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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강의-은혜의순환,비밀 171017 이근호

아빠와 함께 2017. 10. 28. 05:34

206강     음성                동영상


207강     음성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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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은주 (IP:119.♡.152.148)17-10-19 14:58 

206강-YouTube강의(은혜의 순환)171017-이 근호 목사 

206강, 제목은 ‘은혜의 제자리’입니다. ‘은혜가 제자리’ 하는 것은 은혜가 본래의 자리에서 나와서 떠돌아다니는 거죠. 순환하는 겁니다. 순환하는 이유는 은혜에 합당한지 합당하지 않은지 순찰 다니는 거죠. 순찰 다니면서 점검에 나서는 겁니다. 

그러면 이 은혜에 부합되는 경우와 안 되는 경우가 발생되겠지요. 은혜에 부합되지 않는 경우는 본인을 위하여 은혜를 소유하려하는 자는 은혜 쪽에서 차버립니다. 은혜에 합당치 않아요.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 하면 은혜를 주고 그 은혜가 어디서 나오는가와 무관하게 대처하는 사람들, 분명히 은혜는 줬는데 그 은혜에 출처하고는 상관없이 여전히 본인 이익을 본인이 잘된다는 그 쪽을 자기의 본래의 출처라고 간주하고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한테는 은혜가 회수가 되면서 떠나버리지요. 

그런 사람이 히브리서6장5~6절에 보면 나와요.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이리 되어있어요. 그러니까 은혜가 어디서 나오느냐 하면, 이 땅에 은혜가 돌아다니는 그 출처가 뭐냐 하면 이 지상에서는 십자가에서 나와요. 

그러면 은혜를 받았으면 어디로 관심사를 돌려야 돼요? 십자가에 관심을 돌려야 되겠지요. 그런데 십자가에 관심을 돌리지 않는다는 말은 관심이 어디가 있다는 말이냐 하면 자기 자신에게 가있는 거예요. 현재 유지하고 있는 그 나를 그냥 은혜만 숟가락 하나 놓는 식으로 은혜만 보태가지고 이런 나를 그대로 천국까지 가겠다고 생각을 먹는 사람들. 그건 은혜의 출처는 완전히 무시해버리고 은혜 이용하기가 되겠지요. 은혜 이용하기. 

왜냐하면 은혜의 출처보다 더 소중한 게 뭐냐 하면 본인이 여기 있다는 것을 더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그 사람은 은혜의 출처하고 밀고 당기는 사이가 되어버려요. 

은혜는 십자가에서 나왔는데 본인은 은혜 받아놓고도 십자가에 관심이 없다? 그러면 그 십자가에서 나온 은혜가 그 사람과 계속 합류하겠어요? 떠나버리지요. 저는 그걸 회수라고 하는데, 그냥 떠나버리겠지요. 

그러면 은혜의 출처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그러면 은혜가 어디서 나와서 어떻게 활동하는가는 로마서11장35절과 36절에 이리 되어있습니다. 35절에,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이게 은혜입니다. 은혜인데, 은혜의 본성이 뭐냐 하면 36절,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가지요. 순환하는 겁니다. 

주로부터 나와서 주로 말미암고 어디로 간다? 주께 돌아가지요. 그럼 은혜에 어떤 사람이 실리게 되면 그 사람은 자기한테 관심이 점점 더 엷어지고 떨어져나가겠지요. 

예를 들면, 자기가 예상치도 않았는데 누가 자가용을 보내줬으면 그러면 그 자가용타고 어떤 승용차 타고 간다면 자기가 있는 자리로부터 점점 멀어지더라도 그다지 불안하지 않겠지요. 쑥~ 하고 쓱 새로운 승용차가 왔고 자기는 그 승용차 누가 보내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승용차 타고 가는데 보니까 그 승용차가 은혜란 이름의 승용차고 거기에 순회하고 있는 겁니다. 

