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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하나님께서 제자들에게 제공하시는 것은 위로가 아닙니다. 평안입니다

아빠와 함께 2026. 1. 14. 09:32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억울하게 이 세상 권력에 희생당하시는 경우를 십자가에서 임무 완수하시기 전부터 찾으셨습니다.

그것이 마가복음 12:40-44에 나옵니다. “저희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연보 궤를 대하여 앉으사 무리의 연보 궤에 돈 넣는 것을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 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 성전 앞에 연보궤를 설치해서 돈을 모은 자들은 그당시 이스라엘 당국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과 성전 짓는 것을 빌미로 과부의 재산을 유인했던 자들입니다. 여기에 어떤 과부로 낚인 겁니다. 그만큼 세상 권력에 의해 희생당한 겁니다. 즉 예수님의 뜻은, 구원이란 자신이 바르게 살아서 성사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희생당한 절차를 통해서 이루어진 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당하셨던 그 억울한 일에 ‘예수님의 이름’에 의해서 당하는 자들도 동일하게 발생되는데 그들은 더는 이 세상에서 위로를 구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합니다. 하나님께서 제자들에게 제공하시는 것은 위로가 아닙니다. 평안입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요 16:33)

즉 환란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그것이 ‘주의 이름’으로 소유권이 바꿔버린 천국 백성의 운명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이 땅에서 본인이 책임져야 될 일도 없고 본인이 위로받을 일도 없습니다. 주님이 걸어가신 코스대로 움직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만드신 겁니까?

그 이유는 야고보서 4:13-16에 나와 있습니다.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즉 인간들이 그냥 물방울에 지나지 않습니다. 잠시 사람 형체를 보이는 것은 죄악을 저지르기 위함입니다. 무슨 죄악말입니까? “나는 내 것이며 나는 그것으로 나의 이름의 명예와 자랑거리를 외부로 나타내기 위해서 나는 존재한다”는 죄 말입니다. 이런 소망은 예수님의 재림을 통해서 거부당하게 됩니다.

“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살전 4:13-14) 위로받지 마시고 평온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더는 나 자신을 뽐내기 위해 살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