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

1/13-로마서 12:1 영적 예배

아빠와 함께 2026. 1. 13. 17:58

 ‘내가 왜 저쪽에 가 있지? 나는 이쪽이 적당한데.’ 주님께서 왜 그렇게 우리로 하여금 산 제물이 되게 하는가, 산 제사가 되게 하는가? 산 제사 이야기는 로마서 12장 1절에 나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영적 예배’라는 말은 탐지기라는 뜻이에요. 이게 바로 예수님과 열두 제자가 해야 될 일이에요. 어려운 사람 도와주고 그런 일을 하는 게 아닙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 대해서 예수님의 안목으로 규정하는 일을 했어요. ‘너는 다 끝났어, 다 끝났어.’ 주님께서 감식반의 요원으로 양성하고 고용한 겁니다.

어디 안에서? 제사 안에서 이뤄졌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의 육이라는 게 그동안 마귀에 의해 자체적인 육의 탐지기 역할을 한 거예요. 예를 들어서 인간이 자기 육을 떠나려고 치면 우리의 육이 악마에 의해 자동으로 경고음이 울리면서 경고등이 들어옵니다.

‘넌 너하고 의논해. 아무 말도 듣지 마라. 네가 중요해. 그 선 넘어가지 마.’ 이렇게 경유해서 ‘네 인생이야. 항상 그 점을 유지해.’ 이런 경고등이 들어온다고요. ‘적당히 믿어, 적당히. 적당히 하라고. 성경도 적당히 지키고…’ 이런 식으로 경고음이 들어온다고요.

그 경고음에 대해서 성령의 점검반이 가동됩니다. 어디서 하는가? ‘선악과는 이렇고 생명나무는 이렇다’라는 것을 점검하는 점검반이 가동되는데 그 점검반이 누구냐? 오늘날 성도에요. 제사 안에서 새로운 인간형으로 다시 탈바꿈 되어서 관심사가 ‘어떻게 구원받느냐’가 아니라 ‘도대체 여기에 예수님의 제사가 어떤 식으로 가미되었는지’를 말해주는 겁니다.

그게 바로 믿음의 선배들이 한 일이거든요. 그중 한 예가 히브리서 11장 5절에 보면 에녹이 나옵니다. 에녹은 죽음 없는 죽음, 역시 특이한 죽음이에요. 일반인들의 죽음이 아니고 죽음 없는 죽음을 에녹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5절에 보면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우리가 상상하고 예상하기로 모든 인간은 죽게 되어 있단 말이죠. 한 번 죽는 것은 정하신 일이고 죽는데 에녹은 같은 인간이면서 왜 안 죽었느냐, 하는 문제가 생겨요.

에녹은 왜 안 죽었느냐? 그것은, 에녹이 주님과 함께 동행함으로서, 이미 장차 올 예수님의 죽음 안에 동행하는 방식으로 자기 죽음이 살아있으면서 죽어있는 채로 동행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미래의 자기 죽음이 아니에요. 에녹의 특징은 뭐냐? 모든 인간들은 아무리 애써도 과거로 돌아가기 때문에 과거의 존재에 불과해요. 아무리 열심히 해도 돌아서면 아무것도 없어요. 과거 기억만 있어요. 그런데 에녹은 미래가 에녹 안에서 작동합니다. 왜냐하면 미래를 결정하신 분이 에녹과 함께 있기 때문에요.

그러니 성도는 내 인생은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주님이 미래에 하실 일이 벌써 내 안에서 작동되고 있는 거예요. 그게 바로 제사입니다. ‘죽일 것은 죽이고 죽인 뒤에 살릴 것은 살린다.’ 이것이 제사로서 나타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