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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의 증거(창19;12-16) 170322 이근호

아빠와 함께 2017. 3. 25. 07:11
2017-03-22 20:32:34조회 : 54         
   롯의 증거 170322이름 : 이근호 (IP:119.18.94.40)   

롯의 증거(창세기 19:12-16)

음성 동영상 Youtube

          
 링크 : https://youtu.be/l8vGjIAgQmM, Hit:4
 이근호17-03-22 21:16 

롯의 증거 

2017년 3월 22일                           본문 말씀: 창세기 19:12-16 

(19:12) 그 사람들이 롯에게 이르되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내라 

(19:13) 그들에 대하여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우리로 이곳을 멸하러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 

(19:14) 롯이 나가서 그 딸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고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더라 

(19:15)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가로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19:16)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인자를 더하심이었더라 


천사와 직접 만나 천사를 공격하려 했던 소돔의 주민들은 천사의 반격을 받고 순간적으로 눈이 어두어져서 혼미해졌습니다. 이처럼 천사와 소돔의 주민들의 만남은 과격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 중재하거나 완화하려고 애쓴 자가 있으니 곧 그가 롯입니다. 롯의 이러한 완화성은 사위에게도 유순한 반대 역할자로 나타나게 합니다. 

극도로 대립적인 천사와 소돔의 주민 사이에 완충지대로서 롯과 그의 사위들이 등장합니다. 물론 롯은 천사의 지시를 받고 천사의 입장을 대변합니다. 그리고 롯의 사위는 그러한 롯의 주장에 대해서 온화하게 반대하는 입장을 나타내므로서, 천사편이 아닌 일반적인 주민편에 선 자들로 규정됩니다. 

물리적으로 천사로부터 졸지에 어두움을 헤맸던 소돔의 주민들은, 물리적인 천사의 공격이 아니더라도 정신적으로도 천사로부터 심판받아 마땅함을 롯의 사위를 통해 보편적 의견이 비쳐나옵니다. 즉 롯의 사위의 생각은 일반인들의 의식과 한통속입니다. 따라서 사위들의 안목에서 볼 때 장인어른의 정신구조는 납득이 되지를 않습니다. 

천사를 공격했던 소돔의 주민들이 평소 대낮 활동에 지장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자신이 사물을 제대로 파악해서 제대로 행동한다고 자부하는 것처럼, 이러한 정신구조는 사위라고 해서 예외가 아닙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의 상황을 알려면 롯의 입장에 설 것이 아니라 사위들 입장에서 롯 쪽을 바라보면서 이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평소에 아는 만큼 행동에 나서게 됩니다. 행동 하나하나의 자신의 지식이 담겨 있습니다. 인간은 같은 인간들을 둘러보면서 세상을 살아갑니다. 자신에게 자신만만한 분야도 있지만 자신이 많이 알지 못하고 모자란 분야는 또 다른 전문가들이 이 인간 세상에 자리잡고 있기에 인간 세상은 여전히 희망적인 동네라는 점을 인간들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욥기 28:1-2에 이런 말씀이 나와 있습니다. “은은 나는 광이 있고 연단하는 금은 나는 곳이 있으며 철은 흙에서 취하고 동은 돌에서 녹여 얻느니라” 즉 인간은 결코 은원석 그대로 사용하거나 금원석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련하고 가공하고 손질을 거쳐 순수한 은과 금과 구리를 얻어서 생활도구로 사용합니다. 

이것이 바로 지식, 곧 앎의 힘이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치 않습니다. 즉 인간은 나름대로 아는 것은 분명히 실제적으로 그 앎의 결실을 생산하고 있는 겁니다. 은 원석에다 시안화법이라는 제련기술을 적용시킵니다. 시안화나트륨이나 시안화카륨으로 된 붉은 용약으로 처리하고 아연가루를 놓어 금과 은을 분리해서 회수합니다. 

그러나 인간들이 궁극적으로 주목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인간의 지식과 지혜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기대감입니다. 이는 곧 여태껏 인간들이 노력한 것이 결코 헛되고 헛된 작업들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런 쪼로 계속 나아가면 날이갈수록 진리에 가깝게 접근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앎을 계몽차원에서 봅니다. 계몽은 반대말은 미개함입니다. 계몽과 미개함의 차이는 지식의 정도 차이에 불과합니다. 즉 단단히 가르치게 되면 미개함에서 벗어나 지식의 빛 세계로 들어올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인간의 생각이 천사가 보기에 ‘보편적 어두움’이라고 평가받게 됩니다. 