그걸 타고 로마서11장을 보니까 누가 먼저 그 마음을 알겠느냐, 다시 말해서 몰랐던 분이 나한테 승용차를 보냈고 우리가 먼저 기대하지 않았는데 우리가 몰랐는데 누가 알았으리요, 주의 마음을 몰랐는데 타고 보니까 나를 위한 주님은 아니었고 나를 위한 하나님은 아니었다는 겁니다. 

이렇게 되게 되면 지금까지는 내가 내 주인이었는데 새로운 주인을 만나가지고 관심사가 나로부터 떠나고 새로운 주인에게 전환되는 거죠. 전환이란 말은 알지요? 간첩이 내려와서 귀순하는 것. 

완전히 모든 것이 전환이 되게 되면 살아도 죽어도 뭐냐 주의 은혜가 나온 출처만 이야기하는데, 그 출처가 뭐냐 36절에 보니까 만물이 주로부터 나왔다는 거예요. 

내가 이 몸을 주님께 드린다고 자살하고 던지고 이게 아니고, 그냥 이 몸 이대로 있더라도 이 몸이 이제는 더 이상 내 몸이 아니고 주로부터 나온 몸을 그동안 착각해가지고 내 몸이라고 내 인생이라고 우기고 있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이 몸을 내가 관리한다. 내가 주인공이라 하는 생각이 엷어지겠지요. 관심사가 뭐냐 하면 주님한테 관심사가 있지, 주님 스케줄에 관심 있고 자기한테는 관심이 없다 이 말이지요. 자기 일에 몰두하지 않아요. 자기 일에 몰두한다는 것은 그건 자기 자존심을 포기 못하겠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어버리면 십자가라 하는 것은, 주님의 이 땅의 십자가라 하는 것은, 하늘에 있는 은혜가 이 지상에 절정을 이루는 게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은 사람치고 십자가에서 관심 없다 하는 그것은 은혜 받은 사람의 모습이 전혀 아니지요. 

히브리서6장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타락한 자들은, 여기서 타락은 나쁜 짓 한다는 말이 아니고, 그러니까 이 은혜가 오기 전에 했던 행세 있잖아요. 

그 행세가 뭐냐 하면 자기밖에 모르는 행세, 자기한테 주된 관심을 갖고 있는 행세, 그렇게 된 사람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할 수 없나니, 그 이유가 뭐냐 하면 회개하는 이 모든 것은 은혜가 당도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인데, 은혜가 당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니 이제 은혜가 점검하는 거예요. 

얘가 맞는지 안 맞는지 점검하는 차원에서 들어왔다가 이게 그 은혜에 대해서 전혀 의식이 없고 생각이 없고 여전히 자기 생각을 한다면 그건 은혜가 회수되는 거죠. 

그런데 은혜가 왔는데 완전히 인간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라는 질문을 할 수가 있어요. 은혜가 왔으면 이제 완전히 개과천선이 되어야 되는데 그건 뭐냐 하면 그것은 이 땅에 모든 것이 은혜 아닌 게 없어요. 선인과 악인에게 햇빛과 공기를 주시잖아요. 

주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나중에 심판받음에 핑계치 못하는 겁니다. 로마서1장 20절에 의하면. 은혜를 안 준 게 아니고 줬는데, 줬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영생을 얻는다는 말은 뭐냐 하면 주님의 십자가 은혜에 부합되는지 안 되는지를 계속해서 주님께서 점검차원에 나서는 겁니다. 

왜 주님께서 그렇게 하느냐 하면 십자가 때문에 그래요. 십자가 때문에. 십자가라는 게 잃어버린 자를 찾는 작업이잖아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이렇게 은혜 받아도 왜 예수님을 모릅니까? 하는 이야기와 똑같은 거예요. 

은혜 받았는데 타락할 수 있습니까? 하는 그 이야기는 예수님과 함께 세상을 살았는데 왜 예수 안 믿습니까? 와 같은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모든 인간은 은혜를 받아도 지 밖에 몰라요. 

