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어떤 사람들은 천국을 위해서 살고,
왜 어떤 사람들은 지옥을 위해서 사는가?’
이 문장을 제가 쓰는 이유는, 우리 기존의 안일한 의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쓴 거예요. ‘왜 어떤 사람들은 천국을 위해서 사는가?’ 이것은 우리가 평생 동안 많이 들었던 이야기에요. 참 많이 들었어요. ‘너 교회 열심히 다녀서 천국을 위해 살아라.’ 그런 이야기 많이 들었잖아요.
그런데, 그 아래 문장을 보세요. ‘왜 어떤 사람들은 지옥을 위해서 사는가?’ 이런 감을 우리가 평소에 느낍니까? 혹시 감 떨어진 거 아니에요? 세상 사람을 볼 때에, 저 사람은 그냥 ‘교회에 관심 없는 모양이다. 천국 관심 없다.’ 이 정도로 천국이 결핍된 정도로만 보지, 적극적으로 지옥을 위해서 지옥가기 위해서 애를 쓰며 살아간다는 인식을 여러분들이 가집니까? 가지겠어요?
어떤 남자가 결혼을 하는데, 남자는 교회 다니고 이미 주님 이야기하더라. 그런데 여자는 남자의 인물보고 또는 남자의 재력보고 저 남자와 살면 행복하겠다 싶어서 그냥 교회 관계없이 연애해서 결혼했다. 그럴 때 하객으로 온 우리들이 ‘저 여자는 왜 지옥을 위해서 사나?’ 그렇게 생각을 안 하고, ‘저 여자는 언젠가 같이 따라 교회 가겠지.’ 이렇게 생각을 하는 거예요.
저는 이 인식이 잘못됐다고 보는 거예요. 한쪽이 천국을 위해서 산다면, 반드시 그 외의 사람은 어디를 위해 살아요? 지옥가기 위해서 그렇게 애를 써요, 매일 삶이. 지옥에 안 넣어 줄까봐, 지옥 못 갈까 싶어 환장한 거예요. 열심히도 살아요. 지옥가기 위해서 열심히 삽니다.
어떤 천국 결핍 요소가 아니고 그 내용이 충실해요. 무슨 내용으로? 지옥에 합당한 삶에 아주 자기가 충실하고 열심히도 살아요, 지옥가기 위해서. 그 관점이 우리 주님의 관점입니다. 우리 주님의 관점.
인간 제3자가 보는 관점, 그것을 바꾸세요. 관점을 주님의 관점으로 보게 되면, 천국을 위해 사는 어떤 사람이 있다면 그것만 보지 말고, ‘저거 우리 편이다’ 생각하지 말고 다른 편도 좀 봅시다. 저 사람은 그냥 못 가는 자가 아니라 갈 곳이 있어요. 그것도 마음먹고 갈 곳이 있어요. 어디입니까? 지옥입니다. 한시라도 지옥과 무관한 일은 그 사람이 행한 적이 없어요. 지옥과 상관있는 일만 따박따박 평생토록 집요하게 해오고 있었습니다.
자, 여기서 차이를 알아야 되겠죠. 어떤 사람이 천국을 위해 사는가, 어떤 사람이 지옥을 위해 사는가. 차이를 아주 간단하게 이야기하겠어요. 천국 가는 사람의 특징은 뭐냐? 어떤 관점이 있는가? 관점을 적을 테니까 여러분들이 그렇게 동의하는가 속으로 생각해보세요. 속으로. 겉으로는 내가 안 묻습니다. 속으로 생각하세요.
천국 가는 사람의 특징은 ‘인간은 죽지 않는다.’
지옥 가는 사람의 특징은 뭐냐?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개인부터 출발해서 가산합니다.
이 차이점입니다. 죽지 않는 사람의 특징은, 죽음 자체가 별 중요한 문제가 아니에요. 왜? 안 죽으니까. 안 죽으니까 그래요. 그러나 지옥 가는 사람은 한시도 죽음을 의식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어요.
창세기 2장 17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이제 잘 들으세요, 어려워요. “정녕 죽으리라”라는 말씀을 살리기 위해서 어느 누구도 죽지 못하는 거예요.
아, 참. 주님 지독하죠? “내가 말한 게 장난인 줄 알았지?” 내가 말한 게 장난이 아니라 이 말이죠. 장난이 아니잖아요. 장난이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만이 계속 유지되려면, 죽어서 “저보고 이야기하지 마세요!”하는 인간은 단 한명도 없다는 거예요. 없어요. 살아있을 때 주의 말씀 들을래, 죽고 난 뒤에 들을래? 그 이야기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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