곧 ‘단절’입니다. 정도의 차이가 아닙니다. 노력하면 알 수 있는 지식이 천사의 소식이 아닙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천사들의 외래적 존재이며 인간의 입장에서 ‘여분의 장소’에 있기 때문입니다. ‘여분의 장소’란 인간이 아무리 상상해도 알 수 없는 그 세계를 말합니다. 

따라서 자칭 자기네들도 지식인이라고 자부하는 인간의 입장에서 천사가 전달하는 소식에 대해서 아무리 들어도 수긍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들에게 있어 지식이란 곧 생존을 필요한 힘이 됩니다. 아는 것이 없으면 생존에 불리하게 마련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인간은 힘든 세월을 지나면서 부지런히 노력해서 현재의 자기 처소를 장만한 것입니다. 

따라서 한순간에 자신의 그 귀한 처소가 하늘의 유황불과 박살난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될 수 없는 소리에 불과합니다. 인간들은 물론 자신들이 사는 세계가 완전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도덕적으로도 윤리적으로 지속적으로 문제들이 발생한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압니다. 

그렇다고 해서 일체의 희망이나 미래를 포기하고 조기에 그 삶의 터전이 사라져야 한다는 것을 믿기에는 도저히 충족시킬 근거가 없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상식에도 맞지 않는 일입니다. 사회나 세상이 어지럽다면 개선해 나가면 그만입니다. 끊이없이 더 나은 사회건설을 위해 지혜를 짜내면 될 일입니다. 

그럴 수 있는 희망이 없다고 주장하기에는 지금껏 유지해 온 그 지역의 역사의 의미를 모독하는 바가 됩니다. 그 어떤 시기에도 다 문제성이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지혜와 노고를 보태어 난국과 위기를 타개해 온 것입니다. 이런 상식에 합당한 의식을 갖고 있는 사위로서는 롯의 말을 받아들이기가 곤란입니다. 

그래서 ‘농담’이라고 단정 지었습니다. 사람이 행동을 옮긴다는 것은 상대방의 말을 듣고, 그 말이 자신의 여태 살아온 이치에 부합된다고 판단이 서게 되면 동의하는 법입니다. 하지만 장인 롯으로부터 들어온 그 이야기는 사위들 입장에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롯도 소돔의 멸망에 대해서 이유 있는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천사는 롯에는 가까운 식구나 지인들에게 소돔을 떠나라고 권유하라고 있습니다. 이들 그들이 구원받는다는 말이 아니라 천사와 함께 롯이 모든 사태의 태풍의 눈처럼 중앙에 자리잡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도 ‘단절’을 유지한 채 말입니다. 롯도 가족들에게 미련이 있습니다. 

사위를 비롯해서 같은 상식적인 관계를 유지했던 자들을 놓치기 싫어 애를 씁니다. 하지만 정작 롯이 구원된 것은 자신의 결심이나 각오가 아닙니다. 천사의 강제력 행사입니다. 롯과 롯의 아내와 두 딸을 손목을 잡고 강제로 성밖으로 이끌어내었습니다. 이는 롯이 친근함으로 맺어진 주위사람들과의 관계를 ‘단절의 관계’로 전환시키시는 겁니다. 

이로서 롯은 졸지에 소돔 사람들의 눈에 무가치하고 쓸모없는 약한 자가 되어버립니다. 평생 일군 확고한 자신의 삶의 처소보다 천사가 전하는 소식을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삼은 자가 바로 롯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단절을 잇게 하는 힘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주어짐을 믿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이근호17-03-23 12:29 
80강-창 19장 12-16절(롯의 증거)170322-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창세기 19장 12-16절입니다. 구약성경 23페이지입니다. 

  

창 19:12-16 

  

“그 사람들이 롯에게 이르되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밖으로 이끌어내라 그들에 대하여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우리로 이곳을 멸하러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고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더라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가로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인자를 더하심이었더라.” 