그런데 예수님의 특별한 은혜가 왔을 경우에는 이것은 책임지고 그 사람을 반드시 데리고 가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은 히브리서6장은 뭐냐 하면 반드시 구원받은 사람과 반드시 구원 받지 않는 사람을 그 두 가지 현상을 포괄적으로 다 묘사한 것이 히브리서6장 이야기에요. 

어떤 사람은 다 같이 은혜 받았지만, 어떤 사람은 이것은 거부할 수밖에 없는 현상이 일어나줘야 십자가에 관심이 있는 자와 없는 자가 구분되는 일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이 땅에서 펼쳐진다는 겁니다. 

이런 입장에서 뭐냐 하면 자기 구원 입장에서 생각하면 안 되고 히브리서와 모든 성경은 주님의 주도적 입장에서 생각해야 돼요. 주님께서는 줬다 뺏었고 뺏었다가도 줄 수도 있고, 주님 문제니까. 그렇게 해서 나타난 게 뭐냐, 이는 만물이 주로부터 와서 주로 말미암아 주로 간다. 

어떤 사람에게 은혜를 줘도 주께서는 구원하지 않는다면 그것조차도 “참 잘 하셨습니다.” 왜? 주님은 하자가 없고 실패가 없기 때문에. 그래서 오늘 결국 말의 주제가 뭐냐 하면 그 사람이 구원 받았느냐 하는, 은혜 받았느냐 하는, “은혜 받았다!” 이리 주장하면 안 되고 소유개념하면 안 되고. 

관심사가 어디로 늘 가느냐를 봐요. 관심사가. 은혜를 쥐고 있느냐, 아니면 내가 은혜를 쥐었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이냐, 은혜가 나를 쥐었기 때문에 점점 더 자기 자신에게는 엷어지느냐, 그걸 한 번 점검하고 돌아봐야 되겠지요.

 공은주 (IP:119.♡.152.148)17-10-19 14:59 

207강-YouTube강의(비밀)171017-이 근호 목사 

207강 제목은 ‘비밀’입니다. 비밀. 보통 사람들은 자기가 살아온 만큼 안다는 것이 그만큼 쌓이게 되어있어요. 살아온 만큼. 7살이면 7살만큼 아는 게 있고. 20살이면 20만큼 아는 게 있고. 40이면 40, 70이면 70 아는데. 

그 안다는 게 어디에 소용되는데 아느냐 하면, 어디에 필요 하느냐 하면, 자기가 생존하고 이 땅위에서 살기위해서 필요한 아는 겁니다. 그러면 일방적인 자기중심, 자기 위주의 아는 거죠. 그럼 그 아는 것을 활용하고 사용하고 있다는 말은 남이 패하던 말든 자기만 살면 된다는 강렬한 의지의 발로입니다. 

북한이 남한 생각해서 핵 개발했어요? 아니지요. 중국이 한국 생각해서 사드 반대한 거 그거 아니지요. 일방적으로 자기중심이잖아요. 이 세상에서 아는 만큼 힘이 생기고 그 힘 가지고 더 많이 알기위해서 설칩니다. 

따지고 보면 안다는 것을 보통 진리라고 하는데 사실은 진리가 아니지요. 자기만을 위한 진리가 되는 거죠. “나는 많이 압니다.” 하는 것은 “나는 그만큼 욕심이 많습니다.”와 같은 겁니다. 회사에 취직할 때 “당신은 뭘 압니까?” 라는 말은 우리 회사 욕심에 기여하시겠습니까? 하고 같은 말이에요. 

어떤 아가씨가 시집을 가게 되면 “우리 집에 와서 살겠느냐?” 이 말은 우리 집안의 욕심에 편승하겠느냐? 하는 것과 똑같은 거예요. 편승 안한다면 그건 시집생활이 힘들게 되는 거죠. 그래서 진리는 아니에요. 

