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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언약을 가리는 자가 누굽니까?

아빠와 함께 2026. 3. 12. 21:34

이스라엘에는 왕 자체, 지도자 자체가 필요가 없다. 왜? ‘이스라엘은 지도자가 필요 없다.’

이거는 예수님도 그런 이야기했는데 마태복음 23장 볼까요?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8~10절)

너희 지도자는 누굽니까? 그리스도. 또 희생이에요. 희생되지 아니한 자는 지도자가 없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나는 십자가를 진 적이 없다. 고린도전서 1장에서 이야기했지요. 그렇다면 여기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라는 것은 이 땅에서는 없습니다. 누가 지목해서 보여줬습니까? 하늘의 아버지가 독생자 예수님을 보여준 거예요.

그래서 새 언약의 특징은 어느 누구도 그 살과 피에 그 사람의 행위가 섞이면 안 된다. 이 새 언약으로 구원받는 거예요. 나의 어떤 순교도 주의 피에 섞이면 돼요, 안 돼요? 순교하는 것도 죄입니다. 그러니 죄 안 지을 수 없어요. 안 지을 수 없는 죄 중에 하나가 순교하는 거예요. 분명히 스데반 집사는 순교했지요. 스데반 집사가 순교해서 구원받았습니까? 예수님의 피 때문에 구원받은 거죠.

그러면 예수님의 이 언약을 가리는 자가 누굽니까? 최종적으로 언약을 가리는 자가 나의 존재라는 사실, 육체를 가진 내가 죽을 때까지 숨 쉴 때까지 계속해서 가리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율법을 성경을 준 것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더욱 더 죄 되게 하기 위해서 주신 겁니다. 가리면 말씀으로 죽어라, 해서 새롭게 감사가 또 나오고. 감사해서 나는 성도다, 해서 까불다가 또 죄 지어서 그다음에 또 그것 뜯어내고, 너는 네가 주체가 아니고 주님이 주체라는 걸 또 알려주고. 그런 상황을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고 주께서 일부러 맞닥뜨리게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