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강의

지옥하나님34-분리

아빠와 함께 2023. 10. 14. 10:47

[23 대구강의] 지옥의 하나님 34 - 분리

23,10,04 강의 : 이근호, 정리 : 구득영

* 성찬식과 세례식, 그리고 교회 !!

오늘은 교재 131페이지부터 하겠습니다. 여기에 보면 성찬식과 세례식이 나오는데,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보다 교회를 만들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것이 더욱 친근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찬식과 세례식이 과연 무슨 의미인지, 그것을 알아보자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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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찬식과 세례식에 합법화될 때 덩달아 그것을 주례하는 성직자의 권위는 하늘을 찌른다. 천주교처럼 성직자가 주동이 되어 움직이는 교회만이 참된 교회 조직이라고 주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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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식이라는 것은 여러분이 알다시피 예수님의 살과 피를 나누는 의식인데, 그것이 고린도전서 11장 23절에서 29절에 보면 나온다는 겁니다. 거기에서 뭐라고 합니까? 예수님의 살과 피를 나누는 의식이 있을 때, 그것이 교회가 된다고 한다는 말이죠.

(고전 11:23)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고전 11:24)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고전 11:25)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고전 11: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고전 11:27)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고전 11:28)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고전 11:29)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그러면 교회가 우선일까요? 예수님의 살과 피가 우선일까요? 예수님의 살과 피가 우선인데, 그러면 교인들은 왜 모이는고 하니, 예수님의 살과 피를 나누어야될 의무가 있기 때문에, 그래서 모였다는 겁니다. 즉 예수님의 살과 피가 교회의 중심이고, 그 나누는 현장이 바로 교회가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나누어지지 않으면 교회는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 일년에 몇 번을 해야 합니까? 여기 성경에서는 모일 때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나누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러면 여기서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생기게 되는데, 누가 주도적으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나누어주느냐는 겁니다. 예수님은 지금 보이지 않는데, 즉 예수님의 살도 보이지 않고 피도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죠.

* 교회는 없다 !!

그렇다면 서로 나누어준다고 했을 때, 즉 예수님의 살과 피를 'A' 라는 사람이 나누어준다고 했을 때, 또한 'B' 라는 사람이 나누어준다고 했을 때, 그리고 'C' 라는 사람이 나누어준다고 했을 때, 그러면 이 셋 중에서 어느 것이 진짜로 나누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예수님의 살과 피에 보이는 인간들이 개입하게 되었을 때, 그러면 이게 어떻게 됩니까? 여기에는 반드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데, 과연 그것을 우리 주님께서 몰랐을까요? 그럴 리가 없는데, 주님께서 모르실 리가 없다는 말이죠.

그렇다면 'A' 라는 사람이 나누어주면서 교회라고 하고, 또한 'B' 라는 사람이 나누어주면서 교회라고 하고, 그리고 'C' 라는 사람이 나누어주면서 교회라고 했을 때, 그러면 어느 것이 과연 진짜 교회냐는 겁니다. 서로 각자가 예수님의 살과 피를 나누어준다고 한다는 말이죠.

여기에 대한 정답은 무엇인고 하니, "눈에 보이는 인간이 개입하는 순간 교회는 없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A도 아니고 B도 아니고 C도 아니라는 것인데, 즉 교회 자체가 없다는 것이죠. 그렇게 눈에 보이는 세계에서는 "교회는 없다" 라고 할 수가 있는데, 그러니 눈이 보이는 세계에서 "교회가 있다" 라고 한다면, 그것은 항상 가짜가 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주님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면, 주님의 살과 피를 나누는 인간들도 눈에 보여야 할까요? 보이지 않아야 할까요? 상당히 재미가 있는 질문인데 말이죠.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님의 살과 피라고 하면, 그러면 그것은 인간의 살과 피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지요?

* 벌거벗은 임금님 !!

'벌거벗은 임금님' 이라는 동화를 다들 알지 싶은데, 도대체 임금의 옷이 얼마짜리인가요? 누가 만들었습니까? 그 동화가 아주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데 말이죠. 임금님의 옷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는데, 그런데 그 옷을 임금님이 입었다고 착각하는 순간, 그 신하들은 그 옷을 아주 고가로 취급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눈에 보이는 인간들의 한계이기도 한데,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해서 그야말로 울며 겨자를 먹기 식으로, 임금님이 사기를 치면 신하들도 같이 사기를 칠 수밖에 없는 입장에 놓여있다는 말이죠. 그렇게 인간들은 한 통속으로 묶여져 있다는 겁니다.

* 진실은 거짓의 보디가드가 필요하다 !!

보인다고 하는 것, 이 보이는 것이 왜 나타나야 하는고 하니, 초반부터 중요한 문장이 하나 나가는데 말이죠. 그게 무엇인고 하니, "진실은 너무 진실이기에 거짓이라는 보디가드가 필요하다" 라는 겁니다. 진실된 보디가드가 아니라 거짓된 보디가드가 필요하다는 것인데, 즉 진실은 진실이 아니라 거짓에 둘러 쌓이게 될 때 비로소 진실은 나오게 된다는 말이죠.

이것을 구원에 대입해보면, "구원은 너무나도 귀하기 때문에 반드시 구원은 가짜 구원을 대동하면서 등장한다" 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 자신을 진짜로 여기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죠. 그런데 예수님이 살과 피를 흘리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 십자가는 살인사건 !!

인간들이 자기가 진짜라고 여기기 때문에 생겨난 난리인데, 그래서 생긴 사건이 바로 십자가 사건이라는 겁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 어떻게 굉장히 멋있어 보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거기에서 그만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다는 것이죠.

그러면 그 살인사건에 해당되는 인간들이 어떤 인간들입니까? 이 세상 이방나라의 인간들이 아니고, 즉 이방인들이 아니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유대인들이었다는 겁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믿는 자들과의 만남에 있어서 그만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는 말이죠.

그러면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을 믿었다고 여겼기 때문에, 자기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여겼을까요? 받지 않았다고 여겼을까요? 당연히 받았다고 여겼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구원을 인간들은 어떻게 하는고 하니, 눈에 보이는 '나' 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내가 구원을 받았다" 라고, 그렇게 확인이 가능하다는 말이죠.

* 거울아, 거울아, 누가 구원을 받았지?

그래서 집에서 거울을 보면서 "거울아, 거울아, 누가 구원을 받았지?" 라고 하면, "당신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라고 하는데, 그렇게 백설공주에 나오는 거울에 비치는 모습처럼 자기 구원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인간들의 대표자가 바로 유대인들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율법을 지키고, 안식일을 지키고, 그리고 할례를 행하고, 그렇게 성경말씀에서 시키는 대로 모두 다 했을 때, 거기에 대한 최종결론은 무엇인고 하니까, 그것이 바로 "나는 구원을 받았다" 라는 것인데, 그게 바로 유대인들이라는 말이죠.

그러니 처음부터 자기가 구원을 받기를 원했고, 그래서 거기에 필요한 자료와 정보를 성경에서 채택을 했고, 그래서 자기가 기대했던 대로 성경을 통해서 나온 결론이 무엇인고 하니, 그것이 바로 "나는 구원을 받았다" 라는 겁니다. 그리고 거기에 무엇까지도 추가를 하는고 하니, 예수님의 살과 피까지 동원해서, 성경에서 '하라' 라고 하니, 모일 때마다 살을 피를 나누었다는 겁니다.

* 눈에 보이는, 카스테라와 포도주스 !!