  

지난 본문에 보면, 멸망당할 소돔의 주민들과 천사 사이에서 롯이 자진해서 중재자역할을 하고자 애를 씁니다. 그러나 그 중재자역할을 하는 가운데 주민들이 롯과 더불어서 천사까지 공격을 해댑니다. 중재하겠다는 롯의 의도는 소용이 없게 된 거지요. 그래서 롯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천사를 지킬 여력이 없다는 것을 자포자기할 때 쯤 되었을 때에 천사가 직접 주민들을 상대합니다. 

  

상대하는 대목이 11절에 나옵니다. “문밖의 무리로 무론 대소하고 그 눈을 어둡게 하니 그들이 문을 찾느라고 곤비하였더라.”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을 어둡게 했습니다. 방금 전까지 어떤 낯선 사람이 있다는 것을 그들의 눈으로 발견을 했는데 그들은 갑자기 자기 자신의 입장마저도 자기가 어디로 가야될지, 어디가 길인지, 어디가 집인지 그것까지 분간을 못하는 혼란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중재자 롯이 있을 때는 주민들이 롯과 이야기를 했습니다. 같은 인간이니까 이야기도 하고 티격태격할 수 있었지만 막상 천사와 직접 만나고 나니까 그 사람들은 눈이 어두워서 곤비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입장에서 ‘역사 천사가 세기는 세구나. 천사를 당할 사람이 누가 있겠어?’ 

  

마치 자신이 천사 편에서, ‘그놈들 참 고소하다. 잘되었다. 어딜 감히 천사를 대적해. 그들은 혼란에 빠져도 싸다.’라고 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보게 되면 그들이 천사에 의해서 시각적으로 어둡게 되기 이전에도 벌써 마음으로서 어둠속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 대한 대표자가 누구냐 하면, 바로 롯의 사위입니다. 14절 끝에 보면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고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더라.” 그렇게 되어 있어요. 

  

물리적으로 주민들이 천사들을 공격할 때는 천사와 주민들의 싸움이 물리적인 싸움이라고 생각하지만 근원적으로 돌아가 보면 그들이 왜 그렇게 천사에 대해서 공격적으로 나왔는가? 그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이 롯의 사위들입니다. 롯이, 하나님께서 이성을 멸하실 터이니 나가자고 할 때 롯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이해하려면 우리가 ‘역시 사위들은 믿음이 없고 롯은 믿음이 있구나.’ 이렇게 간단하게 롯의 편에 서서 생각하시면 안 되고 어느 편에 서야 되느냐? 우리가 누구 입장을 이해해야 되고 누구 입장에서 서야 되느냐 하면, 롯의 사위의 입장에 서서 이런 정황을 다시 볼 수 있어야 됩니다. 

  

롯의 사위의 입장에서 지금 자기 장인이 이야기하는 것이 그냥 농담거리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롯이라는 그 장인의 말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판단을 했고 판단을 할 때는 판단의 기준이 있는 겁니다. 아까 본문에서 주민들이 천사 앞에서 어둡게 되었다고 했지요. 그러면 주민들은 어둡다. 그리고 천사는 단순히 밝다, 가 아니라 주민들을 어둡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이렇게 정리해 봅시다. 

  

소돔의 주민들은 어둡다. 왜 어두운가? 천사들이 어둡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주민들은 어두웠고 천사들은 어둡게 했다. 그러면 두 톱을 이렇게 정해놓고 주민들과 주민들의 편에 서는 중재자, 그리고 천사의 편에 서는 중재자를 봅시다. 천사들 편에는 롯이 등장했고 주민들 편에는 롯의 사위들이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각자의 진영을 어떤 의미에서 대변한다, 또는 대표한다는 뜻으로 인간 대 인간으로 대화를 섞어 보는 거예요. 물리적으로 천사가 주민들의 눈을 어둡게 했다, 라는 그것이 극단적인 것이라면 그 중간과정에서 말로서, 인간의 언어로서, 대화로서 서로 이질적이고 서로 동떨어진 두 성격의 세계가 롯과 사위사이에서 분명히 만나게 되고 그 본질이 드러나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해야 될 이유가 뭐냐? 천사가 어둡게 했더니 주민들이 혼미했다. ‘고소하다. 어디서 감히 천사에게 대들어.’ 마치 우리는 그 일을 나와 상관없는 제 3장에게 일어난 독특한 일로 볼 것이 아니라 이것을 모든 인류에게, 천사에 의해서 어둡게 된 그 상황을 모든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깔아보는 겁니다. 

