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

아브라함

아빠와 함께 2026. 6. 20. 14:28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신앙의 ‘신’자도 못 나오도록, 딴소리 못하도록 “네 본성에 충실하라. 네 본성에 충실해.” 어떤 행운이라든지 어떤 기적을 얍삽하게 바라는 그런 짓은 하나님께 통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조상도 마찬가지거든요.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취지가 뭐냐? 갈라디아서 3장에 보면 그게 나옵니다. 3장 6절, 참 이게 엄청나게 어려운 이야기에요. 3장 6-7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찌어다” 이렇게 되어 있죠.

논리가 복잡하지만 간단하게 결론부터 먼저 말씀드릴게요. ‘아브라함 자기 본성이 어떻게 괜찮은 본성으로 바뀌는가?’ 이것을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허락한 적이 없습니다. ‘네가 지금 믿음이 없으니까 믿음 있어야지.’ 이걸 하나님께서 시도한 적도 없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신 적도 없어요.

하나님께서 하신 것은 예수님의 본성이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튀어나오게 하신 겁니다. 예수님의 본성이 뭐냐? ‘예수님의 의’에요. 예수님의 의입니다. 그 예수님의 의에 아브라함의 의가 같이 섞여 들어갈까요? 턱도 없는 소리죠. 이것은 용납이 안 됩니다.

‘나는 하나님의 복의 근원이다. 내가 바르게 살아야지. 믿음대로 살아야지.’ 이게 예수님의 의에 합류가 될까요? 하나님께서 차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자기 본성을 감출래야 감출 수 없게 만드는 상황으로 계속 몰아세우는 거예요. 감출 수 없게 만드는 상황으로, 끊임없이.

그렇게 되면 그 아브라함이 느끼는 것은 간단합니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아브라함이 지식으로서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죄인이야.’ 이거잖아요. 앞에 뭐가 붙느냐 하면, 나는 ‘진짜루!’. ‘진짜’로 모자라면 앞에 하나 더 붙입시다, ‘정말’. ‘정말, 진짜로 아무것도 아니다. 암에 걸리든 안 그러면 내일 죽든 내가 거기에 대해서 신경 쓸 권리나 자격이 없을 정도로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이 경로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고 하나님의 의가 부각되는 유일한 경로에요. 이걸 아브라함이 먼저 보여준 거예요. 

'만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6/21-아가서의 핵심  (0) 2026.06.21
6/20-시145:18  (0) 2026.06.20
모든 일에 감사  (0) 2026.06.19
고넬료  (0) 2026.06.19
언약에서 언약으로  (0) 2026.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