그런데 그 살과 피가 카스테라와 포도주스인데, 그렇다면 그것은 눈에 보입니까? 보이지 않습니까? 눈에 보인다는 말이죠. 그러면서 나누어주는 사람이 이상한 복장을 하고서 사람들을 나오라고 해서 어떻게 합니까? 물론 천주교는 카스테라가 아니고 비스켓인데, 입을 벌리라고 해서 직접 넣어준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합니까? "이것으로 우리는 고린도전서 11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나눈 것으로 합시다. 그러면 다들 되었지요? 동의하지요? 그러면 그것을 누가 나누어주었습니까? 사탄이 아닌 신부가 나누어주었지요? 그러니 우리는 구원받은 성당입니다. 이제 안녕히 돌아가세요"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그러니 일종의 구원을 찍어내는 공장이라고나 할까요? 이것은 매우 부드러운 표현이고, 노골적으로 말하면 사기꾼들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교회가 교회가 아니고 사기꾼들의 집합장소라는 말이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왜 눈에 보이는 인간들이 다루느냐는 겁니다. 벌써부터 사기꾼들의 냄새가 풍겨온다는 것이죠.

* 인간의 살갗이 살짝 벗겨지면서 !!

어제 설교시간에 귀신들린 자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그것은 인간의 살갗이 살짝 벗겨져서 인간의 내부가 드러난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는 겁니다. 인간들이 귀신에 들렸는지 들리지 않았는지, 그것을 어떻게 파악을 할 수 있는고 하니, 입에 개 거품을 물면 귀신에 들린 겁니까?

그렇다고 하면 그렇게 공부를 많이 하고 예의 바르고 점잔하기로 소문이 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사두개인들, 그들의 아버지가 악마라는 것을 인간의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과연 어떻게 증명할 수가 있을까요? 분명히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고 뭐라고 하셨습니까? "너희 아비는 악마다" 라고 하셨다는 말이죠.

이게 제가 그들에게 무슨 억한 감정이 있어서 지어낸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이라는 겁니다(ㅋㅋ). 그들이 마귀의 앞잡이로서 마귀가 시키는 대로 다 했다는 것인데, 그러면 그것을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어떻게 증명을 할 수 있느냐는 말이죠.

(요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 개 거품을 입에 문 '나' !!

개 거품을 입에 무는 자에게서 귀신을 뽑아내니 멀쩡하게 된 것은 성경에 나오니, 그것은 그렇게 확인이 된다고 치고, 그러면 그것보다 더 독한 마귀가 나올 때는 그것을 무엇으로 증명하느냐는 겁니다. 그게 증명이 됩니까? 증명이 되지를 않는데, 그러니 증명을 하겠다는 시도 자체가 곧 가짜임을 의미한다는 말이죠.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데, 그것은 우리 자신이 이미 주님에 대해서 알 수 없는 자이고, 또한 그렇게 주님에 대해서 알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자기가 귀신이 들렸는지를 단정지을 수 없는데, 우리는 그런 상태로 이 땅에 "생일 축하합니다" 라고 하면서 태어났다는 겁니다. '나' 라는 존재가 그러하다는 말이죠.

* 사기의 끝은 어디인가?

그러니 인간들이 성찬식을 통해서 억지를 부리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억지가 억지를 낳는다는 겁니다. 논리적 억지가 논리적 억지를 낳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그렇게 모두가 사기를 치고 있는 것이 이 세상의 실상인데, 그것을 오늘 이 시간에 들추어내어 보자는 겁니다. 도대체 그 사기의 끝은 어디이냐는 말이죠.

성만찬을 하는데 있어서, 왜 교회의 사찰이 떡을 나누어주면 안 되는 겁니까? 목사의 DNA와 사찰의 DNA가 달라서 그런가요? 사찰 집사님을 요즘은 교회 관리인이라고 하는데 말이죠. 주차관리를 하다가 떡을 나누어주면 안 되고, 왜 목사가 까운을 입고 나누어주어야 하느냐는 겁니다.

그렇게 해야만 하는 행정적인 정당성이 있느냐는 것인데, 그런 것은 없다는 말이죠. 그러면 없는데 왜 그렇게 할까요? 사람들이 다들 나서서 그렇게 하면 행정적인 질서가 사라져서 그렇게 하는 겁니까? 질서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런 것인가요? 과연 그렇습니까?

* 하나님까지 보는 인간 !!

여기에는 더 근원적인 문제가 있는데, 그것을 성경전체에서는 뭐라고 하는고 하니, 여기에 '나'가 있다고 하면, 그러면 인간은 두 개를 보는데, 인간은 그냥 '나'가 있는 것이 아니고 '너'를 본다는 겁니다. 즉 "나는를 본다" 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면 성경은 여기에 대해서 뭐라고 합니까? 하나를 더 추가하는데,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아는데, 즉 인간은 하나님까지 본다는 말이죠.

그런데 '나' 라는 인간 속에는 인간이 다룰 수 없는 초월적 존재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마귀라는 겁니다. 창세기 3장에 그게 나오는데, 이미 인간 속에 초월적 존재가 들어왔다는 말이죠. 그런데 로마서 5장에서는 그것을 마귀라고 표현하지 않고 라고 한다는 겁니다.

* 죄의 왕 노릇 !!

그 죄가 인간은 지배하는데, 그럴 때 그 관계가 어떤 관계인고 하니, '왕 노릇'을 한다는 말이죠. 그러면 죄가 나쁜 짓을 하고 교도소에 간 사람에게 왕 노릇을 합니까? 점잖고 훌륭한 사람들에게까지도 왕 노릇을 합니까? 모두에게 다 죄가 왕 노릇을 한다는 겁니다. 그게 로마서 5장에 나오는데, 특정한 인간이 아니고 아담에게 속한 모든 인간이라는 겁니다.

(롬 5: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그러면 다시 묻겠는데, 죄가 나이가 40이 된 사람을 지배합니까? 70이 된 사람을 지배합니까? 그것은 구분이 없는 '모든' 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이제 갓 태어난 아기에게 죄가 왕 노릇을 할까요? 하지 않을까요? 왕 노릇을 한다는 말이죠. 그런데 왜 천주교에서는 방금 갓 태어난 아기에게는 죄가 없다고 하느냐는 겁니다.

그 어떤 인간도 죄가 왕 노릇을 하는 상태에서 태어나는데,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고 하니, 그래서 시편 51편에 보면 다윗이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라고 한다는 말이죠. 다윗은 알았지만 진화론의 창시자인 다윈은 이것을 몰랐는데, 원숭이에서 인간이 되었다고 한다는 겁니다.

(시 51:5)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그야말로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는데, 그런데 모든 과학 교과서에는 다 이런 진화론을 수용하고 있는데, 과학은 진실을 표명한다는 말이죠. 여기서 조금 전에 했던 것을 다시 해보면, "진실은 거짓을 동반하면서 나타난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거짓을 보디가드로 삼는다는 말이죠.

* 거짓을 동반하지 않은 진실은 없어 !!

그러니 인간이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거짓에 접근하는 방식이어야 하는데, 다른 방식으로는 진실에 접근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렇게 거짓된 인간이 거짓된 진실에 접근하면서, 그런데 여기서 주님이 개입하지 않으면 잘리게 된다는 말이죠.

여기서 인간이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죄가 왕 노릇을 하는 상태에서는 보는 것인데, 그러니 그것은 우상이라는 겁니다. 그게 인간세계에서는 하나님이고 신이라는 말이죠. 유대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는데, 자기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에 여호와의 아들이라고 여겼다는 겁니다.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가 출애굽기 4장에 나오는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은 내 아들이라" 라고 하셨다는 말이죠.

