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우리가 어떤 사건을 만나고 어떤 삶을 살든지 관계없이 그거는 전부 다 주께서 빨아 당기는 진공청소기가 유발한 사건들이에요. 나에게 어떤 일이 있더라도. 어떤 사람은 멀쩡하게 간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암 걸려 간 사람도 있고. 이런 사람 있어요. 어떤 사람은 주식 꼴아 박은 사람 있고, 어떤 사람은 주식해서 보너스 탄 사람도 있고.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요. 십자가의 능력이 온 사람은 자기가 구원받은 걸 의아해 여기는 거예요. 나는 저쪽인데? 지옥이 딱인데 왜 내가 천국으로 가지? 아 이게 십자가, 예수님께서 내 대신 죽으신 대신 심판 받으신 효과구나, 고백하면서 가는 거예요. 그런 구원받고 있으면서 자식이 내 말 안 듣는다고 나 그만 자살해버릴까, 이런 우울증 같은 소리를 할까요, 안 할까요? 안 하지요.
다시 말해서 내가 죽을까 살까를 판단할 수 있는 권한 자체가 나한테 아예 없지요. 살아도 죽는데 살아도 악마한테 끌려가고 지옥으로 끌려가는 강력한 마귀의 힘이 있는데 여기서 내가 무슨 하고 자시고 간에 어디 있습니까? 요한복음 10장 보겠습니다. 27절,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이렇게 돼 있지요.
26절 말씀이 참 무서워요(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이게 굉장히 무서운 말이에요. 주님께서 하신 말씀 가운데 인간 입장에서 제일 무서운 말이에요. “너는 내 양이 아니다.” 그 이유가 뭐냐? 내 말을 못 알아들으니까. 왜 사람들은 교회 나와도 주의 말씀을 못 알아듣습니까? 살려고 하니까.
살고 안 살고는 나는 사는 대상이 아니에요. 살리는 것은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이 껍데기 나 안에서 나를 보쌈해서 내 안에 주의 약속을 집어넣고 그 주의 약속을 살리다보니까 우리가 덩달아 사는 거예요. 천국 가는 거예요.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박혔으니까 박힌 영을 잡아당기다보니까 거기에 껍데기 된 우리가 같이 딸려오는 거예요. 그래서 29절에 보면,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아까 이사야 49장 24절 말씀 기억하시지요. 없다 이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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