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

쪼가리 감사

아빠와 함께 2026. 7. 7. 09:38

전체적인 원칙, 구원의 원칙은 이렇습니다. 제가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일단 구원부터 받고 고난은 나중에 받아요. 사람들은 뭘 기대하느냐. 일단 구원부터 받고 그다음에는 아예 고난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이렇게 생각하거든요. 그거는 예수님의 방식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방식 알려드릴게요.

선악과를 누가 따 먹었느냐. 인간이 따 먹었죠. 인간이 따먹고 인간은 이 땅으로 쫓겨나서 죽도록 고생합니다. 힘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생명나무 되시는 예수님을 통해서 선악과가 훼손돼서 나온 그 징벌을, 생명나무 되시는 예수님이 대신 그걸 받아버려요. 받아서 구원받는 자에게는 그 예수님이 받은 고난에 참여하는, 예수님이 받은 이 땅의 징벌을 같이 받는, 그러한 두 번째 프로그램을 하나님 쪽에서 준비하신 거예요.

구원은 일단 받아놓고, 그다음에 고난, 주님이 받은 고난에 참여함으로써, 이것은 내가 고난받는 대가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구원받은 자에게만 주어지는, 예수님 일에 참여하고 부름을 받았다는 그 증거로, 고난이 발생하는 거예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또 여러분 별로 기쁘지도 않아요. 인상이 벌써 확 가버리죠. ‘난 고생하기 싫은데’ 여러분, 고생이 고난이 아니에요.

세상 적으로는 만사형통이, 그게 고난이에요. 고난이라는 것은 뭐냐 하면 세상의 기준과 전혀 다른 기준으로, 세상에 타인들을 매일 같이 대해야 한다는 이게 아픈 거예요. 기준점이 다르니까 대하는 게 다 다르다고요, 고린도후서 12장에서, 사도바울도 마찬가지예요. 사도바울은 구원을 받았지요. 고린도후서 12장 1절에 보면,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라고 하면서 삼층천 올라간 이야기 하잖아요.

그런데 고린도후서 12장 7절에 보면,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게 뭐냐 하면, 이게 병이 그냥 일상적인 병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박아 놓은, 평생 박아 놓은 사탄의 가시이기 때문에, 내가 빼려고 해도 뺄 수가 없어요.

왜 그렇게 하는가. 너무 교만하지 않게 하기 위한 주님의 조치예요. 주님의 조치라고요. 사도바울도 이처럼 살아가면서, 헬렐레하면서, 이 세상이 최고라고 이런 게 아닙니다. 떠나야 해요. 이 여러 가지, 최고의 성도에게 이러한 그냥 가시가 아니라, 사탄 악마의 가시를 거기다가 박아 놓은 겁니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이 사도바울이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탄의 가시가, 가시니까 고통이죠. 고통을 주죠.

아프죠. 아프면서 돌아서서 감사하고, 돌아서서 감사하고, 돌아서서 아프고, 아프고 또 감사하고, 아프고 감사하고, 이게 파동으로 계속 이래야 되는 거예요. 저는 이걸 쪼가리 감사라고 하는데, 쪼가리 지고, 쪼가리 지고, 쪼가리 된 감사가 반복적으로 계속 이어지는 겁니다. 이게 왜 쪼가리 나느냐면, 쪼가리 져야 되느냐면, 계속 감사가 되어버리면 오늘 본문 그대로예요.

고린도후서 12장 그대로예요. 내가 곧 감사의 주체가 되는 것처럼 오해하기 때문에 그래요. ‘나는 늘 감사해. 나는 늘 훌륭해. 나는 늘 완벽해’ 사도바울이 이게 시험이거든요. 이 시험을 감당 못 한다면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감당 못 해요. 주님의 호명과 일 시킴으로 감사해야 될 건데, 이렇게 모든 만사가 평안하면 내가 감사가 돼요. 내가 감사해야 한다고요.

그러면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면 열 자가 없다”라는 주님의 활동은 어떻게 돼요? 없죠. 자기한테 감사하니까. 하나님은 알되, 하나님께 별로 감사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이제는 독립 선언해도 될 만한 거니까. 그러면 마지막으로, ‘목사님 우리에게 박힌 사탄의 가시가 뭡니까?’

오늘 요한계시록에 나와요. 그게 유대인의 사상과 집합이에요. 어떤 사람은 뭐 암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자식 때문에 못 살겠다고 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아들, 딸 있어서 장가도 안 가고, 연애도 안 하고, 다 그냥 사탄의 가시 같아. 이런 것들이 있는데 그런 것은요, 그런 타인은 그냥 헤어지면 그만이잖아요. 내몸 안에 있는 사탄의 가시를 뺄 수가 없는 것은 뭐냐 하면, 내가 바르게 살아야 구원받는다는 그게 사탄의 가시예요.

평생 가요. 평생. 이만큼 했는데, 이게 웬 어려움이냐는 이런 거예요. 계속해서 이 탐욕이 올라오는 거, 그럴 때마다 주님께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서 “딴 소리 하지 말고 너희는 그의 말만 들으라. 시키는 대로 하면 돼”라는 그 한 마디가 평생까지 계속 유효하게 이어지면서 우리는 다시 감사 포인트로 돌아오고, 돌아오는 겁니다.

“그냥 주여, 말씀만 하옵소서” 그걸로 됐지, 내가 따로 뭐 괜찮은 나를 마련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서 빌라델비아 교회는 책망이 없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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