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고 보니까 할 얘기들은 많은데 시간을 거슬러 왔다 갔다 하는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기억력도 그렇고.. 감정도 메말라서 힘이 듭니다. 그리고 두렵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사망의 골짜기를 저를 꼭 안고 동행하신 그 분을 전하는 게 아프면서 너무 고마워서
그 엄청난 사랑의 깊이와 능력을 나름대로, 주신만큼만 들려 드리겠습니다.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좀 더 현실적이면서 죄인들의 죄성 그 밑바닥이 얼마나 깊은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리쳐든 독사들에게 발 뒤꿈치를 내어주신 그분의 탄식과 눈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래 글에는 지금 우리 서머나 주위에 계신 분들도 있고 해서 실명 대신 이니셜로만 했습니다. 절대 특정인을 폄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다 추악한 죄인 위에 덮으신 그 옷자락만 증거 하고자 합니다.
그렇게 몇 년을 세상과의 친목(?)을 도모하다보니 저 자신도 모르게 점점 예전과는 다른 나의 실체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목사분이 그런 말을 하더군요. 벤츠를 타면서도 자신이 죄인인 줄 알면 된다구요. 그러나 그건 인간에 대해 무지한 사람의 이야깁니다. 때론 벤츠가 그 사람을 만드는거니까요. 아담은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개입이 없이는 어떠한 신학과 어떠한 종교적 열심으로도 자신의 총체적 타락을 인정하지 못합니다. 원천적으로 선악으로 오염된 인간의 실존을 마주하게 되는 것은 지옥의 한가운데 빠진 자신을 발견할 때입니다.
그런 세상과의 애증은 날이 갈수록 더 심한 갈증과 자신에 대한 학대로 이어졌습니다. 젊은 시절 사업한다면서 온갖 방탕한 생활을 했던 반성으로 열심을 내서 다녔던 새벽기도와 이왕 믿은 하나님께 벌 받을까봐 더 열심히 섬겼던 교회와, 예수를 모르는 이들보다 다른 복을 확인받겠다고 그렇게 쪽방촌을 헤메며 다녔던 그 시간들, 그리고 썩어빠진 한국교회를 개혁해 보겠다고 밤새워 토론하고 공부했던 그 날들, 무엇보다 진짜 복음이라고 그렇게 기뻐하고 자신 있게 전했던 그 십자가마저 저의 세상과의 뜨거운 사랑을 제지하진 못했습니다. 날로 친구는 늘어나고 어디를 가도 vvip 대접을 받는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생활 속에서 그렇게 차츰 차츰 예수는 잊혀져 갔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그렇게 세상 쾌락을 찾아다니면서 나만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데,
가정과 집사람과의 거리감마저 느껴지던 그 세월 속에 불쑥 불쑥 허락도 없이 찾아오는 허탈과 알 수 없는 아픔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요? 누구의 말처럼 십자가의 피는 부담없이 마실 수 있는 소주 한잔관 다른 것이었나요? 그렇게 피는 물보다 빨간 것이었을까요? 벤츠를 타고 골프를 치러가는 차 안에서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통곡은 누구의 눈물이었을까요? 술에 취해 대리운전을 해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미친놈처럼 전했던 그 예수는 저의 방탕한 삶에 대한 단순한 죄책감이었을까요? 이제는 말할 수 있지만 그땐 정말 빨리 이 세상이 망해버렸으면 했습니다. 하나님이 하루 빨리 이 힘들을 빼앗아 가달라고 그렇게 기도도 했지요. 나중에 들었는데 집사람도 같은 기도를 했다더군요. 집사람은 그런 저의 모습을 보며 얼마나 아팠을까요? 전 그래서 평생 집사람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순종하며 살아도 감사한 죄인입니다.(집사람은 이 글을 아직 모릅니다. 이런 거 질색하는 사람이거든요 부디 꼬질르지 마시길) 그 때 제가 가장 좋아했던 찬송이 오늘 올라 온 '주님이여 내 손을 꼭 잡고 가소서' 라는 찬송입니다. 너무 많이 가졌는데,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그 세상 힘을 다 가졌는데 저의 영혼은 그렇게 굶주리고 말라 죽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삶을 살아내면서도 주일 예배는 거의 빠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전 같은 그런 기쁨이나 찬송이 아닌 껍데기만 남은 종교생활이었지요. 그 때쯤 우리 목사님도 목회에 지쳤는지 차츰 설교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말만 되풀이하다가 30분 채우기가 일수고 예전에 그렇게 힘 있게 전하던 십자가가 설교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던 것도 그 무렵이었습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산에 미쳐서 거의 일주일 산에서 산다는 말도 들렸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 분을 비난할 입장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저에게 처음 복음을 전한 그 사람이 이 목사님과 총신 동기이면서 멘토 같은 사이였는데 그 사람에 대한 실망이 목사님의 설교에서 십자가가 사라지게 된 동기라는 건 훨씬 이후에 알게 된 사실이었습니다. 참으로 엎친데 덮친격으로 형식적으로 참석하던 예배에서마저 양식을 얻을 수 없으니 그야말로 헐벗고 굶주린 시절이었지요. 많은 돈과 인기는 그 갈증과 배부름까지 채워주진 못했으니까요.
