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아래쪽으로, 우리가 익숙했던 삶, 땅 쪽으로 사라지느냐 아니면 익숙하지 않은, 전혀 예상도 못한 천국 쪽으로 사라지느냐 그겁니다.
땅으로 사라지게 되면, 그 땅에 사라지면 땅은 누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냐? 악마가 먼저 와서 기다려요. 악마의 종으로 태어나서 악마가 시킨 대로 하는 너희 패거리끼리 영원토록 지옥에서 영원한 저주를 받아라. 그러니 이 자아는 없어지는 게 아니고 본래의 자리, 누구의 종의 자리로 자아가 주어지는 거예요. 천국 가도 우리 자아가 없어지는 게 아니에요. 그건 불교가 이야기하는 거예요.
불교는 뭐라 하냐 하면, 인간은 기억이기 때문에 기억이 사라지면 자아도 사라진다, 이렇게 해가지고 자기의 마음의 고통을, 번민을 여기서 잠재우려고 해소시키려는 하나의 수완이죠. 그 방법이 불교 철학입니다. 불교는 종교가 아니라 철학이에요. 모든 고통이 나한테 오니까 나만 없어지면 모든 괴로움과 슬픔과 아픔도 없어지지 않겠느냐, 이렇게 되죠.
그런데 성경은 슬픔이 없으면 안 돼요. 잃어버림이 없으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기쁨은 그것과 연관해서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죄를 안 지으면 안 돼요. 죄가 있어 줘야 의가 되는, 그 의가 되는 그 권한은 내 선에서 넘어섰다는 것을 알거든요.
천국 가면 자아가 없어지는 게 아니고 주님의 종으로서 천국에서 주인님이 누리는 것을 같이 누리면서 시형제 결혼법에 의해서, 이거는 자식이 될 수도, 아들, 형제가 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자신을 시형제 결혼법에 의해서 맏아들로 자처하는 동시에 맏아들이니까, 맏이가 있으니까 그 다음에 누가 있단 말이죠? 둘째 셋째 있겠지요. 양자들이 있을 거 아니겠습니까?
주께서 친히 마련한, 자신이 맏아들로 들어섬으로서 없었던 형제, 주님의 형제 자리가 생기면서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이 바로 전에 악마의 종, 죄의 저주의 종이 되었던 우리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가 죄 사함을 통해서 그 자리를, 예수님과 연장된, 연속된 주님의 세계 안에 이렇게 포함, 합류가 되는 겁니다. 합류가 되죠.
※선악 체계는 ‘나에게는 좋은 면도 있고, 나쁜 면도 있다.’ 이런 의식, 좋은 면 나쁜 면 둘 다 있으니까 결론적으로 ‘나는 나를 버리지 않겠다.’ 왜? 좋은 면이 있으니까. 내가 아주 나쁜 짓만 한 건 아니니까. 좋은 것을 내가 왜 버려? 나는 좋은데. 그리고 내가 나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그 점도 얼마나 장점으로 추가가 되겠어요? 이게 선악 체계예요. 이게 선악 체계니까 이 선악 체계가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모든 상황과 사건에 선악 체계가 다 덮는 거예요.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고 했는데, 그걸 오히려 써먹고 있어요. 다 덮어버리고 세밀한 데에. ‘거실 등을 끄는 게 놓을까요, 켜는 게 좋을까요?’ 이것도 선악체계 아닙니까? 매사에 있어서 내가 좋은 면도 있고 나쁜 면이 있다는 걸 과시하고, 그걸로 도배를 하는 거예요. 식사 준비한다든지, 물건 고를 때 전부 다 좋은 면, 나쁜 면, 다시 말해서 ‘이 좋은 면이 나한테 어떤 유익한 미래로, 나한테 복으로 돌아올 것이냐’를 계산하면서 행동하는 거, 이게 바로 선악 체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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