인간은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뭐냐 하면 지가 잘될 때 그걸 진리라고 일방적으로 우기는 겁니다. 자기 잘 되는 것. 그런 인간이 천국 간다는 것은 사실은 있을 수 없는 일이죠. 그 욕심쟁이들 모아서 뭐할 건데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구원을 줄 때는 인간이 안다는 것이 너무나 자기주의니까 반대로 나왔어요. 비밀이다. 이리 되는 거예요. 안다의 반대말은 무지가 아니고 비밀이 되는 겁니다. 너희가 알고자 해도 알지 못하는 끝까지 비밀이 되는 것. 

①사람이 안다는 것은 꼭 그 아는 것을 자기를 위해서 소비하기 때문에
비밀의 내용을 아는 그 순간 나는 나를 위해서 사는 걸 완전히 버려야 되지요.
그래야 말이 맞는 거예요.그래야 끝까지 비밀이 되지요.  

그러면 그 비밀이 어디 있느냐 그 비밀은 성경의 사도바울의 같은 경우는 골로새서보면 그 비밀은 복음의 비밀이라 되어있어요. 비밀인데 복음의 비밀이니까 복음이란 말은 우리말로 하면 기쁜 소식이거든요. 기쁜 소식에 관한 비밀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복음의 비밀은 말로만 이렇게 되지만. 말로는 형체가 없으니까. 

그 복음의 비밀이 뭐냐 하면 나타난 복음이 있었으니, 그게 이제 마태, 마가, 누가복음 초반에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기쁜 소식이 나타났으니. 그게 뭐냐,
②예수 그리스도를 복음이라 하고 다른 말로 하면 비밀이라고 하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가 비밀이에요.
 

③그러니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자 하는 것은 그건 비밀이 아니에요.
왜냐하면 뭐든지 인간이 안다는 것은 아까도 말씀했지만, 누구를 위해서?
자기 자신을 위해서 예수를 믿고자 하기 때문에 그건 비밀이 아니에요.
그건 엉터리 비밀이에요. 다른 비밀이에요. 악마의 비밀이지요. 악마가 약 올리는 비밀이지요.
 

예수님한테 비밀이 있다. 믿어라. 이건 악마의 소리입니다. 그러면 너한테 이익이 있고 니가 구원이 있을 거다. 그건 마귀의 소리에요. 진짜 예수님께서 비밀이라 하는 것은 끝까지 비밀이었고 심지어 열 두 제자한테도 비밀이었고 결국 예수님 십자가 복음을 달성할 때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끝까지 비밀이 비밀로 가는 거예요. 그러면 그 이후에도 비밀이 공개되었느냐, 공개되지 않았어요. 끝까지 비밀이었습니다. 오직 ④성령이 임한 사람만 알게 되지요. 그러면 이 성령이 임한 비밀에 대해서 이렇게 주어졌다면 그 비밀을 접한 사람은 어떻게 되느냐 하면, 그 비밀에 대해서 주저하지 않겠지요. 

주저하지 않는다는 말은 자기를 완전히 거기다가 던져버린다는 뜻입니다. 자, 절벽이 이리 되어있는데 절벽 끝에 가면 비밀이 보인다는 소문을 듣고 절벽 끝에 서봤어요. 중력에 의해서 절벽에 떨어집니다. 죽습니다. 그런데 절벽에서 보니까 저 밑에 십자가 복음이 있어요. 

자, 떨어질 겁니까? 아니면 주춤할 겁니까? 우리가 한다면 아무리 복음이 저기 있더라도 우리는 평소의 삶의 모든 형태가 내 살기 위해서 안 죽기 위해서 살기 때문에 아무리 복음이 저기 있더라도 우리는 주춤하고 주저하고 망설이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저 땅 밑에 있는 그 십자가라는 복음에서 어떤 힘이 나와 가지고 절벽 끝에서 주저하고 있는 우리의 멱살을 쥐고 잡아당긴다면 남들 보기에는 용기 있다 하지만, 용기 있는 게 아니에요. 밑에서 잡아당겼으니까. 그걸 성령의 힘이라고 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이제는 니 목숨도 니게 아니니까 니가 걱정할 필요 없다. 하고 잡아당겨버립니다. 그럼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같은 절벽에서 떨어지면 안 된다. 떨어지면 안 된다. 하고 주저하는 사람한테는 마치 그 사람이 자살로 보이겠지요. 

