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강-YouTube강의(저주)170606-이 근호 목사
193강, 제목은 ‘저주’입니다. 저주라 하는 것은 자기를 인간이라고 여긴다면 그건 이미 저주를 품고 있습니다. 왜냐 하면 성경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으로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대우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경에서 인간을 어떻게 보느냐, 그 자리에 가야 되는데 그게 우리의 피조물의 마땅한 태도인데, 그렇지 않고 자기 자신을 인간으로 간주하고 거기다가 뭐를 집어넣느냐 하면 신께서 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들었으니까 책임지라는 이야기지요.
“하나님께서 천지를 만드시고 세상의 모든 만물을 만들었으니까 만드신 분이 책임져야지 만들어진 자가 책임 못 집니다.” 라는 이 투가 그런 툭툭 던지는 생활의 이런 단편들이 “하나님이 책임지세요.”라는 투로 도도하게 나올 수가 있어요.
왜 그러느냐 하면 평소에 자기가 자기 나름대로의 자기 책임질 수 있는 것을 한 번 살아보거든요. 인간이 신을 찾을 때가 언제입니까? 본인이 모든 일이 본인이 알아서 잘할 것 같으면 신을 찾겠어요? 안 찾지요. 신을 찾을 때 언제냐 하면 본인이 잘 안 될 때, 답답할 때에요.
그렇다면 일이 잘 안되고 답답하게 되면 내 형편에 맞는 내 위치에 맞는 내 주제에 맞는 그러한 목적을 내가 제대로 세웠는지 아니면 오버했는지 내가 지금 욕심을 부려놓고도 안된다고 지금 신에게 항의하는지를 자기 자신을 돌아볼 줄 알아야 되는데, 사람은 본인이 욕심을 내는 게 아니고 욕심이 인간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욕심이 시키는 대로 화부터 버럭 내는 거예요. 신에게.
이 약하고 약한 진짜 아무것도 아닌 벌레만치도 못한 인간을 왜 갈굽니까? 나름 최선을 다하여 나쁜 짓 안하기 위해서 평생을 착한 일만 하기. 그런 정신 상태로 그런 인생관으로 이렇게 살아가는데 왜 내 인생을 이렇게 답답할 정도로 콱콱 막히게 하십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책임지라는 이야기거든요.
길게 이야기할 것도 없어요. “사랑한다면서 인간을. 사랑하면 사랑 값을 해야지. 아니 사랑한다고 하면서 괴롭히기 이런 사랑이 다 있어?” 이렇게 따지는 용도로 신을 찾습니다. 물론 남 보는데서 노골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지요. 너무 세게 나오면 또 없는 몇 가지 더 나오겠다 하는 겁이 나기 때문에 그렇게 세게는 안 나오지만.
우리가 회사 직원들이 뭐 따질 것 있을 때 사장에게 따질 때, 그냥 빈손으로 갑니까? 주스 사 들고 갑니까? 주스 한 박스 5천원내지 6천원짜리나 좀 세면 만원짜리 들고 가잖아요. 마트에서 흔히 살 수 있어요. 사가지고 자기 나름대로 예의를 갖추는 겁니다. 뇌물은 아니지만 성의를 표하면서 내 쪽에서는 이 정도로 당신한테 좋은 감정으로 다가서니 내 속마음을 좀 알아 달라. 속마음.
내가 이거 없는 돈에 해가지고 주스 사들고 사장님 찾아가는데 사장님! 미워요. 하는 식으로 찾아갈 때, 사장님이 내 이 겉 말고 이 속 마음을 좀 이해해줘가지고 좀 깊은 대화를 나눴으면 좋겠다. 그 깊은 대화가 뭡니까? 철야기도고 산기도고 그런 거잖아요. 깊은 대화가.
그 사무엘상1장에 보세요. 사무엘엄마 한나가 아주 깊은 대화를 나누잖아요. 아들 달라고. 믿음 있는데 자꾸 주위에서 믿음 없다 해가지고 내가 한이 맺히니까 나도 아들 달라고 깊은 대화하잖아요. 한나의 기도응답 받았잖아요. 한나나 나나 똑같은 인간인데 응답 못 받을 일이 어디 있습니까? 성경에 나와서 기도한다는 것은 니도 해봐라. 된다는 식으로 우리는 그런 어떤 사인처럼 신호처럼 그렇게 해석들을 그렇게 하잖아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만든 것은요, 저주를 표현하기 위해서 만들었어요. 그게 어디 나오느냐 하면 창세기2장에 나옵니다. 창세기2장에 그 동산 이름이 뭐죠? 에덴동산. 아주 즐거운 동산이에요. 그러면 즐거우려면 100% 즐거워야지.
