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 제2강–열왕기하 강해 : 왕과 죄
(강의:이근호 목사)
첫째 시간에 인간의 패턴에 대해서 한 것은, 그냥 임의로 움직이는 세상이 남들은 모르지만 나에게는 내가 여기 있어야 될 이유를 거기서 뽑아내야 되지 않겠습니까? 세상에 있다, 내가 여기 있다. 그냥 무심코 살다가 죽으면 안 되고 이 세상은 나한테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뽑아내는 겁니다. 그리고 세상을 만드신 배후에는 신이 있을 것이고 그 신이 이 세상을 나에게 주었으니까 나는 이 세상을 통해서 신에게 할 도리를 다해야 된다는 그런 생각. 그런 생각이 죄라는 생각을 감히 해내지 못하는 이유가, 본인들이 메시아가 아니니까 마지막 아담이 아니니까 조금이라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 뭔가 긍정해보려고 하는 거예요.
우리가 신구약 성경을 다 통해서 보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예수님 때문에 내가 있는데 언제도 그런 이야기했습니다만, 사람들이 잘못하는 게 뭐냐 하면, 자연이 있고 자기가 자연을 관찰한다는 거예요. 자연에서 따로 떼어 내가 자연을 바라본다고 생각하는데 인간은 자연의 일부가 돼요. 인간보다 자연이 더 큽니다. 이걸 유물론이라 합니다. 인간은 여기서 진화돼있고. 그래서 인간은 자기 원대로 하되 안 들키기만 하면 자기는 행복한 겁니다. 그리고 죽으면 자연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사는 동안에 자기 즐거움과 행복을 위해서 살면 그만이라는 거죠. 대표적인 것이 공산주의사회지요.
공산주의사회에서 신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고 신을 인정해요. 왜냐하면 신이 나를 위해서 이 자연을 주었다. 러시아에도 러시아정교회라고 있지 않습니까. 세상에서는 신을 다 인정하고 살아가는 것은 유물론으로 살아가고.
다시 하겠습니다. 패턴화한다는 것은 인간이 자기 의미를 찾기 위해서 그렇게 한단 말이죠. 그런데 내가 왜 의미를 찾아야 되느냐? 그건 맹목적이에요. 아무 이유가 없어요. 그 시작이 잘못된 게 뭐냐 하면, 자연 속에 일부가 됐는데 자연이 있는 그대로 의미라고 보면 되는데 그렇지 않고 내가 자연을 보면서 자연을 날 위해서 존재한다고 일방적으로 뽑아낸단 말이죠. 뽑아내는 모습 속에서 인간은 신을 거론하는 거예요. 내가 잘 되기 위해서 신을 거론하는 방식을 취합니다.
이러한 인간들에 대해서 초를 사람들이 바로 선지자들입니다. 선지자는 살려주세요, 가 아니에요. 그냥 죽으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에게 뭐라고 했느냐 하면, 네가 만약에 북쪽에서 대접받지 말라고 했을 때 선지자가 대접을 받아도 괜찮아요. 본인이 대접받고 죽으면 돼요. 그것도 기능이니까. 선지자는 철저하게 자기한테 실익을 생각하면 안 돼요. 이럴 것 같으면 말을 잘 들을 걸. 그럴 필요 없어요. 말 안 들어서 하나님의 사자가 와서 물려 죽어도 그걸로 되는 겁니다.
세례요한이 말 심하게 해서 목 날아간 게 아니에요. 그것마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거예요. 이건 말로 하는 것보다도 성경 보면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열왕기상 14장 15절에 보면, 거기에 아히야 선지자가 나올 거예요. 여로보함이 늘그막에 애가 있는데 애가 죽어가니까 자기 아내를 변장시켜서 아히야 선지자에게 살 것인지 물어보라는 그 대목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쳐서 물에서 흔들리는 갈대 같이 되게 하시고 이스라엘을 그 열조에게 주신 이 좋은 땅에서 뽑아 저희를 하수 밖으로 흩으시리니 저희가 아세라 목상을 만들어 여호와를 진노케 하였음이니라” 여기 하수가 나와요. 유브라데 강입니다. 이 말은 여로보암이라는 이스라엘 첫 번째 왕이에요. 첫 번째 왕부터 이스라엘 전체 백성이 바벨론으로 쫓겨난다는 예언을 아히야 선지자가 합니다.
