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 천국 가서 “여기 김밥 세 줄 주세요.” 이런 말을 한다고 이것이 하나님이 나를 지옥 보내는 근거나 조건이 될 수 있습니까? 우리가 못 찾아내죠. 찾아낼 수가 없죠. 대화를 한다는 것, 일상적인 대화, 방금 이야기 한 것들은 우리가 보기에 하나 하자가 없는데, 너무나 자연스럽고 또 그렇게 소통을 위해서 대화를 하는 이것이 왜 문제냐 이 말이죠.
이게 왜 문제냐 하면요,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영광스럽습니다, 너무나 감격스럽습니다’ 그러한 태도가 일상적인 대화를 통해서 다 날아가는 거예요, 다 날아가 버린 거예요. 세상에 다가서면서 “이거 해주세요.” “곤란한데요.” 혹은 “이거 해주세요. 그러면 내가 이걸 해줄게요.” 이것은 뭐냐 하면, 대화를 하는 상대와 내가 둘 다 존재해야 마땅하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대화하는 거예요. ‘나는 살아있는 게 마땅하고 너도 살아있는 게 마땅하고 정당한 것이다. 살아있는 것에 대해 난 정당성을 갖고 있고 나에겐 그만한 가치가 있다.’ 이걸 대화를 통해서 지금 우기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 보기엔 너무나 마땅한 이런 자연 현상을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보내 근원적으로 완전히 박살 냅니다, 무시합니다. 제가 예를 한 번 들어볼게요. 여러분이 한번 생각해 보세요. 자식이 휴가를 맞아 부모 집에 갔습니다. 이렇게 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때문에 내가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이거 문제 있어요? 문제없어 보이죠. 이것은 부모에 대한 모독입니다.
왜냐하면 그 말을 할 때 ‘자기가 여기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는 부재의 의미가 날아가 버렸어요. 조금 더 알기 쉽게 이야기하면, 사실상 인간에게는 부모가 없습니다. 부모가 없고요,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내가 나를 창조한 존재로 만들기에 모든 역량을 쏟고 있습니다. ‘저분들 때문에 내가 태어났다.’ 말은 그럴싸하죠. 그러나 ‘오늘날의 내가 된 것은 내가 창조자고, 나라는 피조물은 내가 만든다는 것’, 곧장 자기중심의 인생관으로 전환해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뭘로 보내냐 하면, ‘사람의 아들’로 보냈어요. 예수님 자기 자신이 인자(人子), 사람의 아들로 오신 이유가, 내가 전에는 하나님의 아들이었는데 볼 일이 있어서 잠시 사람의 아들로 와야 된다고 해서 이름을 사람의 아들로 했습니다. 예수님이 사람의 아들인 것으로 말미암아, 어떤 인간도 사람의 아들에 합당한 존재는 일체 존재하지 않습니다. 없습니다.
진짜 인간 같은 인간은 예수님 빼놓고는 없어요. 다 인간이 아니에요.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나, 인간 천국 보내주세요’ 혹은 ‘지옥 보내주세요’ 할 자격이 없습니다. 애초부터 그건 없는 거예요.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인간은 인간을 인간이라고 여겼는데, 예수님이 오시고 난 뒤에는 인간은 애초부터 인간이 아니었던 거예요. 인간 흉내를 내고 있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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