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회자료

원주특강-출애굽기 1

아빠와 함께 2026. 2. 7. 22:15

26 겨울 원주특강-출애굽기 요약a(260206, 이근호 목사)

제목 : 지우개(출애굽기 13:19)

‘모세가 요셉의 해골을 취하였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케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필연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나의 해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었더라’(출애굽기 13:19)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애굽기 전체 요약을 해드리겠습니다. 출애굽기 전체의 그 해석은 이렇게 되는 겁니다. 보통 인간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출생에서 사망 사이에 지금 여러분들이 이렇게 존재해 있습니다. 따라서 죽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든지 누구한테 조언을 받든지 중요한 진리와 교훈을 얻어서 우리가 아주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는 이 사망의 세계에서 뭔가 대처해야 되지 않는가 감당할 수 있어야 됩니다, 라는 식으로 출애굽기를 보지요.
이게 이제 일종의 보험 또는 보험 의식을 가지고 성경을 이렇게 보는데 이것이 바로 잘못된 해석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출생에서 사망으로 가면서 우리가 여기 있는 나를 어떻게 미래까지 좋은 세상 천국까지 밀어붙이겠느냐 하는 그것은 인간의 탐욕이죠. 욕심입니다. 여기에서 이제 종교라는 게 만들어졌어요. 이것은 잘못된 겁니다.

그러면 성경 해석 어떻게 하느냐 하면은 이렇게 방향이 출생에서 사망 가는 것이 아니고 사망에서 출생으로 이렇게 가는 겁니다. 사망에서 출생으로 가게 되면 인간의 몸이 이렇게 태어났잖아요. 이걸 출생 1이라고 합시다. 인간의 몸을 가지고 이걸 육체라고 이야기하고 육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데 출생했던 것은 몸에서 태어났다. 몸이 이제 삭는다. 점점 이제 요양병원에 가서 죽었고 나중에 화장터에 가면 하나의 가루가 된다. 하지만 여기서 모든 건 가루가 되더라도 영혼은 살아 있으니까 영혼을 괜찮은 영혼을 갖고 있으면 나중에 몸이 추가되면서 영혼과 육이 결합되면서 천국 가서 산다, 이런 아이디어는 이미 인간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생각이죠. 이 아이디어가 이런 아이디어가 종교적인 아이디어가.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사망 이미 사망에서 말씀을 가지고 우리에게 와요. 오게 되면 우리의 육은 사망에 의해서 이게 돌파됩니다. 뚫리죠. 나중에 올 그 사망의 기세가 힘이 위력이 현재 내 육체의 존재 의미와 가치를 뚫고 무엇을 부스냐? 출생 자체에 문제 있음. 그러니까 태어났는데 나쁜 짓해서 지옥 가는 것이 아니고 출생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거예요.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손을 쓸 수가 없다는 겁니다. 이미 그래서 요 위에서 보게 되면 인간은 잘못된 생각으로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를 지어서 죄인이 된다 이게 이제 이쪽에서 이야기를 하는 거라면, 이쪽에서는 뭐냐 하면은 니가 잘못해서 죄를 짓는 게 아니고 죄가 너를 다루고 있었다는 거예요. 처음부터 출생부터 다루고 있었다. 그래서 인간은 죄 안 지을 수가 없다는 거예요. 오히려 죄 안 짓고 바르게 살겠다는 그게 죄의 극한이에요. 가장 간교하기 짝이 없는, 현실감이 떨어지는 자기변명 비겁한 변명으로 일관하는 인간 모든 인간사 자기 위주의 이기주의적 사고방식이죠.

인간은 인간에게서는 선은 나올 수가 없습니다. 없으면 이게 출생 2예요. 출생 2가 아니라 사망으로 사망에서 와서 출생을 하게 되면 이 기능이 무슨 기능이냐 하면은 바로 출애굽기에서 율법을 주는 기능인데 율법의 기능은 무슨 기능이냐? 지우개의 기능이에요. 지우개 기능입니다. 우리의 생각 우리의 존재부터 해가지고 전부 다 다 지워버리는 거예요. 존재를 지우면 뭐가 나오냐? 사건이 나오죠. 내가 여기에서 몇 년 동안 살아 있다. 나이가 얼마다가 아니라 그건 존재에 관한 문제고 현재 우리가 나이가 얼마가 80이 됐다 90이 됐다 이것을 칠판에 지우기 지우듯이 한번 지어볼까요? 이렇게 여기 이렇게 지우듯이 내가 여기 있다, 내 인생은 이렇다, 나의 과거는 이렇다, 어느 대학 나왔다, 나는 누구하고 결혼했다, 이 모든 것을 이렇게 지워버리는 거예요. 지워버리는 거예요. 존재 자체를 지워버린 거예요.

내 존재의 의미는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내 생의 의미는? 의미는? 내 존재 가치는? 내 존재의 가치는? 이렇게 질문을 하잖아요. 근데 내 생의 의미는 뭐냐? 나는 왜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내 사는 이유를 알려주세요 하면 간단하게 답변은 뭐냐? 이걸 들고 답변은 이렇게 지워보세요. 참 쉽죠. 참 쉬운 거예요. 그건 질문 자체가 성립이 안 되는 거예요. 질문 자체가. 왜? 사망이 우리 존재를 뚫고 이걸 지워버리기 때문에. 지울 때 이건 지우개로 했지만 여기 뒤에 율법이라고 쓰면 율법 가지고 하나님의 법으로 지워버립니다.