이 말은 가만히 새겨보면 잘하라는 뜻이 아니에요. 정신 바짝 차리면 안 쫓겨난다는 뜻도 아니고. 너희들이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봐야 이미 지형, 북쪽 이스라엘에게 벌어질 일은 벌어져서 다 쫓겨나가고 빼앗기게 될 것이다. 다만 내가 너희를 이 땅에 두는 이유는 쫓겨날 때 도대체 무슨 이유로 왜 쫓겨났는지 드러내기 위해서 그런 거예요. 뭘 드러내느냐? 언약의 법칙, 언약이 담고 있는 그 내용을 북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서 언약에 이런 저주의 내용들이 있음을 드러내면 언약을 주신 성과는 다한 거죠. 그러면 됐잖아요.
주님이 저주받도록 쓰실 때에 하나님 입장에선 전혀 손해나는 장사가 아니지요. 그걸 새삼스럽게 인간과 거래한답시고, “잘하면 봐줄 게” 이러지 않고 “백날해도 안 돼, 안 돼. 끝났어. 고집부리기는, 끝났다니까. 한 번 보여줘? 그래, 왕 줄게. 계속 왕 줄게.” 계속해서, “거 봐, 내 말 맞지? 내 말 맞으니까 너도 기분 좋지?” “기분 좋습니다.” 그러면 됐네. 우리 그렇게 살면 안 됩니까? 내가 망하는데, 몰락(이 말이 너무 좋아). 내가 몰락하는데 몰락하는 것이 주님의 원칙대로, 법칙대로 몰락한다면, “주여, 이런 영광이 어디 있습니까?” 이렇게 고백하면 괜찮지 않습니까. 그만한 배짱도 없어요? 왜 내가 따로 좋아 져야 돼요, 왜 내가 따로 행복해야 됩니까?
시선이 내 쪽에서 하나님을 쳐다보면 안 돼요. 내 쪽에서 쳐다보면 자연이라는 것이 칸막이 쳐져서 자연 밖의 신이시여, 자연을 통해서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옵소서. 이것은 마치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도 아닌 게 모든 자연은 나를 위해서 존재해야 되는 것처럼 반 복음적으로 나오는 겁니다.
차라리 시선을 바깥에 하나님에 시선을 둔다면 자연세계에서 언약의 내용, 망할 것은 망하고 될 것은 된다는 것에 대해서 이런 일만 차질 없이 잘 진행된다면 저도 군말 없이 감사의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이렇게 살면 되잖아요. 그것 때문에 열왕기상하가 있는 겁니다. 강의 어렵지 않지요. 뭐가 어려우냐 하면, 몰락하는 역할을 언제든지 내게도 줄 수 있다는 그게 선 듯 내 마음 문이 안 열려서 문제인데, 마음 문이 안 열린다고 주께서 못하시는 분도 아니거든요.
성경이 어려운 이유는 자기 것 챙기려니까 어려운 겁니다. 쓰시는 대로 쓰시옵소서. 하면 전혀 어려운 게 없어요. 쓰시는 대로 쓰시옵소서. 그게 선지자에요. 그게 천상회의에 참석했던 선지자의 특징이 그겁니다. 주님께서 쓰더라도 내가 쓰시옵소서, 할 필요 뭐 있습니까? 그냥 가만있으면 쓰시면 쓰실 것이고 안 쓰실 것이면 안 쓰실 것인데 나는 그냥 내 할 일 하렵니다. 이게 아까 이야기한 패턴이 된다니까. 자기에 속해 있는 자기 정당성에 대해서.
예를 들어서 열여섯 소녀가 개 아파서 고민입니다. 그걸 안중근 의사한테 상담한 거예요. 안중근 의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그런 정신으로 사격술 연마해서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려 하는데 “아저씨 우리 집 개가 아파요?” 하면, “이 철딱서니 없는 것.” 하잖아요. “생각의 폭을 넓혀라. 어떻게 너만 생각하고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지 않느냐?” 이렇게 나올 것 아닙니까.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는 그들의 왕이에요. 차라리 어린아이가 되면 되는데 안중근이 돼서 문제라. 시건나서 문제라. 시건난 것도 아닌데.
패턴화 이유가, 011 이러지만 작게 보면 개 키운다, 안 키운다 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개 키우는 아파트가 서울시의 집값을 올리느냐, 낮추느냐? 크게 보는 거예요. 집에 개 키우든지 고양이 키우든 관계없어요. 이게 누구냐? 부동산중개소. 동탄, 부동산정책 때문에 동탄 집값 뚝뚝 떨어집니다. 뒤늦게 뛰어들어서. 동탄 신도시 가격, 또는 인천 송도는 어떻고? 지금 돼지, 개 키우는 게 문제 아니에요. 숫자를 늘리자는 말이죠. 동탄이 아파트 돼버리면 이 안에 변수가 250가지가 더 들어가는 거예요. 변수 250가지 들어가서 아파트 값 내리든 오르든 간에 360가지는 아니잖아요.
