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자들은 타인을 대하면서 자신이 필요한 사람을 고르게 됩니다.
반면에 신자는 ‘하나님에게 필요해서 찾음을 당한 자’로서 자신을 정립합니다.
성도는, 지금 보고 있는 자신이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죽은 존재로 바라봅니다. 이미 자신은 죽었기에, 자아가 죽은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성경을 통해서 발견하게 됩니다. 그 표준이 바로 ‘어린 양’입니다.
자신의 자아가 죽고 난 뒤에 벌어지는 상황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의 일부로 활동기능을 나타낸다는 겁니다.
유월절 어린양이 죽고 난 뒤에 그 어린양의 취지는 그 뒤에 주어지는 율법 안에서 제사의 제물로 살아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죄를 위하여 계속해서 제사법 안에서 하나님에게 바쳐져야 합니다. 이것이 ‘말씀 완성을 위한 용도’입니다. 성도의 죽음이 이런 식으로 활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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