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

11/14-죽으면 죽으리라

아빠와 함께 2025. 11. 14. 09:08

이 말씀을 좀 쉽게하기 위해서 꿈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제가 오늘 새벽 3시에 자다가 꿈 때문에 잠자다 끊고 강제로 잠에서 깨어나야 했습니다. 그 꿈이 너무나 생생한데요, 그 꿈 이야기를 잠시 하면요. 제 나이는 50대 초반쯤으로 보이고, 인구 20만쯤 되는 소도시의 한 200평쯤 되는 큰 교회에 당회장으로 제가 뽑혀 갔어요.

설교하던 원로 목사가 아직도 건재한 교회입니다. 제가 거기 가서 수요 설교를 하게 됐습니다. 수요 설교의 본문은 꿈에 안 나와서 모르겠고요, 내용은 ‘기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거였습니다. 제가 서울에 갔을 때 어느 교회에서 기도를 이렇게 했다고 예화를 들었단 말이에요.

설교를 다 마쳤어요. 갈 사람들 다 가고 당회장 실에서 교회 중직들 하고 잠시 모였는데 그때 나이가 70 초반 된 원로 목사가 소파에 턱 앉아요. 저는 그 옆 일반 의자에 앉아 있는데 중직자 하나가 나한테는 물어보지도 않고 원로 목사한테 “목사님! 오늘도 2부 순서로 2차, 3차 있지요?” 이러는 거예요.

지금 꿈 이야기 중입니다. “그럼 있지!” 보니까 원로 목사가 반짝거리는 구두를 신고 왔어요. 2차가 뭐냐면 카바레 가는 것이고 3차가 노래방 가는 거예요. 수요 예배는 아무것도 아니고 그냥 절차고, 본 게임은 수요일마다 카바레에 가고 노래방에 가는 거였어요. 작은 도시의 독점적인 교회에서 줄곧 관행으로 해왔던 모양이에요.

그리고 나보고 하는 말이 “목사님도 가죠?” 딱 이렇게 해요. 그러니까 기존의 권세가 나한테 답을 요청하는 거예요. 제가 잠에서 깰 수밖에 없는 것은 그 생생한 압박감, 현장이 주는 압박감에 할 말을 잃었어요. 딱 묻는 거예요. “갈 겁니까, 안 갈 겁니까?”

방금 수요 설교를 하면서 ‘저는 이런 식으로 목회할 예정이다’라고 설교 내용에 포함시켜서 이야기를 다 했는데 그런 거 다 치우고 “카바레에 갈 거예요, 안 갈 거예요?” 딱 묻는 거예요. 벌써 원로 목사는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 반짝반짝 빛나요, “가야지!” 이러고 있고요.

꿈속인데 답변을 해야 하잖아요, 답변을. 답변을 못 하겠는 거예요. 그래서 꿈에서는 깨버렸고 잠에서 깨어나서 답변을 준비했습니다. 이런 압박감, 정면에서 오는 압박감이죠. 그들은 막 신났어요. 중직들 보니까 한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 2차 3차 가는 게 수십 년 관행이었어요.

그럴 때 뭐라고 답변해야 하는가? 아, 이게…, 어느 누구도, 어떤 시간 어떤 공간에서도 권세라는 것을 벗어날 존재는 아무도 없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 기존의 권세가 나한테 답을 요구하는 거예요. “목사님은 뭐, 놔두고 우리끼리나 가지.”가 아니라 “갈래, 안 갈래?”라고 묻는 거예요. 만약에 안 간다면? 설교는 한 번 했잖아요? 하지만 이것은 계약제가 되어서 이대로 잘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쪽에서 중직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뭐냐? 만만한 거예요. “당신 가족 밥 먹여 주기 위해서 취직 시켜줬으니까 이제부터 우리 식으로 굴러가는 겁니다. 답변 제대로 하세요. 갈 거예요, 말 거예요?” 딱 한단 말이죠. 꿈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아요. 너무나 생생했어요. 그 현장감, 항상 그 현장감이 주는 압박감은 교회라고 해서 비켜나가지 않는다는 겁니다. 교회 자체가 권세니까요.

그래서 잠에서 깨어나 잠시 ‘어떤 답변을 할 것인가?’ 하고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래서 이런 답변은 꽝이에요. 앞으로 제가 이야기할 답변은 진짜 꽝, 이게 바로 잘못된 거예요. 잘못된 예시를 먼저 드릴게요.

“제가 이 교회 온 것은 말씀으로 바른 교회로 만들기 위해 하나님께서 이 교회 목사로 세운 겁니다. 지난날 동안 우리 원로 목사님이 목회를 잘하셨겠지만 저는 제 계획이 있습니다. 그건 주의 말씀에 순종해서 교회다운 교회를 해보는 것이 제 뜻입니다. 그래서 이런 2차나 3차는 안 갈뿐더러 아주 폐지되어야 될 겁니다.”