360가지 들어간 사람이 안중근 의사에요. “이 사람들아, 자본주의 빠지지 말고 국가를 먼저 생각하자.” 이게 360가지 변수에요. 공부를 많이 했어요. 하루에도 책을 보지 않으면 혀에 가시가 돋는다 했어요. 우리는 시대를 위해서 민족을 위해야 후손들에게 떳떳하다. 후손들까지 걱정하고 있어요. 아이고, 참 내.
천주교에서는 안중근이 천주교 신자니까 국가와 민족 하니까 여러분, 천주교에 많이 오셔서 이 나라의 위대한 영웅을 키워냈습니다. 그러니까 천주교가 나라를 위하니까 많이 기도해주세요. 안중근을 상품화시켜요. 여러분, <새롭게 하소서> 보세요. 유명 연예인들 다 나옵니다. 심지어 송대관이도 나와요. 장사 되면 다 나옵니다. 시청자들에게 뭘 요구하는 거예요, 어떤 이야기하는 겁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그거거든요. 그게 성경에 안 나옵니다.
아버지는 아들만 사랑해요. 이게 요단강에서 성령을 통해서 계시 받은 겁니다. 아들이 두 번째 아담이거든요. 두 번째 아담을 사랑한다는 말은, 첫 번째 아담 출신들은 다 몰락하라 이 말입니다. 첫 번째 아담 출신은 다 죽여 버리고 두 번째 아담 출신에서 나왔던 사람들, 그 재료를 첫 번째 사람을 죽임으로서 십자가에 같이 죽게 만들어서 더 이상 나도 뭘 합니다, 라는 끽소리 못하게 만들어놓고 일방적으로 주님의 은혜로 그 사람을 천국 백성을 만드는 그 작업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결국 이건 교체작업입니다. 교체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본인이 알아서 구원한다든지 본인이 알아서 육에서 영으로 교체할 수 없다는 그러한 사례들을 계속해서 구약 전체 흐름에서 다 보여줘야 돼요.
유다는 뭘 주장한다 했습니까? 유대는 성전을 사수하죠. 성전사수해서 망한 집단이 사두개인들입니다. 북쪽의 여로보암은 가짜 제사장들을 모셨어요. 그래서 북쪽의 제사장들의 이민을 갔어요. 못 살겠다고. 그래서 받아주는 레위의 위상을 알아주는 남쪽으로 왔어요. 그래서 르호보암이 기세가 높아져서 그들을 후대했는데 이 제사장들이 남쪽에 가서 나라를 통째로 말아먹었습니다. 북쪽이고 남쪽이고 다 망한 거예요.
그러면 그 망한 이유가 열왕기에 나옵니다. 여러 문장들로 돼있는데요. 여로보암의 죄를 벗어나지 않았다. 북쪽에 대해선 이렇게 이야기해요. 남쪽에선 다윗 같이 하지 않았다. 북쪽과 남쪽 둘 다 망하는 데 망한 이유가 달라요. 그렇다면 두 가지를 결합하면 어떤 원리가 나오느냐 하면, 나라는 필요 없다는 거예요. 나라는 필요 없고 다윗이 아니고, 다윗은 죽었으니까. 다윗언약이 실현되면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에요.
다윗언약은 다윗에게 주어졌거든요. 다윗에게 주어지고 다윗언약이 실현되면 된단 말이죠. 실현되는 과정이 망하는 이것이 다윗언약의 실현과정이에요. 나라가 망함으로써 비로소 다윗언약이 서서히 윤곽이 드러난단 말이죠. 분명히 태양은 있는데 먹구름에 가려져있어요. 그러면 먹구름이 서서히 걷히면서 태양이 비추는 것처럼 다윗언약이 실현된다. 그러면 다윗언약이 실현되는 것을 이 시대 사람들이 알아야 될 것 아닙니까. 어떻게 아느냐? 다윗언약 옆에서 파견된 자들이 있어요. 그들이 누구냐 하면 선지자입니다. 선지자는 남쪽이든 북쪽이든 지적 질할 때 반드시 다윗언약에 근거해서 지적하게 돼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궁금한 게 다윗언약이 뭐냐? 다윗은 자기 언약에 조금도 보태지 않았다는 게 다윗언약이에요. 다윗언약은 하나님의 언약과 그리고 그 언약에 들어왔던 다윗이란 죄인과 언약의 만남이 다윗언약의 완성이 되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너희들은 다윗처럼 본인이 죄인인 것을 왜 모르느냐? 이 말이에요. 그러면 죄인인 걸 알면 어떻게 되는가? 죄인인 걸 알게 되면 언약에 대해서 내가 전혀 보탬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고백하게 돼있어요.
