는거예요? 그냥 하나님의 회막 앞에서 하나님의 지시 받고 오는 거예요. 누가 지시하던가요? 없어요.
지시하는 사람이 눈에 안보여 없어요. 참 이 기이하고 신기하지요? 그렇지요? 기이하고 신기하지요? 이 기이하고 신기한 것 신약 때 성령 받은 사람이 그래야만 한다는 겁니다. 이 구약에 지금 제가 이야기 하는 것은 민수기 17장 이야기를 먼저 하기전에 10장 9절 이야기할 때 이야기 하겠는데요.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은 민수기 11장에 보게 되면 하나님의 신이 임합니다. 하나님의 신이 임할 때 사람들은 오해해요. 뭐라고 오해하냐 하면은 하나님의 신이 임하니까 이제 이스라엘 잘 되겠지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신을 주셨겠지 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민수기 10장 11장 보면 그런 내용이 아닙니다. 그들은 지금 10번씩이나 하나님 앞에 대들면서 모세보고 이야기 했어요. 민수기에 나옵니다. 이럴거 같으면 우리를 애굽에서 왜 데리고 나오느냐. 이럴려고 나왔느냐 누가 하는 말처럼. 여기서 죽일려고 나왔느냐 하는거예요.
이게 일리가 있어요. 백성들이 일리가 있다고요. 백성들은 이미 젊어서부터 어디서 나온 사람들이예요? 애굽에서 나왔지요. 그럼 애굽에서 나왔으면 이 사람은 무슨 사람입니까? 태생이 애굽인이예요. 물론 혈족으로는 히브리인이지만.
모든 문화적 사고방식은 그 의식상태는 뭡니까? 애굽인이라고 애굽인. 애굽인들의 특징이 뭐냐? 지도자 있는거예요. 지도자. 그 지도자는 조건이 있어요. 최소한의 입을 것 먹을 것 보장해줄 때 그 지도자가 지도자 다운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광야에 나왔을 때 하나님께서 먹을 것 줬습니까? 마실거 줬어요? 기어이 줄거면서 줄거면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자율차 같애.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요구하는데로 가지 않고 성막이 지시하는데로 가면서 어디로 가느냐 하면은 물이 있는곳으로 가는게 아닙니다.
항상 물이 없는 곳으로 가요. 약을 올려도 보통 약을 올리는게 아닙니다. 물이 없는 곳으로 가요. 그러면 물이 없는 곳으로 가니까 애굽출신 인간들이 어떻게 되겠어요? 이대로는 못산다. 때려 죽어도 이렇게는 못산다.
자, 이런식으로 우리는 살수 없다 할 때 그들의 의식에서 뭐가 빠졌습니까? 우리는 원래 처음부터 없어야 되 라는 사고방식이 어디로 갔는지 날라가 버리고 마땅히 우리 외손녀처럼 마땅히 먹어야되고 마땅히 나는 살아야되고 살이유가 뭔데? 있어요? 없어요? 없어요.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을 죄를 지적하면서 이유도 같이 포함되는 것이지 존재 자체가 이유가 없어요. 사는 이유가 없다니까요. 미국트럼프 대통령이 대통령하는 이유가 뭡니까? 없어요. 북한에 김정은이가 핵폭탄 만드는 이유가 있습니까? 없어요. 없다니까요. 아무 이유 없어요.
서울시장이 그 청년들 돈 50만원 준 이유 있습니까? 없잖아요. 미세먼지 있다고 이틀동안 교통비 안 받는 것 그거 이유 있었습니까? 미세먼지 더 많이 생겼는데. 세상에서는 아무 이유도 없고 목적도 없어요. 엘지화학에서 신약개발 이유가 있습니까? 없어요.
왜냐하면 그 약 먹고도 죽으니까. 결국은 91세 되면 죽잖아요. 90 다음에 91 그다음에 제로라니까. 숫자 계산이 이상해. 붕 떳어. 91이 아니고 마이너스 91, 마이너스90, 마이너스. 내가 보기엔 한 40되 보이는데 지금 많이 봐주는거다. 마이너스 40.