(출 4:22)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그리고 사무엘하 7장 1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뭐라고 하십니까? "내 아들을 너희에게 왕으로 주겠다" 라고, 그렇게 다윗에게 약속을 하셨다는 겁니다. 즉 하나님께서 "내가 친히 내 아들을 왕으로 삼아서 훈계할 것이다" 라고 하셨다는 말이죠.

(삼하 7:14)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그것을 본 유대인들이 어떻게 나옵니까? 그게 자기들의 과거인데, 그래서 문자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아들 집단이 맞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성경에 그렇게 기록이 되어있으니 동의를 한다는 겁니다.

* 할례와 안식일 !!

그러면 이방인들은 어떻게 됩니까? 그들은 그것도 역시 성경에서 찾는데, 그들은 원래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데 아들이 될 수 있는 조건을 성경에서 2개 주었다고 한다는 말이죠. 첫 번째는 유월절 날에 할례를 행하면 된다는 것이고, 그리고 두 번째는 에스겔서와 예레미야서에 나오는 것으로, 안식일을 지키면 된다는 겁니다.

이것을 오늘날 안식교에서 주장하는데, 과거에 이상구 박사가 몸담았던 안식교에서 말이죠. 그 양반이 지금은 개신교로 넘어와서 안식교를 반대하는 운동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 안식일을 빼면 안 된다는 것인데, 그게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의 주장이라는 말이죠.

그래서 그들은 토요일은 놀고 일요일에는 일을 하는데, 자기들이 천국에 가는 목숨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양보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유대인들이 해왔던 짓인데, 심지어 그들은 예수님도 안식일을 지켜서 죽었다고 한다는 말이죠. 토요일은 쉬고 일요일에 부활했다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마귀의 자식들이기 때문에 그러하다는 겁니다.

* 거짓된 구원욕구 !!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예수님을 누가 죽였습니까? 철저하게 율법에 순종한 자들이 죽였는데, 우리가 그런 유대인들을 보고 욕을 할 수가 없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하는 짓들이라는 말이죠. 그들을 성경을 보듯이 우리도 성경을 보는데, 그러면서 우리는 무엇을 원합니까? 구원받기를 원하고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들도 역시 성경을 보면서 구원받기를 원했다는 것이죠. 그러니 구원이라는 진실은 거짓된 구원욕구에 의해서 접근하게 된다는 겁니다. 거짓된 구원욕구에 의해서 말이죠. "듣기는 들어도, 보기는 보아도 깨닫지 못한다" 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데, 심지어 제자들도 전혀 몰랐다는 겁니다.

* 주께서 너희들에게 알게 해주신다 !!

"내가 쉽게 해줄게. - 감사합니다. - 씨뿌리는 비유를 이야기해줄게. - 참 쉽다" 라고, 그렇게 되었지만 막상 제자들은 그 의미를 몰랐다는 것이죠. 듣기는 들어도 몰랐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저희는 몰라도 너희는 안다" 라고 하셨는데, 그런데 몰랐다는 겁니다. 이것은 무엇인고 하니, "주께서 너희들에게 알게 해주신다" 라고 하는 의미라는 말이죠.

(마 13:13)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마 13:14)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마 13: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 함이라 하였느니라
(마 13:16)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다시 말해서, 제자들은 거짓인데, 그런데 거짓에서 진실로 가는 통로는 어떻다는 겁니까? 주님께서 "내가 너희들에게 일방적으로 은혜를 주고 성령을 주어야 한다" 라는 것인데, 그렇게 되어야 거짓에서 진실로 바꾸어지면서, 거기서 무엇이 드러나는고 하니, '나' 라는 것이 죄의 왕 노릇을 하는 거짓 자체였음이 드러나게 된다는 겁니다.

* 진실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

왜냐하면 사탄은 거짓의 영이기 때문인데, 그 거짓 영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을 예수님의 12제들은 비로소 알게 되었다는 말이죠. 그러면 그때부터 어떻게 되는고 하니까, 모든 진실을 다 알게 되는데, 즉 모든 진실은 예수님의 살과 피에 함축되어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겁니다.

물론 진실이 무엇인지 그 내용은 모르는데, 다만 "내가 끄집어낸 모든 것은 거짓이다" 라는 것, 그것은 알게 되었다는 말이죠. 즉 "나는 거짓이다" 라고 해준 것, 그것이 곧 진실이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진실은 무엇인고 하니, "천국은 이렇습니다" 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진실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거짓된 나를 대체한 분입니다" 라는 것인데, 그러면 성령을 받은 사람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어떻게 스케줄을 잘 짜서 이 세상을 보다 더 요령이 있게 살아갈 것인지, 성령을 받은 자에게는 그런 것이 전혀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때그때마다 주님께서 일을 시키시니 말이죠.

그러면 여기서 나오는 공식이 무엇인고 하니, "나의 일은 없고 모든 것이 주님의 일이다" 라는 것인데, 우리가 아침에 밥을 먹은 것도 다 주님의 일이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자기 일은 없으니 말이죠. 자기에게 어떤 사건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은 자기 사건이 아니고, 주님께서 해결했음을 알려주기 위한 사건이라는 겁니다. 계속해서 자기 일은 없고 모든 것이 주님의 일이라는 말이죠.

* 주께서는 나의 구원을 막고 구원을 주신다 !!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주께서는 나의 구원을 막고 구원을 주신다" 라고 할 수가 있는데, 이 정도는 여러분도 이제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싶은데, 그렇지요? 즉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이것을 하겠습니다" 라고 하는 것을 막고, 주님께서는 자신의 살과 피를 주신다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인데, 그러면 인간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 한 것이 무엇입니까? 성경을 보는데, 그래서 2,000년 동안 인간들이 한 것, 그것이 바로 모일 때마가 떡을 떼고 포도주를 나눈 것이란 말이죠. 그런데 바로 그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물론 그것은 주께서 알게 해주신 것인데, 그런 자가 바로 구원을 받은 자라는 겁니다.

그러니 진짜 살과 피

보이는 인간이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하는 모든 일이 다 거짓이라는 것을 드러내면서 새롭게 느껴지는 예수님의 살과 피,

그것이 바로 눈에 보이는 인간이 다루는 살과 피가 아니고, 주님이 다루시는 살과 피라는 말이죠.

따라서 우리 인간은 무엇이라도 해야하는데, 무엇을 해야합니까? 거짓인 줄 알면서도 거짓을 할 수밖에 없는데, 왜냐하면 거짓의 보디가드까지는 가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세상적으로 보면 자기 일에 열심인 사람을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이번 아시안 게임에서 신유빈이 얼마나 열심히 탁구를 치는데 모르는데, 물론 지기는 했지만 말이죠.

* 늙어서 죽을 때까지 열심히 일해야 !!

왜냐하면 그렇게 열심히 해야 새로운 의미의 무의미를 느껴진다는 겁니다. 이것은 "무의미한 짓을 왜 하는가?" 라고 할 문제가 아니고, 그런 것은 자기가 무의한 짓을 해서 구원을 받겠다고 하는, 즉 유의미한 존재가 되겠다고 하는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자기가 하는 일에 열심을 다해서 매진함으로서 깨지고 하는데, 그래서 열심히 운전해서 차가 부서지고 한다는 겁니다(ㅋㅋ). 그래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는데,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이 몸을 이런 쓸데없는 것에 낭비를 하다니?" 라고 하게 된다는 말이죠. (녹취 구 -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가 많이 아파서 어제 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를 못했는데, 목사님은 정말 타고난 부채도사십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이 그것 외에 달리 할 일이 있습니까? 없는데, 그래서 그것만 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이 주님이 시킨 거짓이라는 말이죠.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는데, 백날을 하면서도 의미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제 낮 시간에 "인간은 패턴대로 사는데, 거기서 무의미가 나온다" 라고 했다는 말이죠.