그러던 중에 어느 날 집사람이 시장에서 예전의 그 복음 전한 그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전에도 대구에 집회가 있으면 우리 집에서 자고 가기도 하고 전화통화도 했지만 자주 만나진 못했거든요. 그리곤 반갑게 이야기하던 중에 그 사람이 "이젠 그 교회 나올 때 되지 않았나?"라는 말을 듣고 저에게 그러더군요. '여보, 당신은 모르겠지만 저는 말씀이 너무 고파요.. 전에 그 이 ㅇㅇ 목사님이 새로 지묘동에 개척을 했다는데 우리 교회를 한번 옮겨 보는 게 어떨까요?" 저도 그 땐 거의 신앙생활 자체를 포기할 상황이라 우선 저 혼자 평일 성경공부에 참석하기로 하고 그 분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공부에 참석하게 되었지요. 정말 메마른 영혼에 하늘로부터 단비가 새로 부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오랫동안 목말랐던 그 생명의 양식. 굶어 죽게 된 자에게 값없이 부어지는 그 살과 피가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습니다. 일 년이 금방 흘렀습니다. 그리고 이 복음을 위해선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집사람과 의논해서 결국 교회를 옮기고 오랜 시간 같이 생활하던 교우들에게는 사실대로 다 말할 수가 없어서 잠시 영적회복을 위해 떠난다고 하면서 예전처럼 언제라도 우리 집에서 모이자고 했지요. 그러나 그렇게 시작된 새로운 교회생활은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듣게 된 복음과 체계적으로 공부하게 된 신학으로 인한 제 삶의 변화 못지않게 새로 개척한지 몇 년 되었다는 이 교회의 실체가 날이 갈수록 이상하기만 했습니다. 분명히 복음이 선포되고 전국 각지를 다니면서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목사가 있는데 교회 분위기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한마디로 교회의 주인이 따로 있었던 거지요. 어떤 전도사 한 분이 저에게 ㅈ 장로가 교회의 주인이라는 말을 할 때도 그냥 웃어 넘겼는데, 그리고 그 사람이 교회 재정이 늘 적자라고 틈만 나면 적자타령을 제 앞에서 할 때면 힘을 다해 적자를 메우곤 했었는데 일 년 이 년 그렇게 해가 갈수록 복음은 복음대로 있고, 교인들이 보여주는 행태는 세상보다 더 영악하고 낯설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한 삼년쯤 지난 어느 날 교회에 공고가 났습니다. 장로를 선출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목사를 붙들고 솔직하게 물었습니다. 그땐 거의 일주일에 한번쯤은 저와 밖에서 식사도 하고 영화도 보고 그랬으니까요. 알고 보니 이 사람이 저와 같은 공과대학 72학번 입학 동기더라구요. 그래서 허물없이 얘기를 주고받게 되었지요. 그래서 정말 허물없이 제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이건 너무 속 보이는 게 아니냐.. 교인 사오십 명 교회에 기존 장로도 있는데 왜 새로, 그것도 두 명이나 장로를 더 뽑아야 되느냐.....지금 장로 뽑으면 결과는 뻔한데 결론은 장로 만들어서 교회라도 짓자는 거냐고, 복음 전한다는 목사가 이건 아니지않느냐고 물었지요. 그 친구 말은 "당신이 되라는 법도 없는데 너무 앞서가지 말라는 거였습니다. 저도 더 이상 따지진 않았지요. 그리고 교인들의 투표로 정말 본의 아니게 장로가 되었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습니다. 장로가 되고 싶었으면 십여 년 전에 훨 큰 교회에서 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장립식이 끝나고 나니까 아니나 다를까 예전 교회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강ㅇㅇ은 장로 되려고 그 교회 갔다고요...ㅎㅎ 그래도 좋았습니다. 그 땐 다시 말씀이 저를 깊은 곳으로 끌고 가서 파묻고 있었던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름 수련회, 겨울 수련회 각 지방 성경강의 그리고 여러 철학, 신학 자료들을 정리하기 위한 서버구입부터 사이트 관리까지 일할게 제법 많았고 저 자신이 신앙과 신학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넓힐 수 있어서 너무 좋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김성수 목사님에 대한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도 그 때쯤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면서도 너무도 인간적인? 목사의 모습과 이중적 잣대를 내 세운 목회로 인해 자주 충돌하던 때이기도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를 찾아온 그 사람이 이런 제안을 하더군요. 우리 예배당이 너무 변두리에 있고 교인들도 불편하니까 시내 가까운 쪽으로 옮기는 게 어떠냐고요. 저는 흔쾌히 그러자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나름대로 열심히 부동산에 알아보기도 하고 예산도 맞추어 보고 했는데 문제는 한참 뒤에 우리 집을 찾아 온 목사의 말이 없던 일로 하자는 겁니다. 왜냐고 물었더니 아내가 반대를 한다는 것이지요. 요즘 말로 헐~이었지요. 그래서 알고 보니 ㅈ장로라는 사람의 결재가 없이는 조그만 일도 불가하다는 사실을 까먹은 것입니다. 교회의 주인이 있다는 사실이 사실로 드러난 거지요.
목사의 사모는 철없는 목사가 ㅈ 장로의 허락도 없이 맘대로 강 장로하고 의논해서 교회를 옮기려 했다는 사실에 분노한 겁니다. 아니 불안했던 거지요. 우리 생각은 알아 볼만큼 알아 본 후에 당회를 열어 의논하려고 했던 것인데 이게 사전에 알려진 겁니다. 사실 복음과는 너무도 거리가 있는 그 장로에게 일일이 허락을 받는 게 담임 목사로서 그동안 엄청 스트레스였던 건 이해가 가지만 그렇게도 그 사람이 교회의 대단한 존재인줄은 그때서야 알았지요. 그리곤 없던 일로 했는데 갑자기 목사의 설교가 바뀌기 시작한 겁니다. 그전까진 그래도 ㅈ장로가 허튼 소리를 해도 나름대로 중심을 잡고 하던 설교내용이 갑자기 ㅈ장로 띄우기로 바뀐거지요. 기가 막혀서 따졌더니 결국은 실토를 하더군요. 개척 당시에 개척 멤버 4명 몰래 ㅈ 장로와 비밀 계약서를 작성했다는 것입니다. 목사의 생활비를 책임지는 조건으로 교회의 모든 일은 ㅈ 장로의 주도하에 목사는 무조건 따르기로 말입니다.
참 허탈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그동안의 이상했던 목사의 행동들도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한편으론 목사도 한사람의 가장인데 어찌 생활에 자유로울 수가 있겠냐 싶었습니다.
그리곤 다 덮기로 했지요. 그러나 그 ㅈ 장로의 행패는 계속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심한 건 목사의 신학노선과는 정 반대인 알미니안적인 내용을 가지고 교인들을 가르친다는 것이었습니다. 목요일마다 자기 집에 불러서 교인들이 성경공부를 하는데 이 교회에 등록하면 거의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하는 교회내의 실세그룹들이 모이는 성경공부였습니다. 저와 집사람은 차츰 그 장로의 실상을 알고부터는 도저히 그런 공부에 참석할 수 가 없었지요. 그래서 그 사람은 저를 계속 못 마땅해 하면서도 교회 재정적 문제로 드러 내놓고 저와 등을 돌릴 형편도 아니었습니다. 사실 장로를 뽑자고 처음 제안한 사람이 바로 그 장로였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그 장로께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는다고 교회 사이트에 논문을 올렸습니다.
참 조잡하기 이를데없는 학위논문인데 알고 보니 학위인가도 못 받는 통신 신학교에 제출한 논문이었습니다. 십자가마을에서 사람들이 시끄러우니까 얼마 안가 내려버렸지만 그 사람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게 되었지요.
그러고 얼마 있다가 그분이 당회를 소집했고 일방적으로 저를 재정장로로 임명한다면서 큰 은혜를 베푸는 것처럼 장부를 던져주더군요. 그러면서 자기가 교회를 개척한 이후로 어떻게 교회를 위해 헌신을 했으며 앞으로 우리교회는 사람이 벌거벗고 살 수 없는 것처럼 아무리 복음이 중요해도 사람의 열심과 헌신이 없으면 교회는 유지 될 수가 없으니 강 장로가 교회의 중심이 되어서 교회를 부흥시켜 가야 한다고 일장 연설을 했습니다. 다 듣고 제가 그랬지요. '장로님, 교회는 오직 그리스도의 피로 세워지고 성령의 다스림으로 만 존재하는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교회의 중심에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까? 열심히 교인들을 섬기겠지만 우리는 늘 ‘저는 아니요, 주님입니다’ 라는 고백이 있어야 성도가 아니냐고 그랬지요. 그리고 이렇게 일방적으로 재정을 맡기는 것도 예의는 아니라고요.
