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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율법의 말씀들이 곧 필연

아빠와 함께 2026. 1. 15. 08:57

 ‘우연’이 인간의 필연성을 뚫고 등장합니다. 선지자가 전달해 준 하나님의 예언의 필연성으로 인해 인간들에게 있어 일어나는 모든 것은 ‘우연’에 속하게 된 일로 밝혀집니다. 인간들은 나름대로 하나님의 예언과 말씀을 해석하면서 그것을 통해서 세상 일과 자기 인생에 일치 시킬 수 있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만약에 인간이 그저 우연한 존재이며 그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우연과 우연과 우연의 연속이라면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필연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연히 쏜 화살’으로 인해  아합왕이 죽기 때문에 그동안 ‘아합왕이 죽는다’는 그 말씀이 주어진 이상, 그 말씀으로 인해 이미 아합왕은 죽은 자가 됩니다.

단지 본인만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그 이유는 자신을 우연적 존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있어 자신을 필연적으로 통제가 가능한 대상으로 여기게 된 겁니다. 아합왕이 우연적으로 죽는 것으로 인하여 남쪽 유다 왕 여호사밧도 우연적으로 전쟁에서 살아남은 자가 됩니다.

남쪽 유다왕이 살아나게 된 이유는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이 유다 나라의 등불로서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 아들의 손에서 나라를 빼앗아 그 열 지파를 네게 줄 것이요 그 아들에게는 내가 한 지파를 주어서 내가 내 이름을 두고자 하여 택한 성 예루살렘에서 내 종 다윗에게 한 등불이 항상 내 앞에 있게 하리라”(왕상 11:35-36)
이 ‘다윗의 등불’의 원형은 이미 출애굽에 나옵니다. “그 단을 증거궤 위 속죄소 맞은편 곧 증거궤 앞에 있는 장 밖에 두라 그 속죄소는 내가 너와 만날 곳이며 아론이 아침마다 그 위에 향기로운 향을 사르되 등불을 정리할 때에 사를지며”(출 30:6-7) 즉 성소에 있는 등불은 맞은 편에 진열되어 있는 테이블 위의 떡 12개를 보호하듯이 비춰줍니다.

바로 이러한 공간이 죄사함이 가능한 언약궤 앞에서 이루어지는 겁니다. 이러한 율법의 말씀들이 곧 ‘필연’입니다. 하지만 인간들은 이 필연을 필연으로 읽어내지 못하는 이유는 인간은 그저 비유와 은유와 모형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등불’과 관련해서 이스라엘은 자신이 그 성소 안에 있는 떡이 자기 자신이라고 여깁니다.

‘다윗의 등불’의 실체는 오늘 아람과의 전쟁을 통해서 드러나듯이 ‘다윗의 등불’로 지켜주는 쪽의 왕과 그렇지 않는 북쪽 나라의 왕의 운명이 이처럼 판이하게 대조가 됨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남쪽과 북쪽 이스라엘 전체를 기어이 망하게 하십니다. 이렇게 되어보면 전에 성막 안에 있었던 진열된 12개의 떡이나 다윗의 등불도 필연적인 실체가 나타날 때까지 우연이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예언을 위하여 신약에 와서 결정적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 사건이 십자가 사건입니다. 이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에게 가장 근접에서 일어난 필연적 사건은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일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가룟 유다나 예수님 자신도 말씀으로 우리어질 뿐인 것을 분명히 밝히십니다.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마 26:24) 아합왕은 말씀에 의해서 필연적으로 죽어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다음의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올까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후 5:14) 즉 자신의 죽음은 우연이지만 이 우연이 예수님의 죽음과 필연적 연관성을 갖는 자만이 말씀대로 부활됩니다. 부활의 확실성은 다음 말씀이 잘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0-22) 하나님의 예언대로 죽었다는 분이 예수님이시기에 이 분을 주님으로 인정한다면 그분과 더불어 같이 부활하게 됩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롬 10:9)
『하나님 아버지, 죽어가는 우리의 몸으로 부활의 필연성을 미리 말하게 해주신 것에 감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순찰하다 죽은 경찰관은 자기가 아침에 출근하면서 자기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몰랐어요? 모르지요. 그래서 인간은 우연적 존재예요, 우연적 존재입니다. 죽을 때만 우연이 아니고, 그 동안 살아왔던 모든 행적과 학교 다닌 것, 결혼 한 것, 애 낳은 것 전부 다, 우연, 우연, 우연, 우연, 우연의 중첩과 연속이었던 거예요.

그렇다면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어디까지 확장되어야 하느냐 하면요, 우리가 십자가를 아는 것도 우연이고, 십자가를 앎으로써, 십자가를 안다는 것은 십자가의 사건에 우리가 우연히 접하게 된 거고, 그 십자가 사건 안에 들어서 우리는 우연히 부활되어서 우연히 천국 백성으로 들어가게 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