그래서 열심히 하는데, 그래서 나이가 80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대통령에 나오겠다고 한다는 겁니다. 바이든이라고(ㅋㅋ), 할 사람은 자기밖에 없다고 하면서 또 하려고 하는데,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이죠. 그런데 그 사람은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에 매진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것은 죄가 왕 노릇을 하는 세상적인 관점에서는 존경스럽기까지 하다는 말이죠. 미리 복음을 알아서 헛된 일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어느 정도로 무의미한 존재인가를 알기 위해서 몸이 부서지라고 늙어서 죽을 때까지 일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 인간은 항상 자기 거울을 가지고 !!

그러면 "내가 너를 본다" 라고 했을 때, 여기서 '너' 라는 것은 "내가 있음을 너에게 비춘다" 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너' 라는 것이 호수의 표면이라고 할까요? 그러면 그 호수 표면에서 남이 아니고 자기 얼굴이 다시 반사가 된다는 것이죠. 즉 "내가 되비쳐 나오는 이미지가 바로 나다" 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비쳐집니까? 그것이 타인인데, 누구를 만나야 한다는 말이죠. 나이가 많은 부부가 한 사람이 죽으면 나머지 한 사람도 오래 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자기 거울이 깨어졌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죽은 사람보다 살아있는 배우자가 더 우는데, 물론 죽은 자는 울 수도 없지만 말이죠.

자기를 비쳐주는 거울이 깨어졌다는 것인데, 이 거울의 특징은 만만하다는 겁니다. 자기가 만만하게 대했던 그 거울이 깨어지게 되면, 그것을 대신해줄 만만한 거울을 이제는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죠. 물론 예외적으로 남편이 돈이 많은데 아내가 죽었다고 하면, 그러면 그 뒤에는 막장 드라마가 펼쳐진다는 겁니다. 돈이 있으니 자기에게 충성할 수 있는 거울을 구하려고 한다는 말이죠.

이처럼 인간은 자기 거울이 없으면 자기가 규정되지 않는데, 누가 뭐라고 해도 자기는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즉 "찐짜로 내가 여기 있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물론 모든 의미는 타인을 통해서 주어지지만, 그 의미는 항상 자기에게로 모아져야 한다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죄가 왕 노릇을 하는 이 세상의 모습이라는 말이죠.

* 인간은 마귀의 판박이 !!

그러면 이것은 누구를 닮아서 그렇습니까? 인간 속에 '훅' 들어온 마귀를 닮았다는 겁니다. 아프리카의 밀림에 가면 벌레를 잡는 식물이 있다고 하는데, 가만히 기다리고 있다가 벌레가 오면 '훅' 잡는다는 말이죠. 바로 마귀가 이 짓을 하고 있는데, 즉 세상적인 미끼를 던지고 걸려들면 '훅' 잡아버린다는 겁니다. 그래서 세상을 '훅', 이 한 글자로 요약할 수 있는데, 모든 인간은 다 그렇다는 말이죠.

그러면서 인간은 선악을 알게 되는데, 그런데 이 선악은 확인이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선과 악을 계속해서 공존하면서 통합이 되지 않는데, 그것을 통합시킬 수 있는 것은 생명나무밖에 없다는 말이죠. 선과 악으로 늘 분리가 되어있다는 겁니다.

그것을 합칠 수 있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는데, 그런데 인간은 심판주가 아니고 오히려 심판의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선과 악을 알아버려서, 이게 감당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죠. 선과 악을 통합해서 선고를 내리는 인간 자체가, 그게 선이든 악이든 한 쪽에 속해야 하는데, 물론 인간은 악은 되기 싫고 선이 되고자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악이 미흡점이 되어서 계속해서 자기를 따라온다는 말이죠.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을 찾음으로서, 선과 악으로 분리된 자기 자신을 선이 되도록 시도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 하나님이 바로 유대인들이 믿었던 하나님인데, 즉 마귀라는 말이죠. 유대인들이 믿었다는 것은 인간들이 모두 그러하다는 것인데, 그게 바로 우상적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 떠날 수가 없었던, 간음한 여인 !!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유대인들은 이 선악의 문제를 가지고 시비를 걸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간음한 여인 사건이라는 말이죠. "이 아줌마야, 너는 걸렸어. 너는 누가 뭐라고 해도, 하나님이 온다고 해도 너는 죽었어"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자기들이 하나님을 대신한다고 여겼는데,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간은 선악을 몰라야 한다고 했지만 인간은 이미 알아버렸다는 말이죠. 거기에 율법까지 주어지니, 그 율법을 가지고 선악의 규정에 나서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 율법에 보니 "간음한 자는 죽여라" 라고 하니, 그래서 죽이려고 한다는 말이죠.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마귀의 특징이 '훅' 치고 들어오는 것인데, 그래서 완전히 박살을 내버린다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죄 없는 자가 돌로 쳐라" 라고 하셨는데, 그러자 그들은 왜 "내가 치겠다" 라고 나서지를 못하느냐는 말이죠. "나는 이 여자를 심판하려고 왔다" 라고 왜 말을 하지 못하느냐는 겁니다. 왜 예수님으로부터 슬금슬금 도망을 치느냐는 말이죠.

그것은 바로 '죄 없음'이 되지 않기 때문인데, 도대체 주님이 무슨 일을 하셨기에 그들의 처음의 기세등등함이 사라졌느냐는 겁니다. 어떻게 자기들의 죄 없음이 아니라는 것을 발각 당했느냐는 말이죠. 예수님이 땅에 글을 썼는데, "3번 손님, 응? 4번 손님, 응?", 그렇게 별 말씀도 하지 않았는데 그들은 그만 가버리고 말았다는 겁니다.

(요 8:6) 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요 8:7)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요 8:8) 다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요 8:9)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그런데 주님의 마지막 손님이 누구인고 하니, 그게 바로 간음한 여인이라는 말이죠. 그런데 그 여인은 예수님으로부터 떠나갈 수가 없었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강의에서 제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부분인데, 그 어려운 것을 지금부터 한번 해보자는 말이죠.

* 분리 !!

그것은 바로 '분리' 라는 것인데, 인간은 마귀와 분리가 될 수 없는데, 그것은 바로 마귀가 왕 노릇을 하기 때문이란 겁니다. 우리 인간은 자기가 왕이 아닌데, 그래서 자유의지와 자율성은 없다는 말이죠. 그런데 마귀 자체가 하나님 앞에서 그 자율성을 주장하면서 예수님과 한판 붙었다는 겁니다. 즉 하늘나라에서 전쟁이 있었다는 것이죠.

요한계시록 12장에 보면 악마가 자기 졸개들을 데리고, 그것이 귀신들인데, 그것을 7절에서는 '용과 그의 사자들' 이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들이 이 땅에 쫓겨서 내려오게 되었는데, 그들이 이 땅에 떠도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 속에 들어갔다는 말이죠.

(계 12:7)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계 12:8)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계 12:9)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

* 누가 분리시킬 수 있는가?