사도바울은 바로 이야기합니다. 내가 너희들 보기에는 죽은 자 같으나 실은 산자로다. 너희들 보기에는 내가 죽은 자 같으나 산자다. 또는 너희들 보기에는 내가 미친놈 같으나 사실은 온전하다. 너희들이 마귀한테 미친 것이다. 

비밀이라 하는 것은 지식이 아니에요. 네가 지금 어디에 끌려가고 밀려가고 있느냐를 보는 겁니다. 그 비밀이 좋아가지고 올인 하는 거예요. 그 비밀이 너무 귀해가지고. 그래서 찬송가에 나오지요.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무슨 뜻입니까? 

나는 전혀 예수님한테서 저를 귀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존재로서 주님 앞에 섰습니다. 하는 겁니다. “주여, 저 안 귀합니다.” 마음대로 부리시고, 마음대로 사용하시고, 주의 뜻대로 흔들던, 죽이든, 볶아 먹던, 삶아먹던, 마음대로 하시옵소서.” 

성령이 임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인간이 이 비밀을 지식으로 파악하고 십자가는 어떻게 대신 죽음이 어떻고...성경을 한 두 번 본 게 아니고 100번 보면 지식이 얼마나 쌓이겠습니까? 그 백날 지식 쌓여도 그건 나를 위한 거예요.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한 지금껏 해왔던 습관의 되풀이입니다. 습관의 연속이에요. 온갖 지식은 다 알고 신학은 다했는데 비밀은 몰라요. 비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뭔가 내가 죽으면 나만 손해 아니냐, 주저하고 있습니다. 망설이고 있는 거예요. 

그래 놓고 그것이 겁나니까 스스로 자기한테 뭐라고 반복해서 자기를 다구치느냐 하면 나는 신자다! 나는 신자다! 십자가를 아니까 나는 신자다! 언약을 아는 나는 신자다! 나는 복음을 전하는 목사니 나는 복음을 아는 목사다! 나 복음대로 교회를 운영하려 하니까 진짜 목사다! 이런 식으로 자꾸 자기를 세뇌를 하는데 사도행전19장15절에 악마가 뭐라고 했던가요? 

나는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안다. 했지요. 악마의 말을 세자로 하면 사이다. 악마의 말은 사이다에요. 사이다. 모든 인간이 다 속아 넘어가지요. 복음 전하고 복음으로 목회하니까. 진짜 신자인 줄 알고 있어요. 맨날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 지라고 외치니까 세상에 오늘날 이런 목사가 없다고 다 속아 넘어가지요. 

목사 본인은 자기가 신자 아닌 걸 알고 악을 쓰고 있어요. 오늘도 복음만 전해야지. 그래서 신자 아님을 자꾸 자기가 스스로 신자라고 바꾸어보려고 악발이처럼 설칩니다. 그런데 그 자체가 누구를 살리기 위한, 그 행위 자체가 자기 자신의 가치를 유지하고 살리기 위한 그러한 수단이 되는 겁니다. 

이걸 누가 알까요? 그런 짓거리 하고 있다는 사실을. 대외적으로 복음만 전한다고 아는데, 아~ 참! 마귀마저 아니까 저는 마귀한테 박수를 보냅니다. 이 가짜인 줄 알아주는 쪽이 있으니 참 얼마나 마음 편한지요. 마귀도 알고 마귀 아니까 주님 아실 거 아닙니까? 

복음에 끌리지 않는 사람은 천국에 못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