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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붙여놓은 벽보를 보셔야 돼요. ‘죄인구함’

아빠와 함께 2026. 3. 12. 21:22

이건 하나의 시간관인데, 그래서 시편 67편이 그만큼 중요한데, 고래라 칩시다. 시간은 이게 과거고 현재고 미래라면 인간이 아는 시간은 과거를 거쳐서 현재를 거쳐서 미래로 갑니다. 인간의 한계점이에요. 사실은 시간을 거꾸로 생각한 건데 인간은 이걸 모르고 인간은 변화된 것, 변화 중, 변화될 것 이걸 합쳐서 시간이라 해요. 변화된 것을 과거라 하고, 변화 중인 것을 현재라 하고, 앞으로 이렇게 될 것이라는 소망, 이걸 미래라 합니다. 합쳐서 시간이라 하거든요.

주님께서 계시를 어떻게 하느냐? 인간은 이렇게 해요. 내가 이렇게 믿음 좋아서 감람산에서 은혜 받고 했으니까 이제는 술 끊고 담배 끊고 욕설도 끊고 신앙생활 잘하고 봉사해야지. 그럼 뭡니까? 뭐는 점선이에요? 그렇게 해서 잘하게 되면 점선, 미래는 아직 어떻게 됩니까? 손에 안 잡히지요. 미지의 것은 남아있지요. 내가 손댈 수 없는 영역으로 남아있지요.

그러니까 이게 뭡니까? 걱정과 두려움이 여전히 남아있으니까 이게 뭐예요? 이게 무슨 믿음이에요. 가능성이지 possibility지 이건 믿음이 아니에요. 그럼 어떻게 하느냐? 하나님의 계시는 시간이 이리 가는 게 아니고(고래 꼬리에서 머리로), 머리부터 뚫고 다 이루었다, 다 이루었다, 다 이루었다. 결국 주님의 말씀은 ‘다 이루었다’로 ‘잘 돼야 될 텐데’를 매일같이 패는 작업이 신앙생활의 은혜입니다.

‘잘 해야 될 텐데’를 내가 다 했어, 안 했어? 또 얻어맞는 그것의 반복이 우리 일상생활이에요. 시편 67편은 예수님에 의해서 다 이뤄졌다고요. 그 다 이루심이 우리에게 쳐들어오면서 우리를 개 패듯이 패는 이유가 여러 가지가 돼요. 뭐 믿음이 없다는 등 여러 가지 말씀이 있지만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두 마음을 품었구나, 네가 요동치는 물결과 같다, 뭐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시지만 그걸 한 가지로 축약하면 이렇습니다.

아까 로마서 5장 20절, 율법을 주신 것은 우리를 없는 죄도 더하게 함이라. 그 율법에 복음으로 대체하고 말씀으로 대체를 해요. 율법에 말씀을 줘버리면 우리로 하여금 항상 미래에 대한 걱정이 있는 이 틈 사이에서 뭐가 나오게 하느냐 하면 감사가 나오는데, 전에 있는 감사가 아니고 어떤 감사냐? 새롭게 느껴지는 감사.

그래서 결론은 인간은 새로움 없이는 생활이 지옥 같다. 새로움이에요, 새로움. 새로운 감사가 없으면 지옥 같아요. 그 새로움은 얻어터져야 나와요. 그냥 나오지 않고 얻어터져야 쓸데없이 걱정하는 것, 베드로도 얼마나 걱정했다고요. 용서하라 하니까 예수님 일곱 번하면 됩니까? 일곱 번에 일곱 번에 일곱 번이라도, 사백구십 번 해라. 그럼 사백구십 번 하면 사백구십일 번째 가서 그럼 됐습니까? 사백구십칠을 해라, 그렇게 할 거예요.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주께서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9장에 주여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얻겠습니까? 인간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신다. 그냥 하신다고 끝나면 안 되지요. 증거가 있어야지, 뭐로써? 피의 희생으로 끝나는. 희생이에요, 희생. 훌륭함이 아니고 착함이 아니고 희생이라니까요.

희생은 뭐냐? 희생돼야 될 자가 있고 희생하실 분이 따로 있잖아요. 그래서 주님은 의인을 부르는 게 아니고 죄인을 모집하는 거예요. 사실은 여러분들의 골목골목에서 그걸 보셔야 돼요. 주께서 붙여놓은 벽보를 보셔야 돼요. ‘죄인구함’ 이게 골목마다 다 붙어있어요. 나 여기 있습니다, 하면 되는데 죄인구함. ‘미싱사 3명 모집’ 이것 말고 ‘죄인구함’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