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회자료

원주특강-출애굽기2

아빠와 함께 2026. 2. 7. 22:17

26 겨울 원주특강-출애굽기 요약b(260206, 이근호 목사)

제목 : 지우개(출애굽기 13:19)

‘모세가 요셉의 해골을 취하였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케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필연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나의 해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었더라’(출애굽기 13:19)

두 번째 시간 하겠습니다. 성막에 있어서의 아까 세 번째, 세 번째는 지워져버렸어요. 3, 다시 해야 되겠네요. 이 세 번째는 이겁니다. 성막의 운명에 참여, 참여를 요구한다. 요구한다. 성막의 운명에 참여를 요구한다. 이게 쉽게 하면 이겁니다. 외부 환경이 내부 환경으로 개입된다 이거예요. 성막 자체가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이잖아요. 만남인데 전 천국의 백성들이 전부 다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 나라가 되려면 아까 분명히 얘기했지만 제사장들만 성막 안에서 실제적으로 활동을 할 수 있죠.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 위상이 제사장으로 바뀌려면 제사장과 하나님의 만남이 성사되는 그 인간 입장에서 외부 환경이 각자의 내부 환경으로 개입되고 삽입되는 거예요.

삽입될 때의 그 방식은 이 외부 환경은 성막에 뭐가 피어나느냐 하면 구름 기둥과 불기둥이 올라가는 거예요. 옛날 그 기차 있잖아요. 열차 말고 기차, 옛날 기차. 출발할 때 뭐 합니까? 뿌뿌 이러죠. 이게 뭡니까? 타세요. 이제 곧 떠납니다 하잖아요. 성막에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피어오른다 이 말이에요. 이 불기둥 구름 기둥으로 이거는 이제 떠나는 거예요. 가자. 가는데 찾으러 가자. 어디로 가는지는 인간은 모르죠. 그건 불기둥, 구름 기둥만 알지 하나님만 아시지 그건 모르는 거예요. 그건 모르는데 쭉 줄 달린 청소기처럼 잡아당기면서 결정적 사건이 일어나는 그 사건 특이성을 갖고 있는 그 사건의 지점으로 데려가는 거예요. 몰고 가는 거예요. 몰고. 몰고 갈 때 백성들의 그 의도는 뭐냐? 의도는 오직 생존이에요. 생존. 오직 생존인데 생존, 어떻게 밥 먹고 사는데 이 광야에서 밥 먹고 사는 게 이제 최우선 문제 아닙니까? 생존인데 이상하게 이 생존의 문제보다 더 초과되는 게 있다는 거예요. 플러스, 초과. 초과 되는 거.

그래서 이 백성들에게 성막이 또는 율법이 가르치는 것은 일상적인 경로를 일상적인 초과하는, 초과하는데 충실하다. 일상적인 경로를 초과하는 게 충실하다. 이게 진리다. 이게 진리요, 이게 길이요, 이게 생명이라. 그렇고 그런 거 살아왔던 그러나 평범한 내가 기억하고 있는 내 몸이 기억하고 있는 습관적으로 이미 내 몸의 패턴화 되는 것을 벗어나서 경로를 초과하는데 니가 그냥 한번 경험해 볼까가 아니라 다시 돌아와볼까가 아니라 돌아오지 말고 거기에 충실하라. 그게 바로 길과 진리와 생명이죠. 이거는 늘 초과예요.

초과인데 이걸 초과라고 점잖게 이야기했는데 다른 말로 하면 미쳤다. 미쳤다. 이 초과를 반대하는 게 뭐냐? 초과의 반대말이 뭐냐 하면 초월입니다. 초월. 초월이라고 하는 것은 특히 초월은 특정이 종교적인 초월이 대표적인 건데요. 내가 그대로 내가 유지되면서 나는 지금의 나가 아닌 다른 나로 다른 세계를 맛보는 게 초월이라면 이 초과는 나를 분쇄시켜버리는 거죠. 내가 뭘 했는지 어떤 짓을 했는지를 생각이 안 나게 만드는 그것이 초과가 되는 거예요. 비슷한 것 같지만 완전히 그 반대가 되는 거예요. 반대가 뭐냐? 아까 첫째 시간 마지막에 했지만 이 초과된 상태에서의 나는 하나님의 원수이기 때문에 그래요. 원수.

그런데 이 초월은 뭐냐 하면은 내가 어떤 특정 분이 계시고 그 특정 분 앞에 내가 섭섭하지 않게 했다는 거예요. 신이 있다면 나는 신을 닮아 가면 그만이지 신의 대적자로 내가 드러날 이유는 없다는 거예요. 근데 초과는 신의 대적자가 나예요. 하나님의 원수가 나라고요. 비로소 우리는 소환 당합니다. 어디에 소환 당하느냐? 선악과 따먹던 그 현장으로 날마다 소환당하는 사건을 당하게 되죠. “선악과 따먹은 것이 누구라 생각하느냐?” “우리 조상” “너 조상 아니야. 너야.”라고 지적할 수 있시는 거예요. 현재 모든 사건은 너가 그 선악과 현장에서 한 발자국도, 따먹는 선악과나무가 훼손된 현장에서 너는 떠난 적이 없다는 것을 계속 일깨워주는 것이 바로 일관된 유지되는 사건의 지속성이에요.

혹시 여러분 이거 이 본문 아는 사람 이야기해 보세요. 갈라서 1장 3절. 1장 3절 아시죠? 오 목사님 정도면 이거 알지만 지금 아 이거 참아야 돼. 내가 나서면 안 돼. 지금 그러고 있는데 내가 하겠습니다. 누가 십자가가 눈앞에 보이거늘 누가 너를 꿰느냐? 이거 미친 거 아니에요. 십자가 사건, 인간의 사건은 사건이라고 하는 건 다 지나간 일이 되잖아요. 그런데 사도 바울은 십자가 사건이 눈앞에 보인다는 거예요. 어디에? 몽골 사람인가? 왜 시력이 2.0인가? 왜 어디 보이는데? 안 보여. 보이는데, 십자가. 십자가가 보인다. 안 보인다. 보인다. 이 말이 아니고 십자가 사건이에요. 사건. 십자가 사건이 눈앞에 보인다는 말은 거기에 휘말리고 휘둘렸다는 거예요. 내가 지금. 내가. 지금 나는 예수 믿고 초월적인 존재가 되는 게 아니고 그건 신이 되는 게 아니고 마귀가 이걸 종교를 통해서 계속 이걸 시키지만 나는 내가 원치 않은 사건, 사건은 예상 못합니다. 예측 못한 그걸로 인하여 나는 나로부터 초과되었다. 초과되면 뭐냐? 나는, 나는 뭐다? 나는 죄인의 뭐다? 괴수다. 이게 초과예요. 나는 죄인의 괴수다. 신났어. 신났어.