그 대표적인 것이 르호보암, 아비암, 아사, 이렇게 되거든요. 세 번째 아사 왕이 이집트 군대장관 세라가 쳐들어왔을 때 아무 무기도 없었어요. 변변치 않은 무기로 이 전쟁은 하나님의 전쟁이라고 손을 떼니까 그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희한하지요. 그게 다윗언약이에요. 일어난 전쟁에 대해서 본인이 손을 떼는 겁니다.
다윗도 그랬습니다. 골리앗과 붙을 때 이번 전쟁은 인간에게 속한 게 아닙니다. 어른들이여. 이건 하나님의 전쟁인데 하나님께서 나 같은 인간을 보내셔서 하나님이 이 전쟁을 친히 진행한다는 것을 어린아이 같이 별 볼일 없는 나를 통해서 지금 다윗이 살아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살아있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줄 것이라고 전쟁에 나서서 골리앗을 애한테 맞아죽는 역할을 했을 뿐이에요.
감독은 주님이에요. 골리앗을 완전 무장했지요. 완전 무장한 것은 완전 무장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완전 무장하고 이마에 돌 맞고 즉사하는 역할을 하는데 아주 대단한 연기를 보였습니다. 못지않게 연기를 아역이지만 잘한 사람이 바로 다윗입니다. 돌리고, 돌리고 계속 돌리다 던졌는데, 죽은 골리앗이나 산 다윗이나 둘 다 민망해서 고갤 들 수가 없어요.
어른들이 놀랬습니다. 그런데 소년 다윗이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른들이여, 저쪽은 할례언약이 없잖아요.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 아브라함의 언약, 할례언약이 있잖아요. 이 언약을 하나님이 준 거예요. 왜 줬습니까? 하나님이 어떤 인간에게나 어떤 신에게도 지지 않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언약의 형태로 우리게 준 거란 말이죠.
줬으면 사람들은 누굴 믿어야 돼요? 지금 우리가 하나님 때문에 이긴다고 믿으면 안 돼요. 왜 이렇게 이기는지 이걸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가 동원된 거예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드러내기 위해서 그냥 들러리로 동원된 거예요. 마치 혼인잔치에 누구 잔치인 줄도 모르고 그냥 오라 해서 옷 하나 걸치고 남의 잔치에 축하하려 간 것과 똑같은 겁니다. 원래 천국혼인잔치는 그렇게 돼요. 문제는 지가 나서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거예요. 나선다는 것은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하는 것을 싫어하는 세력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약속을 훼방하도록 뒤에서 부추긴 겁니다.
이것은 아담이 범죄하고 난 뒤에 사탄이, 여러분이 창세기 3장에서 분명히 알아야 될 것은, 사탄은 인간과 대화하면 안 돼요. 하나님과 대화해야 되는데 사탄은 하나님과 이야기 안 합니다. 자꾸 인간을 부추기고 인간을 앞장세웁니다. 만만한 인간을 부추겨서 인간으로 하여금 보이지 않는 사탄의 습성과 형태와 사고방식을 인간 쪽에 실어버린 거예요. 신처럼 되리라. 그 다음부터 인간은 천상천하유아독존, 자기가 신이 되고 누구한테도 간섭받지 않고 항상 독자적으로 나만 잘 되는 것이 영원한 진리라고 우기게 된 겁니다.
인간은 아담이 범죄 할 때부터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고 엄청나게 문제가 많아요. 문제가 있으면서도 주님께서 계속해서 그들을 버리지 않고 언약을 주고 인도하는 것은, 천국이고 지옥 결정은 인간 손에 달린 게 아니고 언약을 주시고 그 언약을 실제로 이루시는 당사자가 있어요.
언약당사자를 구약에선 하나님의 이름이라 하고 신약에 와서는 이분을 아들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성도는 하나님을 찾는 자가 아니고 아버지라고 불러야 될 사람이 성도에요. 하나님 찾는 것은, 모든 하나님은 우상입니다. 찾을 때 목적과 이유가 있어요. 뭔가 꿍꿍이가 있어요. 좋은 게 좋지 않으냐. 하나님이 날 도와주면 나도 하나님을 도와줄 용의가 있고 하늘나라 확장할 때 헌신할 용의가 있습니다. 충성하겠습니다. 충성 같은 소리하고 있네. 이미 충성할 자가 따로 있어요. 마귀한테 충성하면서 무슨 하나님께 충성합니까? 그건 가짜 하나님이죠.
