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빌립보서 7,8강-한마음

아빠와 함께 2013. 12. 27. 07:37

2009-11-14 12:10:57 조회 : 1170         
서울 11월 13일 빌2장 한 마음 이름 : 관리자 (IP:124.59.86.6)
091113 빌립보서 2장 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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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091113빌2장

빌립보서 제 7강 (이 근호목사, 2009년 11월 13일(1), 서울의존교회)

빌립보서 2장 1절부터 보면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교제나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이렇게 되어 있지요. 신약의 빌립보서를 이해하려면 여기에 나오는 ‘한마음’에 대해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이 한 마음, 1이죠. 1인데 사람마다 전부 다 마음이 다르잖아요. 마음 1, 마음 2, 마음 3, 전부 다 다릅니다. 여러 사람의 마음이 있는데 성경에서는 이것을 한 마음으로 묶어야 된다고 하는 겁니다. 그러면 한 마음으로 어떻게 묶을 수 있느냐? 구약에 좋은 예가 나와 있어요. 구약 창세기 18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에 심판을 내립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내릴 때 그 심판, 이게 한 마음이죠. 심판하는 마음, 한 마음. 소돔과 고모라에 심판을 내리는데 그 때 아브라함이 저지하고 나서지요. ‘안됩니다. 심판 못합니다.’ 그러면 이것은 한 마음이 되지 못하고 딴 마음이 되지요. 아브라함이 뭐라고 저지를 하느냐 하면, ‘하나님,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 50명이 있으면 그래도 심판하렵니까?’

의인 50명이 있는데 그 50명 말고 다른 사람 악인들과 함께 심판을 해 버리면 하나님은 악인에게만 심판을 내리는 분이 아니고 의인도 심판을 내리는 나쁜 하나님이 되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 하는 것이 아브라함의 마음이에요. 아브라함은 지금 하나님과 한 마음이 되지를 않는 겁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다섯 명 감해줄게.’

그래서 45명…, 그 다음에 40명…, 30명…, 20명…, 10명…, ‘의인 10명이 있는데 어떻게 그 열 명을 악인과 함께 심판을 받게 합니까?’ 라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 ‘의인은 10명도 없다’는 거예요. 열 명도 없으니까 그때 아브라함이 뭘 알았느냐 하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할 때 이 세상에 뭐가 없느냐 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막을 의인은 한명도 없는 것이 돼요.

결국 이 세상에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 단 한명도 있어요, 없어요? 단 한명도 없습니다. 없는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조치하느냐 하면, 아브라함이 생각하기를 ‘어떻게 의인과 악인을 함께 저주하십니까?’ 라고 할 때 아브라함이 뭘 몰랐느냐 하면, 소돔과 고모라에서 의인을 빼돌리고 나머지 사람을 심판하는 그 하나님의 방법을 아브라함이 몰랐습니다.

빼돌려지는 사람이 바로 롯이었어요. 롯은 하나님의 심판에 같이 들어가면 안돼요. 하나님 믿는 의인은 같이 심판받을 수 없기 때문에 빼돌리는 거예요. 그 빼돌리는 작업이 뭐냐 하면 천사를 보내서 ‘롯아, 빠져나가라.’ 이렇게 하는 거예요. 그러면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뭐냐? 하나님께서 롯이 알아먹는 빼돌리는 그 작업이 뭐냐 하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곧장 심판하겠다는 그 작업입니다.

그게 한 마음이에요. 정리하면 한 마음이란 뭐냐? 한 마음이란 ‘악인을 심판한다. 의인이 없는 세상은 완벽하게 심판한다.’ 보통 하나님의 마음이라고 할 때 무슨 마음입니까?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크리스마스 때 와서 선물주지요. 이걸 사람들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보는 겁니다. 선물 주니까 우리도 같이 선물주자, ‘울면 안 돼’ 하면서 선물 주잖아요.

하나님의 마음은 그것이 아니고 의인이 없으면 무조건 심판하는 마음, 그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이고 그 마음을 서로가 품자는 거예요. 하나님이 ‘너 의인 아니야? 그럼 너 이미 심판받았어. 너 저주고 지옥가게 돼.’ 그 마음 품고 서로 한 마음 되자는 겁니다. 지금 우리 앞에 칠성 사이다도 있고 국수도 있고 죽 있지요.

