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어느 누구도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릅니다. 이걸 누가 갖고 오느냐? ㉮예수님이 자신의 육신으로 우리의 과거, 우리의 현재, 우리의 미래를 앞당겨 표출을 해줬어요. 표출을 해주시고 ㉯성령을 통해서 그 세가지의 우리의 과거, 우리의 현재, 우리의 미래를 우리 속에 입력을 시켜놓은 겁니다.
우리는 생소한데, 우리는 낯선데 알지 못하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주님의 영이 들어와서 “네 과거는 이랬고, 네 현재는 이렇고, 네 미래는 이렇다”라는 것을 현재, 과거, 미래의 삼중적 시간관을 만들어서 집어넣은 거예요. 그게 뭐냐? 성령 안이에요.
그래서 성령 안은 쉽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스노우볼. 여러분, 스노우볼 알아요? 투명한 공 안에서 눈이 막 내리는 것이 있어요. 거꾸로 들면 눈이 막 내려오지요. 글리세린이라는 물질을 채우고 그 안에 이런저런 구성품을 넣어서 만드는 거예요. 이를테면 그 스노우볼안에 특별한 시간이 다 들어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몰랐던 우리의 과거, 우리가 몰랐던 우리의 현재, 우리가 몰랐던 우리의 미래가 한꺼번에 다 들어있습니다.
들어 있는데 우리의 육신 대신 예수님의 육신이 죽어야 하는 그것이 일종의 과거 현재 미래가 햄버거의 패티처럼 중앙에 들어가 있어요. 그게 바로 십자가입니다. 그게 로마서 6장이에요.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롬 6:2)
나와 함께 죽은 자는 이미 죄에 대해서 죽은자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 안의 중심에 들어갑니다. 십자가가 들어가 버리면 어떻게 되느냐? 우리의 미래와 우리의 과거는 없더라도 남아 있는 것이 ‘과거의 현재’, ‘현재의 현재’, ‘미래의 현재’ 중에서 ‘현재의 현재’를 우리가 육신으로 갖고 있어요.
우리의 육신이 예수님이 육신이 겪었던 것을 그대로 대행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복제하고 있어요. 삶과 죽음이 같이 있는, 공존하고 있는 모습의 육신, 살아 있는데 이미 죽었고, 죽어 있는데 이미 살아 있는 그러한 체험을 현재 성령 받은 육신은 겪는 거예요. 그래서 사는 게 그렇게 힘들고 집요하게 생존의 의지가 우리 육신 속에 남아 있는 양 강렬해요.
그런데 그 육신 속에서 연결된 것이 뭐냐? 우리의 ‘과거의 현재’지요. 우리의 ‘과거의 현재’, 이미 죽었던 내가, 하나님께 저주받아야 마땅한 그 육신이 아직도 우리 속에 작렬하고 있습니다. 다시 친절하게 말씀드리면 우리 육신을 주님이 대신 먼저 담당하셔서 처리했어요. 그 육신은 십자가에서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막 15:34) 그렇게 된 거예요.
아버지에게 마땅히 버림받아야 할 육신, 주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몰랐던 우리의 ‘과거라는 이름의 현재’에 그 육신을 갖고 있어요. 우리의 육신은 우리의 과거지만 우리가 느끼기에는 현재로 느껴지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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