지워버리면 여기서 나오는 게 뭐냐 하면은 출생 2가 나와요. 출생 투. 처음부터 다시 하자 이렇게 되는 거예요. 어디서 출발하느냐 할 때 지우개로부터 출생 2가 나옵니다. 처음부터 다시 하자. 나올 때 출애굽기에서는 두 가지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어요. 하나는 뭐냐? 초태생. 하나는 숫자로 7. 초태생은 성경 내내 이거 다른 말로 하는데 신약에 오면 맏물. 7이라고 하는 것은 새 창조. 창조, 7일 만에 창조했잖아요. 없는 데서 두 개를 합치면 없는 데서 새로 생김. 죽은 데서 죽었으니까 없잖아요. 죽었으니 없는데 죽은 데서 새로 만들어짐. 만들어진 이것을 죽음의 힘이 와서 이걸 유발하죠. 죽음의 힘이 이렇게 유발합니다. 죽음의 힘이라고 했는데 죽음의 힘, 이걸 다른 단어로 바꾸겠어요.

죽음의 힘을 다른 단어로 바꾸면 이걸 가지고 뭐라 하면 사건이라고 하는 겁니다. 사건. 사건이 갉아먹는 거예요. 사건이. 그래서 여기 오늘 임 장로님이 안 오셨는데 임 장로님 나이가 연세가 80이 넘었잖아요. 80이 넘었다 이 말이죠. 80이 넘은 분이 왔다는 말은 이제 갉아 막힐 게 얼마 남지 않았다. 아이고 축하합니다. 왜? 얼마 남지 않았어요. 이 밑에 밑둥치가 다 갉아먹은 거 양초에 양초가 다 닳았어. 마지막 불꽃을 태우리라. 뒷부분만 남아 있어. 뒷부분만. 연세 머리 허여신 분은 이제 물론 염색했을 수도 있지만 마지막 불꽃을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거예요. 거기 깜빡깜빡 하다가 지금 끝나는 거예요. 사건이 존재보다 위에 있으니까. 힘이 있으니까. 축하받을 일입니다. 올해 이제 곧 돌아가신다는 것은 축하받을 일이에요. 근데 나이가 한 40이 됐는데 간암 말기다, 이거는 박수 받을 일이죠. 박수 받을 일이에요. 새치기를 한 거예요. 나이 90 돼서 빨리 해야 되는데 40대 돼서 새치기해요. 반칙 같아. 어차피 존재는 100살 살아도 대기 상태에서 지우개로 지워지니까. 대기 상태였으니까. 율법에 의해서 지워집니다.

율법이 두 가지의 결과물을 내는데요. 결과물이 하나 뭐냐 하면 하나는 천국이고 하나는 지옥이죠. 천국과 지옥인데 보통 천국과 지옥을 둘로 나눈 이유가 이게 창세기 2장의 선악과 기능 때문에 그렇습니다. 선악과나무가 나무의 취지를 인간에게 이렇게 주입시키게 되면 선악과나무라는 이 환경이 인간의 내부 환경과 인간의 본질을 이렇게 침범하게 되면 선악이 있잖아요. 선은 천국으로 악은 지옥으로 이렇게 해서 선악과의 취지는 아직도 멀쩡하게 살아 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과시하는 거예요. 이게 요한복음 5장에 보면 내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자는 선한 부활로 악한 자는 악의 부활로 나온다 해서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거는 이제 신약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고.

어쨌든 출애굽기에 있어서 출애굽기에 있어서는 이 초태생이라는 맏물이라고 하는데 이 처음 태어난 거 초태생 처음 다른 말로 하면 맏물이죠. 이 사건이 무슨 사건이냐 하면 유월절 사건에서 나온 거예요. 유월절 사건. 유월절 사건의 지속성 그 내구성 이것이 계속해서 이스라엘 존재의 사건의 우위로서 작용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맏물 이것은 그 안에 내용은 새로운 창조를 합니다.