‘위하여!’ 라고 한다고 해서 한 마음 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는 의인되지 않으면 지옥 간다. 위하여!’ 이렇게 한 마음 되자는 거지요. 다시 정리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의인이 없는 세상은 무조건적으로 저주하는 그 마음이 하나님의 한 마음이고 딴 마음은 없습니다. 그 심판하시는 마음을 다 같이 품자는 겁니다.

그러면 뭐가 귀하게 되느냐? 빼돌리는 것, 하나님께서 심판받을 이 세상에서 빼돌리는 것, 그것이 축복이 돼요. 빼돌리는 그 말씀을 가지고 복음이라고 합니다. 복이 되는 말씀, ‘빠져나가! 빠져나가! 빨리 빠져나가!’ 이게 가장 복된 말씀, 복음이에요.

그러니까 예수 안에서 한 마음을 이룬다는 말은 항상 그 근거가 뭐냐 하면, ‘의인 열 명 없으면 이 세상 멸망당한다, 심판 당한다.’ 는 그것이 하나님의 일관된 마음이고 따라서 그 마음을 그대로 실시, 실행에 옮기기 때문에 ‘너희들은 빨리 빠져나가. 이 복음 듣고 빨리 빠져나가.’ 라고 빼내는 그것도 한 마음이 되는 거예요. 심판이 있기 때문에 복음이 우리를 사린다는 그것이 합쳐져서 한 마음이 되는 거예요.

그렇다면 그 복음의 한 마음이 뭐냐? 다 같이 멸망되어야 될 죄인을 의인으로 바꾸는 그 작업을 하나님께서 조치를 했지요. 조치를 하셨는데 그 조치가 뭐냐 하면 분류작업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때 천사가 롯에게 왔을 때에 롯이 사위들 보고 말했어요. ‘얘들아, 빠져나가자. 곧 심판이 이른다.’ 하니까 사위들이 그것을 농담으로 여겼답니다.

‘장인어른?’ ‘왜?’ ‘그거, 농담이지요? 그러면 저 착한 사람들 어떻게 됩니까?’ ‘저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의인이 아니야.’ ‘저 사람들이 나한테 평소에 돈도 꿔주고 인간성이 좋은데요?’ ‘하나님 보시기에 의인은 아니야.’ 그러면 하나님 보시기에 의인은? 아무도 없어요. 아무도 없는 인간들 중에서 복음을 줘서 다 같은 죄인인데 구원받을 사람한테는 의인되게 하는 방식을 만들어서 빼돌리는 작업을 복음으로 실시하는 겁니다.

그게 한 마음이에요. 그래서 이 분류작업의 조치를 취하는데, 유일하게 들어가는 것이 죄인이 의인되는 겁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해야 하는 것은 다른 것 없어요. 아무리 번창해도 불 심판에 다 같이 들어갑니다. 교회에서 해야 할 것은 어떻게 하면 죄인이 의인되느냐? 죄 지었는데 어떻게 졸지에 천국에 가냐 그 말입니다.

죄인이 의인되는데 여기에 하나님의 의가 투입됩니다. 하나님의 의가 투입되면 하나님의 의를 받은 사람만이 하나님의 심판에서도 견딜 수 있는 의인이 돼요. 그게 구약 출애굽기에 나와요. 심판, 저주의 천사가 지나가는데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바른 사람만 하나님의 심판을 안 받아도 되는 사람으로 간주되어서 그냥 넘어가지요. 그게 유월절입니다.

그러니까 죄인에서 의인으로 넘어가는 것은 사람의 선행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여기에 어린양의 피가 필요하지요. 어린양의 피가 주어지게 되면 이 피로 말미암아 이 피 안에서 죄인은 의인으로 다시 생산되고 이렇게 의인된 사람들을 분류시켜서 빼돌리고 나머지 사람들에 대해서는 의인이 없다고 심판하는 것이 일관된 하나님의 뜻입니다.

참 쉽죠. 기독교 참 쉽죠. 성경 창세기부터 다 끝났어요. 지금 한꺼번에 다 했고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에 2배속으로 했어요. 아브라함이 알았던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었어요. 의인 열 명 없다고 작살내는 하나님, 그리고 의인만 찾는 하나님, 죄인은 아무리 사정 봐달라고 해도 사정 안 봐주는 하나님, 그것도 인간이 말하는 의 말고 하나님이 요구하는 의가 없을 때는 그냥 그 자리에서 유황불이 떨어지고 지옥 갑니다.