그만큼 죽음에 가깝다 이말입니다. 더 어쩔수 없는 세계에 가는 거예요. 구약을 제대로 보세요. 구약은 나 여기 있고 하나님 도와준다. 그게 구약이 아닙니다. 구약은 예수님에 대해서 증거하는 거예요.
구약은 뭐냐 하면은 없어도 되는데 지금 내가 무슨 정신으로 사느냐 이걸 되묻는다 이말이죠. 자꾸 없애버려요. 주께서 이상해. 만들어 준거 키워 건사하고 보호할 생각 안하고 자꾸 없애버린다고요.
없애버리면서 중간중간에 유월 되는데 하나님의 신이 임합니다. 신은 뭐냐? 심판이예요. 심판의 당위성, 심판의 정당성. 너희들은 죽어도 싸다. 죽어도 싸다. 그런데 이점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그들은 애굽에서 성장했고 사고방식이 애굽적입니다. 기본적으로 마실물과 고기와 양식은 먹을떡은 있어야 되요. 이 사고방식에서 그들은 스스로 문제 있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습니다. 사람사는게 이게 전부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생명이라 하는 것은 물이나 떡이나 양식가지고 고기 많이 먹어서 사는 동네가 아니거든요. 물, 떡, 고기는 눈에 보이잖아요. 보이는 세계는 그거는 죄의 세계예요. 보이는 세계는 보이는 세계안에 순환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무슨 세계냐? 말씀의 세계입니다. 그게 신명기 8장에 나옵니다. 너희에게 만나를 준 것은 마음을 낮추어서 사람은 네모로 살지 않기 위해서 네모가 뭡니까? 사람은 떡으로 사는게 아님을.
떡과 매치된 인생이 애굽인생이라면 이제는 떡과 매치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등장하는 생명과 매치를 시킬려면 떡 없어야 되는 인간으로 달라져야되요. 그러면 떡을 안먹는다는 뜻이 아니고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고 뭐로 산다고 했습니까?
마태복음 4장에서 그 광야에서 예수님 시험할 때 뭐로 산다? 말씀으로 사는 거예요. 그런데 말씀으로 산다고 하니까 교회에서 뭐하느냐 말씀을 자꾸 보는 거예요. 일독했다. 2독했다. 그냥 처 넣는걸 먹는다 하잖아요.
말씀도 처 넣어야 깔대기로 벌려가지고 처 넣는걸 하는데 말씀을 먹을때는 이렇게 성경지식을 신학을 하는게 아니고 말씀에 죄를 지적받는거예요. 죄를 지적받는거예요. 다시 원형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없어도 되는데 주님의 은혜로 있게 되었습니다 라고 자꾸 없어도 됩니다 라는 쪽으로 돌아가는게 그게 말씀을 먹는 거예요. 왜냐? 말씀과 나의 눈에 거울앞에 보이는 나는 대척 관계이기 때문에 그래요.
내가 없더라고 말씀이 있다면 나는 생명을 얻습니다. 그게 요한복음 1장 4절에 나와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그 다음에 말씀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있었으니. 그러니까 우리는 죽어도 말씀이 건재하다면 그 건재한 생명이 생명으로 인하여 우리는 계속 영생을 누리게 되는 겁니다.
그걸 가지고 요한복음 1장 12절에서는 하나님의 권세로 말미암아 이것은 사람의 뜻으로 육으로 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로 난자가 다시 말해서 말씀에 의해서 말씀에서 난자들이 따로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신이 이 만큼 중요해요. 신의 역할은 뭐다? 심판하는 역할. 우리 출신이 애굽출신이거든요. 애굽출신이니까 이걸 지적질 해야되지 않겠습니까? 오늘 강의 제목 지적질.
민수기 10장 9절 봅시다. 민수기 10장 9절에 보면 10장에 보면 나팔불어요. 나팔부는데 전에 그 저 은밀한 나라에 보면 나팔의 기능에 대해서 제가 소개해놨어요. 나팔의 기능은 준비하는 기능이 아니고 이미 모든 것이 완료되었을 때 부는 나팔이예요. 전쟁이 마감되었을 때.