새로운 창조의 특징은, 새로운 특징은 뭐냐? 일체, 일체 인간의 죄와 행함에 대해서 묻지 않는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율법을 통해서 인간의 존재를 갉아먹을 때 충분히 물었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것을 충분히 확인을 했거든요. 인간이. 이스라엘을 통해서 확인을 했기 때문에 새로운 창조에서 인간에게 니가 지난날 무슨 일을 했느냐를 일체 묻지를 않아요. 니 왜 이런 실수했어 이런 걸 묻지 않고 죄와 행함에 대해서 일체 묻지 않는 거, 이 묻지 않는 것을 헤세드라고 합니다. 이 묻지 않는 것을 가지고 헤세드, 우리말로 하면 이걸 가지고 뭐냐 하면 사랑 또는 다른 말로 하면 긍휼. 사랑 긍휼, 사랑 긍휼. 어디서 나오느냐 하면은 바로 언약에서 나오는데 하나님의 언약의 열매로서 사랑과 그냥 불쌍히 여겨주심 그리고 사랑해 주심, 라고 이렇게 하는 거예요.
이 사랑이 바로 율법 모세 출애굽기 20장 21장 22장에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할 때 저 사람을 사랑했느냐는 취지로 물어요. 율법에 보면. 모든 율법 해석에서 너는 어떻게 했느냐, 다른 사람을 사랑했느냐를 묻는 것은 이스라엘을 가지고 이렇게 계속해서 묻는 이유가 뭐냐 하면은 이 사랑 인간의 사랑은 쩔뚝거림이에요. 절뚝거림. 춤으로 말하면 도돔바 같은 거. 도돔바 모르지요. 쩔뚝거리는 거예요. 안 맞아요. 둘이 죽이 안 맞아요. 평생을 살아도 죽이 안 맞게 돼 있어요. 그 쩔뚝거림 안에서 뭐가 나오느냐 하면은 무한이 나옵니다. 무한. 상당히 이거 제가 이 말을 좀 어렵게 했지죠. 그러면 이 율법을 한번 치워볼게요. (휴지 있습니까? 이것보다도 지우기가 휴지가 좋은데) 절뚝거림에 대해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통이 있는데 통이 있고 외부 통이 있어요. 안에 통은 제가 아까 이야기한 육적인 이스라엘, 육적인 이스라엘.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했대. 우리 구원받겠다. 이런 거예요. 육적 이스라엘. 그런데 그 외부에 하나님이 천국 백성을 만든 외부적인 외부의 이스라엘, 이스라엘 되면 통이 몇 개냐 하면 통이 안쪽에 통이 있고 둘째 통이 있죠. 현재 이스라엘은 현재 육적인 이스라엘은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역할을 맡은 이스라엘은 안쪽에는 통이에요. 안쪽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의 통입니다. 이것도 이스라엘이고 바깥도 이스라엘인데 이게 이질적이에요. 서로 몰라요. 그래서 이스라엘에게는 뭐가 있냐? 이스라엘에게는 이스라엘이 모르는 비밀이 있다 이 말이죠.
비밀은 뭐냐 하면은 이 안쪽 이스라엘과 바깥에 통 사이의 이스라엘의 그 틈 사이에서 피가 고인다. 피가 왜 필요하냐 하면 우리가 말씀대로 살고 성경대로 살면 되지 왜 피가 왜 여기에 있느냐? 이 통이 돌아가면서 쩔뚝거리기 때문에. 쩔뚝거린다는 말은 사랑은 되게 하는데 사랑하려고 애를 썼는데 안 맞아, 맞지를 않아요. 그러면 이게 틀렸죠. 하나님이 원하는 사랑에 맞지 않아요. 틀리잖아요. 그 틀림을 인간 대 인간의 관계에서 그걸 무한대로 그걸 뽑아내요. 우리 이러면 대충 의견 맞잖아? 맞아. 맞아. 우리는 내 친하게 지내자. 하고 이야기한 지 불과 36분도 안 돼 가지고 그런데 말이야 또 의견이 안 맞아요. 특히 이런 거 어떻게 아느냐 하면 부부끼리 놀러 갈 때 벌써 놀러 가기 전부터 벌써 쩔뚝거림, 다툼. 가는 내내 다툼. 와서 다툼. 뭔가 의견을 맞췄다고 해서 이제는 우리의 여행은 이제부터 남은 여행은 행복한 여행 뿐이야 라고 여기는데 살아보니까 계속 무엇이 발굴되느냐 하면 예상 못한 서로 차이 남, 안 맞음이 계속해서 발굴이 되죠.

그래서 이건 초등학교 학과 시간은 아니지만 한번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저 따라 해 주세요. 이런 경우가 없잖아요. 그런데 속닥하니까 얼마 안 되니까 합니다. 다 같이. 나에게는 내가 모르는 비밀이 있다. 이 비밀은 비밀을 메꾸려고 애를 쓰는데 그거는 가면 갈수록 그거는 접근이 맞지를 않아요. 그걸 다른 말로 하면 따라합시다. 나는 누구와도 안 맞는다. 이걸 아셔야 돼요. 이걸 아셔야 돼요. 내가 남하고 안 맞는다는 말은 내가 누구 누구하고도 안 맞는단 말입니까? 내가 믿는다는, 누구하고 안 맞아요? 예수님하고 안 맞아요. 예수님하고 안 맞아요. 안 맞으니까 안 맞은 것을 메꾸기 위해서 억지를 부리는 억지가 뭐냐 하면 예수님을 뭐 한다? 예수님을 믿습니다 하는 거예요. 예수님을 믿습니다. 이게 뭐냐 하면은 내가 예수 안 좋아하고 싫어한다 안 믿는다는 것을 행여나 들킬까 싶어서 자기 내부 단속하는 거예요. 거짓말하는 거예요. 모든 종교인들 모든 신앙인들은 위선자입니다. 그럼 입 다물고 있으면 되는데 믿습니다 하고 있으니까 이게 뭐냐 하면은 혹시 안 믿는 걸 외부에서 눈치 챌까 싶어서 겁이 나 가지고 믿습니다 이러고 있는 거예요.