제가 속 시원하게 이야기해 드렸지요. 하나님의 의가 없으면 그냥 가세요. 갑시다, 우리. 그냥 지옥으로 다 가면 돼요. 왜냐하면 이 세상은 하나님의 세상이지 우리 인간들이 의논하고 말 세상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데 사람들이 교회 올 때, 이 하나님의 의를 얻으려고 한다면 나는 죄인으로 되어야 돼요. 죄인으로 와서 하나님의 의인 되어야 할 텐데 자기가 잘났다고 이야기하니까….

다시 말해서 병든 자가 병원에 와서 ‘나 건강합니다.’ 그 소리해서는 그 환자를 못 고치지요. ‘나는 병들었는데 이 병은 내가 착하고 전도하고 선교하고 헌금하고 봉사하고 성경공부하고 아무리 애를 쓰고 용을 써도 철야하고 금식하고 다 해도 이 죄는 내 힘으로 어떻게 해도 의가 될 수 없습니다.’를 분명하게 알고 있어야 됩니다.

아무리 봉사하고 선교하고 헌금하고 전도해도 이 나의 죄가 하나님이 요구하는 의가 될 수 없어요. 그것은 왜 그러냐 하면 인간이 하는 모든 행동은 자기위주기 때문에 죄에서 나왔기에 도로 자기 의로, 자기공로로 돌아가요. ‘내가 기도했다. 내가 헌금했다. 그러니까 내 자식이 잘 되어야 돼. 우리 교회는 부흥돼야 돼.’

모든 것이 자기위주로 돌아가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 가봐야 그 천국은 자기나라 되지 하나님의 나라 안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의는 사라지고 하나님의 의만 남아 있는 것이 천국이기 때문에 여기서 하나님의 의가 투입이 돼요. 투입이 되면 이 죄인은 하나님의 의를 투입 받아서…, 죄인은 평생 가도 죄짓고 실컷 죄져요, 맘껏 죄지으시기 바랍니다, 마음껏, 그래서 마음껏 죄는 짓는데 마음은 하나가 돼야 돼요.

마음껏 죄지었다고 죄 많이 지었다고 자랑하면 안 되고 우리가 자랑할 것은 ‘이런 죄인인데 이런 죄도 하나님의 의의 기준을 통과할 수 있’는 기준이 주어지는 겁니다. 이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대신 죽으심, 하나님의 이 사랑으로 인하여 우리가 의인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제가 그림으로 한 번 그려 보겠습니다.

첫째 시간은 결혼식 주례하고 두 번째 시간은 강의하고, 참 여러분들도 보통 힘든 일이 아닙니다. 이 죄에, 이 죄인인 우리 안에 하나님의 의가 들어 있으면 이 사람은 아무리 죽더라도 천국 갑니다. 이 사람은 죄인에서 의인돼요. 죄인에서 의인으로 바꾸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이 갖고 있는 것이 뭐냐? 1) 예수 용어 2) 세례 받은 것 3) 기적 받은 것 4) 목사 된 것.

어느 것입니까? 나한테 예수 있다는 그 흔적이 뭡니까? 1) 2) 3) 4) 다 아닙니다. 그게 어디 나오는가 하면 빌립보서 2장 5절에 나옵니다. 5절에 보면 “너희는 이 마음을 품으라.” 어떤 마음이냐 하면, 위에 계신 예수님께서 뭔가 아래까지 통과했다는 그런 이야기, 스토리, 나는 가만있는데 그냥 매일같이 죄짓고 있는데…, 매일같이 죄짓는다는 말은 항상 내 위주로 살아간다 이 말이지요.

항상 나만 생각하고 내 가정만 생각하고 내 교회만 생각하고 우리나라만 생각하고 항상 나라는 주체만 생각하는 나인데, 뭔가 스쳐지나갔어요. 뭔가 와서 빠졌어요. 그럴 때 하나님이 묻습니다. ‘야! 너, 뭐가 왔다 갔지?’ 그 때 우리는 이야기해야 돼요. ‘예수님이 하나님인데 나를 용서하기 위해서 내 죄를 가지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내려갔습니다.’

그게 빌립보서 2장 5절부터 보면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런데 여기에 있는 모든 행위의 주체가 나, 나, 나가 아니고 예수님, 예수님, 예수님이에요. 그렇다면 우리가 남한테 이야기할 때 ‘당신이 하나님의 의인된 것을 어떻게 알아요? 당신이 무슨 행동을 했습니까?’ ‘저는 죄만 지었어요.’ ‘당신은 무슨 헌신을 했습니까?’ ‘헌신 못해요.’ ‘당신이 헌금 얼마 했습니까?’ ‘헌금해도 저는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다 들통 나게 하니 제대로 헌금도 못합니다.’ ‘기도는 어떻게 했는데요?’ ‘기도 못했습니다.’ ‘그러면 대체 당신이 의인되었다는 증거가 뭐지요?’