대표적인 것이 바로 뭐냐. 여리고성돌 때. 떡줄놈은 생각도 않는데 뭐부터 마신다? 김칫국부터 마시죠. 그 김칫국이 나팔이예요. 떡은 나중에 김칫국부터 마시고 떡은 나중에 먹으면 되요.
예수님의 피는 먼저 마셨어 이미 구원 받고 난 뒤에. 보자~ 내가 도대체 얼마나 죄 지었기에 예수님의 피 아니면 구원이 안되냐. 보자 라고 91살까지 사시면 되는 겁니다. 구원은 챙겨놓고. 구원 챙겨놓고.
도대체 이 구원이 나의 행함과 연관안되고 예수님의 일방적인 피과 성령의 선물로만 구원이 됬는지를 보자하는 마음으로. 보자~~~~보자 하는 거예요.
그러면 보자 하는 이 행위에 대해서 이 행위가 완벽합니까 아니면 보자 하면서 살피는 이 행위가 이 자체가 완벽합니까? 아니면 이게 부족한것이고 미흡한겁니까?
이게 완벽한거예요. 보자 하는게. 이게 자유거든요. 자유라하는 것은 누구한테 예속된 것을 자유라 합니다. 자유라 하는것은 반대말 예속의 같은 말이예요. 누구에게 예속되었냐? 인간세계에서 자유라하는 것은 내가 나에게 예속된 것을 자유라 합니다. 그런데 성령의 세계에서는 예수님에게 예속된 것을 자유라 해요. 예수님께서 보자 하게 하시면서 제한된 우리가 이 세상을 다 못살잖아요. 제한된 환경, 제한된 부모, 제한된 재산, 제한된 가정에서 태어나서 제한된 학업과 제한된 장사, 제한된 어떤 행위 그 속에서 뭘 발견하느냐? 나름대로의 뭘 발견하느냐? 죄를 발견하는거예요. 죄를.
니가 살면서 아는 죄와 내가 살면서 아는 죄가 이야기 해보면 서로 다르지만 그 죄는 아까 처음에 이야기한 그 죄라 하는 것은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게 한 내가 원인이 되어서 어떤 노림수로 결과로 노림수를 노리겠다는 이 사고방식. 내가 착한일해서 천당가겠다는 이 모든 것이 바로 죄라는 것을 보자 보는 거예요. 보게되면 이게 없어집니까? 그대로 있습니까? 오늘 강의에서 진짜 중요한 이야기 하는데 죄가 없어지겠어요? 죄가 점점더 늘어나겠습니까? 안그러면 없어지겠습니까?
늘어나잖아요. 죄가. 늘어난다고요. 죄가 늘어나요. 왜? 점점 더 살다보면 경험이 많아지니까. 아! 이것도 죄였어? 아니 이것도 죄였어. 헌금도 죄고 강의도 이 강의도 죄고 설교도 죄고 선교한다고 저 알래스카 간것도 죄고. 아 그것도 죄였구나. 보자~아 이것도 죄네. 죄가 점점 늘어나는 즐거움이 있어야되요. 죄가 늘어나는 즐거움.
어떤 울산에 있는 미친 여자분이 계신데 세를 줬거든요. 세를 주니까 나중에 가보니까 입구부터 해가지고 온 쓰레기가 음식 쓰레기 냄새나는 쓰레기가 쌓여있어요. 계속 쌓여있어. 무려 3년 2개월 동안 쌓아놓은 쓰레기가 이만큼되요. 그런데 만약에 한 93세까지 살아보세요. 얼마나 쌓이겠어요? 이 쓰레기 쌓인다고 회개하는 그것도 쓰레기예요. 회개도 쓰레기 회개도 쓰레기예요. 회개도 쓰레기고 성령으로 헌금한것도 쓰레기입니다. 전부 쓰레기라니까. 쓰레기 외에는 우리는 할줄아는게 없어요. 이 쓰레기 모으는 것. 이 죄짓는 것 외에는 할줄아는게 아무것도 없어요. 이게 뭐냐 하면은 보자~~이게 보자예요.