세상에 그동안은 내가 나를 발견하고 내가 나를 탐색하고 내가 누군지 연구하는 데 몰두했다면 내가 미처 연구해 내어놓은 그 업적, 내가 누군지를 몰랐던 내 진솔한 내 모습이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십자가 사건 옆에 강도 있잖아요. 강도처럼 내가 바로 하나님 보시기에 저주받을 죄인입니다라는 것을 고백한 게 초과예요. 이게 초과입니다. 신이 안 날 수가 없죠. 진짜 신바람 이박사. 진짜 신날 수밖에 없는 내용입니다. 이렇게 되게 되면 성경 해석이 출애굽기 해석이 이제 슬슬 다 풀리게 되는 겁니다. 이 초과에 이르면.

어떻게 해석되는지를 지금부터 성경 출애굽기를 통해서 한번 보겠습니다. 출애굽기 11장, 잠깐만요. 또 막상 찾을라 카니까 출애굽기 1장부터 먼저 보겠습니다. 11장. 죄송합니다. 13장. 줄기 13장 19절요. 누가 한번 읽어보세요. 13장 19절 시간 갑니다. 빨리 읽어보세요. ‘모세가 요셉의 해골을 취하였으니’ 됐습니다. 요셉은 이미 죽은 사람이에요. 죽은 사람은 그냥 무덤에 그냥 곱게 모셔야 되는 게 조상에 대한 예우인데 그게 아니고 해골을 그 무덤을 파내고 해골을 들고 움직입니다. 그러면 이 출애굽 행진의 주체가 누굽니까? 출애굽 주체가 누구냐 하는 거예요. 이 출애굽에서 광야로 움직이고 약속의 땅에 가는 주체가 누구냐? 객관식으로. 산 사람입니까?
죽은 사람입니까? 죽은 사람이죠. 죽은 사람입니다. 이것을 어려운 말로 뭐라 하느냐 하면 이걸 가지고 탈 주체라 해요. 탈주체.

탈 주체가 되려면 인간에게 형식이 주어지고 이게 형식이 주어지고 그 형식으로부터 벗어나는 거, 이게 뭐냐 하면은 구원이에요. 구원. 이게 구원입니다. 인간에게 이 말은 풀이하면 인간에게는 나 지금 엄연히 살아 있음, 살아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살아있는 자가 나를 규정하기 위해서 형식들을 도입해요. 남들 보기에 나 어떻게 보일까? 형식들을 도입하는데 형식들을 도입한 중에서 뭐냐 하면 하나님의 율법이 나오고 예언 나오고 말씀을 주거든요. 그러니까 인간은 말씀을 딱 받을 때 ‘내가 나는 살아있는 주체다’라는 것을 전제로 해서 이 말씀 지켜서 훌륭한 사람 돼야지, 하나님을 기쁘게 해서 나중에 하늘나라에 천국에 내가 복귀해야지, 그런 마음으로 받는다 이 말이죠. 하나님께서 선악과 따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했다 이 말이죠. 했잖아요. 그래 했잖아요. 주께서 형식을 줬잖아요.

형식을 주시니까 하나님의 뜻을 알았으면 우리는 이제는 선악과를 안 따먹어야지 하는 그걸 형식을 통해서 형식으로 받아서 내 형식으로 굳어지게 하는 작업을 내가 하는 거예요. 이 주체가 하는 거예요. 이 주체가. 그러면 탈 주체가 안 돼요. 주체 벗어나지 못하고 이것저것 이것저것들 모으고 이거 하고 기도하고 전도하고 헌금하고 선교하고 이것저것 해서, 했던 그 주체 그 주체는 무슨 주체? 오늘 죽으면 어디 가는 주체? 천국 가는 주체라고 자부하고 있는 거예요. 그게 하나님의 원수가 된다는 거예요. 원수가.

광야를 통과하면서 내내 모세에게 불평했던 게 그거예요.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과 동행한다고 말을 하면서 왜 살기가 이렇게 빡빡하냐 하는 거예요. 농사를 짓겠다는데 농사지을 땅도 없고 물도 없고 기본적으로 물은 줘야지 그런 시위를 해도 데모를 해도 물 한 병씩 나눠주는데. 물 한 병씩 나눠주잖아요. 물도 안 주고 물론 차비까지 주면서 광화문에 모이죠. 근데 물 주고 차비 주고 다 주는데 제일제당에서 나는 그 밥은 무슨 밥입니까? 햇밥. 햇밥에다가 반찬 도시락까지 주면서 데모하잖아요. 그런데 그래 힘 나서 누구 죽어라 죽여라 이렇게 되는데. 이건 뭐 약속에 가는 그 꼴 그 모습이 세상에 왜 의도적으로 우리를 제거하려고 그렇게 난리냐 이 말이죠. 힘 빼고. 그것은 우리가 살아서 약속의 땅에 가겠다 하기 전에 니가 니 쪽에서 형식을 빼야 돼요. 형식을 제거해야 된다고요. 이 주체에서.

근데 주체에서 형식 빼면 주체가 와르르 없어져요. 모든 주체는 나는 형식이라는 것을 끄집어내야 문장이 완성돼요. 나는 누구입니다 할 때 그 괄호에 형식적인 것이 도입돼야 돼요. 형식이 없으면 나를 표현할 길이 없다 이 말이죠. 그 언어, 그 언어 형식에서 벗어나야 돼요. 탈 주체가 돼야 됩니다. 이게 초과예요. 초과에 대해서 주님께서 어처구니없는 발언을 했어요. 출애굽기 19장에 보면 출애굽기 19장 4절 그거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이제 묻는 것도 이제 시간이 빡빡하다.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독수리 날개가 나와요. 독수리 날개라고 하는 것은 광야하고 전혀 다른 환경처럼 느껴집니다. 왜? 독수리는 공중을 날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결속해서 다수를 단일 체계에 묶어서 데려가는 거예요. 그 백성들은 애굽에서 나왔다는 것만 생각해요. 나왔다는 생각해 가지고 애굽보다 더 살기 좋은 어떤 나라가 있는데 그게 아마 천국일 거야 라고 혼자서 착각들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 과정이 너무 힘드니까 조금만 어려우면 어려움을 이기면 우리는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이 주어진다고 생각한 거예요. 뭐가 빠졌어요? 그 애굽에 나왔던 그 주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게 문제예요. 내가 안 달라졌어요. 바뀌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은 나는 영원히 바뀌어지지 않습니다. 날 바뀌라고 주신 말씀이 아니에요.