그 후에 집에서 장부를 보게 되었습니다. 교인들이 몇 년간 그렇게 보고 싶어 해도 보여주지 않던 그 장부라 호기심도 있었지요. 그런데 처음부터가 좀 이상했습니다. 그렇게 육칠년 된 장부치고는 종이 재질이나 볼펜글씨의 퇴색도가 너무 새 것 같았고 장부 중간 중간 빚 갚음이란 항목이 있어서 나중에 물어보았더니 목사 사택을 구입할 때 진 빚을 갚아 주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직접 물어보았더니 목사는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처가 집 돈까지 준적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액수가 적은 돈이 아니라서 계속 장부를 살펴보게 되고 결국은 엄청난 돈이 비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문제는 교회재정 뿐 아니라 십자가 마을의 재정까지 그 사람이 맡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끝까지 십자가 마을 장부는 주질 않았습니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한국교회에 내려오는 관례가 있는데 전임 장로가 물려주는 장부는 후임이 절대 이의를 제기할 수가 없다더군요. 주면 주는 대로 받아야 한다는 거지요. 참 훌륭한 전통이지요? 여하튼 그렇게 일은 벌어졌는데 이 일을 교인들에게 알리지 않을 수도 없고 알리자니 교회에 출석하는 그 장로의 자녀들이나 사위까지 알게 될텐데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엉뚱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그 장로에게 횡령사실 확인서까지 받았는데 그 장로가 먼저 교인들을 찾아다니면서 저를 모함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저와 목사가 짜고 ㅈ 장로를 교회서 쫒아 내려 한다는 거지요. 그러면서 마을 사이트에까지 억울합니다~를 시작한 것입니다. 교인들은 떼를 지어 저희 집까지 찾아와서 항의를 하고, 교회를 떠난 사람까지(이 사람은 나중에 서머나교회에서 다시 만나게 됩니다.) 저에게 그만한 일로 뭘 그렇게 일을 크게 만드냐고 그냥 덮으라는 겁니다. 개척한다고 수고도 했으니까 스고비조로 준다고 치고 덮으라는 거지요. 제가 그랬습니다. 십자가를 아십니까? 그 억울하다는 분, 십자가 앞에서도 수고비를 챙길거냐고요. 그렇게 시달리다 보니 이젠 제가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제가 시작한 일도 아니고 제가 저지른 일도 아닌데 모든 화살은 저에게로 돌아왔습니다. 아무리 제가 아닙니다.. 라고 해도 교인들은 제 말보단 그 장로의 말을 더 믿는 분위기였고 그나마 십자가 마을 목사들 정도만 그 장로의 실체를 알기 때문에 어떻게 이런 사태까지 오도록 담임 목사가 방치했냐고 하는 정도였지요. 견디다 못해 제가 목사에게 노회를 소집하자고 요구 했지만 목사는 절대 안 된다는 거였습니다. 그 사람 교회 돈 힁령한 것과 복음이 무슨 상관있냐는 거지요. ㅎ~
결국 제직회 한번 못 열고 덮었습니다. 그 장로는 한 달에 얼마라도 갚기로 하고 노래부르면서 교회를 떠났지요, (이 사람이 작년 김 목사님 소천 후에 서울 서머나 오월 캠프에 와서 교회론을 강의하기로 했던 그 사람입니다. 참 기가 막힌 인연입니다.....) 그 후에도 이 사람의 저에 대한 모함은 계속되고 피해를 입힌 교회에 사과 한마디 없었습니다. 너무 괘심했습니다. 사실 그 사람이 가져간 돈의 상당 액수는 제가 그 교회에 가서 헌금한 돈이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장부상에 제가 헌금한 날짜에 큰 액수의 돈이 들어오자마자 빼내간 적도 있었거든요. 하지만 덮었습니다. 제 아내가 그러더군요. 정말 나쁜 사람이지만, 그 사람이 가져간 돈보다도, 자기가 살기 위해 교인을 선동하고 교회를 깨려고 하고, 저를 모함까지 하고 목사를 변질시킨 정말 나쁜 사람이지만, 교회 새로 나온 초신자 한 사람 때문에 덮자고 했지요. 그래서 덮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로 그와 공범인 담임 목사와 많은 시간 논쟁을 했고 과연 복음과 성도의 삶은 별개의 것인가를 두고 성경을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그 목사에 대한 여러 사실들을 알게 되고 다시 십자가 마을 사이트에 공개적인 토론을 제의하게 되었습니다. 그 목사는 제 글이 올라오는 대로 삭제하기 바빴습니다. 제 돈을 주고 산 서버로 운영하던 사이트에 제 글들이 강제로 삭제되기 시작한 거지요. 결국은 사이트를 관리하던 집사가 보다 못해 목사의 비번을 바꾸어 버렸고 제 글은 열흘 가까이 사이트상에서 열띤 토론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전국에서 몰려든 이 ㅇㅇ목사의 지지자들과 저와의 논쟁이었지요. 나중엔 이 ㅇㅇ목사도 너무 생소한 가면을 쓰고 나와서 자기를 변호하는, 그렇게 불쌍하고 처절한 모습을 보여주더군요. 그 모습이 많이 아팠습니다. 너무 아팠습니다. 태어나서 그렇게 아파서 울어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모든 게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십년을 교제했던 친구이자 스승, 목사 한 사람을 그 날 잃어 버렸습니다.
그렇게 온 세상은 억울한 사람뿐인데
진짜 억울한 한 사람은 십자가에서 말없이 피만 흘리고 계셨습니다.
그 때가 2009년 구정이었습니다.
곧 우리가 원수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롬 5:10-11)
아들을 못 박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는 다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본래 사랑이신 그 분이 우리 피조물들에게 우리가 알아듣게 그림으로 보여주신 사랑이 아들을 못 박으신 십자가입니다. 왜 아들이 못 박히지 않으면 안될만큼 죄인인지를 십자가로 선포하시고 온 세상을 심판 아래 가두어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창세전 그의 피로 거룩하게 하신 아들들에게 그 죄와 용서와 사랑을 가르치기 위한 광야의 삶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죄 가운데서, 지옥 속에서 하나님의 긍휼이 없으면 존재라고도 할 수 없는 죽은 흙들의 실존을 똑바로 보고 경악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 의와 하나님의 거룩 앞에 납작 엎드리라고 주신 것이 성도의 일생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삶 자체가 고난입니다. 지상교회는 그 성도들을 양육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존재하는 하나님 나라의 모형이며 양육장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날마다 새로운 교회입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라는 한 목표를 향한 성령의 다스리심으로 날마다 생성되고 또 소멸되는 그런 교회입니다. 인간들이 영토화하고 형식화할 수 없는 피로사신 교회라는 뜻입니다. 오직 '아들들'의 양육을 위해 곧 그 놀라운 사랑을 어떠한 피조물도 끊을 수 없음을 체험하기 위해 주어지는 환란과 곤고와 핍박과 기근과 적신과 위험이나 칼의 역할로서 세상이며 교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물이 다 성도의 것입니다.