왜 이런 것이 정당하냐 하면은 민수기에서 한번 봅시다. 보자. 민수기 11장 17절 누가 한번 읽어보세요. 내가 강림하여 거기서 너와 말하고 네게 임한 영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하고 너 혼자 지지 아니하리라.
18절 내일 고기 먹기를 기다리라 너희가 울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애굽에 있을 때가 우리에게 잼있었다 그 다음에 거기 보면 그 앞에 보면 애굽에 있을 때는
11장 5절에 보면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애굽에 무슨 마트 있었어요? 부추와 파와 마늘을 먹은 것이 그 다음에 뭡니까? 먹는 것이 그 다음에 뭐라고 되어 있어요? 생각! 이것이 사고 방식아닙니까? 이 사고방식을 어떻게 빼냅니까? 어떻게 지워요 이 사고방식을. 짬뽕 맛있는걸 맛있다하는데 이걸 어떻게 지웁니까? 맛있는건 맛있는건데 이게 죄든 뭐든 간에 맛있거든요. 이걸 어떻게 지워요?
주여 짬뽕 생각하지않고 천당가게~ 이게 됩니까? 이제는 라면 그만 먹겠습니다. 그래서 구원받겠습니다. 라면 그만 먹고 구원받은 사람이 없어요. 이게 호사스러워서 그런게 아닙니다. 우즈베키스탄처럼 못사는 나라 있잖아요. 누가 우리에게 우유한컵 줄꼬? 우유가 아주 최고급이라면 그래도 그게 오만이고 교만이예요. 그게. 가난하다고 천당가는거 아닙니다. 부자라고 다 지옥가는게 아니예요. 죄 알기 위해서 부자되게 한겁니다. 죄 알기위해서 재벌 3세 되게 했고 죄 알기 위해서 목공소딸 목공소에서 일하게 만들었어요. 도경이하고 둘이 시안이하고.
전부 다 우리 일어난 모든 지점에서 그러니까 남의 일에 관여하지 마세요. 잠언서에 나오지요. 남의 일에 보증서지 말라고. 괜히 또 보증서 가지고 수십억 빚져가지고 또 하지마시고.
왜 남의 인생에 그렇게 관여합니까? 주께서 각자 죄 느끼는 방식이 다 달라요. 부부요? 살아온 환경 다르잖아요. 뭐 맞춰나간다고요? 뭘 얼마나 맞춰 나갈건데? 태생자체가 가정환경이 다른데 어떻게 맞춰나가요? 그저 이혼했다고 치고 사는 사람들이 마음 편하지. 이미 이혼한거예요. 이혼했는데 아직 때가 안됬음에 때가 이르지 않음에 그냥 사는거예요.
마음을 그렇게 먹어야 범사에 감사하지요. 뭐 요구할게 그리 많으면 무슨 감사가 되요? 요구할게 많은데. 각방쓴다. 원래 각방쓰게 되어 있어요. 총각 처녀일 때 각방썼어요. 붙어 있는게 이상하지. 뭐든지 각방 써도 감사하고 붙어쓰면 더 감사하고 이러면 되지.