  

마치 해가 넘어가면서 석양이 산과 들과 도시와 마을에 다 깔리듯이 어둡게 만든 천사의 취지와 어둡게 되어버린 주민들의 물리적인 그것을 모든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확대시켜 버리면 그것은 뭐가 되는가? 사위들이 갖고 있는 평소의 인식, 안목, 인생관, 생활관, 그리고 세계관을 반영해 주는 겁니다. 

  

그렇게 반영해주기 때문에 우리는 사위들의 사고구조, 사고방식에서부터 출발해야 돼요. 우리가 제 3자의 입장에 서서는 안 됩니다. 롯이 이야기하는 이것이 너무나 터무니없어서 농담이라고 했거든요. 그러면 우리는 평소에 터무니없는 것에 대해서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수용할 수 있느냐를 한번 생각해 봐야 됩니다. 

  

터무니없는 이야기. 이렇게 하면 이익 봅니다, 하는 그 이야기 말고 터무니없는 이야기, 어처구니없는 이야기. 사위들이 왜 그 성이 심판 당한다는 것을 농담으로 여겼을까요? 그렇게 묻는 제가 어떤 의미에서는 그들에게 실례의 질문을 한 거예요. 길가는 사람에게 제가 물어봅니다. 

  

“이 대구가 멸망합니다.” 그러면 길 가는 사람이 “되지도 않는 소리를 하십니까?”라고 할 때 대구가 멸망한다는 이야기를 건넨 내가 듣는 그 길 가던 사람에게 실례를 범한 겁니다. 예의에 어긋나는 짓을 한 거예요. 사위들이 사이코가 아니고 정신이상자가 아닙니다. 정상적인 겁니다. 

  

제가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다는 이것이 그냥 사위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라 하지 말고 모든 인류의 보편적인 일로 보자는 겁니다. 왜? 어차피 모든 세상은 하늘에서 유황불이 떨어져서 멸망할거니까, 소돔과 고모라 짝 날 거니까. 

  

따라서 하늘에서 징조가 일어나면 그 때 예수 믿으라고 할 것이 아니라, 평소에 하나님의 심판이 땅에 사는 인간의 어떤 마음가짐이 그렇게 꼴 보기 싫고 저주받을 일이라서 하늘에서 유황불이 떨어지느냐 그 말입니다. 롯의 사위가 그것을 대변해주고 있어요. 롯의 사위가 대변해주는 그 마음을 한 마디로 이렇게 보면 됩니다. 

  

내 마음은 전혀 어둡지 않다. 어둡지 않다는 것은 밝다, 또 다른 말로 하면, 나는 안다. 이걸 계몽이라고 합니다. 일제 때 조선이 일본에 점령당할 때 계몽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났지요. 학교에서 한글 가르치면서, “우리가 무식하고 무지해서 일본에게 억압당하고 나라를 빼앗겼으니 이제부터는 지적으로 알자.” 이게 계몽이라는 겁니다. 

  

깨우치는 것. 계몽의 반대가 뭐냐? 미개함이지요. 인간의 세계에서는 조금만 아는 것과 많이 아는 것 사이에서 많이 아는 사람에게 조금 아는 사람은 무지한 자, 미개한 자로 치고 많이 아는 사람은 계몽된 자, 똑똑한 자, 지혜로운 자로 봅니다. 지혜로운 자와 무지한 자 사이는 끊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이어져 있어요. 

  

무슨 뜻이냐? 가르치면 납득이 되고 수긍이 되는 관계가 인간의 관계라는 겁니다. 아직 못 배워서 모르기 때문에 배우기만 하면 스스로 인간 마음속에 깨우치는 바가 있다는 겁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욥기 28장 1절에 이런 말씀이 있어요. “은은 나는 광이 있고 연단하는 금은 나는 곳이 있으며” 

  

욥시대에도 은광이 있고 금광이 있어요. 사람들은 자기가 안다, 계몽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는 것이 힘이니까. 사람은 자기가 마음이 어둡지 않고 밝고 아는 것이 많다는 겁니다. 욥 시대에 은이 나는 광산이 있고 금이 나는 광산이 있다. 그러면 그들이 주목하는 것은 뭐냐? 

