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무덤! “나는 예수를 원합니다”가 아니라 “예수님이 떠나갔던 그 빈 자리, 그 자리가 내 자리입니다. 나는 그걸 원합니다. 그게 내 끝이고 진짜 제 모습은 거기서 발견됩니다.” 이게 바로 빈 방주예요, 우리를 태우는 빈 방주이고, 이게 동행이에요.여러분이 죽을 때 천국과 지옥 중에서 어느 쪽에서 여러분을 반길 것 같습니까? “아이고, 친구야! 반갑다.” 어느 쪽에서 반길 것 같아요?
시편 1편 4-5절에 보면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 즉 바람이 우세하다 그 말이죠. 그냥 휙 하고 쭉정이처럼 날아가는 거예요. 우리가 질그릇이고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닌데, 질그릇에 보배가 담겨 버리면 이게 갑자기 확정적이고, 고정화돼 버리고, 이게 구조화돼 버리는 거예요. 딱 꽂혀버린 거예요.
음식에 그런 것이 있잖아요. 중앙에 이쑤시개로 꽂아놓고 빼먹는 식으로 하는 거요. 그렇게 십자가가 관통해 버리는 거예요. 십자가 나라는 존재를 관통해서 위에서 아래로 딱 꽂아버리면 그다음부터 모든 지시와 명령은 일방적으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있을 상황으로 주십니다.그렇게 주시면 우리는 천국에 속한, 예수 안에 속한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으로서 이 멸망하는 역사의 공중에 날아다니는 식으로, 출몰하고 나타나는 식으로 남은 생애를 보내게 될 것입니다. 이게 언약의 사람이에요, 언약의 사람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에서는 이걸 가지고 ‘영에 속한 사람’이라,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14절에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육이 뭐고 영이 뭐고, 이거는 구조화됐죠. 이미 그 사람의 끝이 확정되었습니다. 선악적으로 모든 걸 자기한테 의미를 두는 것, 전부 다 그 구조가 육에 속한 거죠. 알아들어요. 이 역사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다 알아듣습니다. 베네수엘라 대통령 마두로가 체포되는 것, 또는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 것, 예를 들어 어린애가 라면 먹다가 라면을 흘리는 사건.
라면 먹다 흘리면 안 되죠. 라면 먹다 흘리는 것은 아주 나~쁜 짓이겠죠. 그런데 라면 먹다가 흘리는 거 보고 주께서 그렇게 흘리게 했다는 생각을 왜 못 해봅니까? 왜 그런 생각을 안 해요? 저것은 나쁜 짓이고, 흘린 라면은 다시 주워 담아야 한다는 거, 그것을 왜 그렇게 해야 하지요?
흘린 라면 주워 담아야 착한 아이가 된다. 왜 착해야 합니까? 착해서 계속 살아야 한다. 왜 살아야 됩니까? 살아남아야 나한테 돈이 생기니까. 결국은 이 모든 게 뭐냐 하면, 지옥 훈련, 지옥 실습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동안 내가 착실했기 때문에 착실한 나는 나한테 소중하다. 너한테 네가 그렇게 소중하면 지옥이나 가라! 네가 너한테 소중한 사람들을 거기 다 모집되어 있어요.
안 소중합니다! 자기한테 소중한 데에 미쳐 있으니까 십자가 사건에 대해서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 거예요. 십자가에 대해서 ‘쓸데없는 일을 하셨네. 의미도 없는 거’ 마두로 대통령 체포되는 것 하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는 것하고 똑같아요. 나한테 하등 중요하지도 않아요.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돈이 많은가, 얼마나 돈 버는가, 그게 전부예요.
이 건물 1층 편의점이 문 닫았잖아요. 문 닫을 때 저는 약간 속이 시원했어요. 다른 분은 안 그러겠지요. 거기서 커피 사던 분들은 좀 실망이겠지만 나는 속이 시원한 게 왜냐? 그분들이 한 번도 이 건물 화장실 청소를 한 적이 없어요. 이미 십자가 사건에 꽂혀버리면 감사해야 되는데, 이미 우리의 운명은 십자가 사건을 담는 천국 백성으로 확정되었기 때문입니다.
확정됐어요. 이쑤시개로 꽂아놨으니까 빼도 박도 못해요. 사나 죽으나, 살고 죽는 게 나한테 아무 의미 없어요. 주께서 살리시고 주께서 죽이시기에 이제는 내가 신경 쓸 게 나한테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죽는다고 할지라도, 끝이라 할지라도 마땅히 죄에 대한 합당한 하나님의 정당성을 실시하는 것이라 여기고 주의 일만 듬뿍 담을 수 있는 올 한 해가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을 하나의 사건을, 십자가 사건의 구조를 보여주는 못난 그릇으로 사용해 주시니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하옵시고, 그것으로 고마워하고 감사케 하옵소서. 그래서 이 땅의 사람들이 알아듣든지 알아듣지 못하든지 그것마저 주님의 소관인 것을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만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1/7-인간에게는 죽음은 없습니다. 죽음은 없고 뭐가 있느냐? 사라짐이에요. (0) | 2026.01.07 |
|---|---|
| 1/6- 성도라 하는 것은 ‘예수님 죽음의 그림자’. (0) | 2026.01.06 |
| 1/4-네 인생도 아닌데 (0) | 2026.01.04 |
| 사도가 있는 이유 (0) | 2026.01.03 |
| 1/3-신6:5 (0) | 2026.0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