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은 하나님의 율법대로 진행되고 있음을 본인이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율법 중에 이야기하는 것이 할례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고 그리고 모든 이스라엘 민족들이 행했던 할례, 이 할례는 인간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법에서 나왔죠. 그럼 할례를 장착한 민족과 할례가 빠져있는 민족과의 전쟁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바로 율법이 생생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겁니다. 다윗은 율법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러한 종에 불과한 거예요.
그럼 자기 존재가 뭐로 바뀌었어요?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는 ‘현상(現象, phenomenon)’으로 보여주는 겁니다. 존재는 현상을 나타내는데 그렇게 되는 것을 어려운 말로 ‘재현(再現, representation)’이라고 합니다. 하나의 말씀이 문자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현실을 실제로 구성한다는 것을 ‘재현’, 거기에 나타나는 것을 ‘현상’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만약에 성도가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는다. 세상사람 보기에는 뭘 찍어요? 성도라는 신체를 찍는 걸로 보이죠. 그런데 성도 본인은 말씀의 열매, 말씀의 결과, 말씀이 만들어낸 현상을 사진이 찍고 있다고 보는 거예요.
특히 연세 드신 분들은 나중에 MRI찍고 단층 촬영할 때 마음가짐을 그렇게 잡수시기 바랍니다. ‘아이고, 이거 암인데. 도대체 내가 이거 사나, 죽나?’ 이렇게 걱정할 것이 아니고, 인간들은 그걸 암이라 하는데 주님께서는 암이고 뭐고 간에 인간들이 어떻게 규정했건 관계없이 지금 이 모습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착착 차질 없이 진행되어 가는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음의 현상이라고 보는 거예요.
그게 신앙인이죠. 신앙인이라 하는 것은 뭡니까? 이 현실에 대해서 자기를 자꾸 빼는 거예요. 모든 의미가 자기한테 오는 게 아니고 말씀으로 소환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바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내가 어떻게 정신이 멍하든지 맥이 빠졌든지 이건 문제가 됩니까, 안 됩니까? 문제가 안 되죠.
‘세상은 은유다’. 같은 말로 ‘세상은 비유다’. 같은 말로 ‘세상은 환상이다’. 같은 말로 ‘모든 세상은 허상이다’. 세상은 허상이라는 말을 다른 말로 하면 히브리서 11장 말씀대로 ‘보이는 것은 허상이다’. 히브리서 11장 1-3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조금 더 이야기하면 ‘보이는 허상이라는 것을 디딤돌로 해서 근거로 해서 보이지 않는 실상이 나온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아까 첫째 시간 마지막에 뭐라고 했습니까? 보이는 허상을 나타난 하나의 현상이라 했죠. 모든 것은 감추어진 것에 대한 나타난 현상이에요.
‘성도란 예측함이 소용없고 기대함이 소용없음을 아는 자’ 이게 바로 성도입니다. ‘예측하지 말라’가 아닙니다. 인간은 뭐든 예측하게 되어 있어요. ‘기대하지 말라’가 아니라 그것이 아무런 소용없다는 말이에요. 이게 안 된다는 뜻이 아니고 의미가 없는 거예요, 의미가. 의미가 없는 거예요. 왜? 허상이니까. 환상이니까.
요셉에 있어서 진짜 어려운 점은 뭐냐 하면 요셉은 현실이 곧 꿈이고 꿈이 바로 현실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거예요. 꿈과 현실이 서로 대비되는 세계를, 인간은 잘못 반대로 알고 있다는 걸 보여준 자가 요셉이었어요. 아버지의 언약, 야곱 언약에 이어서 요셉은 이 두 가지 사실이 뒤바뀌어져 있다는 거예요.
이 말은 ‘현실은 없다’가 아니라 뭐가 있다는 거예요? 숨어있는 현실이 꿈이고 나타난 현실은 현실이다. 숨어있는 꿈을 시편 105편에서는 뭐로 보느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했어요. 시편 105편 19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자신이 살았다, 살았다 하면서도 결국은 모든 사건의 다발이 우리를 나의 죽음 속으로 이끈다는 사실을, 이 당연하고 합당한 사실을 이제는 잊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지금 내 존재 의미는 주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하나의 허상 같은 존재로서 주의 말씀만 드러내는 증인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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