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

1/6- 성도라 하는 것은 ‘예수님 죽음의 그림자’.

아빠와 함께 2026. 1. 6. 08:52

그림자의 특징은 본체와 헤어지거나 떨어지지 않는다. 떨어지지 않고, 더 나아가서 이 죽음에 의해서 그림자가 생겼으니까 죽음 쪽에서 동력, 힘이 나와요. 예수님이 죽어서 다 이루었잖아요. 그러면 예수님의 죽음이 살아 있잖아요. 주님이 살아있다는 것을 주님이 감출 이유가 없죠. 드러내기 위해서는 주님의 죽음에서 힘이 나오고, 그 힘이 나온 그림자, 결과가 성도가 되는 겁니다. 성도는 ‘꼼짝 마라’죠.

주님이 일하기 때문에 성도가 일하지 않을 수 없고, 그건 성도의 일이 아니에요, 본인이 결정한 일이 아니고 주께서 결정한 일이 새롭게 우리의 삶의 상황 속에서 불쑥불쑥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성경 마태복음 25장 25절에 종이 나와요. 세 명의 종이 나오는데 하나의 악한 종이 나와요. 한 달란트 받은 종이 나와요. 그 종은 주인이 자기를 떠나면서 맡겨준, 주인에게 재산이 있거든요, 주인의 그 돈, 투자분을 오해했어요. 투자를 하라고 준 걸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열 달란트, 다섯 달란트는 뭐냐 하면 나를 찢기 위한 돈이었습니다. 악한 종이 말하기를 ‘나 여기 있고 주인님 여기 있잖아요. 그러니 주인님이 나한테 돈을 줬잖아요.’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그 종은 주인이 다시 돌아올 때 ‘나 여기 있는 것 주인님한테 중요하고, 주인님이 거기 계신 거 중요하다는 사실을 내가 충분히 동의합니다.’ 뭐는 빠졌죠? 중간에 뭐가 빠졌습니까?

주인이 준 한 달란트의 의미가 빠져있죠. 한 달란트의 의미는 내가 여기 있다는 그 나, 단독자 나를 찢기 위해서 주인 쪽에서 투자한 희생분이에요. 희생분. ‘내가 어떤 위치에 있든지 간에 주인님은 나를 마음대로 하실 수 있는 동행자입니다.’라는 그 의식을 위해서 투자한 거예요.

‘다섯 달란트 남겼습니다. 열 달란트 남겼습니다.’ 백날 남겨봐야 그거 내 것 아니에요. 누구 거예요? 주인 거예요. 주인으로부터 와서 주인으로 말미암아 주인께로 돌아가는 거예요. 거기에 단독자 개념이 없습니다.

그런데 악한 종이 등장함으로 말미암아 그 투자한 달란트의 의미가 새롭게 밝혀졌어요. 뭐냐 하면, 돈보다 뭐가 중요하다? ‘내가 더 중요하잖아요, 주인님.’ 주인은 그걸 동의할 의사가 없어요! 너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 뭐가 중요해요? 너를 없앨 돈이, 나한테 나왔던 돈이 더 중요한 거예요. 뭐 돈보다 친구가 더 중요하다고요? 그거는 인간이 지어낸 이야기고요.

주님의 투자는 주님의 희생이 들어있는 투자에요. 그냥 주는 게 아니고, 주님의 십자가 피가 들어있는 투자입니다. 이제는 너 혼자 사는 것 그만두라는 이야기에요. 우리의 주어진 모든 살림살이가 이게 내 것이지, 네 게 아니라는 그런 식으로 준 거예요. 남긴다는 말은 내 걸 남기는 게 아니고 ‘주님 것이 알아서 주님 것을 남기기 때문에 아무리 남겨도 그 중에서 내 것은 전혀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런 자세를 주께서 원하는 거예요.

 

뭐든지 내 뜻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어야 될 이유는 동행자의 세계에 우리가 이미 편입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남들 앞에 나설 때 내가 누구냐를 앞장세웠습니다. 이제는 나의 동행자가 누구냐를, 내 인생을 이렇게 이 꼴로 만드신 주님이 따로 계신 것을 증거하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