인간 자체에 대해서 몰라요. 인간은 내가 누구하고도 안 맞아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갈까요? 한 걸음 더 나가는데 따라 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나하고 안 맞는다. 이게 문제네. 내가 생각한 나의 이상 자아. 이상 자아 요번에 했죠. 어릴 때 동화 속에 나오는 내 모습 거기에 반추해서 투사해서 나오는 나와 현실 속에 세상 속에서 돈 번다고 적응하는 나와 이게 영원히 안 맞아요. 이번 제목을 안 맞아로 할까, 맞겠다는 게, 맞춰 보려는 게 욕심이에요. 근데 그 욕심을 우리가 멈출 수는 없어요. 맞지를 않아요. 그걸 쩔뚝거림. 또는 비틀거림 이렇게 표현해도 돼요.

사랑의 쩔뚝거림. 혼자 살면 외롭고 같이 있으면 불편하고. 거기서 오는 그 난맥상. 난맥상. 그 난맥상을 초월하는 게, 그 난맥상 그게 힘들 것 같으면 힘들 때 인간들이 하는 조치가 뭐냐? 자연인. 여기 산 치악산도 가깝다. 저 지리산 가든지. 나 혼자 살래. 사람 없는 데 살고 싶어. 전원주택 해가지고 팔리지도 않는 전원주택 사가지고 평생 동안 거기 사는 거예요. 이게 일체 맞지를 않는 거예요. 이게 맞지 않은 것이 왜 내 외부 다른 사람과의 나는 다른 사람하고 자꾸 충돌이 일어나. 아닙니다. 다른 사람에게 충돌이 일어나는 게 아니고 자기와 자기와의 충돌이 우선이죠. 나는 나하고 안 맞아요. 맞는 수가 없어요. 이게 인간이 말씀에 의해서 제거돼야 될 이유예요. 삭제돼야 될. 다시 지우개 동원합니다. 율법이라는 거 가지고 이것을 제거해버리죠. (이걸 하고 어느 게 잘 지어지가 시험해 볼게요. 이거 이게 낫네요.)

그러면 사건이 지워지는, 사건이 지워지는데 사건의 기능은 뭐냐? 사건의 기능은 청소기. 청소기인데 어떤 청소기냐? 줄 달린 청소기. 줄 달린 청소기, 로봇 청소기 아닙니다. 줄 달린 청소기의 특징은 뭐냐 하면은 앞에 그 앞에 청소기 하는 거 그 앞에 쭉 당기면 뒤에 뭐가 딸려오죠? 줄이 있어가지고 뒤에 몸통이 딸려오죠. 잡아당기는데 안 달려 올 수가 없잖아요. 유선 청소기, 청소한다고요. 주님께서는 전혀 비밀을 갖고 있는 통, 안에 있는 통 이스라엘을 먼저 선도해서 그냥 당겨버려요. 당겨서 바로 출생 1을 제거하고 출생 2로 전환시키는 작업을 하는 겁니다. 전환시키는 작업을. 뭔가 줄을 당길 때 본부 아지트로 가야 될 거 아니에요. 하나님의 아지트. 하나님이 계시는, 계신다는 아지트로 그들을 이끕니다. 그게 출애굽하고 난 뒤 1년 후에 1년 동안 아니지. 2개월, 8월, 1월 15일 날 애굽에서 나와서 3월 째 달에 3월 초반에 시내산 도착했으니까 한 두 달, 두 달 약간 안 되죠. 거기 아지트에 갑니다. 시내산. 화산 불붙는 화산 시내산 앞에 도착을 하거든요.

