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

7/6-전지적 관점

아빠와 함께 2026. 7. 6. 08:40

성경 전체가 인간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구조화 된 상황을 소개하는 겁니다.

그러면 머리 좋은 사람들이 보면 딱 나왔지요. ‘아, 우리는 빠지는구나.’ 우리의 운명에서 우리는 빠지세요. 빠지고 예수님하고 누구하고 상대하느냐? 하늘의 지혜자 예수님과 땅의 지혜자 뱀하고의 관계를 이 두꺼운 성경책으로 묘사해 놓은 거예요. 어떻게, 기쁘지 않습니까? 성령이 오는 것은, 지난 낮 설교에 했어요, 예수님의 관점이 오는 것은 하늘의 시선, 전지적 관점이에요.

전지적 관점, 한 주 지났다고 다 잊어버렸지요. 전지적 관점이 뭐냐? 요한복음 5장 39절,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모든 성경은 내가 압수한다. 내가 가져간다. 가져가서 내가 다 이루고 지킨다.’ 이것이 전지적 관점이에요.

 

왜 주께서 그렇게 도발적인 발언을 하느냐 하면, 이미 인간들의 이 세상에 통용되는 모든 관점은 악마의 전지적 관점이에요. 악마가 우리의 정신을 다 가져갔어요. 모든 해석할 때 ‘너는 위대해, 너는 훌륭해, 너는 천국 갈 수 있어’ 이런 관점으로 성경을 보도록 악마가 뒤에서 조장하는 거예요.

그러면 주님께서 어떻게 하느냐? 인간은 문둥병자잖아요. 우리 인간의 것은 ‘말’이고 주의 ‘말씀’이 저주받는 자리로 우리를 자꾸 데려 가요. 우리를 저주받는 자리로 데려갑니다. 저주받은 자리에 가야 천국의 믿음이 생겨요. 저주받는 자리에 가야 “아이고, 모르겠습니다.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나이다.” 이런 기쁨의 고백이 나오는 거예요.

 

이사야 입에서 인간에게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고백, 욥이 재를 뒤집어 쓴 취지가 나옵니다.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쉽게 번역하면 “주님, 제가 하늘의 것과 땅의 양쪽을 다 보는 경계선, 제가 단절의 선이군요.” 이것을 발견한 거예요. 이쪽 보고 저쪽 보고, 저쪽 보고 이쪽 보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천국에서 어떤 인간형을 받아주고, 어떤 인간형을 원하느냐?’ 이것을 인간들이 생각하잖아요. 노, 노! 그러면 안돼요.

순서가 바뀌었어요. ‘천국에서 어떤 인간을 거절하고 어떤 인간을 차단하느냐? 그것부터 시작하자.’ 순서 바꾸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천국은 어떤 인간을 안 받아주나?’ 그것부터 해야 돼요. 구약성경에서 ‘복 받을 자에게 복’이 나오거든요. 그런데 아까 구약성경에서 저주를 봤지요. 저주받을 자에게는 반드시 저주를, 이것도 나오잖아요.

그러면 그걸 보고 있는 우리는 얼른 어느 자리로 가느냐? ‘복 받을 자에게 복을’ 여기로 가면 안 돼요. 복 받을 자는 반드시 경유해야 해요. 저주받을 자에게 반드시 저주를 퍼붓는 그 자리에 가 있어야 우리가 아는 땅의 지혜가 아니고, ‘말’이 아니고, ‘말씀’께서 저주의 자리에 있는 자를 일방적으로 복 받을 자리로 옮겨놓는 작업을 우리 주님께 일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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