그렇게 들어옴으로서 죄가, 즉 마귀가 왕이 되었는데, 그러니 인간들이 아무리 성경말씀을 보고 해도 우리 인간들 속에 들어있는 마귀와 분리가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면 분리를 시킬 수 있는 분은 어떤 분이고 하니, 장차 마귀를 십자가에서 이기신 분, 그분만이 먼저 오셔서 분리를 시킬 수 있다는 말이죠.

간음한 아줌마, 그리고 그 아줌마를 잡아온 유대인들, 그것은 주님의 의해서 분리가 되었는데, 그런데 그것은 그 여자를 구원하기 위해서 분리를 시킨 것이 아니고, 그 여자에게 예수님이 하신 일을 집어넣기 위해서 분리를 시켰다는 겁니다. 그 일이 무엇인고 하니까, "나는 이 땅에 죄사함을 주러왔다" 라고 하는, 그것이란 말이죠.

* 중풍병에 걸린 것이 행운 !!

마태복음 9장에 중풍병자가 나오는데, 그가 죄사함을 받으려고 지붕을 뚫고 들어온 것이 아니고 중풍병을 낫게 하기 위함인데, 하지만 중풍병이 낫는다고 해서 마귀와 분리가 될까요? 그렇지 않다는 말이죠. 그러니 교회에 나와서 "병이 낫게 해주세요. 가정이 화목하게 해주세요" 라고 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는 겁니다.

설령 그렇게 되었다고 치더라도, 자기가 병에서 낫고 가정이 화목하게 된다고 하면, 그러면 자기 속에서 죄가 분리되고 악마가 분리가 되느냐는 말이죠. 전혀 그렇지 않은데,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들이 나를 보고 시도하는 것이 거짓이다" 라고 하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거짓이더라고 오라고 하시는데, 그러면 그 사람은 중풍병에 걸린 것이 오히려 행운이라는 말이죠. 중풍병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지붕을 뚫을 일도 없고, 그러면 예수님을 찾아올 일도 없었는데, 그렇지요? 그러니 예수님을 찾아와서는, 자기가 원하지 않았던 것을 되받아간다는 겁니다.

인간이 상대방을 찾을 때는, "내가 기대했던 원하고자 할 때 너를 찾는다" 라는 것인데, 하나의 거울처럼 말이죠. 그렇게 인간은 또 하나님을 찾으면서 완전한 선악의 통일을 얻고자 했는데, 그것을 주님께서는 마귀로부터 왔다고 하셨고, 로마서 5장에서는 "죄가 왕 노릇을 한다" 라고 했다는 겁니다.

여기서 로마서 5장을 찾아보겠는데, 12절에서 14절입니다.

(롬 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롬 5: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롬 5: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여기 14절에서,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라고 하는데, 즉 죄를 마귀가 지배하고 있었다는 말이죠. 그러면 예수님의 할 일은 무엇인고 하니, 그 사람에게서 죄사함을 해줌으로서, 더 이상 악마가, 일곱 귀신이 그 사람에게 관여하지 못하게 떼어내는 작업을 하시는 것인데, 그 일을 하시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이 땅에 오셨다는 겁니다.

인간은 할 수가 없는데, 그러니 인간이 거짓되어야 한다는 말이죠. 즉 "나는 거짓되고 죄의 종이다" 라는 것을 인정하는 태도, 즉 "나는 무엇을 하든지 간에 죄밖에는 나올 것이 없다" 라는 것을 인정하게 될 때, 그런 사람을 두고 '성도' 라고 한다는 겁니다.

* 계속해서 토해내는 '교회' !!

왜냐하면 자기는 그 어떤 것을 하더라도 죄밖에 없다는 것인데, 심지어 "내가 예수님을 믿는 것도 죄입니다" 라고 하게 된다는 말이죠. 그럴 때 천사나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합니까? "아니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구원을 받았지요?" 라고 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럴 때, 그것이 "예수님의 살과 피가 구원을 받게 주었다" 라고 해서, 그 사람이 성찬식 때 무엇을 먹는 게 아니고, 이미 주님께서 그 사람에게 살과 피를 먹기 전에 집어넣었다는 것을 계속해서 토해내도록 하는 방식, 그것을 '교회' 라고 한다는 말이죠.

'기념한다' 라는 것은 이미 자기 속에 살과 피가 들어있다는 것인데, 그런데 그것이 바깥으로 드러날 때는 자기의 오류와 거짓을 통해서 드러난다는 겁니다. 자기가 무엇을 하든지 간에 말이죠. 그러니 우리는 신이 나는데, "살과 피를 드러내기 위해서 오늘도 나는 죄를 반복해서 지었다" 라고 하는 진리, 이것은 이 세상이 알지 못하는 것인데, 너무나도 신기하다는 겁니다.

* 초능력이 아닌 초월 !!

이것은 기존의 초월이 아니고 새로운 초월이라는 말이죠. 초월은 초능력이 아닌데, 지금부터는 이것을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서 설명해보자는 겁니다. 사람들은 교회에 와서 초능력을 원하지만, 주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네가 죄사함을 받은 것이 초능력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너 같은 인간이 천국에 가겠느냐?" 라고 하신다는 말이죠.

누군가가 와서 떼어주어야 하는데, 그러면 또 붙어있고, 그러면 거기에 살과 피가 계속 작동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살과 피가 작동하도록 해주신 분이 누구인고 하니, 성령이라는 말이죠. 성령은 십자가를 반복해서 보여주는데, 왜냐하면 인간이 하는 짓은 다 거짓이라는 겁니다. 그게 육신이라는 말이죠.

* 이스라엘은 인류의 축소판 !!

이 '분리' 라는 것이 이스라엘을 통해서 알려지는데, 여기서 이스라엘은 모든 인류의 삶의 축소판이라는 겁니다. 그 이스라엘을 통해서 "인간은 땅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라는 것이 드러나는데, 그것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간은 물이 없이는 살 수 없고 양식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말이죠. 그리고 그게 인간의 본성으로 자리를 잡는다는 겁니다.

그러니 인간의 본성은, "인간은 땅이 있고 물이 있고 양식이 있으면 산다" 라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인간의 한계라는 말이죠. 인간은 진리에는 관심이 없는데, 왜냐하면 자기가 곧 진리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마귀가 그렇게 가르쳤다는 말이죠.

그래서 인간은 땅이 있고 물이 있고 양식이 있으면 사는데, 그러면 인간이 신을 믿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신이 좋아서 믿는 것이 아니고, 어제도 그런 이야기를 했지만, 자기 영광과 신의 영광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비중이 크냐는 겁니다. 인간은 자기 영광이 세다는 말이죠.

이것은 아이들도 다 아는 것인데, "7과 5 중에서 어느 것이 더 큽니까?" 라고 하면, 당연히 "예, 7이 더 큽니다" 라고 하는데, 그러면 "나의 영광과 주님의 영광 중에서 어느 것이 더 큽니까?" 라고 하면, 물론 지식으로는 주의 영광인데, 그런데 그것을 하나로 절차로 해서 "주님께 영광을 돌렸으니 이제 나의 영광이다" 라고 나온다는 겁니다.

그러니 '나' 라는 것은, '너', 그리고 '초월적 하나님', 그 모든 것은 어디로 초점이 모이는고 하니까, "나를 위해서 네가 있고, 나를 위해서 하나님이 있다" 라고, 그렇게 본다는 말이죠.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하시는고 하니, 그 '나'를 분리시키는데, '육신의 나'와 '없음'으로 분리를 시킨다는 겁니다.

* 예수님이 죽은 존재이기 때문에 !!