그러면 뭐냐? 이제 출애굽기 1장을 한번 보겠습니다. 1장 8절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나타나서, 요셉을 알지 못했다. 왜 자꾸 과거 인물을 자꾸 거기서 거론을 하는지 출애굽에서. 출애굽 사건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에 의해서 만들어진 프로젝트예요. 여러분들이 이거 긴 설명 짜증나고 잠 온다면 한꺼번에 단출하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안 받습니다. 안 받고 하나님은 하나님을 받아요. 여기서 인간이 끼어들면 안 됩니다. 어디서 꼽사리 끼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해서 하나님 것만 받아요.

하나님의 것만. 하나님의 것만 할 때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어야 받는다는 그 규정이 바로 언약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받아요. 아브라함을 안 받아요. 이삭을 안 받는다고요. 야곱을 안 받아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받아요. 그 아브라함과 이삭의 야곱의 하나님이 함축해버리면 누구냐 하면 예수님이 돼요. 왜? 모든 언약이 거기에 다 집약되기 때문에 그래요. 집약되기 때문에. 이게 좋게 말하면 부메랑. 휙 던지면 휙휙 날아 돌아오지요. 부메랑. 이걸 촌스럽게 표현하면 짜고 치는 고수톱. 혼자서 두는 바둑이에요. 신진희 씨 거기 두면 안 되지. 여기 둬야 되지. 혼자서 두는 바둑이에요. 혼자서 두는 바둑. 인공지능도 없어요. 혼자서 두는 바둑이에요. 짜고 치는 고스톱이에요.

하나님이 하나님을 받는 게 이게 언약의 완성입니다. 여기에 누가 필요한가? 악이 필요한 거예요. 왜냐하면 선악과이기 때문에. 선악과를 구성하려면 조건이 뭐냐? 선만 있으면 안 돼요. 악이 결합이 돼야 돼요. 그리고 이 악으로 인하여 정녕 죽으리라가 되는 겁니다. 악은 죽음과 관련돼 있습니다. 선은 영생과 관련돼 있기 때문에 생명나무고요. 이 선악에서 악이 요구가 되는 거예요. 옛날에 유명한 신학자가 이런 잘못된 생각을 했어요. 악은 뭐냐? 선의 결핍이라고 했습니다. 그걸 받아서 모든 철학자들이 그렇게 주장하는데 악은 선의 결핍이 아닙니다. 악은 악 나름대로의 주체를 갖고 있습니다. 이걸 몰랐던 거예요.

악 나름대로의 주체, 뭐겠어요? 악마죠. 악마. 악마입니다. 악마는 초과가 아닙니다. 악마가 노리는 것은 초월이에요. 니가 이걸 따먹는 날에는 어떻게 된다? 니가 신처럼 된다. 그래서 모든 기독교든 어떤 종교든 간에 결국 종교의 내용의 마지막은 뭡니까? 나는 신이다. 현대의 최고의 각광받는 제일 각광받는 종교, 현대 종교의 최고의 정점에 있는 종교가 뭐냐 하면 과학이에요. 이 과학이 만들어낸 신이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생성형 AI예요. 앞으로 요새 노인네들 좋아요. 개 키울 필요 없습니다. 뭐냐 하면 AI 하고 놀면 돼요. 하루 종일 놀아도 이거는 파업도 안 하고 좋아요. 늘 잠도 없어. 깨워서 이야기해도 이야기해 줘요. 생성형 AI. 다른 말로 하면 지니야 하는 지니야. 외로울 때 뭘 하면 되지? 취미로 뽑아드릴까요? 대화로 뭐 어떻게 해드릴까요? 안 그럼 뭐로 답변해야 될까요? 이런 식으로. 그냥 대화로 해라. 어느 사상으로 이야기해 드릴까요? 쭉 지가 다 알아서 다 해줘요.

인간은 초월에서는 인간은 오로지 인간하고 놀면 행복하다. 인간이 왜 AI에 의하면 인간은 왜 불행하냐? 본인이 신이 아니기 때문에 불행하죠. 그러면 AI 보고 너는 행복하냐? 자기는 행복하죠. 왜? 나는 나니까. 그걸 실질적으로 내세우니까. 이게 과학입니다. 과학의 허점이 있어요. 과학의 허점은 자연 세계인데 이게 뭐냐? 있는 것은 계속 쭉 있다, 쭉 있다. 현재 사는 것은 쭉 산다. 뭐로? 파동으로. 입자가 뭐냐 하면 이걸 파동화 되면 파동은 이렇게 모든 파동은 양전자 양자나 그런 입자의 물결 속에 다시 환원되면 그게 바로 죽는 거고 언젠가 다시 그 뭉쳐지면 나는 지금의 나는 아니지만 다른 나로 다시 태어 다른 나로 만들어진다. 이게 지금 과학에서 말하는 궁극적인 과학의 진리입니다. 그러니까 죽음에 대해서 무서워 떨면서 교회 좀 나가지 마라 그런 뜻이죠. 종교 믿을 필요 없다 그런 뜻입니다. 왜 종교를 가져야 하느냐? 아직 과학의 이 깊이의 내용을 아직도 무지하고 모르기 때문에 종교를 원하고 있는데 과학만 알면 종교보다 훨씬 이게 과학이 더 종교적이다 하는 것은 안다 이런 식으로 나가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정리해 봅시다. 하나님께서는 뭐냐 하면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거든요. 그러면 하나님이 누구를 받는가? 하나님의 이름을 받아요. 이름. 하나님은 이름이 없어요. 왜냐하면 기능으로만 나타나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가 없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이름은 주체인데 인간 자체가 와야 될 주체가 감히 하나님을 하나의 주체로 대상화시킨다는 것은 인간에게 허락된 적 없어요. 하나님에게 있어서의 이름은 뭐냐? 이 지상에서 하나님이 어떤 활동을 하느냐와 관련된 이름, 기능적 이름만 필요해요.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라고 물으면 하나님은 누구누구의 아버지가 되죠? 누구누구의 아버지. 누구의 아버지라면 이 괄호 안에 누가 들어가겠어요? 누구의 아버지니까 이게 쉬운데 누구의 아버지니까 괄호 안에 뭐가 들어가겠습니까? 아들 되겠죠. 아들. 아들 되겠습니다. 이 아들에 이스라엘 백성을 여기다 집어넣는 거예요. 합류시키는 거예요. 그래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가 돼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는 것이 아버지의 뜻의 최종 목표예요. 최종 목표입니다.