  

은광에서 또는 금광에서 어떻게 순수한 은을 뽑아내고 순수한 금을 뽑아내느냐, 관심이 거기에 있는 거예요. 원래 은원석이 있고 금원석이 있다. 불순물, 아연이나 기타 금속들이 많이 섞였지요. 그렇게 섞여 있을 때 금원석이나 은원석을 보면서 뭘 생각하느냐? 저기서 어떻게 은을 뽑아내고 금을 뽑아내겠느냐, 라는 식으로 그들이 아는 지식을 투자를 하는 겁니다. 

  

보통 은원석이나 금원석은 시안화법, 시안화나트륨용액에 집어넣어서 추출하는 방법으로 거기에 아연가루를 넣게 되면 금과 은이 따로 회수가 되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원석에서 은을 뽑아내는 것, 이것이 보통 기술이 아니지요. 이것은 과학적사고방식이죠. 

  

은광석에서 가만히 있으면 은이 나오는 것이 아니잖아요. 인간의 지혜를 동원하고 지식을 동원해서 금을 얻고 은을 얻는다는 그 말입니다. 욥기 28장 1절에 “은은 나는 광이 있고 연단하는 금은 나는 곳이 있으며.”라고 했을 때에 사람들은, 거봐, 우리가 광석에서 순수한 은과 금을 뽑아낼 정도로 안다는 것이고 그래서 우리는 절대로 무지하지 않다는 거예요. 

  

다시 말씀드려서, 인간들이 안다는 것이 뭐냐? 많이 아느냐, 적게 아느냐의 그 차이에요. 기술을 가르치고 훈련시키면 조금 알아도, 무지해도, 미개해도 지식을 알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아무리 인간이 은광석에서 은을 뽑아내고 금광석에서 금을 뽑아내는 기술이 있다 할지라도 그들은 욥이 아는 여호와하나님을 몰라요. 

  

이것은 약간 더 밝거나 어둡고의 문제가 아니고 단절되어 있는 겁니다. 천사가 와서 주민들의 눈을 어둡게 해서 혼란케 했다는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가? 사회생활 하면서 너희들끼리 자칭 똑똑하고 지혜롭고 우리 힘과 재능과 노력으로 이만큼 살아왔으니 얼마나 우리가 대견한가. 은광석에서 은을 뽑아내고 금광석에서 금을 뽑아내서 그것을 가지고 화려한 집을 지을 정도로 우리는 모든 면에 있어서 똑똑하기 그지없다, 라고 자부하는데 그렇게 자부한들 그게 밝은 것이냐는 그 말입니다. 그게 아는 것이냐는 그 말입니다. 

  

그것은 어두움이 더욱더 짙은 어두움으로 빠져 들어가는 하나의 덫일 뿐이에요.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롯의 사위가 사이코가 아니에요. 정신병자가 아닙니다. 미친 사람들이 아닙니다. 아주 정상적이고 논리적이고 이성적이고 그야말로 어떤 의미에서 점잖은 사람이고 품격 있고 기품 있고 교양 있고 상식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 롯의 사위니까. 롯의 딸들이 남편감 정할 때 롯을 생각해서 개망나니 같은 사람을 친구로 사귄 것은 아닐 거잖아요. 다 어느 정도 레벨이 되니까 롯의 사위들도 그나마도 인간사회에서 수준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천사를 만나서 눈이 어두워지고 혼미한 사람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거예요. 

  

물리적으로 천사가 그들의 눈을 어둡게 했지만 이제는 물리적이 아니고 정신적으로 마음 적으로 천사 편에 서 있는 롯이 내뱉은 멘트, 그 말과 심판받을 소돔과 고모라 편에 서 있는 그 주민들의 편에 서 있는 그 사위가, 롯이 말을 던지는 그 순간에 완전히 단절이 여기서 일어나는 겁니다. 끊어졌다는 말이지요. 

  

여기서 우리가 롯의 사위 편에 계속 서 있어 봅시다. 롯의 사위들이 상식 있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롯의 말이 농담으로 여겨졌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장인이 하는 그 이야기가 인간세계의 범주에서 코드가 맞지가 않아요. 인간세계에서 수용할 수 없는 말을 한 거예요. 예를 들어서 인간세상이 도덕적으로 나쁘다고 한다면 고치면 되고, 무지하다 하면 교육시키면 되는 거예요. 