꼭 이래야 된다는 원칙과 모델을 짜지 마세요. 그것은 자기가 살아온 환경에 의한 조성된 본인만을 위한 상상의 자기 세계입니다. 소꿉놀이 하는 거예요. 소꿉놀이. 남의 소꿉놀이 따라 할 필요는 없고요. 어차피 죄를 알기 위해서 주신거니까. 마음껏 거기서 죄 지을 수 밖에 없지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한다? 바로 성신이 임함으로서 이 형편에 대해서 성신이 임하지 않을때는 뭡니까? 그들이 뭘했어요? 원망을 했잖아요. 왜 기본도 안해주는냐 기본도. 적어도 기본은 해줘야지 기본은. 마실거 입을거는 줘야지 라고 했는데 성신이 와보니까 아하 우리는 다른 생명, 인간들이 알고 있는 이런 나라 말고 전혀 다른 나라, 떡으로 살지 않는 나라, 물로 살지 않는 나라, 그리고 죽어도 죽지 않는 나라. 그 나라로 우리가 지금 혼자가지 않고 성막과 더불어 불기둥과 같이 가고 있구나 라는 것을 성령과 성신과 함께 가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마음껏 느끼게 만들어요. 그런데 11장 17절에 그렇게 되어 있는데 그뒤에 29절에 보면 29절아니고
10장 제가 지금 무슨 이야기 할려고 하냐 하면은 10장 거기에 9절 제가 읽어볼께요. 또 너희 땅에서 너희가 자기를 압박하는 대적을 치러 갈 때에는 나팔을 크게 불지니, 아까 나팔 이야기 하다가 이렇게 빠져 버렸다.
나팔이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필히 무엇이 전제 되어 있느냐 하면은 너는 전쟁을 해야되요. 자, 먹을 것도 지금 제대로 못챙겨 고기도 먹고 싶은데 고기도 없어 떡도 없어 그런 판에 또 하나님께서 뭐를 또 갖다 붙이십니까? 당해야될 적군까지 왔을 때.
이거는 뭐 자기것도 안정되지 못한데 적군이 왔다 무슨 되가지고 이기겠어요? 결국 적을 이긴다는 말은 결국 못이기죠. 못 이겨요. 못이기는데 못 이기는 사람들 모아놓고 뭐라고 하냐 하면은 이겼다를 외치라고 이길것이다가 아닙니다 이겼다! 이미 완료된 상태로 불러야 될게 뭐냐 나팔부는 겁니다.
나팔은 여리고성 할 때 여리고성 치러 가기 전에 이미 여리고성을 접수한거예요. 김칫국부터 먼저 마신거예요. 김칫국 다 마시고 나니까 떡이 절로 열렸어요. 그러니까 예수의 피를 미리 한사발 예수님의 피와 살을 한 사발 먹고 나니까 비로서 세상이 보인다 이 말이죠. 아! 내가 보이고 세상이 보이는 거예요. 아! 내가 이것 때문에 이 세상에 지저분하게 살게 하셨구나. 아 이럴줄 알았으면 진작 지저분하게 살걸. 뭐라고 내가 고상한척하고 온갖 또 되지도 않는 도리 한다고 회개한다고 돈은 돈대로 교회에 다 뺏기고 아이고 미쳤나 목돈 다 뺏기고 내가 속았다. 이게 속아져야되 또! 안속지면 안되 절차라. 목돈 날려줘야되. 목돈 날려주고 돈은 돈대로 날리고 구원도 못 받고 그래야되. 그래야 정신차려. 안그러면 정신 못차려요.
전부 다 이거는 이미 한사람이 먹고 난뒤에 시작이다. 그러면 피에 취하겠지요. 피에 취하든 술에 취하든 이미 취한인간 취한인간은 눈에 뵈는게 없어요. 그래서 성령 이야기 할때는 에베소서 5장에서 무엇과 대비합니까? 뭐 취하지 말고? 술 취하지 말고 성령 취하라고 하지요. 뭐 그거 알기 위해서 또 술을 한번 마셔봐야되요?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은 술 먹어 본적이 없잖아요. 예수 믿는 사람이니까.
한 방울도 포도주도 먹어본적 없잖아요. 포도주도? 그렇죠? 술취하는게 어떤 느낌인줄 모르지요? 주께서 행여나 먹으라고 하는게 아니고 눈감고 있는데 갑자기 누가 강제로 해가지고 입에 넣어가지고 술취할 수는 있어요. 그것도 주의 은혜라 생각하고 감사하세요. 주여 죄인인데 이럴수가 있습니까 하지 말고 성도인데 이렇게 하지말고 그것도 범사에 감사하시고 그냥 먹히세요. 먹으라는 소리 안했습니다 제가. 말 조심해야되요. 강제로 먹이면 먹히되 아 이게 취하는거구나.