오늘 강의의 핵심은 이것인데, 즉 "주님이 나를 없는 존재로 만든다" 라는 것인데, 그러면 왜 그렇게 없는 존재, 즉 죽은 존재로 만드는고 하니, 예수님이 죽은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말이죠. 예수님께서 죽은 존재가 되었기에, 예수님처럼 죽은 존재가 될 경우에만 우리는 진리를 알 수 있다는 겁니다.

인간이 죽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나'와 '너' 라는 것에서, 그 모든 의미가 자기에게 쏠리기 때문에, 그래서 그 '나'를 없애야 한다는 말이죠. 이 '나'를 분리시키면, '옛날의 나' '없음'으로 나누어진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 '나'는 오류를 범하는데, 즉 항상 거짓이라는 말이죠.

그렇게 거짓으로 갔다가, 옛날에 성령을 받지 않았을 때는 그냥 '나'에게로 돌아왔는데, 그런데 성령을 받고 난 이후에는 자기 속에 있는 '없음'으로 돌아온다는 겁니다. 그러면 왜 이것을 없음으로 하는고 하니,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인데, 즉 "눈에 보이지 않는 없음이 나의 새로운 왕으로 등극한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그것이 로마서 5장에 나오는데, 과거에는 죄가 왕 노릇을 했는데, 하지만 이제는 죄가 아니라 의가 왕 노릇을 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기존의 선악을 통해서는 결단코 이 의가 주어지지를 않는데, 왜냐하면 선악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곧 죄라는 말이죠.

(롬 5:17)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 늘어선 생명나무 !!

그런데 선악나무가 아닌 다른 나무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생명나무이고, 그 생명나무가 왕 노릇을 한다는 겁니다. 그 세계를 두고 천국이라고 하는데, 즉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이죠. 그래서 요한계시록 22장에 보면 생명나무가 가득한데, 여러분은 이 생명나무를 구경해보셨나요?

(계 22:1) 또 저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계 22: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창세기 3장에 보면 분명히 이 생명나무의 열매를 따먹지 못한다고 했는데, 그런데 천국에 가면 마구 따먹어도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이 왜 달라졌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죽었기 때문인데, 그런데 우리가 죽지 않으면, 즉 선악과를 따먹은 죄가 사해지지 아니하면 우리는 여전히 생명나무의 열매를 따먹지 못하는 존재라는 말이죠.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선악을 안다고 하는 그 자체 때문에 우리를 죽여주셨는데, 그것이 곧 죄사함의 내용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죄사함이라는 것은 다시 '나'로 사는 것이 아니고,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나는 예수님을 만나서 구원을 받았다. 나는 중풍병에 걸렸는데 나았다" 라고 하면서, 자기 자랑으로 되돌아오기 때문에 말이죠.

그래서 주님께서는 어떻게 나오십니까? 바로 그 '나'에게 죽음이 찾아오게 되면, 그 죽음의 의미가 '나'와 함께 있는 '없음', 바로 그 '없음'으로 모든 의미가 쏠리도록 주님께서 모든 조치를 다 하셨다는 겁니다. 자기가 그렇게 한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말이죠.

* 약속의 땅에서 망한 이스라엘 !!

조금 전에 이스라엘이 인류의 축소판이라고 했는데, 인간은 물 없이는 살 수 없고, 양식 없이는 살 수 없고, 이웃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그것을 자기들 나름대로 천국, 즉 약속의 땅이라고 보았다는 말이죠. 즉 자기가 잘 되는 것, 그것을 천국이라고 여겼다는 겁니다. 자기가 힘들이지 않고 잘 사는 세계를 천국이라고 말이죠.

그런데 이들을 어디서 망했습니까? 광야인가요? 약속의 땅인가요? 약속의 땅인데, 약속이 말하는데, '나가리다' 라고, 즉 "약속의 땅에서 나가라. 너희들은 내 백성이 아니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와야만 인간들이 기대한 약속과 주님이 준비한 약속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말이죠.

다시 말해서, ■충분히 오류를 범해주어야, 즉 충분히 죄를 지어야 발견하게 된다는 겁니다. 즉 "내가 밥을 먹고 생존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 아니었고, 오히려 그것이 마귀의 뜻이고 죄가 되는구나" 라고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 !!

이렇게 "모두 다 나가라" 라고 해놓고,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출애굽기 4장에서 "이스라엘은 내 백성 내 장자다" 라고 약속한 그 이스라엘은 도대체 어디에 있느냐는 말이죠. 그것은 바로 여기에 있는데, 즉 "너희들이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학대했다" 라는 겁니다.

(출 4:22)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여기에서 퀴즈를 하나 내보면, "일인용 이불을 3명이 사용한다면 누가 가장 혜택을 많이 입을까요?" 라는 것인데, 아마 어릴 때 다들 경험해봤지 싶은데 말이죠. "A, B, C" 중에서 누가 가장 혜택을 많이 입는고 하니, 'B' 라는 겁니다. 우리 삼촌이 그러했다는 것이죠.

삼촌과 조카들이 한 방에 있는데, 할머니가 일인용은 아니지만 조금 더 큰 이불을 던져놓고는 "다들 알아서 자라"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힘이 센 서울 삼촌이 중간이 들어오는데, 그러면서 '나가라' 라고 하면서 조카들은 그만 발로 차버린다는 말이죠(ㅋㅋ).

지금 주님께서는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포함시키는 이스라엘, 더 나아가서 그들을 발생시키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었다는 겁니다. 여기서 출애굽기 22장을 보겠는데, 21절에서 24절을 누가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출 22:21)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이었었음이니라
(출 22:22)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출 22:23)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을지라
(출 22:24) 나의 노가 맹렬하므로 내가 칼로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 아내는 과부가 되고 너희 자녀는 고아가 되리라

* 일반인들로부터 분리된 자들 !!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의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일반인들로부터 분리된 자들이라는 말이죠. 신약에 오면 성령께서 개인적으로 다루시는데, 그런데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자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겁니다. 신약에서는 성도 한 명이라도 성령이 함께 하신다면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말이죠.

그런데 구약에서는 신약의 하나를 언급하기 이전에 먼저 집단을 이룬다는 겁니다. 그렇게 집단을 이루면서 누가 장차 오실 하나님의 아들과 가장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는지, 그 메시야의 위상을 이스라엘 안에 집어넣어 놓았는데, 그것이 바로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라는 말이죠. 일반인들과의 분류라는 겁니다.

물론 출애굽을 하면서도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가 있었지만, 이스라엘 역사가 더 진전하면서 전쟁이 일어나게 된다는 말이죠. 남자가 전쟁터에 나가는데, 그러면 전사를 하면 졸지에 그의 아내는 과부가 되고, 그러다가 엄마가 먼저 죽으면 아이들은 고아가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전쟁을 통해서 외국에서 포로들을 잡아오게 되면, 그러면 그 포로들은 자기가 살던 동네와는 다른 곳에 와서 살게 되는데, 그러면 나그네가 된다는 말이죠. 지금 우리나라에도 나그네들이 있는데, 일을 하기 위해서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등지에 온 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는 나그네들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그들은 이 사회의 주류로부터 배척을 당하는 자들인데, 그냥 따로 나온 것이 아니고 발로 차버리는 것인데, 즉 '나가라' 라는 것이죠. 이것을 '소외' 라고 하는데, 자기 알아서 "나는 혼자 살래" 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은 취미가 고독인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주류가 주류가 되기 위해서 비주류로 강제로 밀린 자들을 두고, '소외된 자들' 이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죠.