인간은 철저하게 정신이 이미 한쪽에 충성된 상태에서 지금 위선을 떨고 있는 겁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언약은 위선 떨고 있는 인간에게 찾아옴으로 말미암아 그 내막을 밝힙니다. 위선은 위선대로 드러나고 그런데도 하나님의 언약으로 말미암아 위선자가 천국을 가는 희한한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구약을 통해서 증명해내는 거예요.
남쪽에서 다윗처럼 됐다 할 때 다윗은 언제 드러나느냐 하면 이스라엘 역사가 망하고 난 뒤에 비로소 등장해요. 다윗은 둘로 돼있습니다. 하나는 육적인 다윗으로 드러나는데 다윗의 후손들의 망함으로써 육적인 결과를 이야기해주고, 다윗언약이 함께 있는 사람은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납니다.
그래서 지난 수요일에 그런 이야기했거든요. 세상의 유전은 아버지가 있고 자식이 아버지를 닮는 것이지만 성경에서는 반대라고 이야기했죠. 아버지가 자식이 품고 있는 본질을 미리 분배받아서 자식의 일부를 보여주는 게 아버지와 부모의 관계입니다. 왜냐하면 다윗의 자식이 다윗을 살려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브라함을 구원해내요. 아브라함의 자손이 여러 명이 아닙니다. 단 한 명이에요. 갈라디아서 3장에 단 한 명이 아브라함 자손이 아브라함을 구원하는데 그걸 미리 이야기하니까 아브라함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움을 받았다고 할 때 도대체 이 말은 무슨 뜻이냐는 거죠. 모르죠.
그 모르는 내용을 자식을 통해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조금씩 펼쳐지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내 자식이 메시아란 것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다시 말해서 모든 것을 백 프로 자식이 혼자 다한다는 것을 부모 된 입장에서 그런 관계를 유지함으로 말미암아 자식 덕분에 구원받는 거예요. 아무것도 한 것도 없이 구원받는 겁니다. 내 구원에 내가 조금이라도 보탠 게 없이 구원되는 거예요.
이걸 마귀는 인간에게 자아를 줬기 때문에 자아에게는 시간이 흐르거든요. 시간의식은 과거로부터 현재를 거쳐서 미래로 나아갑니다. 자아의식이 미래는 과거보다 더 낫고 발전되고 더 많이 알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꾸 자아는 갈 때까지 가보자는 거예요. 그런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한 것도 없이 구원받는다는 것은 상당히 참을 수 없는 거죠. 내가 뭔가 보태야 된다, 내가 좋은 걸 남겨야 된다. 경건한 자식을 남기는 것이 내 소원이다, 이렇게 하는데
여러분, 경건한 자식이란 그 부모가 그 모양인데 거기서 경건한 자식이 나온다는 것은 진짜 이건 검은 염소에서 점박이 염소가 나오는 것만큼이나 기적입니다. 혹시 내 모양은 이런데 자식이 예수 믿거든 내 자식 아니라고 여기시기 바랍니다. 나에게 나오는 자식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왜? 내가 날 때부터 예수를 반대하는 속성을 갖고 있는 인간인데 어떻게 거기서 예수 믿는 자식이 나올 수 있습니까. 못 나오지요. 그래서 주 안에서 자식한테 잘해주세요.
아담을 우대하는 것이 아니고 아담을 소멸시키는 마지막 아담이 포함시키는 겁니다. 그 원리로 되가는 겁니다. 다윗의 속성은 두 가지다. 육이 나오고 영이 나오는데 영의 담당은 선지자가 하고 육의 담당은 왕이 하는 거예요. 서서히 윤곽 잡히지요. 나 혼자 윤곽 잡힌다. 왕의 특징은 뭡니까? 살려주세요. 육의 특징 아닙니까. 왜? 내 나라니까. 자기 나라가 어디 있어요. 백성들도, “우리 왕을 살려주세요. 다윗처럼 되게 해주세요.” 이게 전부 다 육입니다. 살려주세요.
선지자는 뭐냐 하면, 아까 봤지요. 열왕기상 14장 15절. 이미 끝났어요. 하여튼 선지자는 배짱 편해요. 죽어도 괜찮아요. 죽는 것조차도 주께서 하시는 계획 속에 있기 때문에 자기는 그 역할 충실히 해내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다윗을 드러내기 위해서 일단 하나님께서는 육의 속성을 저지르게 해요. 왕을 통해서 한껏 저지르게 해놓고 뒤늦게 선지자로 지적 질해서 “네가 왕이 아니야. 왕은 다윗 자손부터 나중에 등장할 거야.” 이렇게 언급해줍니다. 계속 예고하죠.