도착을 할 때 이 아지트에서 모세를 끌어 올리려 하고 모세가 화산 속으로 들어가죠. 불붙는 화산 속에 폭풍이 있는 속에 들어가고, 40일 만에 내려오면서 뭐를 이야기하느냐 하면은 하나님과 지상에서 만날 수 있는 아지트를 만드는데 그게 바로 성전 또는 성막 또는 회막을 만듭니다. 같은 단어들이에요. 성막을 만들 때 이게 하나님의 아지트입니다. 아지트의 특징은 뭐냐 하면은 어떻게 인간의 죄를 사할 수 있느냐, 있느냐와 관련된 하나의 시스템이에요. 장치, 그게 성악입니다. 장치. 인간의 죄를 씻을 수 있는 장치를 따로 줬다는 말은 인간은 스스로 착한 일을 해서 자기 죄를 해결할 수가 없음에 대한 선언이죠. 선언입니다. 이까지 인도할 때에 바로 이 청소기 줄 달린 청소기처럼 계속 강제로, 강제로 이 강제성이 있어요. 강제로 잡아당깁니다. 강제로 잡아당기는데 잡아당길 때 방법은 이 방법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여기 횡단보도가 있죠. 도시에 가면 이렇게 거리에 횡단보도가 있잖아요. 횡단보도는 이렇게 줄 이렇게 그려져 있죠. 그렇죠. 줄 그려져 있는데 이 횡단보도를 어떻게 건널 것인가에 대해서 도시 생활을 익숙지 않고 촌에 있던 사람한테는 이게 상당히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촌에 있던 어떤 두 사람이 좀 바보 같은 두 사람이 내린 결론이 이거였어요. 어떻게 하느냐 하면은 줄을 그어 놨으니까 횡단보도에 걸어가면 되는데 그게 아니고 팔짝 팔짝 이거 맞아요. 이렇게 생각하는 자체도 아주 신기할 정도에요. 줄 그어 놨으니까 이렇게 간다는 거예요. 근데 제가 보기에는 그게 바로 사건으로 인도하는 모양새입니다. 사건으로. 줄을 쭉 그어놨으니까 이게 뭐냐 하면은 사건 a, 사건 b, 사건 c,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이 사건과 사건 사이에 요 간격이 그어져 있으니까 이 사이는 뭐냐? 이거는 내 본성대로, 내 본성대로 사는 거예요. 내 본성대로 살다가 주께서 사건을 일으키고 이게 청소기 줄이 있었네. 아 내가 사는 게 아니고 누가 잡아당기네. 느낍니다. 느끼고 느끼는데 뭐 느껴 봐야 요거 길어봐야 5분 짧은 사람은 3.6초 5초 정도 다시 돌아서면 다시 내 본성대로 또 살아요. 성경 공부해도 소용없어요. 돌아서면 말짱 다 소용없어요. 성경공부한 걸 머리에 기억하는 거 그것도 육이거든요. 기억해서 그게 어디 써먹으려고? 써먹을 데 없어요. 왜냐하면 사건은 새로운 상황을 임의적으로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주입을 했기 때문에 이 상황에 대한 이 상황이라는 이 시점에서 예를 들어서 10시 42분이라고 합시다. 10시 42분에 이 시점에서 지금 현재 니가 주어진 상황과 현실을 사건 위주로 다시 해석하라는 뜻이다 이 말이죠.

그러면 해석을 했다 칩시다. 해석을 해도 그다음에 사건 요거 10시 44분 지나고 그다음에 사건은 지난 해석은 소용이 없어요. 지난 성경 해석 이런 거, 주님에 대한 생각, 예수님에 대한 생각은 써먹을 데가 없어요. 왜냐하면 지금부터 이제 내 믿음의 힘으로 천국까지 가리라. 이거는 객기입니다. 이거는 말도 안 되는 이건 오만이에요. 교만입니다. 어떤 사건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껏 니는 니 마음대로 살았잖아. 이걸 분명히 확인해 주는 거예요. “지금껏 니 마음대로 살았어.” “예. 그렇습니다.” 그러면 앞으로도 어떻게 살면 돼요? 우리는. 니 마음대로 사세요. 그냥 니 마음대로. 그런 뜻이다 이 말이죠. 주님의 뜻이 이제는 정신 바짝 차려서 주의 말씀대로 살고 바르게 살고, 그게 또 지 마음대로 사는 거예요. 그것도. 그것도 지 마음대로 사는 거예요.

자기가 자기를 컨트롤하는 거. 이런 것은 하나님 앞에 용납이 안 돼요. 그냥 하는 대로 그냥 하는 대로 사시면 돼요. 왜냐하면 지금껏 나는 내 마음대로 살고 주님은 주님 마음대로 했거든요. 우리 그대로 가자는 거예요. 그대로 니 잘하는 거 있잖아. 예. 뭘 잘해요? 내 마음대로 사는 거. 니는 니 마음대로 산다는 거, 너밖에 모른다는 것을 내가 전제로 하고 사건 사건을 일으킨 거예요. 사건을. 사건을 참작해서 이제부턴 개과천선 할 생각하지 마세요. 예. 개과 천성 그리고 반성 그런 거 좀 하지 마세요. 인간은 반성하는 게 그것도 교만이에요. 하던 대로 하지 뭘 또 본성은 계속 지우개로 삭제돼야 될 대상이 뭔가 갑자기 새로운 인간인 것처럼 착각 남들한테 착각시켜 봐야 남들 안 알아주고 주님도 안 알아줍니다. 혼자 오버한 거예요. 혼자.

이 사건, 출애굽기 전체 내용은 어떻다? 사건과 사건의 연결이다. 모든 것이. 사건은 지난 수요일 날 제가 말씀드렸죠. 사건이라고 하는 것은 예측 가능하다? 불가능하다? 불가능해요. 한번 적을게요. 사건이란? 사건이란 예측이 불가능하다. 불가능하다. 사건이 불가능하다 할 때에 이 점쟁이 동원해도 소용없어요. 타로 점 봐도 소용없습니다. 사건은 타로 점 보고 이러면요 주께서는 이미 타로 점 볼 줄 아는 것까지 다 아셔요. 쓸데없는 짓하면 안 돼요. 예측이 불가하다. 이것이 상당히 인간으로서는 불안감을 조성하겠지만 아니요. 이게 굉장히 기쁨이 되는 거예요. 왜? 이걸 다른 말로 하면 기쁨이 돼요 하나님은 무조건적이다. 무조건적이다. 사랑은 조건보고 주는 것이 아니다. 착한 일한다고 하나님께서 복 주는 것 아니다. 나쁜 짓 한다고 주신 사랑 뺏는 것도 아니다. 니가 착하든 안 착하든 니가 하는 모든 것은 나의 제거 대상이기 때문에 일체 묻지 않는 걸로 퉁 치자. 그걸로 우리 계산 끝내자. 너가 어떤 짓을 하든 일체 내가 너에 대해서 묻지 않을 테니까 너도 너 자신에 대해서 니가 책임을 진다는지 일체 니가 집착하지 마라. 이 조건이에요. 이 조건입니다. 그동안 어떻게 살았느냐? 주께서 이끄는 대로 살았습니다. 그 답변밖에 없어요.