그러니 결국 이 이스라엘 역사에서 하나님께서 사회적으로 말씀하시고 하시는 것은 무엇인고 하니, 조금 전에도 이야기를 했지만, '나' 라는 것이 분리되는 현상이 일어나야 하는데, 그런데 처음의 '나'는 악마의 왕 노릇하는 것이고, 그런데 거기에서 추방된 '나'가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추방된 '나'는 '없음' 이라는 말이죠.

* 비자립적이고 비독립적 !!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의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 비자립적이고 비독립적인데, 그러면 그 당시 주류사회에 손을 내밀 때가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이 "살았다, 존재한다" 라는 개념은 어디에 가져다 붙이는고 하니, 주류에게 붙인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윤석열이 살아있어" 라고 하는 것은 윤석열이 대통령이기 때문인데, 그런데 이름도 잘 모르는 사람, 즉 "김석열이 살아있다" 라고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말이죠. 그런 사람은 살아있어도 없는 자이고 죽은 자에게 해당이 된다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주류중심의 단단한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모자라는 경제상황에 대해서 어디서부터 잘라야 하는고 하니, 고아와 과부를 잘라야 하는데, 왜냐하면 말빨이 센 아버지가 없다는 말이죠. 팔려나가든지 창녀가 되든지, 그런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땅이 없어서 양식이 없으면 빌어먹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죠.

* 장차 하나님께서 이 땅을 방문했을 때 !!

그런데 하나님께선 이스라엘 내부에서 이런 악마의 본성을 끄집어내는 작업을 의도적으로 벌이셨다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은 무엇을 얻고자 하시는고 하니, 장차 하나님께서 이 땅을 방문했을 때, 똑같은 대우를 인간들이 하게 된다는 것을 미리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고아와 과부를 통해서 드러내주셨다는 말이죠.

지금의 이 이야기는 신약에서 개인이 '나'와 '귀신'으로 분리되는, 즉 '귀신에 붙어있는 나'와 '없는 나', 그 이전에 눈에 보이는 인간역사의 축소판인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서, 그때는 땅이 있었고 사람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나 신약에는 그게 없는데, 성령께서 그렇게 일을 하시지 않는데, 구약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다는 것이죠.

여기서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을 보겠는데, 누가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살전 4: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여기에 나팔소리가 나오는데, 나팔소리가 들리는데 자고 있을 위인이 있을까요? 없다는 겁니다. 모든 존재가 심판을 받기 위해서 있는데, 주님의 나팔소리에 자는 척을 할 수가 없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자기 일의 결과이고 작품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놓치지를 않는다는 겁니다.

* 듣지 않을 수 없는 나팔소리 !!

자기 혼자 아무리 "내 인생은 내가 살았다. 그러니 간섭하지 마라. 나는 이제 죽을 거야" 라고 해도, 하늘에서 트럼펫 소리가 들린다는 말이죠. 그게 "누구 마음대로 자기 인생이야? 내가 다 이야기를 했잖아. 모든 것이 나의 일이기 때문에 각자의 인생은 없어" 라고 하는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인데, 그래서 히브리서 9장 27절에 보면 뭐라고 합니까?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라고 한다는 말이죠. 심판이라는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끄집어내신다는 겁니다.

(히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그러니 장례식장에서 슬퍼할 이유가 없는데, 잠시 헤어져있다는 말이죠. 귀신을 받은 자들 한 통속, 그리고 성령을 받은 자들 한 통속, 그렇게 모두 다 집합을 하게 되어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개인으로 출발했지만 구약처럼 집단적 구원이 된다는 말이죠. 집단구원, 즉 나팔소리라는 것이죠.

* 점점 더 강화가 되면서 !!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 이들을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계속해서 양산을 해내시는데, 전쟁을 통해서, 그리고 나라에 어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제일 먼저 쳐내는 것이 누구라는 겁니까? 그것이 바로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라는 겁니다.

그렇게 이들을 쳐낼 때, 출애굽기 22장에서 하나님께서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함부로 대하면 내가 분노해서 그들을 쳐죽일 것이다" 라고 하신, 그 하나님의 뜻이 철회가 되었을까요? 되지 않았을까요? 철회가 아니고 오히려 더 강화가 되었다는 말이죠.

그런데 이것은 "네 주위의 어려운 사람을 돌봐라" 라는 의미가 아니고, 즉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입을 것을 주라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아무리 돌봐도, "이만큼 돌보았으면 되었다" 라고 하는 것이 없다는 말이죠.

* 선지자들의 등장 !!

그러면 무엇인고 하니, "없는 존재를 지향한다" 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면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가 지향하는 없는 존재는 무엇인고 하니까, 이것은 하나의 미끼인데, 즉 있어도 없는 존재, 살아도 죽은 존재로 취급받던 그들이, 궁극적으로 없는 존재로 가기 위해서는 어떤 절차를 밟게 될까요?

여기에 없는 존재와 점점 가까이 있는 존재가 등장하게 되는데, 그들이 바로 선지자들인데, 엘리야와 엘리사를 필두로 본격적으로 선지자들이 등장하게 된다는 말이죠. 물론 그 이전의 모세의 경우에도 선지자라고 할 수 있는데, 그들은 왜 언급하지 않는고 하니, 선지자들이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같은 대접을 받는 시점이 언제인고 하니, 이스라엘 나라가 두 동강으로 잘리고 말았을 때라는 겁니다.

* 그루터기 유다나라 !!

그렇게 자르게 되면, 잘린 위쪽은 북쪽이 되고 그루터기인 아래쪽은 남쪽이 되는데, 그러면 남쪽나라인 유다가 왜 그루터기가 되는고 하니, 그 안에는 성전이 있다는 말이죠. 그러면 유다나라는 "앗싸, 우리는 성전 때문에 살았다" 라고 하는데 말이죠.

그런데 주님께서는 유다나라를 살리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게 아니고, 이스라엘의 핵심 부분, 주님은 무엇을 목표로 그동안 이스라엘이라는 가현체, 즉 눈에 보이지만 사실 영원할 수 없는 인간적인 국가형태의 이스라엘을 왜 주님은 그렇게 건사해오셨느냐는 겁니다.

* 성전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

그것은 그 안에 핵심부분, 즉 티눈부분이 있는데, 그게 곧 성전이라는 말이죠. 그 성전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데, 이 이름을 이해함에 있어서 제일 쉬운 게 얼굴인데, 즉 하나님의 자기 얼굴이 이 땅에서 이름으로 나타났다는 겁니다. 얼굴은 일종의 가면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 그런데 그 가면의 뒤에는 진실이 있다는 말이죠.

그러면 진실은 무엇을 통해서 나타난다고 했지요? 거짓인데, 즉 예수님이 죄 있는 육신의 모습으로 오셨을 때, 그 예수님을 평가하는 그 모든 평가를 예수님의 육신이 다 받는다는 겁니다. "거짓된 것은 전부 나에게 가져와라" 라는 것인데, 그러면서 그 예수님이 나타내신 것이 곧 살과 피라는 말이죠.

* 바로 내가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가슴을 치면서 "모두 다 내 탓이요" 라고 하는 것인데, 예수님이 죽은 것이 바로 자기 탓이라는 겁니다. 즉 "거짓이 거짓 아닌 척을 했던 내 탓입니다" 라는 것인데, 그래서 십자가를 바라보게 된다는 말이죠.