뭔가 스쳐지나가고 뭔가 다녀갔어요. 뭐가?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십자가 죽기까지 와서 나를 위해서 뭔가 해주고 가신 분이 계시다는 것, 뭔가 와서 해주고 가신분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누군데요? 그 때 우리는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인데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방금 제가 한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고 내 바깥에 계시는 예수님이, 예수님이, 예수님이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하셨습니다.’

이래 되면 그 사람의 주체가 나가 아니고 예수님으로 바꾸는 거지요. 그렇다면 자기의 몸은 자기의 몸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자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작품으로서의 우리 자신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런 이야기가 우리 입에서 나온다는 것은 예수님이 이미 우리를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증거에요.

그리되면 우리는 뭐라고 이야기하느냐 하면 ‘나는 죽을 때까지 죄만 짓는데 예수님덕분에, 때문에♪, 때문에♪, 예수님 때문에’ 라는 말을 할 때 그 사람이 바로 소돔과 고모라에서 복음을 받아들인 롯과 똑같은 사람이 되는 겁니다. ‘예수님 때문에’ 그래서 제가 수요일에 그런 이야기를 했지요. 제가 20년 동안 목회 하면서 머리에 남는 것은 하나밖에 없다고요.

뭐냐 하면 ‘예수 안 믿으면 너 죽어.’ 그거예요. 가정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교회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집안에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간에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고 우리 본인이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사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안목에서 그렇게 되는 겁니다. 진도 좀 더 나가봅시다.

그림으로 그려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에 계신데 여기가 구름입니다. 구름이고 예수님이 여기 계신데 예수님이 내려오셔서 우리 시커먼 죄인을 다루었습니다. 죄인을 다루어서 칭칭 감아서 어디까지 가느냐 하면 십자가까지 데려갔어요. 십자가에 가니까 그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저주를 받았지요.

8절 끝부분에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되어 있고 그 다음 9절에 보면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라고 합니다. 십자가가 뭐냐? 도약판입니다. 로켓을 쏴서 올리는 발사체입니다. 얼마 전에 로켓 쏘아 올렸지요. 나로호. 십자가나로호에 가야 비로소 천국가요. 십자가를 거쳐야 천국 가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죄인인 주제에 착한 사람 되어서 십자가를 거치지 않고 바로 가려고 해요.

바로 가면 다 떨어지게 되어 있어요. 못갑니다. 십자가가 도약판이거든요. 이렇게 뜀틀처럼 탁 튀어 올라가는 십자가도약판에 올라가 줘야 십자가 그 배후에 천국이 있습니다. 빌립보서 3장에도 그런 말이 나오는데 ‘내가 어찌하든지 십자가로 가서 부활에 이르겠다’ 이 말이지요. 아까 이 앞에 뭐가 있었는데, ‘송 재원, 이 미아 축 결혼’ 이게 붙어 있었지요.

그게 칠판을 가려놓았잖아요. 이 칠판이 천국이라면 그 앞에 ‘송 재원, 이 미아 축 결혼’ 이라고 붙은 이 천, 이 천이 바로 십자가에요. 십자가 바로 뒤편에 천국이 있어요. 사도바울은 그것을 알고 ‘너희들이 천국가려면 십자가로 가면 된다. 다른 길로 가지 말고 십자가가 눈에 보이는 그길로 가면 그게 천국이’ 라는 거예요.

십자가가 보인다는 말은 뭐냐 하면 내가 보이는 것이 아니고 내 대신 죽으신 분이 보이는 곳이에요. 만약에 의존교회에 그런 분이 없습니다만 돈을 좀 벌어서 한 100평짜리 아파트를 샀다. 다른 사람 같으면 ‘이 아파트가 방이 몇 개뇨? 골목골목 여기서 길 잃겠다. 가구도 다 이태리산 가구네!’ 하고 자랑하고 있는데 정작 성도는 100평짜리 아파트를 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 바라기는 이 100평짜리 아파트 전체가 십자가 안이 되기를 원합니다. 남들 보기에는 100평짜리 호화로운 아파트로 보이겠지만 저는 이곳이 십자가속이기를 바랍니다.’