그 때가 2002년 봄이었습니다. 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들썩이고 대구엔 지하철 참사가 있던 그해입니다. 시내에 있는 상가 중 가장 규모가 큰 상가가 너무 노후해서 신축을 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세입자들에게 보증금과 권리금까지 보상해주면서 내보낸데는 저 나름대로 무리한 욕심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IMF도 끝나고 월드컵으로 경기도 살아나는 차에 주위 사람들의 말에 솔깃해서 제 무덤을 스스로 파기 시작한거지요. 하지만 사실은 그것까지도 그분의 계획 속에 있던 아들만들기의 코스였다는 것을 이젠 인정합니다 ㅠㅠ. 그런 상당한 규모의 공사에 투입되는 돈은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처음 상속시에 엄청난 상속세를 다 감당할 수 없어서 일부 은행 대출이 있던터에 추가 대출을 일으키게 되었지요. 그래도 다른 상가에서 들어오는 수익이 있고 완공후엔 보증금만으로도 상당부분 상환이 가능해보였으니까요.
출발은 순조로웠습니다. 공사착공과 동시에 대부분의 점포들을 계약했고 6개월 정도의 공기 동안 거의 임대가 완료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기초공사 때부터 예상치 못한 사고들이 생기고 시행사가 몇번 바뀌면서 공기는 늘어나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지하철 참사와 금융위기등으로 경기는 싸늘하게 식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시내 중심지의 상권은 가장 경기에 민감합니다. 쉽게 말하면 빨리 식고 빨리 달아오르는 그런 경향이 있거든요. 처음 설계와 다르다는 이유로 상가 계약자들이 계약취소를 요구하고 소송이 들어오기 시작햇습니다. 완공은 계속 지연되고 은행 대출금은 늘어나기 시작했지요.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그다지 신경쓰진 않았습니다. 정 안되면 전부 팔아버릴 생각도 했으니까요. 그리고 시내 상가들은 수익성이 좋아 조금만 싸게 내놓으면 어렵지 않게 팔리던 시절이니까요.
그러나 사사건건 내 뜻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말도 않되는 일들이 계속 겹치고 도저히 이해 못할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무렵 그 때서야 위기가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소송 당사자들에게 그들이 원하는대로 다 환불을 해주고 일단 건물을 준공하고 상가들을 헐값에 임대를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빚은 빚대로 늘어나고 이자부담이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몇개의 작은 상가를 처분했지만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린 경기와 수십억에 달하는 추가 대출금은 이젠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때 아들녀석이 제안을 했습니다. 그 당시 한창 젊은 이들에게 인기가 있던 온라인 쇼핑몰입니다. 그래서 이자부담이라도 줄이고 아들녀석도 일거리를 만들어주자는 생각에 준비를 했지요.
막상 시작하니까 초기 투자금이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촬영스튜디오부터(아들녀석이 사진 프로입니다) 사무실, 창고, 상품구입등으로 상당액을 투자를 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그 분의 계획을 거슬러 우리 욕심이 성사될리는 없었습니다. 이년만에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다음은 시내 중심가에 시작한 레스토랑이었는데. 권리금 시설비, 보증금등으로 다시 상당액이 들어가고 은행 대출금은 계속 늘어나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역시였습니다. 다시 이 년만에 문을 닫고 말았지요.
그 때가 지묘동 우리교회로 교회를 옮기고 다시 말씀의 단비에 젖어들 그 시기입니다.
그래서 늘 마음 속엔 사업으로 인한 걱정에 짓눌려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큰 사랑에 빠져서 오히려 그런 것들이 아주 사소하게 보이던 그런 시간들이었습니다. 과도한 이자부담에 시달리면서도 교회에 필요한 것들은 자진해서 구입하고 메꾸어가고 그랬지요. 말씀이 귀에 들려지고 그 사랑이 마음에 부어진다는 사실 자체가 그게 너무 감사했으니까요. 저같은 죄인에게 그분의 변함없는 용서와 사랑이 주어짐을 삶을 통해 체득해 가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특정인의 신학 안에서만 보던 성경을 모든 것을 내려놓고 빈 마음으로 다시 읽기 시작하던 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처음엔 이 ㅇㅇ목사의 인간적인 약함으로만 좋게 보아주던 그의 목회가 영지주의적, 무율법주의적 신학과 직결되어 있음을 간파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지요. 그 ㅈ 장로가 교회를 떠난 후론 드디어 이 목사의 본격적인 '막 사세요'신학이 전개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대신 철학과 세상 학문이 그 자리를 대신하면서 이 목사의 십자가는 변질되어 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벌써부터 다른 십자가인데 ㅈ 장로의 눈치를 보느라 하고 싶은 설교를 못 했을 뿐이지요. 철학적 인간론, 철학적 세상관 , 철학적 역사관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단절된 인간들이 생산해 낸 죄론 교회론 성령론등은 일찌감치 그 바탕에 영지주의와 인본주의에서 출발한 것이었습니다. 가장 화려해 보이는 다이아몬드가 가짜가 제일 많듯이 가장 복음적으로 보이는 이 목사의 십자가 신학의 뒷면엔 아무리 기어올라도 미끄러질 수밖에 없는 인간 신학의 한계가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아담이 손 뻗쳐 따 먹을려고 했던 그 선악과, 에피뚜미아의 탐심이었습니다.
그 때 한가지 사건이 터졌습니다. 십자가마을에 속해 있는 젊은 목사가 미국에 계신 김성수 목사님과 메일을 주고 받은 것을 본인의 양해도 없이 사적인 메일을 사이트에 올린 것입니다. 당시 십자가 마을엔 이 ㅇㅇ목사외엔 복음을 아는 목사는 없다는 식의 폐쇄적인 분위기 였기에 아마도 철없는 목사가 김성수 목사님을 폄훼하려는 목적으로 메일을 공개한 것 같았습니다. 그 내용이 이 사람이 김 목사님께 질문을 했는데 '목사님은 성도가 십자가를 붙들어야 한다고 하는데 죄인에게 십자가를 붙들 능력이 있느냐'는 내용입니다. 바로 이 ㅇㅇ목사의 신학을 그대로 전수한 사람에게서 나올법한 질문이지요. 김 목사님께서 그랬지요. (아마도 십자가마을을 오래동안 지켜보셨기에 이 사람의 질문 요지를 다 아시면서도 개혁주의를 비판하려는 의도로 보시고 다음과 같이 답변을 하셨지요) "제가 아직 개혁주의의 틀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해 그런가봅니다. 앞으로는 개혁주의를 벗어나 십자가 복음만 전할려고 합니다" 이런 내용의 답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젊은목사는 이 내용을 '역시 이 ㅇㅇ 목사밖엔 십자가 아는 사람이 없어, 김 성수도 이ㅇㅇ에게 배워야 돼', 이런 의도로 자기 맘대로 메일을 올린 것입니다. 한창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지던 때의 김성수 목사마저 이 ㅇㅇ에겐 한참 모자란다는 뭐 그런 치기 같은 것이지요. 그리곤 이 ㅇㅇ 목사의 점잖은 훈수까지 이어지더군요. 그래서 그때부터 도대체 미국의 김성수라는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한장의 메일이 결국 김 목사님이 한국으로 나오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훨씬 나중의 일입니다.