남쪽 유다는 왕이 21명인데 특징이 있어요. 다 다윗 혈족입니다. 북쪽의 왕은 16명인데 9번이나 쿠데타가 일어나요. 왕 같지도 않은 게, 하고 죽여 버려요. 시므리는 7일 동안 통치했어요. 한 달, 석 달 그래요. 긴 사람도 있지만 굉장히 짧아요. 틈만 나면 죽여 버리니까. 죽이면서 “왕 같지도 않은 인간이.” 왕 같지도 않은 인간을 죽여 놓고 자신도 왕 같지도 않은 후배한테 또 잘리고 그렇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바로 이미 성전을 버렸을 때 여로보암의 죄는 뭐냐 하면, 성전을 종교로 본 거예요. 그러니까 여호와란 종교 대신에 비슷한 종교를 만들어서 백성들의 종교성향을 충족시키면 나라가 잘된다는 겁니다. 종교도 문제지만 결국 둘 다 망한 이유가, 자나 깨나 나라 사랑이에요.
예수님이 빌라도한테 뭐라고 했습니까? 빌라도가 먼저 시비 걸었지요. 나는 너를 놔줄 권세도 있고 처벌할 권세도 있다고 하니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내 나라 이 나라 아닌데? 지금도 천사 동원하면 넌 죽었어.” 나라가 달라요. 문제는 사람들이 그걸 왜 모르느냐는 겁니다. 악마의 나라가 있고 옆에서 보면 비행접시(ufo) 있지요. 접촉이 안 되고 떨어져 있는데 이걸 옆에서 보면 보이잖아요. 위에서 보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그냥 똑같아요. 구멍 하나 있는 것뿐이에요. 목수의 아들 아니냐. 요셉의 아들이고. 아주 개무시하고 웃기지도 않네, 이럽니다. 심지어 제자들도 무시해요.
오늘날 성령 받은 성도를 누가 무시합니까? 교인들이 무시하잖아요. 교인들이 추구하는 것은 뭐죠? 교회. 성도가 추구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잖아요. 그리스도의 몸을 추구해서 성경을 보든 뭘 하든 간에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데 교인들은 우리교회 크다. 부흥됐어. 연말에 헌금 되게 많이 들어왔다. 우리 교회 축복받았다. 입만 열면 교회 이야기에요. 목사에 그걸 유도했잖아요. 대전바닥에 우리 교회만큼 좋은 교회 없다.
성도는 눈에 보이는 교회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몸 자체가 교회기 때문에. 이미 몸인데 교회가 따로 있을 필요가 뭐가 있어요. 두세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있으면 되지. 주와 함께 있어야 되고 건물도 지어야 되고, 이런 게 어디 있어요. 건물 지으면 주님 자동적으로 옵니까? 그것도 아니에요.
아파트 새로 넓히면 집 나간 엄마 돌아옵니까? 돌아와 봐야 엄마겠어요? 사랑의 관계, 주님과 용서하고 용서받은 그 관계, 그것만 있으면 됐잖아요. 뭘 더 원합니까? 주님께서 내 살과 내 피를 마셔라. 이 말은 뭐냐? 줄 것 다 줬다는 그런 뜻이잖아요. 생명 줬으면 됐지. 주님께서 생명을 주신다는 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널 꼭 죽여줄게. 육의 몸이 골치 아프지? 걱정하지 마. 오늘밤이라도 네 영혼 데려가줄게. 그러면 우리는 아이고, 기다렸습니다. 이런 기쁨이 어디 있노. 어서 그날 오기를 원했는데 기다렸습니다. 이래 돼야지 아니 되옵니다. 아직 딸이 시집을 못 갔습니다. 이러면서 버티면 안 되지요.
근본적으로 성도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은 교회를 찾는 겁니다. 그래서 교회는 세 자로 무당집이에요. 숫자를 대나무로 보시면 적당해요. 대나무 흔들리는 거나 십자가나 똑같이 보면 돼요. 무당집입니다. 이것을 바로 열왕기상을 통해서 계속 이어지지요.
아히야 선지자는 북쪽 여로보암 때 선지자였습니다. 삼백 년 후에 요시야가 와서 이 제단에서 선지자를 죽일 것이라고 예언했잖아요. 여러 번 이야기합니다만 선지자는 어떤 거라고요? 이미 모든 결론은 끝났어요. 배역 맡아서 악한 역할만 하면 되는 겁니다. 그러면 여로보암이 지옥 갔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는데 여러분, 구약에서는 지옥 갔습니까, 천국 갔습니까? 그렇게 묻는 게 아니에요. 듣는 여로보암 기분 나빠요. 왜냐하면 천국, 지옥이 아직 안 만들어졌기 때문에 만들어지지도 않았는데 이 사람을 천국, 지옥 간다고 할 수 없어요.