완전히 헤롱헤롱 이런게 헤롱헤롱 이구나. 아무데나 오줌싸는게 이게 술 취한 것의 결과구나. 그렇다면 우리는 왜 취해야 되냐? 우리는 이미 죄에 취했어요. 죄에. 틈만 나면 죄짓는 거예요. 틈만나면. 하지말라하면 더 하고 싶어. 말리면 더 하고 싶어요. 죄에 취하세요. 참 좋은거 가르친다. 그런데 본인이 고르지 마세요. 주어진 환경이 나중에 뒤돌아보면 죄 아닌게 없습니다. 다 살아온 것이. 왜 죄 아닌게 없느냐? 감사가 범사에 감사하지 않을 때 이미 수상합니다. 분명히 그거는 죄 작용하고 있어요.
범사에 감사하지 않는데 ‘엄마 이번에 또 떨어졌어요.’ ‘너 죽었다.’ 이럴 때. 뭔가 감사 나오지 않을 때 이미 꿍꿍이 따로 있습니다. 이거는 천국에 부합되지 않는 천국의 성질과 전혀 맞이 않는 오히려 천국과 배척이 되는 애굽적인 사고방식을 벌써 또 주께서 내 속에 성령께서 내 속에 없는 죄를 또 유발시켜 놨어요. 율법이 있음으로서 우리가 뭐한다? 죄를 짓는거예요. 어려서 죄짓는게 아니고 율법을 율법되게 하기 위해서 죄 지을 수밖에 없듯이 성령이 성령되기 위해서 없는 죄를 자꾸 유발시켜 주는 겁니다.
왜? 그래야 십자가 피의 모든 완료가 우리 안에서 완료가 발생되거든요. 성령께서 이렇게 광야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는데 어디로 인도한다고 했습니까? 아까 복습한번 잠시 해봅시다. 물 없는 곳, 양식 없는 곳, 고기 없는 곳, 그 다음에 또 한가지 적군을 만나도록 그렇게 인도해요. 그러면 적군 만나기 물 먹기 그전에 애굽에서는 누구 힘으로? 내가 갖고 있는 나의 노동의 힘으로 이것을 뚫어 볼려고 했어요.
자, 여기서 질문합니다. 이것을 통과했다 칩시다. 적도 이기고 재벌 되어가지고 먹는거 해결했다 칩시다. 그러면 마지막 남은게 뭘까요? 누구의 영광이겠습니까? 자신의 재주와 자신의 놀라운 인내력과 자신의 성실함과 참음의 결과겠죠. 그러면 그 사람이 가는 나라는 뭡니까? 천국이 아니고 어느나라? 그냥 지옥이죠. 지옥. 그냥 지옥인거예요. 그리고 이런 내 찬양, 내 찬미, 나에 대한 옹호와 나에 변명과 이 비겁한 변명 이런 것이 우리가 육이 있는 이상은 안나올수가 없지요. 아무리 은혜 받아도 배고프면 밥먹어야되잖아요. 진라면 먹던지 해야된다 말이죠.
그래도 그럴 수밖에 없을 때 성령을 받은 사람은 ‘아 주여 감사합니다. 라면 끓여 먹는 이것도 죄였군요.’ 라고 감사의 기도 하고 오늘도 죄를 맛있게 먹자 해서 이렇게 먹는데 성령 없는 사람은 ‘주여! 오늘 이거 먹고 영광돌리게 하옵소서.’ 그럼 그거 안줬으면 영광 안 돌릴 참이였어? 기본적으로 라면도 안주고 집에 물도 안주면 영광 안돌릴 참이였어? 그럼 원망해도 된다는 말입니까? 기본적으로 안줬으니까 하나님께 원망해도 하나님 섭섭하게 여기지 마세요 그런 시비조 인가요? 그런건가요?
질소와 산소의 혼합물을 자기가 만들었습니까? 이 공기를. 밤중에 심장 뛰는 것은 이것은 자율신경이거든요. 자율신경. 교감부교감 나오지요. 교장 부교감 말고. 자율신경이라고 이거는. 의식없이 자동으로 뛰게 되있어요.