하나님의 얼굴로 오신 그분의 뺨을 때리고 침을 뱉고 했는데, 그리고는 결국은 죽게 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을 유대인들이 한 것이 아니고, "바로 내가 했습니다" 라고 하게 된다는 말이죠. 그래서 그 거짓을 알면서 동시에 초월적인 기쁨이 터져 나온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진실은 거짓에서 나오기 때문인데, 거짓을 거짓이 되게 했던 그 위력이 바로 복음의 위력이라는 겁니다.

(마 26:65) 이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저가 참람한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참람한 말을 들었도다
(마 26:66) 생각이 어떠하뇨 대답하여 가로되 저는 사형에 해당하니라 하고
(마 26:67) 이에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혹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살과 피를 보이지 않는 쪽에서, 왜냐하면 거울을 보면 우리는 보이지만 주님은 보이지를 않는다는 말이죠. 보이는 인간 속에 초월성이 있다고 했는데, 그 초월성을 끄집어내는 방법은 감사와 기쁨이 폭발하듯이 터져 나오는 것, 바로 그것이라는 겁니다.

* 이 세상이 시시해져 !!

그렇게 터져 나오면 그 다음에 나타나는 현상이 무엇인고 하니, 이 세상이 시시해진다는 말이죠. 그런데 그 시시한 것에 어떻게 하라고 했지요? 열심히 몰두하고 돈벌이에 나서야 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진실은 거짓에서 나오기 때문에 말이죠.

우리는 시시하다고 하면 빼는 경향이 있는데, 하지만 그 시시함에 자기 자신을 집어넣어야 한다는 겁니다. '나'를 뺀 시시함이 아니고, '나'를 집어넣은 시시함이라는 말이죠. 시시한 것을 시시하게 사는 것, 그것이 무엇이 그렇게 힘이 들고 괴로우냐는 겁니다. 왜 그런고 하니, 타인을 통해서 자기만이 시시하지 않다는 것을 계속해서 확인하기 위해서 남들을 상대하기 때문이라는 말이죠.

그렇게 되면 무엇이 쇄도하게 됩니까? 낮에 그런 설교를 했는데, 진지함이 쇄도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고민거리고, 공포를 동반한다는 말이죠. 그래서 "이게 안 되면 어떻게 하지? 야, 미치겠네. 반드시 되어야 하는데, 이럴 때는 기도하라고 했는데, 그러면 기도해야지" 라고 나온다는 겁니다.

하지만 기도를 해도 소용이 없는데, 자기 자신이 시시하지 않기 때문에 말이죠. 기도는 다음과 같이 하면 되는데, 즉 "주여, 제가 시시하다는 것을 또 다시 깨닫는 시시한 하루가 되도록 하옵소서" 라고 하면 된다는 겁니다. 별 다른 문제가 없다는 것을, 왜냐하면 자기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죠.

* 미끼 인생 !!

그렇게 이 세상이 시시하니 누구에게 기댈 필요도 없는데, 그렇게 주님은 우리를 이 세상에 미끼로 던지셨다는 겁니다. 즉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로 말이죠. 이게 바로 세 글자로 '선지자' 인데, 아브라함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아브라함도 분리가 되었는데, 아브람과 아브라함으로 말이죠.

이삭도 역시 분리가 되었는데, 에서의 아버지에서 야곱의 아버지로, 즉 맏이에게 축복을 해준 아버지에서, 둘째에게 축복을 해준 아버지가 되었다는 겁니다. 이삭은 자기가 싫어하는 타입에게 축복을 해주는 모순을 자기 내부에서 겪어야만 했다는 것이죠.

그리고 야곱은 하나님의 사자를 만나고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분리가 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면 요셉은 무엇으로 분리가 되었을까요? 자립적 인간에서 비자립적 인간으로 분리가 되었다는 말이죠. 자기 혼자서 원하는 대로 인생을 살아갈 수 없는, 그래서 시편 105편에 보면 "말씀에 응하는 대로 요셉은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리고 한다는 겁니다.

(시 105:18) 그 발이 착고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
(시 105:19)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

이게 꼭 여러분을 닮지 않았습니까? 여러분이 무엇해도 뜻대로 되지를 않는데, 그것은 바로 새로운 초월성으로 바꿔치기를 했기 때문이라는 말이죠. 아무리 억만금을 주어도 이런 기쁨을 누릴 수는 없다는 겁니다. 자기 뜻이 아니고 주의 일이기 때문에 이게 가능하다는 것이죠.

* 우리는 처음부터 중풍병자이고 귀신이 들린 자 !!

우리는 처음부터 중풍병자이고 귀신이 들린 자인데, 그리고 열심히 나름대로 노력을 한다는 겁니다. 신에게 접근하기 위해서 말이죠. 하지만 접근을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데, 오류를 몰고 가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거짓을 몰고 가서 아무리 "이것을 드릴까요? 저것을 드릴까요?" 라고 해도, 주님은 거짓의 것은 받지 않는다는 말이죠.

주님께서는 "내 살과 내 피를 먹고 마시고, 이것을 기념하라" 라고 하셨는데, 그러자 인간들은 거짓된 살과 피를 다루기 위해서 교회를 만들었다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것을 마땅치 않다고 여길 것이 아니라, "역시 인간 세상은 그러해야지" 라고 하면 된다는 말이죠.

(고전 11:24)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고전 11:25)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 복수에 여념이 없는 주님 !!

그리고 나팔소리를 통해서 주님은 자기 일에 여념이 없는데, 자기 살과 피를 내게 한 자들에게 복수하는데 여념이 없다는 겁니다. 여기에 성도가 미끼로 동원이 되었는데, 이들은 이 세상을 시시하게 보는데, 자기 자신까지 포함해서 말이죠. 그러면 이런 자를 악마가 가만히 두지 않고 달려드는데, 미끼에게 달려들었으니 복수는 누가 하는고 하니, 주님이 하신다는 겁니다.

아브라함에게 달려들면 아비멜렉에게 복수를 당하는데, 그리고 이스라엘에게 달려들면 주변 나라들이 힘들어진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시시하게 보는 그 시시함이 인간의 능력에서 나온 게 아니고, 분리가 되어서 그렇다는 겁니다. 마귀의 왕 노릇에서 의의 왕 노릇으로 분리가 되었다는 것이죠.

* 막 삶 !!

이제 끝으로 이 말씀만 드리고 마치겠는데, 그렇게 하게 되면 막 사는 것이 되는데, 그런데 그렇게 막 사는 것이 주님의 의를 드러내는 일이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물론 자기가 알아서 막 살려고 하면 안 되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꼼수라는 겁니다.

그래서 막 사는 것을 분류하면 되는데, 주님이 하시는 모든 것이 막 사는 것이란 말이죠. 그런 오류와 거짓을 통해서 계속해서 감사가 나오고 또한 진리가 나온다고 하면, 그러면 그 사람은 주님의 미끼를 건드린 것인데, 자기가 마귀의 자식이라는 티를 내고 말았다는 겁니다.

어린아이의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 비자립적이라는 것인데, 그것을 이 세상에서는 무능하다고 한다는 말이죠. 그러니 우리가 이 세상에서 유능한 자가 되려고 하지 말고, 주님이 친히 보호해주시는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이죠.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남들에게 지기 싫어하는 것이 얼마나 자기 중심인가를 깨닫게 해주시고, 그런데 그것이 바로 '나' 라는 것을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피조물의 관점을, 그런 초월적인 것을 가지게 된 것에 대해서, 그것이 바로 주님의 살과 피 때문이라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면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23,10,12 오전 1시에 마침.

막 살지 못하는 죄인을 구원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