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죄가 뭐라고 생각하느냐”에 대한 답변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염두에 두시고 죄사함을 해주신 그 ‘죄’는 그 어떤 인간도 알지 못하는 개념의 죄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일하심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그 죄에 대해서 죄 사해주시는 작업이 아니라 인간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죄에 대해서 죄사함해 주시는 일이었습니다.
대의를 위하여 자기 한 몸을 바치는 것을 모든 구성원들이 다 경이로움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원하고 있는 지도자상이 이런 겁니다. 자기 한 몸을 바쳐다 다른 이들을 살리는 그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본성이라고 동의합니다. 그런데 이게 악마의 마음입니다. 즉 내가 살고 싶으니까 누구 대단한 신성함을 지닌 자가 내 대신 고생하고 희생해서 나를 평온하게 만들어주면 좋겠다는 겁니다. 바로 이것이 ‘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0장에서 다른 방식으로 자기 양을 모으십니다. 인간들이 찾는 출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출구입니다.
그 출구됨을 나타나면서 비로소 ‘죄’와 ‘죄사함’이 새롭게 전달됩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자신만이 아는 죄와 그 해결을 위하여 스스로 죽으신 겁니다.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요 10:18)
따라서 이 ‘스스로’의 능력이 활동하면서 자신의 양을 모집하십니다.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 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요 10:3-5)
조건이 맞아야 구원됩니다. 이 조건에 대해서 인간은 아무도 아는 바 없습니다. 성도는 말입니다. “나는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받았느니라” 이 사랑이 성도 주변에 기이함을 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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