여기서 여러분들이 이제 궁금해 하는 것이 있을 겁니다. 어떻게 성막이 성막 시스템이 우리의 죄를 용서할 수 있는 무조건적인 장치가 될 수 있느냐 하는 거예요. 첫째, 두 번째, 세 번째, 세 가지로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뭐냐 하면은 결속. 결속이에요. 성막의 특징이 전부 다 단단히 흩어지지 않게 꽉 묶어 놨어요. 더 아주 더 파격적으로 설명한다면 성막은 이스라엘을 목 조른다고 보시면 돼요. 목을 졸라요. 목을 꽉 조른다고요. 성막에 가면. 그래서 일반인들은 성막 근처도 못 가요. 성막 근처에서 활동하는 사람은 성막 안에 회막 안에서 활동하는 사람은 제사장들뿐입니다. 제사장. 그 제사장은 시험처가 될까요? 어떻게 뭐 성격 테스트해서 MBTI 그거 검사해가지고 될까요? 어떻게 제사장 될까요? 물으신다면 아론의 자손은 무조건적으로 제사장이 됩니다. 나답과 아비후는 술 먹다가 걸려가지고 죽고요. 그다음에 엘르아살과 이다말은 계속해서 자식 4명 가운데 둘은 죽고 둘은 살아남아서 계속 제사장이 되는 겁니다. 제사장이 제사장만이 회막에서 활동을 하고 레위지파라 할지라도 안 돼요. 그것은 보조지요. 활동 못 합니다.

이것은 바로 성막에서 활동하는 이 레위 제사장, 제사장은 뭐냐 하면 살아있는 죽음 살아있는 죽음이에요. 살아있는 죽음. 살아있는 죽음이 뭐냐 하면 분명히 죽은 채로 활동을 하는 거예요. 물론 좀비는 좀 약간 흉물스럽잖아요. 좀비가 아니고 좀비, 운명은 좀비 같은데 굉장히 화려한 복장을 입고 특이한 복장을 입고 활동합니다. 그래서 이 살아있는 죽음의 세상 특징은 이미 죽었음이에요. 이미 죽었음. 제사장의 이미 죽었음에 대한 이 속성은 어디서 나오냐 하면은 모세로부터 나왔어요. 모세의 이름 자체가 뭐냐 하면은 이미 죽었다는 거예요. 어디에 빠져 죽었겠습니까? 모세가. 모세는 물에 빠지기 전까지는, 그 물에 빠지기 전까지는 이름 자체가 없어요. 새로운 이름이 부여가 되는데 어떤 부여냐? 물에 있는 애인데 내가 건졌다는 이름의 모세가 붙어요.

그래서 이 모세라는 이름에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여기서 결속돼야 되고 모세가 마주쳤던 그 하나님, 모세가 마주쳤던 그 하나님은 모세만 아는 하나님이고 다른 인간들은 어떻습니까? 인간들은 그 하나님 알아요? 몰라요? 몰라요. 철저하게 하나님은 은익된 하나님이에요. 아무도 하나님은 아무도 몰라요. 왜? 만나본 사람이, 만나본 사람이 없어요. 또는 만나본 사람이 있더라도 만나보고 난 뒤에 죽고, 만나보고 난 뒤에 다시 산 채로 내려왔던 사람은 누구밖에 없어요? 모세밖에 없죠. 그래서 모세가 백성들에게 제일 먼저 하는 계명은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다. 다시 말해서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니들이 아는 하나님은 가짜다. 니들이 아는 하나님은 가짜다. 진짜 하나님은 이렇게 제사장을 통해서 이제 살아서 죽는 거죠. 죽었는데 이게 죽음을 이렇게 살아 있는 모양으로 빚어냈다. 죽음으로 빚어낸 살아 있는 모습, 죽음으로 빚어낸 살아 있는 모습. 그렇게 생각하시면 적절합니다. 분명히 살아 있는데 안에는 내부가 뭐로 돼 있어요? 죽음으로 구성돼 있어요.

그러면 이 제사장 하는 일은 내가 죽었는데 왜 살아있지? 이게 뭐냐? 죄사함의 효과 효력이죠. 내가 분명히 죽었는데 왜 살아있지? 내가 분명히 나쁜 짓 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살아 있지? 니가 무엇을 했는지 좋은 일인지 나쁜지 내가 일체 니한테는 묻지를 않으니까. 아무것도 안 물어요.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다시 한 번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너에 대해서 내가 하는 것에 대해서 아무 것도 묻지를 않는데 프리즈 제발 여러분들도 여러분들이 앞으로 할 일과 지난날에 대해서 일체 여러분들이 자신에게 정죄하지 마세요. 심판하지 마세요. 여러분 자신이. 누가 좋아하느냐 하면 마귀만 좋아해요.