출애굽기 13장 12절, 이건 누가 한번 읽어봐야 돼요. 중요해요. ‘너는 무릇 초태생과 네게 있는 생축의 초태생을 다 구별하여 여호와께 돌리라 수컷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그다음에 여호와의 그다음에 뭡니까? 그다음에 무슨 컷? 수컷은, 수컷은 여호와의 것이라. 수컷은 여호와의 것이다. 두 가지 내용이 나오죠. 하나는 초태생 나오고 그다음에 수컷. 암컷은 받는다? 안 받는다? 안 받는다. 수컷을 받겠다. 어디서? 이 땅에서. 이 땅에서 그렇습니다. 이 땅에서는 그래요. 지상에서는 지상에 하나님의 이름이 활동하는 이 지상.

그러면 여러분들은 이제 생각은 이렇게 여러분 생각은 깊은 상황은 이렇게 할 거예요. 하나님이 활동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뭘로 보느냐 하면은 하나님의 이름이니까 광야 때 이름, 이름이니까 뭐냐 하면 실체가 없잖아요. 실체는 없고 이름 기능만 있잖아요. 이 하나님의 이름의 기능을 뒤집어씌울, 뒤집어씌울 대상자가 바로 이스라엘 되는 겁니다. 그래야 아브라함을 안 받고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까 아브라함이 필요했던 이유가 그거고 이삭이 필요했던 이유가 그거고 그다음에 야곱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야곱의 하나님을 받기 때문에 야곱에게 행했던 하나님의 이름, 주의 이름, 야곱에게 행했던 예수의 기능을 아버지가 받기 때문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채택된 거예요.

그러면 야곱의 이름이 뭐로 바뀝니까? 이스라엘로 바뀌죠. 야곱이었던 자가 이스라엘로 바뀔 때 뭐 중간에 뭐가 개입되겠어요? 야곱은 야곱이에요. 이스라엘로 바뀔 리가 없습니다. 이스라엘로 바뀌는 건 사건적이에요. 야곱이 이스라엘 되려고 애쓸 수도 없습니다. 여기에 뭐가 개입되었습니까? 밤중에. 하나님의 이름 천사가 개입됐잖아요. 주님이 개입해서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꿨잖아요. 그러면 주께서는 뭐냐? 바뀐 이름 가지고 야곱을 지우개로 지우는 작업을 나서는 거예요. 그게 출애굽이에요.

출애굽 해놓고 그다음부터는 뭐냐? 야곱 같은 이스라엘을 제거해서 이스라엘 같은 이스라엘을 만들어내는 작업에 하나님의 이름이 사건 사건으로 계속해서 산발적으로 투입되는 겁니다. 그게 바로 출애굽기고 민수기고 그런 거예요. 한 가지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출애굽기 17장 8절에 보면 전쟁이 하나 나와요. 전쟁하는 이유는 약속의 땅은 전쟁 속에서만 찾기 때문에 전쟁 없는 약속의 땅은 도달하지 않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전쟁을 통해서 내가 하나님 앞에 전쟁에 얻어맞아야 될 대상인 것을, 구원시키는 그 백성이 그걸 자각해야 되고 그걸 발견해야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막을 이끄는 그 성막을 움직인다는 말은 안에 지성소의 법궤가 움직이는 거예요. 민수기에 보면 법궤가 움직이면서 뭘 유발하느냐? 전쟁을 초과적인 전쟁을 일으켜요. 전쟁을 일으킬 때 전쟁은 뭐냐 하면 전쟁은 무슨 전쟁이냐 하면 초과와 초월의 전쟁이죠. 나를 잃지 않고 나의 기존의 영광을 유지하려는 전쟁은 초월인데 이거는 우상, 블레셋 우상 섬기는 자. 초과는 이거는 주의 이름으로 벌리는 전쟁, 전쟁이에요. 이 초월 블레셋 같은 경우에 그들 전쟁 앞에 뭘 내세웁니까? 그들의 신을 앞장세우죠. 신이 이긴다. 그런데 하나님의 전쟁 초과 전쟁은 아말렉 전쟁에서 드러나요. 아말렉 전쟁은 출애굽기 아까 17장 8절 했습니까? 17장 8절에 보면 전쟁할 때 어떻게 하냐 하면 이중으로 전쟁해요.

옆에 땅에 여호수아가 칼 들고서 여호수아가 칼 들고 아말렉을 맞이해서 싸웁니다. 그런데 이 산 위에 누가 올라가느냐 하면 모세가 올라가요. 모세가 올라가는데 여기 모세 보조 훌과 그다음에 여기 아론과 훌, 아론과 훌이 옆에 좌우로 배치하면서 모세를 받쳐줍니다. 그런데 이게 전쟁인데요. 전쟁이 왜 아래 여호수아 칼 들고 설치는 전쟁을 그냥 관망만 하면 되지 왜 위쪽에 전쟁이 따로 전쟁이 왜 이중적이냐? 아랫 전쟁하고 윗 전쟁의 차이가 뭐냐? 차이가 뭐냐 하면은 이 전쟁의 특징은 어떤 주체도 하나님의 전쟁에 개입하지 못한다. 어떤 주체도 하나님에 개입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너희들은 심판 받아야 될 대상이기 때문에 전쟁은 일방적으로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이중적으로 해놓고 이쪽은 칼인데 모세는 지팡이 들고 있습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높이 들게 되면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이기고 모세가 아이고 힘 빠져라 하고 팔을 내리면 전쟁에 졌다 이 말이에요. 그러면 모세의 기능은 하나의 전근기 역할 바로 밑에 어떤 전근기 역할을 해요. 모세가 팔을 든다는 말은 모세 내가 전쟁을 승리를 좌우한다는 식으로 나를 보지 말라는 거예요. 이 전쟁에서 모세 나를 좀 빼고 생각해라 그런 뜻입니다. 아말렉이 오는 것도 주께서 그렇게 부여해서 주는 거예요. 그래서 이 전쟁에서 모세를 포함해서 어떤 이스라엘도 이 전쟁에 할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승리하고 난 뒤에 뭐라고 했냐 하면은 승리하고 난 뒤에 15절에 모세가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해요.