천국, 지옥은 예수님 십자가 지실 그때 만들어지는 겁니다.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한테 요청한 게 뭐냐 하면, “언제 죽으십니까?” 한 거예요. 그걸 오늘 낮에 했거든요. 이 세상은 죽음을 위치할 입장이 못 된다. 이 세상은 산 사람들의 집합이기 때문에 죽은 자를 모실 수 있는 그런 판이 못 돼요. 그럼 살아있는 자들의 집합이라면 예수님의 십자가가 들어올 자리가 없거든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죽음의 자리를 만들어요. 죽음의 자리로 들어가게 되면 죽음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이걸 뺄셈이라 하는데 뺄셈은 3, 4, 5, 6 이런 것들을 다 무효화시키면 전부 다 0으로 떨어지지요. 0으로 떨어진 이게 바로 불교라는 겁니다. 세상은 다 헛되다. 아무것도 아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이런 식으로 아무것도 아니고 모든 것이 무로부터 와서 무로 간다. 그러나 복음은 그게 아니에요. 현실판, 인간들이 자기를 생각해보니까 아무것도 아닌데 더 들어가 보니까 여기에 뺄셈이 있어요. 죽는 것은 정해진 것이요 그 다음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어요. 더 들어가야 돼요. 0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로 들어가요 돼요. 한 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고 그 뒤에는 심판이 있어요. 마이너스.
그래서 천국, 지옥을 누가 만드느냐? 예수님이 만들어요. 그 기준이 뭐냐 하면, 십자가의 복음을 통해서 용서를 받는 자, 혜택 입은 자와 못 입은 자로 결정해버려요. 주님의 혜택을 입게 되면 원초적으로 죄인인 걸 알게 됩니다. 죄인이 되면 어떤 혜택이 주어지느냐 하면 법을 준수할 당사자가 죽어요. 어떤 법을 줘도 그 법을 지킬 당사자가 이미 죽은 자로 드러납니다. 법이 있어봐야 지킬 필요가 없는 이유는, 내가 죽었기 때문에 지킬 수가 없어요. 이게 바로 율법에 대해서 자유라는 겁니다. 죽은 놈이 뭘 지킵니까? 율법은 성도에게 죽은 것이고, 성도는 율법에 죽은 자로 둘 다 죽은 것이 돼요.
그런데 십자가의 혜택을 입지 않은 사람은 계속해서 법을 지키려고 애를 씁니다. 법을 지키면 지킬수록 법에서 뭐가 나오느냐 하면 그 율법을 예수님 수준만큼 못 지키면 저주가 주어지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3장 율법 안에 있는 자는. 그것도 가끔 지키는 건 소용없어요. 항상 시도 때도 없이 늘 지키지 않으면 저주 아래 있습니다. 치매 주의해야 됩니다. 치매 3급 받으면 예수고 뭐고 율법이고 십계명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끝나는 겁니다.
우리가 사라진다는 것은 불교고, 우리는 법에 의해서 저주받고 주님에 의해서 이미 죽은 자로 살아가면 그건 성도에요. 법은 지키면 지킬수록 악마는 더 어렵고 힘들게 지켜야 네가 더 멋있게 있지 않겠느냐고 준비된 과제가 계속 주어집니다. 이것 지키고 나면 산을 넘어섰기 때문에 그 뒤의 산이 보이잖아요. 이왕 지킬 것 좀 힘들게 지킬 걸. 이건 지키는 데 너무 수월했어. 이번에 국새관(??) 떴는데 팔이 안 아팠잖아. 내년에는 꿇어앉아 해야지. 그게 더 멋있어 보이지요.
라캉은 말하기를 쾌락이 넘치면 고통의 형식이 되는 거예요. 고통의 형식이 주는 쾌락이 편하게 한 쾌락보다 훨씬 더 짜릿해요. 그래서 주어진 쾌락이 더 쾌락적이 되려면 상대적으로 내가 스스로 학대를 시켜야 더 즐거워요. 문둥병자에게 안수했다. 그것도 처음에는 짜릿하지만 몇 번하면 식상해요. 문둥병자 씻을 물을 마셔야 돼. 처음에는 코 막고 마신다, 1단계. 그 다음에 2단계는 기쁨으로 콜라 마시듯 마신다. 그 다음에 더 멋진 아이디어가 떠올라요. 마귀는 계속 아이디어를 생산해줍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그것에 몰두하는 거룩함의 패턴이 생성됩니다. 패턴 하나로 끝났어. 더 변수를 많이 활용한 패턴을 만들어요.
