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순

엘리야 승천

아빠와 함께 2024. 11. 17. 19:05

엘리야 승천 241117

설교:이근호
녹취:정인순

오늘은 사람이 다른 사람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그 대목 이야기하겠습니다. 구약에 선지자가 있는데 이 작대기 들고 있는 사람 있죠? 이 사람이 엘리야 선지자예요. 엘리야 선지자가 자기가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니가 이제 고생 많이 했다. 이 땅에서 니가 그동안 근속 근무했기 때문에 내가 이제는 네 근무를 거두고 하늘나라에서 쉬라고 내가 하늘로 올려 보낼게 그렇게 했어요.

그렇게 해가지고 이제 엘리야가 자기는 이제는 은퇴를 해요. 은퇴하고 이제 하늘나라로 다시 돌아가는데 하늘나라로 돌아가는데 그때 가면서 내가 가고 난 뒤에 하늘나라 소식을 이야기할 사람이 있어야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쭉 순회하면서 그걸 선지자 학교 양성학교가 있어요. 몇 년 전인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선지자 양성 학교에 가서 나 이제 너희를 가르쳤던 내가 이제 가는데 너희들 남아있는 사람들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잘 지키고 또 잘 가르쳐 하고 가더라 이 말이죠.

물론 이게 몽둥이 아닙니다. 이 그림이 잘못돼서 몽둥이가 아니고 지팡이인데 그러니까 대부분 사람들은 참 그동안 고생했습니다. 하나님 부르실 때 가야지요. 선생님 내 멀리 안 나갑니다. 그냥 하늘로 안녕히 가세요. 이렇게 하는 것이 가는 데마다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데 그런데 여기에 어떤 한 생도, 이름이 엘리사예요. 엘리사가 하는 말이 “선생님” “왜?” “저는 떠나지 않겠습니다. 끝까지 내가 선생님 따라갈 겁니다.” 그러니깐 다른 친구들이 “야! 니 좀 나대지 마. 나대지 마. 선생님이 혼자 가도록 좀 놔둬. 그건 하나님께서 비밀히 부르시는데 니가 왜 따라가.” “아니야. 나는 선생님이 가는 곳에는 끝까지 갈 거야.”

그래서 엘리아도 “니 내가 지금 당장 가는 게 아니고 여러 가지 여러 동네에 다 순회해야 되는데 그거 따라오겠나?” “따라가겠습니다.” 그래서 이제 벧엘도 가고 서로 안부 전하고 서로 아이고 안녕히 가십니까? 아이고 섭섭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쭉 하면서 가는데 여리고 성까지 이제 왔어요. 여리고 성 해가지고 요단강 가까이 여리고 성 다음은 요단강이거든요. 요단강에서 이제 하늘로 올라갑니다. 그래서 이제 여기서 이제 엘리야가 “엘리사야. 이제 그냥 볼 일 다 봤는데 그냥 가지?” “아닙니다.” “아니 이 요단강은 못 건너. 건너갈 수가 없다고. 요단강 못 건너. 안 돼. 넌 못 오는 거야.” “아닙니다. 떠나지 않겠습니다.” 하니까 선생님이 “허허. 참 고집도 세네.” 하고 이제 엘리야가 “그렇다면 뭐 그렇게 고집 세다면 그럼 나도 못 말리지. 그럼 따라오면 따라와. 근데 따라오면 니 후회할 걸.” “후회하더라도 내가 가야 되겠습니다.” “그래?”

하고 엘리야가 옷을 벗어가지고 요단강에 물이 범람해 건너가지 못해요. 건너가지도 못 하는데 옷 가지고 휘이 저으니까 물들 강물이 서로 막 이야기하는 것 같아. 엘리아 떴다. 엘리아 떴다. 빨리 길을 비켜. 길을 내드려야지. 빨리. 빨리. 빠져. 빠져. 빠져. 길 내드려야지 하는 것처럼 말은 안 했겠습니다만 하는 것처럼. “물아 저리가. 내 앞길 가로막지 말고.” 하니까 물이 옷을 벗어서 이렇게 휘졌는데 멀쩡한 물이 갈라지는 게 마치 길을 내드리겠습니다 하는 식으로 막 갈라지는 거야. 갈라질 때 엘리야가 아직도 따라오는가 보니까 아직도 따라가는 거야.

선생님이 갈랐던 그 길 따라 나도 따라가야지. 막 따라가는 거예요. 그래서 요단강 다 건너왔습니다. 엘리사 니는 이제 큰일 났어? 지금 내가 있어 가지고 니는 이제 요단강을 건너왔는데 니 도로 집에 갈 때 어떻게 집에 갈래? 보트가 있어? 다리가 있어? 뭐 있어? 못 건너가. 여기서 할 수 없이 여기서 너하고 나하고는 너하고 나 여기서 작별해야 된다. 그 당시 요단강이 얼마나 깊었는지 사람 키보다 더 깊었지요. 이 둘이 요단강 갈라질 때 그 중간을 그걸 촬영해가지고 뽀샵 해가지고 찍은 그림이 양쪽에 물이 있는데 둘이 가니까 물이 갈라지고 그 두 사람이 가는 거예요. 그 뒤에 마중나오러 나온 그 여리고 선지 생도들은 그냥 멀쩡하게 보고 있고 엘리사는 끝까지 갔었어요.