여호와 닛시라는 것은 여호와의 깃발이죠. 절대로 모세 깃발은 아니죠. 모세 깃발을 아니거든요. 여호와 깃발이에요. 여호와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겁니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은 주체로서 빠져 있어요. 그러면 이번에 큰 공로를 세운 사람 누굽니까? 여호수아가 아니고 누굽니까? 모세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면 모세가 아말렉 전쟁을 의도했습니까? 아니잖아요. 그걸 인간들은 모르는 거예요. 그걸 제가 지난 주일날 그런 소리 했죠. 병 낫는 것을 감사하지 말고 병들었던 것부터 감사하면 안 되느냐? 꼭 병 나았을 때 감사하지 말고 이 병든 것도 병들고 싶어서 병 든 사람 누가 있습니까? 병 누가 병들게 했어요? 주께서 병들게 했잖아요. 그러면 병들었다 그다음에 여기 병 걸렸다. 인간의 요소는 뭡니까? 병 낫기를 원한다. 낫기를 원하죠.

그런데 주께서는 병들었다 낫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고 주께서는 뭐냐 하면은 탈주체를 원해요. 병들게 하시는 분이나 낫게 하시는 분이나 나는 아닙니다 라는 고백이 나오기를 원해서 병 든 거예요. 그 병들게 하신 거예요. 그러면 이래 이야기하면 또 어떤 사람은 또 이래 이야기해요. 그럼 목사님 병 안 들면 그럼 구원은 생전 안 받겠네요. 이래 하거든요. 인간은 생기기 전부터 이미 병들었어요. 출생하기 전 나시기 전부터 이미 병들었어요. 살아가면서 한 발자국 하면 유치원에 가고 뭐 어떻게 하고 전학 가고 이 모든 것이 병들음의 그림자입니다. 병 그림자. 그걸 고상하게 말합시다. 주님의 활동의 그림자. 주님의 활동의 그림자가 우리를 이미 일생을 우리가 덮고 있습니다. 이걸 이스라엘이 간파했었어야 돼요.

이게 방금 이야기한 것이 바로 이게 초과입니다. 그리고 이거는 이제 출애굽기에는 안 나오지만 민수기에서 나오는데 갈렙과 여호수아가 12 정탐꾼에 포함이 돼 있어요. 정탐꾼이 몇 명이냐? 12명이죠. 12명인데 12명이 둘 다 시력 1.5 이상이 된다고 합시다. 그러면 12명의 눈이 시력이 있지만 카메라가 있다고 하고 그 카메라를 가지고 그 가나안 땅에 그 장대한 아주 덩치가 큰 아말렉 족속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갔어요. 이 이야기도 사실은 좀 해야 되는데 후딱 하면 이렇습니다. 람세스에 살았던 이 사람들이 숙곳에까지 와 가지고 길이 이쪽 길로 가지 않고 남쪽 길로 가요. 남쪽 길로 간다고. 신광야 이건 바란 광야. 시나이 사막, 광야 시내산 여기 있거든요. 이렇게 해서 이렇게 올라가서 가는데 이게 200km 돼요. 약속의 땅까지. 여기에 모압 암몬 그다음에 여기 에돔 암몬 이래 있고 여기에 뭐가 있냐면 아말렉이 있다고요. 아말렉 거인들이에요.

그들이 시내산에서 1년 동안 있으면서 뭘 만드느냐 하면은 회막을 만들어요. 회막을 만들고 시내산에 있은 지 1년 만에 회막을 완성을 해요. 그게 이제 출애굽기 40장 7절에 보면 7절인가 9절에 보면 나와요. 그날 2년 전에 만들었어요.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회막 만들면 임무 끝났습니다. 할 거 없어요. 왜냐하면 이 지리적이고 지형적인 삶은 의미 없기 때문에 이 땅에 살아봤자 나중에 나이 차면 어떻게 돼요? 늙어 죽잖아요. 이게 무슨 약속의 땅입니까? 약속의 땅 아니에요. 이게 늙어 죽는 이게 무슨 영생이겠습니까? 젖과 꿀이, 젖과 꿀 할래 천국 갈래 하면 어느 쪽 합니까? 꿀이야 뭐 시중에 2만 원만 주면 사는데 그게 뭐 중요하겠어요? 주님께서 성막을 만들고 회막 만들면 끝나는 문제예요.

이제는 그 성막 회막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 원래 이래 가서 이래 하게 되면 이게 얼마 안 걸려요. 200km니까 한 11일 내지 많이 해도 한 빨리 빡세게 하게 되면 이거 하여튼 몇 달 길어도 몇 달이면 갈 수 있는데 이렇게 아말렉을 딱 맞닥뜨리게 만들어요. 아말렉. 거인족이거든요. 거인족을 맞닥뜨려 가지고 그들은 말하기를 애굽으로 돌아가자는 거예요. 애굽으로. 이게 인간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빠꾸. 인간은 할 수 있는 게 인간의 자아는 기억이에요. 자기가 옛날에 경험한 것이 전부예요. 그게 자아의 전부라서 새로움은 없습니다. 인간에게는 새로움은 없어요. 새로움에 대한 사건이 터져야 발생되는 것이지, 새로움은 없어요.