그렇게 십자가마을에서의 논쟁과 교회를 떠나는 일들이 있은 후 집사람과 새로 이사한 대구 근교의 집에서 반년 가까이 말씀에만 묻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땐 사업에 대한 희망도 접고 모든 것을 매각하고 밥이라도 먹여주시면 조용히 살고 싶은 생각 뿐이었지요. 그래서 대구 근교에 새로 분양하는 아파트를 장만해서 이사를 간 것입니다. 참 오랫만에 조용한 산밑의 집에서 맑은 공기와 새소리를 들으면서 주님과의 많은 대화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집을 나서면 바로 등산로가 있어서 집사람과 매일 산을 오르면서 지난날들도 정리를 해보고 사람들과의 감정의 찌꺼기들도 정리를 하던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쉽진 않았지만 하루 하루가 마치 새로운 세상으로 공간이동을 한 것처럼 세상이 갑자기 낯설게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내가 도대체 어떤 세상을 살아온거야? 어떻게 여기까지 밀려와서 내가 지금 이곳에 서있는거지?
어떨땐 나 자신조차 낯설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불현듯 예전에 들었던 김성수라는 이름이 생각이 났습니다. 인터넷에 들어가서 미국 서머나를 알게 되고 김성수 목사님의 목소리를 처음 듣게 되었습니다. 그게 에베소서 강해였습니다. 그때 설교 시작 전에 나오던 반주 음악이 '집으로 가자'라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되었지요. 그렇게 에베소서를 듣는 중에 생전 처음들어보는 단어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창세전 언약?' 저도 나름대로 구속사와 언약들을 공부했는데 창세전 언약이란 말은 제가 지금까지 알던 하나님의 선택 개념과는 내용이 달랐습니다. 들으면 들을 수록 놀라운 말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인간이 창조되기도 전에 묵시 안에서는 이미 죄의 개념이 등장했고 그 죄가 그리스도의 피로 사해져서 흠없고 거룩한 아들들이 완성되었다는 말씀이 헬라어 부정 과거 명령형으로 씌여져 있다는 대목에서는 머리를 망치로 한 방 맞은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죄와 용서 그리고 구원에 대한 모든 개념들을 새로 정리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죄는 그 그리스도 안에 있는 아들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가르쳐 주기 위한 도구로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이미 발생시키신 '죄'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미 죄는 성도에게는 죄가 아니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게 십자가라면 제가 지금까지 읽고 있었던 성경은 처음부터 단추가 잘못 끼어진 것이라는 말이었습니다. 그 때부터 김 목사님의 설교와 책들을 정신없이 파고들기 시작했습니다.
저에게 또 다시 새로운 세계가 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지옥을 보았습니다.
온 세상이 지옥이었습니다. 아니 나 자신이 지옥이었습니다.
아침에 눈 뜨는 게 죽기 보다 싫었습니다. 이대로 영영 눈을 감을 수 있다면 ...
아침부터 걸려오는 빚독촉 전화들, 그리고 세입자들의 보증금 환불해달라는 아우성.
2금융권에 사채까지 빌려서 은행이자를 갚기 시작한 지도 한참 된 시점에서 이미 소문이 돌아 부동산에서도 아주 헐값에 매입하려는 자들만 눈치를 보고 있었고 세입자들은 권리금에 보증금까지 떼일까봐 임대료도 안 내면서 줄줄이 철수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게 막고 또 막아도 연체는 이어지고 이젠 주위에 빌려볼데도 없는 상황까지 오고 말았지요. 빚이란게 이자를 갚으려고 더 비싼 이자를 주고 빌릴 때마다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니까요. 저녁이면 지쳐서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도저히 맨 정신으론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술이 취해 곯아 떨어지면 어김없이 새벽에 눈이 떨어졌습니다. 아, 이 하루를 또 살아내야하나...
거실 창가에 앉아 김 목사님의 책을 펼쳐듭니다. 한참을 그 말씀 속에 빠져들다 보면 도대체 어떤 것이 진짜 현실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 말씀 안에는 너무나 생생한 또 다른 현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북하게 쌓아놓은 책들이 몇 달사이에 다 읽혀지고 다시 처음부터 읽기 시작할 즈음 목사님께 처음으로 편지를 썼습니다. 누군가 이 고통스런 삶과 신앙의 현위치와 방향성을 짚어줄 수있는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저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십자가 마을 얘기와 지금의 저의 혼란스러움, 그리고 목사님께 감사함을 적었습니다. 보낸지 불과 몇시간 만에 메일이 왔습니다. 참 놀라운 것은 목사님이 저를 알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그간의 십자가 마을에서의 논쟁들을 다 읽고 계셨고 이 ㅇㅇ씨의 문제점들과 지금 제가 겪고있는 그 신앙적인 혼란과 아픔까지 소상하게 말씀하시고 그게 맞다고, 그렇게 가는게 이 땅의 모든 성도들이 가야 하는 길이라고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함께 그 길을 가자구요... 너무 고맙고 고마웠습니다. 목사님 말씀대로 새 힘을 얻은 것 같았습니다. 그 후로 힘이들어 지칠때면 서로 메일을 주고 받았지요. 나중에 안 일이지만 목사님도 당시에 너무 힘든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더군요. 그래서 그 분의 편지엔 그런 아픔과 지친 흔적들이 배어 있곤 했습니다.
그렇게 지옥과 천국을 겹쳐 살아가면서 몸은 날로 지쳐가기 시작햇습니다. 지난 날들에 대한 회한과 미래에 대한 불안 그리고 지금 내가 위치한 자리와 방향이 주님으로부터 너무 멀어져 가는 것만 같았습니다. 하루 중 목사님의 책을 통해 대화하는 그 시간이 지나면 내 머리 속엔 어떻게 죽을까 하는 생각밖엔 없었습니다. 그 말씀들이 나의 현실을 바꾸어 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처한 상황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분이었습니다. 그 많던 재산과 세상과의 관계들이 어느날 눈을 떴을 때 다 사라지고 없는 상실감은 마치 꿈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건 너무나 생생한 현실이었습니다. 어느날 아예 전화기를 던져놓고 산에 올랐습니다. 소주병을 들고 낮부터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세상과 하나님께 농락을 당한 것만 같았습니다. "하나님, 제가 원한 거 아니잖아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도와주진 못할망정 이렇게 훼방을 하십니까. 제발 저좀 가만 놔두세요..이럴바엔 지금 지옥에 던지시든지 왜 하나님을 알게 해놓고 왜 이렇게 저를 비참하게 만드는 겁니까? 누가 돈 달랬나요? 누가 십자가 복음 알게 해달랬나요 왜, 왜? 나를 농락하는 겁니까!! 나 이제 오랜 세월 당신과의 인연 끝낼랍니다...예수가 어딨어? 하나님 없어!!" 웃었다가 울었다가 그렇게 하나님을 향해 삿대질을 하면서 미친놈처럼 산을 헤멨습니다. 눈을 떴을 때 멀리 우리집 창가에 불빛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여름이었습니다. 서재방에 창을 열고 하늘을 보고 있는데 귀에 익은 음악소리가 들렸습니다. 설교 앞부분에 흘러나오던 그 찬송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곡을 가사와 함께 들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집으로 가자 집으로 가자 이런 눈물 흘리지 않는 곳 우리 아버지 기다리시는 그 곳에... 구원받은 몸이라 안심하고 있었나 끊임없이 생기는 어둔 죄 감춰둔 죄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셨는데 친구는 그 뜻을 진정으로 아는가.'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엉엉 울었습니다. 아직도 세상을 그렇게 기대하는 나 자신이 너무 불쌍해서 울었습니다. 그리고 두 팔 벌리고 지금 기다리시는 그 아버지가 눈 앞에 보였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아버지...