직장이나 애들 놀이방 있잖아요. 카페 놀이방 있지요. 놀이방 이름에 에덴놀이방이라 칩시다. 학부모들이 에덴놀이방해가지고 니는 여기서 놀고 있어라. 엄마는 쇼핑하고 갔다 올게, 하는데. 그 에덴놀이방에다가 독사 한 열 댓 마리 넣어놓으면 그게 에덴입니까? 그게 에덴이에요. 그게. 그게 하나님이 말하는 에덴이라고요. 에덴동산.
그런데 인간은 에덴이 뭐냐, 자기 위주에요. 지금 여기 있는 내가 나에게 요만큼이라도 해코지나 나를 지금보다 힘들게 한 요소들이 완전히 없는 걸 우리는 낙원이라고 그렇게 일방적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은 니 생각이고. 그건 인간들 생각이에요. 왜 에덴동산에 뱀 있으면 안 됩니까? 그리고 뱀 정도가 아닙니다. 그 어린애 놀이동산에 그것도 제일 중앙에 한복판에 애들이 조금만하면 다가갈 수밖에 없는 그 중앙에다가 이 놀이기구를 타는 애는 영원히 죽으리라. 이런 놀이기구를 왜 만들어놔요. 애들 위주의 놀이동산이라면 그게 없지요.
에덴동산은 인간들 위주로 만든 동산이 아닙니다. 하여튼 이 세상에 어느 동산, 어느 순간, 어느 지점이라도 사람위주로 만든 어떤 나무나 은행나무나 아카시아나 그리고 뱀장어나 코끼리 인간 위주의 그런 존재가 없어요.
지금 서울이나 경기도나 남쪽 충청도 아주 심한데, 가뭄 비 안 오지요. 비 안온다고 지금 기도하고 기우제 드리는데, 한 번 물어봅시다. 비 왜 와야 됩니까? 비 왜 와야 되지요? 우리가 비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까? 권리가 있습니까? 우리가 뭔데요? 우리가 이 땅에서 천년 삽니까? 이 만년 살아요? 비 줘도 100년밖에 못 살아요. 100년 하는 것은 많이 늘인 겁니다.
어떤 사람은 비 줬는데 50대에 뇌졸중 걸려 죽은 사람도 있어요. 비 줘도. 공기 줘도. 비 왜 와야 됩니까? 가물 때 내가 누구냐를 한 번 돌아보는 기회로 삼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동안 비 준 것에 대해서 감사한 적이 있습니까? 당연한 걸로 여기잖아요. 언제 감사했습니까?
지금 밤에 달뜨지요. 하나님께서 달을 없애봅시다. 달을 없애면 또 달 달라고 난리일 거예요. 사는 게 저주입니다. 그냥 평범하게 아주 인품 좋고, 아주 침착하고, 사리분별하고 저주입니다. 인품 좋은 거 있잖아요. 그거 저주거든요. 인간성 좋은 거. 남 배려할 줄 알고 이웃 돌볼 줄 알고 인정 베풀 줄 아는 것. 그게 저주의 증거에요. 착한 일하시고 지옥가면 돼요. 이웃 사랑하고 지옥가면 되고. 하나님 섬기고 지옥가면 돼요.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 외에는 못가는 곳입니다. 인간들이 생각하는 저주와 축복은 근거가 뭐냐 하면, 지가 편하면 축복이고 지가 뭔가 비가 안 와가지고 농사가 힘들면 그게 저주인 줄 알고 있어요.
아무 일없이 잘 되는 것. 그거 저주입니다. 신명기7장, 8장에 보면 나오거든요. 모든 일이 만사가 잘되니까 하나님이 별 필요가 없어요. 하나님이 필요치가 않아요. 아까 192강에서 했지만, 답답하니까 찾는 거예요.
왜 니가 답답하면 안 되는 이유가 뭐냐 물으면, 우리는 할 말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저주할 자라는 그 분을 증거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성령이 주어진 겁니다. 예수의 피는 아! 저주도 받으면 받아야 마땅한 것이 인간이구나! 그래서 인간은 없고 인간은 육입니다.
주님의 저주권과 축복권을 증거하는 그릇으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이 땅의 사람이라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