이런 답변을 만약에 한다면 그 목사는 주께서 보낸 목사 아닙니다. 저도 똑같아요. 저도 똑같은 인간이에요. 그 이유가 있어요. 개혁을 한다면 급진적인 개혁과, 포용적인 개혁 두 종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만약에 내 취지를 밝히면서 “기존 체제에 대해서 선전포고를 하기 위해 이 교회에 왔습니다. 바른 목회 할 거예요.” 이렇게 하면 그건 누구냐 하면 예후에요. 성경에서 그 예후입니다.

‘그렇게 개혁해서는 안 된다’를 보여주는 예시가 예후에요. 바알 선지자를 죽여놓고 자기도 잘리는 예후. 하나님의 계획은 있는 데서 있는 데로 절대 개혁이 안 된다는 것, 있는 데서 있는 데로 개혁이 안 되는 그 예가 여호사밧, 아사, 히스기야, 그리고 요시야 왕, 다 실패했잖아요.

성경이 이스라엘 역사의 그 왕들을 왜 거론해요? 인간의 개혁은 실패한다는 거예요. 어둠의 권세에 대해서 하나님 뜻에 따라 사는 사람이 그 어둠의 권세를 개혁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건 거짓말입니다. 그것은 엉터리예요. 인간은 개혁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본인이 개혁되지 않기 때문에요. 인간은 개혁할 수도 없어요.

그러면 개혁을 어떻게 하느냐? 그게 에스더에 나옵니다. 에스더 4장 16절에 이런 말씀이 나와요. 유명한 말씀 나옵니다. 간단해요. “죽으면 죽으리이다.” 지금 에스더가 느끼는 권세, 아까 제가 말씀드린 대로 엘리야나 엘리사에게 나타난 권세, 자기 가정의 권세에서 쭉 살아왔던 그 소를 죽여 버리고 아주 신바람 나서 아무것도 없이 엘리야를 따르는 그 권세, 그게 바로 에스더의 권세와 마찬가지예요.

‘죽으면 죽으리라.’ 이 에스더 왕비의 권세가 아하수에로 왕을 2인자로 돌려 세워버려요. 1인자는 누구냐? 여자예요, 여자 에스더에요. 아하수에로는 네가 나보다 더 세다는 그 말을 못 해서 ‘내가 나라의 반을 주겠다’는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그것을 안 받죠. 이쪽이 권세가 더 센데 그거 받아서 뭐 할 거예요?

나라의 반도 필요 없이 ‘하나님이 나를 죽이는 그 권세 안에서 나를 사용한다’라는 이 권세가 이 세상에 있는 어둠의 권세를 유일하게 이길 수 있는 권세에요. 이 권세에 있는 엘리야나 엘리사의 공통점은, 오늘 자기가 살아있다는 것은 내일 죽을 수 있는 것 때문에 오늘 살아있는 것, 내일 죽음의 권세가 날 기다리고 있다는 그 이유 때문에 오늘 살아가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3년 동안 계신 것은, 십자가에 죽는다는 것을 목표로 해서 살아있으면서 아버지의 일을 한 거예요. 살아있을 때 아버지 일을 한 것은 예수님이 죽었을 때 한 일에 대한 전초적인 예비 단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꿈에서 깨서 일어나서 그 꿈의 생생한 현장감…, 그 꿈속에서는 실제에요.

꿈이라는 생각이 안 들고 실제로 내가 그 자리에 있고 실제로 내가 그 질문을 받은 거예요. 거기에 대한 답변으로 저는 이렇게 결론 내렸습니다. 생긋이 웃으면서 “갑시다! 갈게요.” 왜냐하면 그게 바로 내가 살 자리가 아니고, 내가 죽을 자리이기 때문에. 죽을 자리를 주께서 세상 어둠 권세로 나한테 맡겨준 거예요.

‘나 이렇게 해서 내일도 설교해야지.’ 이런 내일이 없어요. 내일은 죽는 날이에요. 내일은 없어요. 지금 주께서 요구하는 것은 “너 죽을래? 죽을 거야, 살 거야?”를 물으면 살겠다는 것도 답변이 아니고 죽겠다는 것도 답변이 아니에요. 답변은 “주께서 시킨 대로 하겠습니다.” 이게 엘리사에요. “주께서 시킨 대로 하겠습니다.” 이게 에스더에요. “주께서 시킨 대로 하겠습니다.” 이게 엘리야입니다.

로마서 8장에 보면 신약에 와서 굉장히 깊이를 가지고 표현한 말씀이 있어요. 로마서 8장 24절에 보면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이게 무슨 뜻이냐면요, 25절에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이렇게 되어 있는데요.

여기 24절에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라는 말이 무슨 뜻이냔 말이죠. 그것은, ‘내가 구원을 받는다’가 아니라 소망이 나를 이용해서 소망이 소망 되게 말씀이 성취성을, 말씀이 이렇게 성취된다는 그 성취성이 나를 사용해서 그것이 먼저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우리는 내가 보는 것, 내가 바라는 것을 움켜쥐고 가지고 있거든요. 따라서 소망을 살리고 나를 죽이는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겁니다. 내가 원치 않는 소망, 그걸 위해서 내가 원하는 소망은 제거해 버리는 그 방식,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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