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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네 인생도 아닌데

아빠와 함께 2026. 1. 4. 09:02

“네가 할 수 있는 건 하지 마!” 이걸 다른 말로 하면 “아무것도 하지 마. 내가 다 한다.” 이겁니다. 아무것도 하지 마.

 

“주님, 제가 이런 잘못을 했는데 이렇게 반성하고 회개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면 됩니까? 이렇게 하면 바르게 사는 겁니까? 교회에서 충성하고, 주를 위해 열심히 이 땅에서 살면 됩니까? 그리고 지난날의 과오와 잘못은 앞으로 두 번 다시 없도록 조심하고 절제하고, 올해 2026년은 나쁜 짓 안 하고 될 수 있는 대로 바르게 살면 되겠습니까?” 하면

 

주님의 답변은 “하지 마! 아무것도 하지 마.”

 

그런데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먹고 마시고 무슨 연습을 하느냐 하면, 나중에 죽어서 지옥 가서 영원히 통곡할 연습을 이 지상에서, 땅에 살면서 하고 있는 거예요. 먹으면서 통곡하고, 마시면서 통곡하고, 장가 가고 통곡하고, 시집가면서 통곡하고,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 가고, 사고팔고 하면서 그 뒤에 항상 통곡이 잡혀있어요. 통곡을 연습하는 식으로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랑 같이 너를 고려장 하자. 영문 밖으로 나가자.”라고 하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 ‘네가 살아있는 한, 네가 살아 있다는 이유때문에 주님의 십자가, 주님복음의 의미가 가려지고 훼방이 된다’는 거예요. 자기 자신의 의미가 우선되니까요.

 

서정주(1915-2000) 시인이 써다는 <국화 옆에서>라는 시에 보면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이게 말이 됩니까?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보다.”

이 주장은 바로 욥의 친구들이 한 주장이었어요. 욥의 친구들은 ‘대자연의 국화꽃, 그리고 천둥 치는 것, 이 모든 것이, 내가 이렇게 멀쩡하게 보란 듯이 허물없이 살아있는 것에 의미를 두기 위해서 이렇게 있다’라고 주장했어요. 그런데 같은 친구인 욥은 ‘지금 내가 이유 없이 고난받는 것, 이유 없이 고난 받기 위해서 먹구름 속에서 천둥은 소리쳤고, 한 송이 국화꽃은 폈고, 황무지에 비가 내렸다’는 거예요. 의미가 다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