새벽 2시에 일어나가지고 뛰어라 뛰어라 이래서 자고 한시간 쉬고 뛰어라 이래서 심장 뛰는줄 알아요? 살려주는 것은 발걸음도 헤아리는것도 다 은혜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우리가 얼마나 감사했습니까? 돈주고 샀습니까? 여러분 열심히 돈벌고 요령껏 버텨냅시다. 왜? 그게 죄이기 때문에 그래요. 그럼 의를 행하자. 의는 없어요. 의는 없다니까요. 행하는 내가 행하는데 무슨 의가 있어요. 그러면 의는 어디 있습니까?
죄를 뭐로 바꿀때만? 죄를 피가지고 바꿔줄때만 그게 뭐 된다? 하나님의 영광이 되고 주님의 공로가 되고 그 주님의 공로 그게 하나님의 의가 되는 겁니다. 그냥 사시면 되요. 왜? 그 상황은 살고자 하는 모든 맞닥뜨리는 그 상황은 내가 조성하는게 아니고 주께서 계속 주어지기 때문에 주어진 상황을 밀어내지 마시고 아니요 하지 마시고 그냥 받아주세요. 망가지는것밖에 더 하겠습니까? 그리고 그 망가짐의 끝은 뭡니까? 이밤의 끝을 잡고? 망가짐의 끝이 뭐예요? 감사지요. 감사! 그동안 안 망가진 것이 감사를 안나오게 만들었잖아요. 버티니까 감사가 안나오고 오기만 나왔잖아요. 그런데 망가지니까 감사만 나온다고요.
제가 그 망가지는 방법에 대해서 지난 낮설교에 마지막에 진짜 상세하게 이야기 해줬어요. 추운날 통 넓은 유리에 따듯한 오후 2시에 햇빛들어올 때 진짜 아무소리도 안들리는 조용한 가운데 홈드레스 입고 커피잔들고 커피 마실 때. 이거만큼 망가진게 어디 있습니까? 이렇게 한잠 푹 자는 것, 범사에 망가졌거든요. 망가지면 뭐 나온다고요? 범사에? 보일러 안틀었는데 햇빛 나왔으니까 범사에 감사하잖아요. 모든일에 감사하잖아요.
그러면 누가 싫어해요? 원인은 주님이 줬기 때문에 누가 싫어합니까? ‘니가 똑바로 해야 지금 이 좋은 상태를 유지할수 있어.’ 또 마귀가 또 달려 들어요. 니가 이정도로 여유있는 삶을 살려면 니가 기도를 얼마해 되고 성경 하루 몇장 읽어야되고 헌금 십일조 반드시 해야되고 기본이고. 계속해서 내 육이 자꾸 나한테 부담을 계속 주는 거예요. ‘니 인생이니까 니가 책임져야되. 니가 책임 안지면 너 삼대가 작살나. 작살나면 좋겠어?’ 성령받은 사람은 ‘작살나세요 작살나지 없는데.’ 이렇게 나오면 마귀가 기분나빠서 가버려요.
다음에 보자 두고볼 거야 그러고 오고. 만약에 그걸 감당 못하고 ‘그래 맞아 이러면 안되 이 시간에 기도해야해.’ 이렇게 나오면 그 다음부터 계속 악마한테 시달리게 되는 겁니다. 기도 그렇게 하면 안되 꿇어앉아서 해야되. 왜 이렇게 손 모으듯이 안아프지? 아프도록 해야되. 계속 내가 지어내요. 더 난코스. 핸디캡을 계속 줘요. 핸디캡을. 계속 핸디캡을 주는 거예요. 찌릿찌릿 더 찌릿찌릿해야되 이제는. 아이고 속아 넘어가 속터져서 기도하고 마칩시다.
하나님 아버지 그만 속게 하옵소서. 이미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을 해 버렸는데 성령께서 하셨는데 아직도 나 자신에게 무슨 미련이 남아서 독자적으로 잘났다 소리 그거 과시할려고 악마한테 사로잡히고 놀림당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