과거의 기억에 묻혀 사는 게 인간입니다. 인간 속에 애굽이 있죠. 애굽에 묻혀 사는 거예요. 애굽에 묻혀 살아서 아말렉에 의해서 돌아가자는 거예요. 지금 12명 가운데서 갈렙과 여호수아가 이런 이야기해요. 나도 카메라가지고 찍었다. 다 찍고 그렇게 거인인 거 다 찍었고 인간적으로 그들 우리가 못 이기는 거 내가 다 안다. 아는데 들어갈 수 있다. 아는데. 이게 초과예요. 이게 초과입니다. 이 초과가 신약에 오면 뭐가 되겠어요? 이게 뭐가 되겠습니까? 믿음이 되겠죠. 초과는 우리 몫이 아니고 주체가 다른 주체의 몫이다. 다른 주체의 몫이다. 나는 못하지만 누구는 한다? 주님은, 주님은 한다 정도가 아니라 주님은 이미 다 해놨기 때문에 나를 압박한다. 탈주체 하라고. 니는 너 자신을 믿지 말라고 압박을 가한다. 이게 신약의 신앙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뭐냐 하면은 나는 못합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죄 짓는 거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아무도 없습니다. 물론 고게 신앙이 아니고 그 뒤에 있어요. 한번 적어볼게요. 나는 못한다. 나는 무능하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다. 이렇게 시작해서 뒤에 뭐가 있어요. 이게 나와야 돼요. 이게 뭐냐? 하하하. ㅎ ㅎ ㅎ 안 되거든 ㅋ ㅋ ㅋ 키득키득키득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할 줄 아는 게 없다. 출세 같은 소리 하는데, 행복? 내가 왜 행복해야 되는데? 무슨 말을. 나는 그런 자격도 없어. 해놓고 반드시 뭐가 나와야 돼요 하하하 키득키득. 이거는 이제 성령이 주어지는 거예요. 성령이 와서 주는 건데 이게 성령이 없으면 뭐냐 하면은 이게 뭐가 되느냐 하면 그게 돼요. 허무가 돼요. 허무. 나도 50년 교회 다녔다. 50년 다니고 해봤는데 아무 소용없더라. 아무 소용없더라.

교회에 보면 앞자리에 앉은 사람이 이 허무주의들이 주로 앞자리에 앉고 강단에 올라가서 설교하는 사람이 전부 허무주의들이에요. 허무주의들. 목사님 이번에 우리 교회 새로운 교인 5명 왔잖아요. 다음 주 서울로 이사 간답니다. 이제 교인 이제 목사님 가정밖에 안 남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그럼 목사가 어떻게 됩니까? ㅋ ㅋ ㅋ 주여. 드디어 저를 아예 보내시는군요. 요게 돼야 돼요. 하하하 키득키득 요게 돼야 돼요. 이게 돼야 돼요. 안 받겠다고 안 받겠다고 건강 진단 안 받겠다고 했는데 딱 보니까 전립선 암. 의사가 자기가 죄송스러운 것도 없는데 지가 병 걸린 것도 아닌데 조심스럽게 하기를 “이제는 마지막을 준비하는 게 좋겠습니다.” 우는 건 누가 우느냐 하면 의사가 울어요. 통보하는. 근데 웃는 것은 누구냐 하면 환자가 웃는 거예요. 이게 뭐다? 초과예요. 초과.

초과는 초월을 시도하는 인간이 감히 타넘을 수 없는 펜스, 장벽이에요. 장벽 그 장벽입니다. 여러분 이거는 어떤 노력을 해도 안 돼요. 이거는 소용없어요. 그런데 이런 말기 암을 하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죠. 인간은. 왜? 인간은 육이니까. 그다음에 이제 기도원에 가든지 이렇게 해가지고 이제 철야 하고 갑자기 새벽 기도 안 나오다가 하고 이렇게 애쓰면서 과거에 내 인생은 어떻게 살았는고, 과연 마이웨이는 어떻게 됐는가? 내가 마지막 커텐을 내리려 할 때 나는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았는가? 하면서 이렇게 정리하면서 하는 그 모든 게 뭐냐 하면은 끝까지 자기의 주체를 챙기려는 그런 일이죠. 그런 이야기입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이 이 주제가 이야기한 것이 뭐냐 하면 초과와 초월이죠. 이번 시간에는 율법에 대해서 해보겠습니다. 출애굽기 20장. 십계명. 모세가 여덟 번 왔다 갔다 했다는데 여덟 번 다 나오지는 않지만 첫 번째 이제 모세가 산에 갔다가 내려오면서 했는데 율법을 하면서 두 가지만 알면 돼요. 하나는 뭐냐? 전쟁이에요. 율법 가지고 전쟁을 하는 거예요. 이방인들은 특징이 뭐냐? 율법이 없어요. 율법은 내가 끄집어 낼 수 없는 부정성을 뽑아낸다. 내가 끄집어낼 수 없는 이 부정성을 뽑아내서 자체적으로 해소시키는 거예요. 해소시키는 것.

옛날에 월남전에서 훈련하면서 어떤 대위가 중대장이 수류탄을 못 던지는 병사가 던진 수류탄을 끄집어낸 사람, 이름 뭐죠? 그 사람. 강 재구 소령님. 이제 진급했는데 뽑아내서 수류탄의 부정성이죠. 적에게 터져야 될 그 부정성이 지금 우리 아군에게 터졌잖아요. 빨리 강재구가 뽑아내 가지고 자기 배 위에 깔고 앉아가지고 자기는 죽고 다른 사람 살렸잖아요. 그렇죠. 이게 뭐예요? 부정성 해소죠. 이 죄를 뽑아내 가지고 누구한테 가져옵니까? 주의 이름으로 가져옵니다. 어린 양에게, 어린 양에게 가져와요. 가져와서 자기가 배 깔고 그다 터트려버려요. 저주받는 거죠. 그러면 대신 죽으심은, 대신 죽으심은 인간의 주체에서 기대한 하나의 시나리오입니까? 아니면 일방적으로 주님께서 하신 일이 돼버렸어요? 주께서 하신 일이 돼버렸죠.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이 초과적인 것을 이야기하는 이유가 뭐냐 하면은 아까도 얘기했지만 갈라디아서 3장 십자가 사건은, 십자가 사건은 그다음이 중요합니다. 이미 일어났다는 거예요. 이미. 이미 있었다는 것은 이것이 바로 실제고, 실제고 현실이라는 거예요. 어에 이 아에 이 아예 실제고, 실제고 현실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거는 십자가 사건은 믿고 안 믿고를 전혀 따지지 않고 니가 믿으면 구원받고 안 믿으면 지옥 간다는 말이 아니고 믿고 안 믿고도 인정하지 않아요. 십자가 사건이 찾아가면 구원되고 안 찾아가면 지옥이에요. 왜냐하면 이미 일어난 사건의 지속성이기 때문에. 이 십자가 사건에 뭐가 들어 있는가? 대신 죽으심이 이미 일어났음. 너 대신 누가 너를 정죄하리요 누가 너를 송사하리요 하나님께서 너에게 이미 사건을 일으켰다면 사건을 일으킨 그 취지에 대해서 너에게 통보하지 않겠느냐? 그 통보를 가지고, 은사예요. 너에게 은사를 선물로 주지 않겠느냐? 이런 뜻이에요. 로마서 8장에서.