그 여름에 목사님께서 한국에 잠시 다니러 나와서 기도원에 계시면서 산을 오르다가 장로회에서 단체로 오신 분들을 만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본인 말로는 직업의식이 발동해서 즉석 설교를 하셨답니다. 그게 빌레몬서였습니다. 인터넷으로 그 말씀을 듣다가 그냥 꼬꾸라져버렸습니다. " 내가 갚아 줄테니 내게 청구하라" 바울이 오네시모의 빚을 대신 갚을테니 내게 회계하라는 말씀을 들을 때 제 눈엔 십자가에서 말없이 피를 흘리고 계신 주님이 보였습니다. " 아들아, 그깟 돈 때문에 너는 나보고 억울하다고 삿대질 했느냐? 나는 네 죄로 이렇게 내 피와 살을 주고 있지 않니?"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주님만 보였습니다. 그리고 온 세상이 그 분의 사랑으로 충만했습니다. 온 세상이 '사랑'이었습니다. '사랑'이었습니다.
그랬습니다. 그분은 그렇게 저를 품 속에 꼭 안고 계셨습니다.
엎드려 한참을 주님 안에서 기도하고 있는데 문을 긁는 소리가 났습니다. 우리 집 강아지가 무슨 일이 났나 해서 힘을 다해 문을 긁고 있더군요. 문을 열고 나오니 거기엔 조금 전과는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누구도 어떤 상황도 더 이상 저를 그 지옥 속으로 가두어 둘순 없었습니다. "그래 ,내것이 어딨어 전부 아버지껀데 아버지가 필요한 만큼 주시고 때가 되어서 거두어 가신거지 그게 지금 나한테 제일 좋은거니까, 우리 아버지니까, 주시기도 하시고 채찍질도 하셔야 아버지지 그러니까 내가 책임질 일이 전혀 없네.." 세입자들을 불렀습니다. 법인 인감과 서류를 내놓고 말했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이 회사를 드리겠습니다. 아마 손해보시진 않을 겁니다. 워낙 헐값에 거저 먹으려는 사람들에게 주는 것보단 이게 나으니까 최악의 경우엔 여러분들에게 드릴테니까 걱정마세요 그리고 지금처럼 불안해서 임대료를 안 내시면 결국 경매로 넘어가게 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 입니다. " 그리곤 기다렸습니다. 얼마라도 남길려고 전국의 부동산들에게 부탁도 하고 은행에 사정을 하고 해서 하루 하루를 버텨나갔습니다. 그렇게 그해 가을이 깊어가고 있었습니다.
(글 쓰는게 이렇게 힘든 줄 미처 몰랐습니다. 온종일 머리 속에 풀어 나가고 증거해야 할 말씀으로 가득합니다. 어제 밤엔 잠까지 설쳤습니다. 이게 과연 내가 주님을 제대로 증거하는 건가? 혹시 나를 증거하고 있는 건 아니지 몹시 두렵습니다. 그래서 어서 빨리 끝을 내려고 합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십자가 지신 주님만 자랑하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저의 환경과 상황들을 바꾸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저 자신을 바꾸어주셨습니다. 주님의 은혜와 사랑으로만 존재하는 그 처음자리로 저를 돌려놓으신 것입니다.
세상 떡과 세상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이스라엘의 참 복을 가르쳐 주시고 주님 안에 있는 생명과 아버지 집에 대한 산 소망을 주신 것입니다.
전에 다니던 교회를 떠난 후에 예전에 십자가 마을에서 알던 어떤 분이 목회를 하는 울산의 교회에 몇달간 다니기도 했습니다. 집사람외엔 누구 한사람 신앙얘기를 나눌 사람도 없고 또 그분이 김성수 목사님을 워낙 좋아한다고 해서 몇주를 다닐땝니다. 한번은 주일 설교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미국에서 김 목사님이 연락이 왔는데 내년엔 한국에 나와서 새로 개척을 하다고 하네요 그러면서 한국에 나오면 나를 서울로 불러 올린다고 하니까 내가 가면 목사님께 말을 해서 강장로도 같이 올라 갈 겁니다. 이래봬도 난 김성수 목사도 나보고 스승이라고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촌구석에서 교인 몇명 앉혀놓고 목회할 사람이 아니지요" 예배후에 종용히 말했습니다. "목사님, 하나님 보시기엔 서울가서 수천명 모아놓고 목회하는거나 이곳에서 열명 앉혀놓고 설교하는거나 다 귀하게 보십니다. 그런 말씀을 하시면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뭐가됩니까? 복음을 아신다는 분이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그리고 김성수 목사님께 너무 기대하지 마세요" 그러고 얼마뒤에 맥추절 헌금봉투 돌리는 것 보곤 다시 그 교회에 가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은 그후에 자기 기대에 차지 않았는지 다니면서 목사님 욕을 하고 다녔다더군요. 그런데 철없는 사람들이 목사님 장례시에 예배인도를 해달라고 불렀더군요... 그리곤 얼마전에 미국 서머나를 떠난 사람들이 불러서 김성수 규탄집회를 한 모양입디다. 참, 세상이 우짤라고...복음을 들었다는 사람들이 그렇게도 분별이 없는지. 역시 지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게 아담인 모양입니다.
어느날 오후 드디어 올게 오고 말았습니다. 은행들이 더 이상 기다려줄 수 없다고 경매통지서를 보낸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은 담담했습니다. 오히려 홀가분하기까지 했으니까요. 집사람도 잘됐다고 당신 이제 좀 쉬라고하면서 내일 먼산에 다래나 따러 가자더군요. 저녁에 목사님께 메일을 보냈습니다. 이제 정리할 때가 온 것 같은데 저를 위해 기도를 부탁드렸습니다. 어떤 아픔과 두려움이 찾아와도 잘 달래서 보낼 수있게 주님께 믿음을 구한다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몇주가 지난 주일 식구들과 집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목사님 설교를 듣는 중에 들은적 있는 내용이 흘러나왔습니다. 제가 보낸 긴 편지를 읽어내려 가기 시작하신 겁니다. 얼굴이 화끈했습니다. 부끄러운 내용들을 왜 읽으시나...집사람과 아들녀석은 영문도 모르고 듣다가 집사람이 어 이거 우리 얘기네 그러더군요 그러면서 웃었지요. 그렇게 올게 왔지만 우리 모두 담담하게 맞을 수 있었습니다.