결속이죠. 결속. 그러니까 이거는 뭐냐? 출애굽기 19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무슨 나라 되게 한다?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한다. 그 모세 그 계열 또는 모세 또는 아론 대제사장 에 결합돼 있는 제사장이 있다는 것으로 제사장 나라가 아니고 모든 백성들이 이 제사장처럼 이렇게 단일체가 되는 그날까지 하나님께서는 그게 바로 겉 통 이스라엘이 되게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죽었기 때문에 죽은 것을 살았기 때문에 어떻게 됩니까? 살아가는 데 있어서 질문을 바꿔야 되겠죠. 주님 어떻게 하면 저를 제가 살 수 있습니까 라는 질문을 지금껏 해왔다면 질문을 뭐로 바꿔야 되죠? 왜 아직 내가 살아 있지? 그때는 말로 하지 말고 한쪽 팔을 들어서 뒤통수를 긁어야 돼요. 이상하다. 내가 왜 아직 살아있지? 내가 천벌을 받아야 되는데 왜 안 받고 아직도 살아 있지? 이상하다 이상한 거예요.

그걸 이스라엘 백성이 만약에 100만 명이라면 100만 명이 하나 둘 셋 다 같이 이상하다. 이게 집단 체조죠. 다 이상하다. 왜 이렇게 살아 있지? 이거는 개인적으로 사상 생각을 명상을 같이 해서가 아니라 사건 앞에서, 사건 앞에서 그걸 동시에 한꺼번에 다 느끼게 만들어요. 사건 앞에서. 홍해 사건 계속 밑줄 그은 횡단보도에 빗줄 친 사건처럼 그걸 그 사건을 계속 맞닥뜨리면서 내가 왜 이렇게 살아 있지 하는 거죠. 그 하나로 집단적인 그것이 개개인으로 갔을 때, 개개인으로 갔을 때 개개인 나름대로의 차이 나는 나름대로의 자기의 내가 왜 이렇게 은혜를 받고 살아 있지를 사적으로 느끼게 만드는 그런 환경들을 개인적으로 주는 거예요.
제가 문제를 낼 테니까 알아 맞춰보세요. 다음에 다음 두 가지 사례의 공통점은? 첫째 이게 문제가 너무 어렵다. 이거 진짜 이거는 수능 만점자 아무도 못 나온다. 내가 배탈 났다. 2번 내가 화장을 하고 있다. 얼굴에 화장을 한다. 공통점은? 이거는 출제 위원장 이거 지적 받아야 돼요. 이게 문제 너무 어려워요. 답변을 먼저 하겠습니다. 내가 배탈 났다. 내가 내 얼굴에 화장을 한다. 두개의 공통점은 아무도 나를 대신할 수 없다는 거예요. 답변 들어보니 문제 너무 심했죠. 내가 새우 먹고 배탈 났는데 내가 대신 아파줄게. 내가 이빨 아픈데 대신 안 되잖아요. 화장을 하는데 니 화장하지 말고 내가 내 얼굴에 화장할게. 이거 한다고 화장되는 거 아니거든요.

이것을 가지고 뭐라고 하냐? 이걸 실존주의라고 합니다. 실존주의라 하는 것은, 이 세상에 천상천하 유아독존 어떤 것도 나 대신할 수 없다는 원리를 철학을 만든 게 실존주의 철학이에요. 이 실존주의는 뭐냐 하면은 나로부터 출발할 때 인간은 결국은 실존주의가 될 수밖에 없고 실존주의의 극단이 불교이잖아요. 그것도 대승불교. 부처를 만나거든 부처를 죽여라. 내가 부처인데 또 니가 왜 부처 노릇 하느냐? 이 가짜야. 이런 거요. 이 실존주의를 주님께서 동일하게 사건을 통해서 똑같이 만드는 거예요. 나는 남의 사정 모르고 남은 나의 사정을 모른다. 심지어 더 나아가서 나에게는 내가 모르는 뭐가 있다. 내가 모르는 뭐가 있다? 비밀이 있다. 뭔가 만족하게 다 채워지지 못하는데 찝찝한데 그 찝찝한 게 뭐가 뭔지 몰라서 죽을 때까지 그걸 미지에서의 문제로 남겨두면서 살아가는 거예요.

뭔가 뭐를 뭔가 모자라는데 뭘 모자라는지 모르겠네. 이러면서 꽃꽂이 해보다가 안 그러면 난 도 쳐보다가 서예 배워 보다가 등산 갔다가 엎어지고 자빠지고. 뭔가 아니야. 아니야. 이게 행복이 아니야. 이거 아니야. 이거 아니야. 뭔가 해보는데 배낭 매고 유럽 여행 가보고 뭐 해보는데 뭔지가 뭔지를 모르는 거.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거. 그런데 이러한 실존주의적 철학에 대해서 사건은 동일하게 똑같이 결과를 줍니다. 똑같은 결과가 뭐냐 하면은 주님의 은혜와 뜻에 의해서 니가 살고 있다는, 어떤 얼굴은 다르고 지문은 달라도 똑같은 경험을 하게 하는 거, 이게 뭐냐 하면 결속이에요. 결속. 결속이고.