그 패턴화 된 나, 추상화 된 나, 그걸 자신의 추상화로 생각하면서 거룩하게 되는 자신을 보고 흐뭇한 거예요. “주여, 사탄을 이겼습니다.” 지가 사탄이면서. 사탄의 시험을 물리쳤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물리쳤습니다. 여러분, 나를 본받으세요. 노골적으로 이야기해야지, 돈 내세요. 전부 돈이거든요.
완전히 인간의 모든 사회를 사탄이 종교의 이름으로 기독교, 교회 이름으로 악마의 전당으로 다 만들어놨어요. 사람이 정신적으로 종교적으로 거기에 몰두하는 이유는 오늘 아침에도 언급했지만 어릴 때부터 상처가 있기 때문에 트라우마 때문에 추상화로 억누르고 싶은 거예요. 자신을 못난 놈이라고 스스로 비하하는 그게 싫은 거예요. 못났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은 떳떳하고 당당하다고 남한테 연출하고 싶은 겁니다. 그러니까 복음은 그럴 필요조차 없다는 거예요. 그런 쓸데없는 짓도 할 필요 없다는 거예요. 어차피 너와 상대하지 않겠다는 데 기어이 끼어들어서 주를 위해서 뭘 해드릴까요? 면상을 밀어버려요.
아사 이야기했지만 아사가 이기고 난 뒤에 이스라엘 쪽에 바아사란 왕이 있어요. 그 왕이 리마란 성을 지으니까 이걸 쫓아내려고 솔로몬 때 받았던 금은보화를 아람나라, 내일부터 할 거예요. 내일부터 어떻게 열왕기하가 진행되느냐 하면, 유다나라, 이스라엘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람, 모압, 앗수르가 이들은 얼마나 치고 빠지는지 이걸 추적함으로써 유다와 이스라엘의 존재의 의미가 뭔지 추적할 거예요.
열왕기는 이렇게 풀어야 돼요. 유다는 이렇게 이겼다, 이스라엘은 이렇게 견뎌냈다, 선지자가 도와줬다. 이것 말고 도와줘도 망했는데 그래선 안 되잖아요. 왜 하나님이 어떤 타이밍에 치고 들어가고 어떤 때에 빠지는지 그걸 알아야 돼요. 왜냐하면 마귀들도 주의 종이거든요.
아람 나라한테 솔로몬이 받았던 모든 축복을 아람에 주고 자기는 왕으로 이 나라는 내 나라라고 하니까 또 때맞춰 하나니란 선지자가 뒤늦게 와서 “임금님, 하나님이 주신 전쟁의 혜택을 당신 나라 지키려고 그게 왕으로 지키는 방법이 아닌데 결국 이 나라 주인은 자기라고 하는 것밖에 안 되니까 당신은 잘못됐습니다,”라고 지적하는 거예요.
원래 성물이란 성전에 있는 모든 것은 여호와께서 전쟁해서 얻은 전리품들입니다. 전리품을 차곡차곡 채움으로 말미암아 이건 우리가 하지 못했고 하나님이 혼자 하셔서 얻은 것이라고 하는 건데 그걸 인간 왕이 들어와서 다 줘버리고 내 나라라고 버티고 있는 겁니다.
알기 쉽게 이야기해서 이건 제 사견은 아니고, 국민당인지 한나라당인지 모르겠고 그쪽에서 하는 이야기인데 박근혜 대통령이 얻어놓은 모든 보화를 북한에 평창올림픽 한다고 다 떼어주고 문재인 자기 정권 유지한다, 라는 그러한 이론이 있다면 이론입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제가 거기 동의한 게 아니고 있다면, 이것이 바로 선지자 하나니에게 지적당한 것이란 말이죠. 이 나라는 당신 정권 유지차원에서 준 나라가 아닙니다.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거예요.
하나니란 선지자는 성경이야기고 지상에서는 산 자들의 집합이에요. 살아있는 인간이 후손들에게 그 좋은 나라를 위해서 인간들이 지혜를 끄집어내면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신을 도입하지 말고 예수도 찾지 말고 부처도 찾지 말고 인간들끼리 단결해서 하면 된다. 그게 북쪽 나라에요. 그러니까 남쪽이든 북쪽이든 오늘날 우리가 끄집어낼 수 있는 모든 정치적 상황을 다 보여줄 겁니다. 어떻게? 나라에 위기가 왔을 때 인간의 죄의 본색은 유감없이 발휘됩니다.
오늘은 이걸로 끝내겠습니다.
그냥 예를 든 거예요. 그런 정치성향이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