  

그러나 롯이 하는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개선하거나, 발전의 여지가 있다든지, 희망이 보인다든지 그게 아니고 이 바닥자체, 이 자리, 이 장소, 이 공간 자체가 완전히 사라져야 되고 없어져야 합당하다는 거예요. 사위는 머리가 있는 사람이니까 따져볼 것 아니겠습니까? 

  

자기가 터 잡고 사는 이 소돔과 고모라 도시가 자기들이 아는 입장에서 싸그리 멸망당해야 될 그 정도까지 나쁜 근거와 정당성을 찾을 수가 없는 거예요. 왜냐하면 사위 본인이 평소의 생활터전이 소돔이기 때문에 그래요. 생활터전이라는 말은 그게 삶의 바탕이 된다는 겁니다. 

  

모든 정신세계라는 것은 그 생활터전에서 획득한 거예요. 사람이라는 것은 혼자 있을 때는 자기가 안다고 하지만 몰라요. 산속에 혼자 있을 때 자기가 누군지를 모르다가 산에서 내려가 읍내 5일장에 들어가서, 많은 사람들 만나고 거기서 일이 벌어지고 어깨 부딪히고 싸우고 도움도 받고 하는 가운데서 그 때 마다 인간의 마음이 수십 번도 더 바뀌는 겁니다. 

  

어떨 때 기분 좋았다가 또 낙심도 했다가 웃었다가 울다가. 혼자 있을 때는 울일 도 없고 웃을 일도 없는데 사람하고 만나면서 진짜 자기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는 그 변화에 대해서 아주 민감하고 세심하게 거침없이 반응을 나타냅니다. 이렇게 남하고의 만남을 통해서 반응을 나타내는 그 모습에서 자기 자신이 이정도 되는 인간이라 하는 것을 정립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사위도 마찬가지지요. 사위들이 혼자 산에서 도닦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평소에 주민들과 같이 살고 소돔과 고모라에서 주민들과 같이 생활했던 사람이에요. 생활하면서 저 사람은 착하고 저 사람은 나쁘고, 이런 것을 다 알지요. 심지어 롯도 다 알아요. 

  

그것을 다 알기 때문에 자기가 아는 지식의 범위 내에서는 하늘에서 유황불 내려서 잘난 사람 못난 사람 할 것 없이 싸그리 다 멸망당할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 그 말입니다. 이 소돔이, 대구 땅이, 이 서울 땅이, 대한민국이, 미국이. 아무리 세상이 악하다 할지라도 싸그리 불 심판 당할 정도는 아니라는 겁니다. 

  

사위가 소돔쪽에 있기 때문에 소돔에서 획득한 자신의 지식과 앎, 그리고 상식에 입각해 볼 때 이 도성이 완전히 멸망하다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는 생각은 절대로 들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롯의 말에 웃기네, 농담이죠, 라고 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우리는 사위들의 입장에 서서 생각을 해야 돼요. 터무니없으니까. 

  

이게 바로 천사가 보기에 무지하고 어두운 겁니다.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 유황불 내리기를 바라요. 유황불 내려와라. 유황불 내려와라. 본인 자신이 평소에 살아가는 모든 행동과 말이 어떤 상식과 사람들과의 어떤 교류가운데서, 소통하는 가운데서 부여받은 사고방식인지는 생각도 안하면서 그저 유황불만 내리면 자신은 구원될 줄로 알아요. 

  

본인 마음이 사위마음과 똑같은 마음인데 하늘에서 유황불 내리는 낌새가 보이면 그 때는 도망치면 될 것이 아닌가, 이런 식으로 나온다는 말이지요. 그렇다면 롯은 대체 어디에 근거해서, 사위도 하나 설득 못할 정도로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전혀 보편적이거나 일반화되지 않은 이야기를 어디에 근거해서 한 겁니까? 

  

그것은 여분의 공간, 여분의 자리에서 들었던 내용입니다.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롯은 어느 편에 서 있느냐 하면, 두 천사 편에 서 있어요. 천사는 외계인입니다. 인간세계에 사시는 분이 아니고 인간세계 바깥에서 찾아오신 분이에요. 롯이나 사위나 평소에 소돔땅에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롯도 자기의 지혜를 끄집어내서, 이 세상 멸망해야 돼, 그렇게 생각 안했습니다. 

