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이 자식을 유치원에 보낼 때 또는 초등학교 보낼 때 선생님께서 미술 시간에 “각자 재미난 거 생각해서 편한 대로 그려보세요.” 이렇게 할 때 세상에 어떤 아이가 “선생님 그림 다 그렸어요.” “보자, 어떤 그림을 그렸을까?” 보니까 뱀을 한 마리 그려 놨다. 여러분, 이런 인간 봤습니까? 이런 인간 봤어요? 대부분의 아이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그려요, 눈에 보이는 것을. 시작을 눈에 보이는 것부터 출발한다고요.
그런데 하나님의 시작은 눈에 보이지 않는 뱀부터 출발하잖아요. 뱀, 악령, 악마. 그리고 그 악마가, 뱀이 그냥 곱게 앉아있었습니까? 뱀이 누구하고 대화를 시도해요. 그리고 찾아가서 대화를 시도하고, 대화를 시도한 그것에 대해서 뱀이 아주 만족스러워합니다. 뱀의 목표는 ‘하나님을 전제로 한 인간이 되지 말고, 하나님을 후차로 돌리고 시작을 너부터 하는 존재로 살아라.’ 이걸 악령, 악마, 뱀이 우리에게 알려줬고 그것이 우리의 본성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종교도 거기서 나와요. 기독교도 거기서 나오고, 교회도 거기서 나와요. 마귀가 만든 거예요, 마귀가. 시작점이 눈에 보이지 않는 악마가 시작을 했는데 인간은 악마에게 이상한 음료수라고 할까요, -선악 나무죠- 그 과일을 따 먹고 난 뒤에는 이제는 악마도 안 보이고, 성령도 안 보이고, 하나님도 안 보이고 오직 보이는 것은 나밖에 보이지 않는 존재로 달라졌습니다.
이제 하나님을 규정하든, 천국을 말하든, 지옥을 말하든 모든 시작점을, 생각 의식 자체를 내가 여기 있다, 나에게 얼마나 유리하냐, 나에게 이익이 되느냐, 모든 출발점을 자기로부터 하면서 진리를 따지고 하나님을 따지고 중보자를 따지고 구원을 따지는 그런 세계에 돌입하게 된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이 점에 대해서, 이 마귀의 세계에 대해 가만히 지켜보겠습니까? 조치를 취하죠. 조치를 취하는 방법이 뭐냐 하면, ‘존재’를 뭐로 바꾸느냐 하면, ‘흔적’으로 바꾸는 거예요. 존재를 흔적으로 바꾼다. 존재를 흔적으로 바꾸는데 성경에는 흔적이라는 용어보다도 ‘표적’이라는 용어로 나옵니다. 표적으로 바뀌어요, 표적.
표적은 불연속적이에요. 있다가도 없어요. 표적은 단발성이고 우발성이에요. 사람이 살아있으니까 계속 천 년 만 년 살 것 같습니까? 야고보서 4장 끝에 보면, 있다가도 없는 게 인간이라고 했잖아요. 안개같이.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 4:14).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너 자신을 볼 때 “너 있어, 없어?” “있습니다.” “없어질걸?” “그러면 그 전에 ‘내가 있습니다’라는 건 뭡니까?” “그건 존재고” “그러면 없어지는 건 뭡니까?” 뭐가 묻었을 때 문질러서 없어지게 되면 그건 흔적이죠. “넌 흔적이야.” “무엇의 흔적입니까?” “영원히 살아있는 두 존재, 하나님과 악마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흔적”이죠.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예수님의 존재와 악마 의 존재의 흔적을 보여주는 단발성, 일시적인 흔적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그렇게 태어나고 나타난 게 바로 인간이라는 거예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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