여러분 이 엘리아의 후계자가 누가 되겠습니까? 많은 사람이 선지 생도가 있지만 누가 되겠어요? 끝까지 따라갔던 엘리사가 엘리야의 후계자가 됩니다. 그러면 엘리야의 후계자가 된다는 말은 엘리야가 그다음에 남은 절차가 있어요. 한 가지 남은 절차가 있다고요. 그 절차가 뭘까요? 짠. 그 절차가 이겁니다. 어디서 모범택시 같은 게 하늘에서 통하는 모범택시 같은 게 하늘에서 저만치 점이 돼가지고 왔죠. 그걸 엘리사도 보고 있고 엘리야도 보고 있습니다.

“뭐지?” 보니깐 어떤 불덩어리가 오는 거예요? 불덩어리가 와가지고 불덩어리가 사람을 찾고 있는 것 같아. 여긴데. 저기 있네. 하늘에서 온 불덩어리 속에 그 불 속에 그냥 불덩어리인데 엘리사가 아마 마음속으로는 선생님 이제 당신 타 죽었어요. 이제 불덩어리 속에 당신이 어떻게 타려고. 참 하나님께서 아예 산 채로 화장을 시키려는 모양이다. 이런 생각했는데 멀리서 볼 때는 불덩어리였는데 가까이 오니까 그 불 속에 앉는 의자가 있고 좌석이 있네요. 마차가 있어요. 마차. 불말과 불덩어리가 안에 마차가 있어가지고 그 마차에서 엘리야가 마차에 타고 이랴 가자 이래가지고 하늘나라로 사라졌어요.

엘리사는 보고 있어요. 마치 우주선 발사되고 난 뒤에 사람들 그냥 집에 갑니까? 아니면 이래가지고 끝까지 봅니까? 안 보일 때까지 보지요. 안 보일 때까지. 이건 뭘 말하느냐 하면 그동안 엘리야 선지자가 했던 모든 일은 엘리야 선지자 지 배운 거 공부한 것 세상의 아이디어 자기 개인 의견이 아니라 불수레까지 대령할 정도로 하나님께서 친히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그동안 엘리야에게 다 담아서 이야기한 거예요.

여러분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이 평소에 현재 공부하고 수능 쳤고, 수능 쳤고. 이제 나오는 거야. 수능 쳤고 그동안 살아온 것이 여러분의 야심입니까? 야망입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몰아넣으신 것을 여러분들이 아십니까? 군에 가서 죽도록 군대생활 죽도록 고생하고 이제는 제대를 했다만 고생이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사복 입고 돌아다닙니다. 군에 가든 안 그러면 평소에 공부를 하든 수능을 수능 치든 뭘 하든 간에 얼마나 고생했어요. 이거 다 누구 고생입니까? 내 잘 되기 위해서 내 고생이라 하잖아요. 그건 엘리야 노선이 아니죠. 그건 엘리야 노선이 아니에요. 엘리야가 고생 안 했어요? 죽도록 고생했어요. 아무리 고생해도 그거는 나중에 예수님이 갔던 그것을 미리 맛보기로 보여주는 하나님의 노선을 엘리야에게 담았어요. 엘리야에게 담은 겁니다.

엘리야는 이제 나 간다 하고 마차 타고 그냥 올라갔어요. 이것은 장차 예수님께서 구름 타고 볼일 다 보시고 하늘로 간 것을 미리 맛보기로 미리 보여준 거예요. 그러니까 제대로 된 인간은 어디에 모여 삽니까? 하늘에 모여 살아요. 지상은 이 지상은 지옥이니까 여기에 신경 쓸 필요 없고 마음 두지 마세요. 어서 하늘로 올라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제 남은 것은 뭐냐 하면 이제 엘리사예요
.
참 잘 봤어요. 구경 잘했어요. 그리고 이 하늘나라 가는 것이 바로 자기의 남은 모습인 걸 알았습니다. 근데 문제는 다시 이제 엘리야의 일을 남은 일을 후계자니까 유일한 후계자니까 해야 되는데 요단강을 다시 건너갈 수가 없네. 뭐 일을 하려고 할 때부터 난관에 빠졌어요. 그 깊은 바다, 깊은 바다 이걸 어떻게 건너가요? 그래서 엘리사가 잠시 당황했다가 참 엘리야가 남겨놓은 벗어놓은 옷이 있잖아요. 옷 가지고 나도 한번 해봐 하고 옷 가지고 엘리야의 남은 옷을 가지고 이리 저어 보니까 물들이 꽉 차 흐르던 물들이 어서 오십시오 하는 식으로 호텔에서 손님맞이하는 것처럼 갑자기 쫙 벌어지면서 “엘리야의 일을 연속적으로 하실 분이여! 어서 이 길을 우리가 친히 마련한 길을 통과하셔서 엘리야의 하신 남은 일을 마감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엘리사를 통과시켰어요.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길이 막혔다 장벽이다 할 때 그것은 뭐냐 하면은 주님께서 주님의 그 나라 의를 위해 살고자 하면 그 길은 열리게 되는 길이고 내 야심을 하고자 하는 것은 꽉 죽으라고 닫혀버리는 겁니다. 닫히는 걸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세요. 이게 나중에 하늘나라 갈 사람의 인생길의 특징이 그거예요. 그 나라의 의, 내 야심과 뜻과 자존심을 위해서 살지 마시고 주님께서 어떻게 인도하는가 주님 살아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결국 내 좋아라 하는 삶이 되지 말게 해 주시고, 결국은 다 예수님께서 주신 힘이고 은혜고 사랑인 것을 깨닫는 쪽으로 저희들을 인도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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