  

롯은 저쪽에서, 외계 쪽에서 오신 그분의 말을 그대로 전달했을 뿐이에요. 이유는 모르겠어요. 이유를 모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유를 대려면 이 세상에 있는 타당성 있는 근거를 가지고 대야 될 텐데 자리가 여분의 자리거든요. 인간이 알고 있는 그 자리가 아닌데 인간들은 그 자리가 있는 줄도 몰랐어요. 

  

여분의 공간, 여분의 영역이 있는지 몰랐지요. 인간들은 인간들의 세계가 현실의 전부에요. 그래서 인간들끼리 통하면 그것이 자기들의 합당한 현실이 되는 겁니다. 거기서 나온 것이 현실관이고 세계관인데 지금 롯은 엉뚱한 소리 하고 있는 거예요. 설득이 되지 않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냥 통보할 뿐이에요. 천사를 대변해서. 그래서 이렇게 생각해야 돼요. 롯이 사위를 대할 때 절대로 설득하거나 이해를 시켜서 구원받고자 하는 의도를 롯이 가졌다면 이것은 천사입장에서도 합당치 않은 겁니다. 실제로 그런 낌새가 있어요. 16절에 보면,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롯이 지체했다는 말은 롯이 아직도 미련을 갖고 있는 거예요. 왜냐하면 롯이 분명히 천사 편에 섰지만 그 육신과 평소에 살아온 마음가짐은 소돔사람을 충분히 이해하는 동일한 마음을 갖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제가 아까 보편적인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롯이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와 똑같아요. 

  

“그러면 목사님, 롯은 어떻게 구원받았습니까?” 16절에 보면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천사가)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밖에 두니.” 강제로 퇴거시킨 겁니다. 왜냐하면 롯이 자꾸 미련을 갖고 있으니까. 롯이 생각해 보는 거예요. ‘둘이 신혼살림 하면 얼마나 예쁘겠는가? 5월 초에 결혼식을 하는데.’ 

  

둘이 갈라선다는 것은 미리 상상만 해도 아버지가 되어서 딸 결혼을 훼방하는 것이 되니까. 그냥 입만 다물면 사위와 딸이 잘 지낼 것인데 천사가 하라고 했으니 할 뿐이에요. 그러나 하면서도 마음은 어떻게 이 가족을 한 번 살려볼까, 하는 식입니다. 천사의 이야기는 가족 그 이상의 것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오늘 설교에서 핵심은 뭐냐? 그 누구도 구원받지 못한다는 겁니다. 왜 구원받지 못하는가? 멸망당할 인간들과 동일한 마음가짐을 우리가 지니고 있기에. 그것이 보편적인 심성입니다. 그 보편적인 심성이 어디서 나왔는가? 내가 평생 일구어온 이 자리, 기존의 이 자리에서 떠날 수가 없어요. 

  

내 삶의 자리, 이 터전을 미련 없이 박차고 나올 수가 없습니다. 이 자리가 없으면 나도 없어요. 이 자리 떠나면 어디서 어떻게 산다는 말입니까? 24시간 생각하는 것이 현재 내가 내 삶의 터전을 얼마나 공고히 하고 단단히 하고 내 살기에 좋고 합당하도록, 적합하도록 온갖 투자, 노력, 땀, 그 모든 것을 다 여기에 집어넣었는데. 

  

그리고 나만 그렇게 삽니까? 사위도 그렇게 살았고 딸들도 그렇게 살았는데. 지금 천사는 외계인이니까, 이쪽 사람이 아니니까 그들은 말하기는 쉬워요. 떠나라. 이게 떠날 수 있는 문제입니까? 그리고 떠난다는 것은 자리만 떠나는 것이 아니에요. 롯이 생각했지요. 떠나라고 하니 떠나는데 딸과 정혼한 사위도 내 식구니까 내 식구끼리 떠나자고 한 겁니다. 

  

천사도 상당히 다급했어요. 천사도 다급해서 롯에게 이야기하기를 다 챙기기 말고 네 가까운 일가친척이나 챙겨오너라,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롯은 일가친척 챙긴다고 나가자, 하니까 사위는 굉장히 이성적이 사람이라 나가자는 말아 “예, 장인어른! 나가겠습니다.” 한 것이 아닙니다. 