두 번째는 뭐냐 하면은 방금 이야기한 다수잖아요. 다수를 하나의 하나를 쳐다보게 만들어요. 한 분에게, 한 분에게, 각자 어떤 사정이 있든 간에, 사정이 있든 간에 한 분. 다수는 백성들이죠. 한 분은 뭐냐? 어린 양이죠. 어린 양이 그 회막의 동쪽 문으로 들어와서 지성소까지 들어가면서 피를 줄줄 흘리면서 가거든요. 피를 줄줄 흘리면서. 쌀 포대가 빵구 난 것도 모르고 쌀 포대 지고 가는데 뭔가 자꾸 자신도 모르게 점점 가벼워진 느낌이 들어서 보니까 내 인생이라는 인생에서 구멍이 나가지고 살아오면서 이게 쌀알이 쑥쑥 빠지면서, 빠지면서 살아오고 있다는 것을 나이 든 사람은 알죠. 자꾸 내 안에서 마이너스가 생긴다는 거예요. 그래서 연세 많은 분이 얼굴에 살이 별로 없잖아요. 그건 좀 과하다만. 통통하신 분도 계시는데. 인생에서 마이너스가 계속 생기는 거예요. 기억력도 감퇴되고 관절도 안 좋고 컨디션도 안 좋고 우리가 뭔가 빠졌다 하는 그 빠짐을 한 몸에 다 짊어지고 하나님 계시는 그 언약궤 만나는 유일한 분, 그게 바로 피. 희생 제물, 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 피입니다.

세 번째가 있는데 결속한 거. 그래서 이 결속에 대해서 좀 더 말씀드리면 회막 장치 있잖아요. 그 모든 장치가 이렇게 개인적으로 따로 개인플레이를 못하게 묶어버려요. 회막 구조가. 운동회 할 때 두 사람이 발목 묶어서 하는 거 있잖아요. 그걸 전부 다 한 대로 묶어버려요. 성막 회막 구조 자체가. 그다음에 살아서 한다. 세 번째 그 특징은 좀 이렇게 역시 좀 과격합니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전쟁의 전사, 군사로 전이시켜요. 이게 뭐냐 하면은 집단화된, 결속되고 한 분 중심이고 그다음에 그다음부터는 야 나는 이제 구원받았다 하고 할 게 아니고 구원받는 게 아니고 전쟁에 투입되는 군사로서 성막의 특징인 이동 중이에요. 성막은 어디로 가느냐? 하나님의 원수가 어디에 박혀 있나 하는 쪽으로 성막이 계속 이동하면서 찾아가 탐색한 거예요.

그 과정에서 뭐냐? 사적인 원수, 개인적인 보이스 피싱 당한 거, 개인적인 원한 관계, 복수, 그거 다 그건 나의 원수지 주님의 원수가 아니거든요. 그거 다 포기해야 돼요. 그거 다 포기해야 됩니다. 흔히 성경을 보면서 성직자들이 이런 결론을 해요. 뭐냐 하면은 주께서 우리를 용서했기 때문에 당신도 당신에게 해코지 한 사람을 용서하라고. 이게 말이 됩니까? 우리는 죽으면 죽었지 하나님의 원수는 모르겠고 용서를 해 주지만 우리 뜻은 이거예요. 내가 하나님의 용서는 받아들이되 내 용서는 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것을 하나님이 좀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식으로 협상에 나서죠. 톡해요. 독합니다. 그게 용서가 됩니까? 이 전쟁에 나섬으로써 놀라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이 놀라운 사실로 인하여 이게 성막 성전이 무너져요.

뭐냐 하면은 주님의, 형사가 살인 사건의 범인을 찾는데 범인을 다 증거 가지고 범인을 다 찾아봤는데 드디어 저 범인을 잡았어요. 범인이 누구냐? 본인이에요. 본인이 범인이었습니다. 원수가 어디 멀리 있는 게 아니고 내가 원수였어요. 내가 원수. 로마서 5장 10절. 내가 하나님의 원수였습니다. 하나님께 예수 믿어서 구원받겠다는 내가 원수였어요. 하나님 앞에 잘 보여 가지고 죽고 난 뒤에 천국에서 살 것을 기대하는 내가 원수였습니다. 이 사실이 구약 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왜 하나님이 이 사랑이 쩔뚝거리는 사랑 말고 진정한 사랑이 일체 우리에 대해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이유가 뭐냐? 내가 원수였기 때문에 내가 원수인 줄도 모르고 하나님 편에 서가지고 우리 같은 동업자죠. 이제는 우리가 같이 이 세상의 선교를 위해서 이 세상의 복음을 위해서 같이 하나님 도와주세요 하고 나섰던 이 망발. 자기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자기 자신도 누군지도 규명되지 않는 상태에서 하나님이 협조한다는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서 날 도와주리라는 착각, 이런 거. 이 성막이 나중에 성전이 불태워짐으로써 성막에 기대했던 주님께 기도했고 기도 물론 하고 기대하고 하나님께 소망을 가졌던 내가 하나님의 원수였음이 드러나는 사태까지 이르게 되는 겁니다. 10분 쉴 시간이에요. 10분 쉴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