이미 일어난 사건이란 말이죠. 이미 일어난 사건이니까 누구하고 상관없습니까? 정답을 이야기해서 감사합니다. 정답을 이야기했어요. 나는 못 들었어요. 나랑 상관없어요. 나랑, 나와는 상관없는 현실이 나를 반긴다 이 말이잖아요. 나랑 상관없는 내가 어떤 짓을 했든 상관없는 현실이 나를 지금 하고 마중하고 기다리고 있다 이 말이죠. 믿든 안 믿든 상관없어요. 내가 믿어봤자 믿는 것도 치매 걸리면 끝나면 문제잖아요. 내가 언제 믿었는데 그러면 끝나는 문제예요. 믿고 안 믿고가 아니라 이미 끝난 상황이에요. 이미 끝난 상황이라고. 이미. 십자가가.

사도가 이걸 전한 거예요. 이미 십자가 죽으시고 부활했다. 이것을 우리에게 계속해서 적용시키는 거예요. 그러면 이게 적용시킬 때 어떻게 적용되는가? 우리의 부정성을 강제 조치를 해가지고 “잠시 검찰청에서 나왔습니다. 손대지 마시고, 손대지 마시고 가만 가만히 있어세요. 가만히 있으세요.” 365. 조세 뽑아내는 사람들 있잖아요. “국세청에서 나왔습니다. 하지 마시고 돈 없어서 세금 못 내신다고 했는데 한 번 디비 보겠습니다.” 다 디비가지고 명품 가방 다 나오잖아요. “가만히 있으세요. 가만히 있으세요. 우리가 뽑아내겠습니다.” 뽑아낼 때 동원되는 게 뭐라고요? 율법이에요. 율법. 율법이 온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니 왼 뺨을 때리거든 오른 뺨을 하라. 오른 뺨을 치거든 왼 뺨을 내놔라. 얼마나 고마운 이야기입니까? 우리는 오른 뺨을 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고발하죠. 경찰에 고발합니다. 그럴 때 고발해서 보상금 200만 원을 받아냈는데, 받아내고 오는 길에 갑자기 바람이 불어가지고 누가 읽던 성경책 찢어진 부분이 팔랑팔랑 세 바퀴 반 돌면서 얼굴을 들러붙는데, 그 대목이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대목 니가 오른 뺨 치고 왼 뺨 그 대목에 붙어 있다면 어떻습니까? 하하하. ㅋ ㅋ ㅋ 보상금 보상 받아 챙기고 내 죄인 된 것을 죄인으로 또 챙기고 그걸 통해서 이 죄를 통해서 우리는 줄 달린 청소기 바로 이미 주께서 우리 죄를 대신했다는 사실을 주께서 내가 남한테 얻어맞는 그것을 선물로 줘가지고 파악케 하는 연줄로 연줄로 연관성을 있게 만드는 일이 됐으니까 그거는 사건이 되죠.

사건 초월은 존재의 연관이라면 초과는 뭡니까? 사건의 연속과 연관돼 있죠. 사건의 연속. 이 사건. 그걸 제가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면 늘 말씀의 깊이가 다가설 수 있는 계기가 연결되는 거예요. 아까 그 횡단보도가 어떻게 건넌다고 했습니까? 폴짝폴짝. 바보도 아니고요. 우리 이래 안 걷잖아요. 그냥 횡단보도 그냥 걸으면 되잖아요. 근데 선은 우리의 의도와 관계없이 멈춰라. 거기에서. 율법이 횡단보도를 자체적으로 그어놔가지고 한번 멈춰라 다시 한번 니를 돌아보라. 니 잘난 척하지 말고. 이런 식으로 이렇게 늘 반복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겁니다. 율법. 전쟁은 바로 이미 이루어진 것에 대해서 우리를 인도하는 거.

두 번째 뭐냐? 사랑입니다. 사랑의 특징은 경로 이탈이에요. 경로 이탈. 계산, 이걸 주고받고 주고받고가 하지 못하는 거예요. 아까 출애굽기 1장 그거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1장 8절에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이래 돼 있죠. 도대체 이 바로 왕이 후대의 바로 왕이 요셉을 모른다는 말은 요셉의 뭘 모른다는 뜻입니까? 요셉으로 인하여 애굽이 받았던 은혜와 그 사랑을 이제는 몰랐던 거예요. 은혜와 사랑을. 아까 그 전쟁에서 이미 십자가에서 이루어졌잖아요. 다 이루어졌죠. 지금도 출애굽 같은 경우가 이미 실시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랑은 이미 이루어졌어요. 구약의 출애굽에서는 어린 양의 피로 유월절을 했잖아요.

그러면 모든 율법의 율법은 뭐로 돼 있냐 하면 이스라엘을 초태생으로 또는 새로운 하나님이 받은 수컷으로 그래야 아버지의 아들이 되니까. 아버지의 딸이 아니고 아버지의 아들이 되니까. 딸은 나중에 이사야에 나와요. 내 신부라고. 그거는 그 신부는 하나님의 신부가 아니고 아들의 그 아들의 유일한 아들 한 분의 아들의 신부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신부를. 그렇게 되면 남녀라는 관계가 초과적이 돼 버리면 유일한 남자는 누가 되고? 수컷은 누가 되고? 예수님이 되고 나머지 모든 교회는 그의 신부가 되는 그걸로 이제 언약이 그 내용이 이제 깊어지는 것은 이사야의 문제고.