  

따져보는 거예요. 아무리 사위가 롯의 딸을 사랑한다 할지라도 미친 소리 듣고 나가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거지요. 쉽게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차근차근 현재 자신이 이만큼 살만한 정도로 되었다면 그동안 얼마나 심사숙고하고 진지하고 조심조심하면서 실수를 줄이는 방향으로 진짜 침착하게 한평생 살아오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가 뭐냐? 지금 살고 있는 이 자리, 이 터전입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이 땅에 온 천사가 하는 말이 무조건 박살난다는 거예요. 무조건입니다. 나는 여기에 공을 들였는데, 내가 사는 인생 이만큼 되기까지 이 자리에 공을 들였는데 무조건 박살난대요. 이 터전에서 빠져나오라는 거예요. 

  

만약에 어떤 사람이 그렇게 이야기하면 우리는 뭐라고 하겠습니까? “농담이지요.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하게 하십니까?” 천사는 단절입니다. 인간은 기술개발하고, 은광에서 은을 캐고 금광에서 금을 캐는 기술개발에 굉장한 포부와 희망과 미래를 갖고 있어요. 따라서 인간은 나름대로 압니다. 

  

세상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자부합니다. 그래서 누가 나가자 한다고 나가는 것이 아니고 들어봐서 나갈만한 근거가 있으면 지체 없이 나갈 정도로 인간은 지혜롭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천사입장에서는 인간자체가 단절되었기 때문에 그게 어두움이에요. 그런데 인간은 똑똑하기 때문에 어둡다는 그 평가를 납득할 수가 없는 거예요. 

  

왜 어두운가? 천사의 안목에서 볼 때 어둡지만 내가 나를 어둡다고 아무리 판정을 해봐도 어두운 구석이 없어요. 아직까지 뭔가 미진한 구석은 있지만 그것은 공부하게 되면 차츰차츰 나아질 수 있는 희망이 있는데 근원적으로 어둡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거지요. 

  

천사의 말을 옮기면서도 롯도 이게 납득이 안 되는 거예요. 소돔과 고모라가 몽땅 심판받아야 된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되는 겁니다. 이해가 안 되는 가운데 가족만이라도 억지로 데려가려고 애를 쓰는데 그러다 보니 지체가 된 거예요. 천사가 강제로 손을 끌어서 성 밖으로 끌어냈습니다. 

  

이 천사를 오늘날 주님으로 봅시다. 그리고 성령으로 봅시다. 납득이 되어서 예수 믿는 것이 아닙니다. 친히 우리의 손을 잡고 이유도 모르는 채, 이해되어서가 아니라 그냥 주의 말씀이 우리 쪽으로 넘어와서 우리로 하여금 강제로 끌고 갑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강자로 여김을 받기를 원합니다. 

  

아는 것이 강한 자에요. 많이 알면 남보다 더 강해집니다. 그러나 사위 앞에서 롯은 강자의 역할을 더 이상 못합니다. 이제는 약한 자가 되고 있으나마나한 인간이 되고 아무 쓸모 짝도 없는 장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그러나 그 모습을 보인다는 것, 누구도 그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 롯의 손목에는 천사의 힘이, 말씀대로 움직이는 힘이, 심판주의 힘이, 롯의 아내와 두 딸에게 힘이 가해져 있고 그리고 사위에게는 단지 천사가 사위의 손모가지를 끌고 있지 않다는 것, 단지 그 이유 때문에 롯은 구원받은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세상 다시 보게 하옵소서. 왜 그리 똑똑한 사람이 많고, 왜 그리 잘난 사람은 많고, 왜 그리 강한 사람이 많은지, 우리는 그들이 부럽고, 그들처럼 되고 싶고, 그렇게 되어야 강자로서 사람구실 한다고 자부하는 우리의 마음, 이 마음이 주님 보시기에 얼마나 어두운 마음이고, 단절된 마음이고, 같이 저주받아야 될 마음인 것을 저희들이 깨닫게 해주시고, 주님의 강제권이 동원되어서 주님의 뜻과 세상 것이 어떻게 크게 차이 나는지를 날마다 증거 하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