이젠 내가 할 수있는 게 없다는 것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습니다. 날마다 말씀 속에 묻혀 그 진리의 세계로 몰입하게 되었지요. 성경이 새로 보이기 시작하고 눈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주께서 새 마음을 만들어 주신거지요. 그러면서 식구들 모두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일이든 해야했고 또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 그즈음 예전에 같이 신앙생활을 하던 집사부부가 운영하던 학원에서 주일날 함게 예배를 드리기로 하고 모였습니다. 연로하신 장로님 한분과 두 가정이 모였지만 김 목사님의 말씀으로 예배를 드리는 그 시간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습니다. 목사님께서 소식을 들으시고 남가주 서머나 게시판에 광고를 올려 주셧습니다. 대구 서머나 교회를 새로 개척했으니 영남지역 분들은 연락하라고 제 전번과 학원위치까지 올려주시더군요. 그렇게 해서 한 분 두 분씩 황금동 학원에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기쁘고 감사하고 또 죄송했습니다. 아, 이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데 주님,,,
어느날 집으로 전화가 왔습니다. 아주 오래전 옛 직장의 오너분이신데 꼭 좀 만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젠 80이 넘으신 분이 반갑게 맞아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자기 일을 좀 도와달라는 것입니다. 믿고 맡길 사람이 없으니 내일부터라도 나와서 일을 해달라는 거지요. 참 신기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젊은시절 한번 사업에 실패하고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
그 때도 예기치 못한 사고로 단칸 셋방에서마저 쫒겨나게 될 형편에 이 분이 전화가 와서 집과 직장을 준비해놓고 대구로 내려오라고 하셨거든요. 그리고 계속 그 직장에서 근무하다가 그런 일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이 분은 그간 제가 가끔씩 들리기도 하고 전화통화도 했지만 최근 몇년동안 너무 힘들어서 연락도 못드리고 이사도 하고 해서 저를 힘들게 찾으셨다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건강도 좋지않고 해서 꼭 좀 일을 맡아달라고 하셔서 두말없이^^ 다음 날부터 출근하겠다고 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사람에게 얘길했더니 아버지께서 또 일을 시작하시나보다고 그렇게 기뻐합디다 ㅎㅎ
년말이 되고 목사님께서 개척준비차 서울에 오신다는 연락을 받고 직장에 양해를 구하고 서울로 갔습니다. 가는 차 안에서도 쉴새없이 계속 세입자들과 은행직원들의 전화가 있어도 마음은 설랬습니다. 왜냐하면 그 며칠전 목사님 메일에 미국 사정이며 목사님이 심경을 담은 글들이 있어서 너무 마음이 아팠거든요. 그래서 무리를 해서라도 올라가서 목사님을 꼭 한번 안아주고 오고 싶었습니다. 나도 아프지만 내 형제가 그렇게 아프다는데 다른건 못해주지만 그냥 꼭 한번 안아주고 싶었거든요. cts에 도착해서 집회장소에 올라가자 회색 바바리를 입은 목사님이 앉아 계시더군요. 제가 다가가서 "강구만입니다" 하자 깜짝 놀라시면서 일어서서 왠 일이냐고 하시더군요. 제가 목사님 보고 싶어서 왔지요 그러곤 꼭 안아 드렸습니다. 그게 목사님과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집회장소엔 아는 얼굴들도 있었습니다. 예전에 ㅈ 장로건으로 전화가와서 수고비라고 생각하고 덮으라고 했던 그 집사도 있고 울산의 그 목사도 보이더군요. 집회가 끝나고 목사님과 예기할 시간도 없이 대구로 내려와야 했습니다. 그렇게 한해가 가고 새해를 맞으면서 서울 서머나 교회가 시작이 되고 저는 새로운 직장에서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살던 아파트도 정리를 하고 좀더 시골로 들어가게 되고 경매는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제가 새로 근무하게 된 직장에 출근하는 길에 보면 조그만 부동산 중개 사무실이 있었습니다.
지나다니면서 눈에 띈게 창문에 커다랗게 붙여논 사진들과 경매전문, 급한 부동산 매입이란 글이었습니다. 몇달 그냥 지나치다가 하루는 그냥 호기심에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조그만 사무실에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 한분이 앉아 계셨습니다. 그래서 별 기대도 없이 제 사정을 얘기하고 누구든 싸게 팔테니까 경매전에 매각이 되도록 부탁을 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기대는 하지 않았지요. 허가증에 있는 주민번호를 보니까 80이 넘으신 분이었거든요. 전국에 있는 부동산들이 많이 연락이 오긴 했지만 거의 경매가 정도에 거저 먹으려는 사람들 뿐이었습니다. 그러니 기대를 할 형편이 아니었지요. 그러고 한 한 달쯤 후에 그 분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꼭 얼마면 팔겠느냐는 겁니다. 그래도 실실 웃으면서 많이 받아 주시면 인사하겠습니다. 그러곤 끊었습니다. 또 며칠 후에 전화가 왔습니다. 만나자는 겁니다.
사무실로 찾아가니 어떤 분과 같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제 상가를 사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제서야 조금 심각해지더군요.
그렇게 이야기가 진행이 되고 며칠만에 바로 계약을 했습니다. 그렇게 큰 덩치의 상가를 며칠만에 계약을 하는 것도 그렇지만 그 금액이 더 놀라웠습니다. 사정을 알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금액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은 후 그 상가를 경매직전에 매각을 하고 나니 닭 좆던 개가 된 사람들이 제법 있더군요. 세상은 역시 세상이니까요. 날아갈 듯 기뻤습니다. 돈도 돈이지만 이건 틀림없이 아버지의 작업인 것 같았습니다. 적절한 때에 꼭 필요한 적당한 돈만 남겨주신거지요. 다 정리하고 나니까 겨우 집 한채 정도의 돈이 남았지만 그 액수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동행하시며 다스리시는 그 손길이 너무 따뜻했기 때문입니다. 너무 아픈 사랑이지만, 너무 낯선 사랑이지만 이젠 그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아버렸기에 다른 아무 것도 필요한 게 없었습니다. 사랑밖엔 난 몰라.. 그 사랑만 있으면 충분했습니다. 그 해 봄은 그렇게도 따뜻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의 칠곡집회 일정이 잡혀 있었습니다.
제단과 보좌라는 제목의 설교로 시작된 한국에서의 김성수 목사님의 진리의 선포는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로마서와 산상수훈을 통해 하늘의 보화들을 쏟아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마치 피를 토하듯 터져 나오는 진리의 말씀들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쫒기듯 한번의 설교가 거의 두 시간을 육박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 깊이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그러면서 가끔씩“내가 언제까지 여러분과 함께 있을 줄 아세요? 정신 차리고 잘 들으세요” “이렇게 열심히 떠들지만 저 혼자 구원받고 갑니다” 라고 수시로 회중을 향해 질타를 하기도 하셨지요. 그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합니다.
칠곡집회가 끝나고 목사님과 대화할 시간이 있었습니다. 앞으로의 목회방향과 교회 이야기등을 나누면서 제가 목사님께 교회에 관해 몇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모이면 그게 교횐데 좋은 교회 하려고 모이면 예수 믿기가 힘들지요...” 목사님이 무슨 뜻인지 아시고 그러셨지요. “저는 교회 할 마음 없습니다. 하려고 해서도 안되구요. 언제까진지는 모르지만 복음의 불모지에서 한 명에게라도 말씀만 열심히 전하고 가려고 합니다” 그 말씀이 너무 고마웠습니다.