출애굽 문제에서는 새로운 가장 새로운 수컷이 가장이 되는데 이미 그 출애굽이 있었을 때에 그 애굽의 특징이 요셉의 공로와 은혜를 놓쳐버릴 때는 가장 이방 나라다운 이방 나라가 되는 거예요. 그러면 이스라엘이 이방 나라와의 차이를 더 드러내야 되는데 그 차이점은 뭐냐 하면은 바로 애굽을 적으로 간주해서 공격하는 그 포인트가 요셉의 은혜를 몰랐다 이 말이죠. 만약에 바로가 요셉의 은혜를 알았으면 그들이 히브리인에게 어떻게 하겠어요? 그렇게 구박하겠습니까? 구박 안 하지요. 구박 안 합니다. 지금 애굽의 그 사람들은요 전쟁을 할까 봐 겁을 내고 있어요. 여기 출애굽기 1장 10절에 자 우리가 그들에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데 그들이 더 많게 되면 그다음에 뭐가 일어난다? 전쟁 발발 일어난다. 그렇게 은혜를 모르니까 그들은 전쟁을 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들의 이론이 계속 이어지게 되면 출애굽기 5장 9절 그 사람들이 고역을 무겁게 함으로 수고롭게 하여 그들로 그다음에 나오는 단어가 뭐죠? 그들로 뭐 한다? 5장 9절 한번 보세요. 그들로 뭐 한다? 거짓말을 듣지 않게 한다. 다시 말해서 모세가 하는 말은 전부 다 구라다. 거짓말이다. 이게 하나님의 은혜가 없고 사랑이 없는 사람은 공통적으로 이게 내부에 깊숙이 그게 들어 있습니다. 그러면 교회 한 50년 60년 다니는 교회에 헌금도 많이 하고 봉사도 많이 하고 칭찬도 많이 받는 그러한 목사나 장로님이나 집사님이나 중직들 그 사람 속에 이러한 요소가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있어요? 없어요? 갑자기 잠잠해집니까? 있습니까? 없습니까? 둘 중에 하나예요. 있어요? 없어요? 있어요. 있지요.

그게 바로 내 손으로 차마 못 끄집어내는 뭡니까? 부정성이죠. 실컷 복음 듣고 실컷 신학 해놓고 거짓말 일 수 있잖아. 내가 이 똑똑하고 좀 교양 있고 좀 배운 사람이 봐라 이게 거짓말이 진짜라면 왜 세상 사람들이 교회에 안 몰려와. 이것은 분명히 교회 저희끼리 폐쇄적인 집단이 지어낸 이게 교묘한 종교적 이단인데 교리인데 아마 이것 가지고 목사들 밥 먹고 살고 교회 경영 유지하라고 종교 집단 유지하려고 이렇게 지어냈는데 그동안 그걸 내가 그동안 몰랐어. 우리 4대째 기독교 집안 돼가지고 이게 진리인 줄 알았는데 내가 그걸 몰랐다고. 몰랐는데 그다음에 나오는 부사가 있어요. 뭐냐 하면은 뭐냐? 이거예요. 깜빡 속을 뻔했어. 내가. 깜빡. 지금 여러분의 부정성을 내가 대신 해 주고 있습니다. 내가 깜빡 속을 뻔했다. 이제 내가 한 교회 한 50년 다니다 보니까 온갖 해석 설교 다 들었는데 이제는 안 속는다. 갑자기 내가 고함을 지르는가. 내가 왜 속아? 내가 내 이성이 있고 지혜가 있는데 왜 속아? 이제는 그만 속는다. 아 깜빡 속을 뻔했어. 이거.

그러니까 신앙인은 뭐냐? 신앙이 이게 있고 없고가 아니라 신앙인은 이게 뭐냐 하면 이게 있어야 돼요. 깜빡 속을 뻔했다는 이것이 나의 진면목이며 드디어 주님의 전쟁에 의해서 내가 걸려들었기 때문에 나는 감사해야 되고 고마워해야 되죠. 그래서 뭐냐 하면은 하하하. 이걸 다른 말로 하면 속지 않는 자이기에 방황하는 거예요. 속으면 주님한테 속으면 되는데 똑똑한 짓 하려 하는 거예요. 똑똑한 짓. 속으면 되는데. 성경에 속으면 되거든요. 그래서 사도행전 사도가 뭐라 합니까? 인간의 지혜와 인간의 총명과 지식으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가 뭐냐 하면 바로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었다는 것과 부활했다는 거예요. 인간의 모든 지혜를 부끄럽게 하기 위해서 이래 한다. 결국 십자가로 모아지는 거예요. 십자가로.

여기에 대해서 애통하냐? 안 그러면 웃느냐? (가만히 있어 봐. 지금 시간이 이래가 벌써? 이게 애통해야 돼. 이거 8분 초과했어요. 경로 이탈했어요. 이거 시간을 초과했어요. 이건 내가 의도적인 게 아니고 의도 아닙니다.) 율법이라는 그 모든 율법은 자체적으로 죄를 끄집어내고 자체적으로 뭐냐? 거기에다가 성막을 가지고 만듦으로 끝나는 겁니다. 출애굽기 이야기는 성막 만드는 데 참여시켜서 그리고 출애굽기 이제 마지막으로 (죄송합니다. 이 시간 오버해서 이거 이렇게 오버한 줄 몰랐어요.) 40장에 보면 드디어 성막을 완성하고 완성합니다. 17절 제 2년 정월에 초에 성막을 세우니라. 유월절 나오고 2년 만에 성막 만들어지고 난 뒤에 그 성막에 누구도 못 들어가요. 36절에 그 회막에 누구도 못 나갑니까? 누구도 못 들어가요? 모세도 못 들어가요. 왜? 하나님께서 거기에 임재했으니까.

성막에서 활동하는 그 어린 양, 하나님이 하나님만 받는다는 그 원칙 그 원칙이 그 원칙을 증거해야 될 자로 속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시고 신약에서 그 통, 그 통에 있는 겉으로 도는 그 진짜 이스라엘을 따로 마련해 주고 그 중간에 뭐가 고인다 했어요? 피가. 어린 양의 피 또는 십자가의 피가 고여서 기어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건지고 만다는 이야기를 하나님이 함께 있다, 임마누엘 함께 있다는 그 이야기로 출애굽기는 끝나고 오늘 저희 강의도 끝났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다시 태어나야 된다는 이 아이디어가 우리가 예측도 못한 하나님의 아이디어인 것을 깨닫게 해 주시고, 그 태어나는 자가 바로 예수님이 맏물이 되시고 예수님이 수컷이 되신다는 그 계열에 합류하라고 태어났다는 사실 또한 우리가 감사케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마쳤습니다. (아! 시간이 정말 이렇게 지나갈 줄은 내가 생각도 못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