대구 서머나 교회에도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어떻게 알고 오시는지 미 팔군에 근무하시는 교포분도 찾아오시고 중국에 거주하시는 분도 찾아 오셨습니다. 너무 귀하고 감사한 분들이지요. 오직 진리에, 말씀에 고파서 모인 분들이 이십여 명을 넘기 시작할 무렵 예배장소도 옮기고 동영상 설교를 위해 프로젝션도 구입을 했습니다. 아들 녀석이 번 돈으로 교회에 사들고 왔더군요. 힘든 가운데서도 빠지지 않고 예배에 참석하는 모습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어떨 땐 멀리 미국에서 일부러 저를 찾아주신 분도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김 목사님 설교를 듣게 되었는데 같이 나눌 사람이 전혀 없다는 겁니다. 교회에서도 왕따만 당하고 밖에서도 나눌 사람이 없어서 찾아 오신 겁니다. 친 형제 같았습니다. 아니 그 이상이었지요. 오랜 시간 얘길 나누진 못했지만 한 성령 안에서 같은 진리의 씨를 품은 지체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호주 뉴질랜드 일본 중국 캐나다 독일 세계 곳곳에 있는 형제들이 대구 서머나 카페로 모이고 말씀 안에서 그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이 땅에 이루어진 하나님 나라를 찬송했습니다. 제가 지금껏 섬겨온 그 어떤 교회보다도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주님이 모아주시고 주님이 함께 하시는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서울 서머나 교회도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고 목사님의 외부집회도 계속되었습니다.
그만큼 목사님의 지친 모습도 보였고 건강이 염려되기도 했습니다. 미국에서 나오시기 전부터 아는 지인에게서 목사님의 근황과 여러 가지 소문들을 듣고 목사님과 그간의 편지내용들도 있고 해서 내심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언제 한번 만나 위로도 해드리고 밥 한그릇 하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새로 일하게 된 직장과 대구 서머나 교회의 성도들을 챙기기에도 저의 힘은 역부족이었습니다. 인터넷으로 많은 분들이 저에게 질문도 해오고 지금까지 한국교회에서 들어 온 설교와는 출처가 다른 생소한 십자가 복음에 당황스러워 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뿐 아니라 목사님의 말씀에 시비를 거는 이들도 엄청 많았지요. 그들로 인해 목사님도 많은 상처를 입으신 것 같았습니다. 미국에서부터 시작된 그 어둠의 자식들의 훼방은 한국에서까지 그칠 줄을 몰랐으니까요. 그래서 그 말씀이 진짜요 더 귀한 것이지요. 마치 온 세상이 합심해서 달려드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계속되는 공격은 목사님께 심각한 내상을 입히고 말았습니다. 몇 편의 칼럼을 통해 그분의 절망과 아픔을 함께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목사님도 이젠 아시겠지요 왜 하나님께서 그 때 막아주시지 않으셨는지를... 그렇게 2012년이 저물어갔습니다.
2013년의 겨울은 유난히 추웠습니다. 따뜻한 남가주에서 오래 생활하시던 목사님에게는 아마도 안팎으로 혹독한 겨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나중에 목사님 사모님과의 긴 대화를 통해 그분이 얼마나 힘든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지요. 아, 그랬구나.. 그렇게 외로웠구나..다 털리고 돌아온 한국 땅에서조차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었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철저하게 마지막까지도 이 사람을 사랑하셨구나... 목사님 소천 후에 비오는 장마철에 만난 사모님과의 대화는 그 후에 몇 달간을 긴 상념에 빠지게 했습니다. 인간 김성수와 그 안에 담아 주신 진리의 말씀을 두고 긴 시간의 해석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늘의 진리가 한사람의 아들을 낳고 그 말씀이 그 사람을 끌고 가면서 이 땅에 남겨진 은혜의 궤적이었습니다. 아무도 자연인들은 이해할 수도 동의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동행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피로 사신’ 성도는 그렇게 하나님의 동행으로 인해 보이지 않는 궤적을 남기고 하나님 안으로 사라진 것입니다.
지난 구정 연휴 때 한통의 메일을 받았습니다.
생소한 이름이라 처음엔 몰랐는데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서울 서머나 오월 캠프 즈음에 어떤 분이 제 글을 퍼가서 비판을 한 목사님이 있었는데 그 분인 것 같았습니다. 그 글의 내용은 그 땐 제 글에 대해 오해를 했고 당시의 서머나 교회의 실정에 대해서도 몰라서 저에게 실수를 했다면서 제가 그 당시에 책망했던 그 시각이 옳았다는 것이지요. 사실 저는 그런 글이 있다는 얘기만 들었지 읽어보진 못했거든요. 그래서 그 목사님께 저는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염려마시라고 하면서 주께서 다스리시니까 함께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참 다행스러웠습니다. 그 동안 많은 오해도 받았었는데 한 사람이라도 오해가 풀렸다니 감사했습니다. 목사님 장례가 끝나자마자 시작된 여러 사건들은 정말 이해 불가한 일들이었지만 한편으론 당연한 사건들이기도 했습니다. 교회사에 보면 아주 드물게 하나님께서 그의 종들을 보내 진리의 복음을 전하게 하시는데 그 종들이 피 흘려 전한 복음은 이리 떼들에 의해 곧 다시 파묻혀 버린 것을 우리는 알기 때문입니다. 결국 주께서는 소수의 자기 아들들을 위해 한 사람의 인생을 희생시켜 가며 말씀을 전하게 하시고 그 사역이 끝나면 세상의 귀를 막아 버리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도 에베소 교회를 떠나면서 장로들에게 당부를 합니다. “내가 떠나면 바로 이리 떼들이 달려들텐데 나는 너희들을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에 맡기겠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전도는 미련하게도 인간들의 모든 가능성을 부정하고 티끌같은 인간들의 훼방 속에서 말씀이 스스로 찾아가는 아들들에게만 폭력적으로 뚫고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아직 교회가 있습니다. 피로사신 교회가 있습니다.
김성수라는 하나님의 종이 피를 토하며 전한 그 말씀에 양육 받는 그 아들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 아들들을 위해 아직 하늘엔 조명들이 그대로 있고 그 바통을 이어받아 십자가의 길을 가야하는 남은 자들이 오늘도 바벨론 길에서 목 베임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사랑하는 형제 김성수는 갔습니다. 그 아들을 너무 사랑하셔서 그렇게 아프게 동행하시던 하나님 안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말씀만 남았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으로 살아나는 사람과 그 말씀으로 심판받는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그 말씀으로 다 구원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를 향해 응원하고 있는 천상의 성도들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언젠가 그들과 얼싸 안으며 어린 양의 보좌 앞에서 함께 찬송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김성수를 사랑하고 진리를 사랑하며 그리스도 예수를 사랑하는 서머나 형제 여러분!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 우리 모두 그 자리에 꼭 함께 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바라노라” (롬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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