왜? 그 십자가 뒤를 휙 벗기면 거기 천국이 있으니까. 그래서 ‘이 아파트에 살면서 십자가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게 하시고 십자가를 늘 생각하게 하옵소서.’ 라는 마음으로 100평짜리 아파트를 사셨다면 그 사람은 십자가 때문에 복 받은 것이지 100평짜리 아파트 때문에 복 받은 것이 아닙니다. 은근히 바라기는 의존교회에서도 그런 분이 있기를 바라요.

로또 해서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를 들어 어떤 애가 수능을 쳤는데 두 개 틀려서 500점 만점에 488점 맞아서 다른 애들은 ‘야, 이제 대학 마음대로 골라가겠다. 경찰대학 가든지 서울법대 가든지 맘대로 가겠다.’ 하는데 자기는 뭘 생각하느냐 하면 ‘만약에 서울대학이니 일류니 그런 것 생각하다가 눈이 그 시선이 십자가에서 벗어나 버리면 이것은 …?’

하나님의 일관된 뜻이 뭡니까? 의인 열 명 없으면 무조건 어떤 마을이든지, 십자가빌리지고 크로스빌리지고 뭐고 의인 열 명이 없으면 다 작살낸다는 그 하나님의 원칙을 놓치면 자기는 서울대학 간다고 좋아하다가 심판받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서울대학 가면서 ‘하나님이여, 서울대학이든 뭐든 어디에 가더라도 절대로 십자가를 잊지 않게 하옵소서.’ 그런 마음으로 이 의존교회에서도 서울대학생도 한 열 댓명 나오기를 바랍니다.

그러니까 세상 적으로 가난하게 살고 비참하게 살고 그러면 그게 복 인줄 아는데 그게 복이 아니고 마음이 문제에요. 아까 주례하고 좀 다르지요? 아까 비키니옷장만 있어도 좋다고 했는데 비키니 옷장만 좋아할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더 좋아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적으로 가난하게 산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이상하게 아까 이야기가 살짝 바뀌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그게 바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가난하다고 해서 혹은 장애자라고 해서 구원해주는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쓸데없이 스스로 자기를 낮춘다고 해서 그것이 구원되는 요건이 아닙니다. 우리 혼자 있으면 안돼요. 십자가지신 주님과 함께 있으면 천국이 그분의 나라이기 때문에 함께 있는 그분의 세계에 우리가 들어갈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분이 우리를 통과할 때 반드시 십자가를 통해서 같이 붙들고 십자가선에서 그 다음에 나로호 타고 천국으로 가기 때문에 항상 예수님이 함께 있으면, 예수님께서 자꾸 우리에게 뭘 주느냐 하면, 눈을 자꾸 십자가 쪽으로 돌려서 ‘네가 뭘 잘했든지 반대로 뭘 못했든지 상관없이 너의 구원은 나 때문에, 때문에♪, 때문에♪, 예수님 때문에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한시도 너는 잊지 말아라’ 하는 겁니다.

그게 바로 한 마음입니다. ‘교회에서 서로 이 마음을 가져라.’ 그게 한 마음이에요. 그렇다면 예수님, 예수님, 이러면서 살면 십자가에 눈을 맞추겠느냐?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느냐? 빌립보서 2장 10절에 보니까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누구 이름이냐 하면 예수님 이름이죠.

예수님을 모든 이름 위에…, 사람마다 이름이 다 있어요. 이름이 다 있는데 그 모든 이름보다 뛰어난 이름 주 예수님 이름을 높여서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그 이름을 경배하게 하셨다, 이렇게 했습니다. 그렇다면 만약 어떤 사람이 구원받는 사람이라면, 진정 그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있는 사람이라면 뭘 알아야 되는가?

첫 번째 자기 이름을 알아야 돼요. 자기이름, 여러분은 본인의 이름을 알아요? 사람의 이름은 하나밖에 없어요. 여러분의 진짜 이름을 가르쳐 줄게요. 여러분의 이름은 아담이에요. 아담은 남자잖아요, 하는데 남자, 여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의 이름은 아담이에요. 아담에서 갈라진 사람이 나오는데 여기서 남자가 나오고 여자가 나와요.

그래서 여자도 늙으면 아담 돼요. 여자는 어릴 때 하고 할머니 되기 전까지는 여자이고 싶어요. 여자가 여자이고 싶을 때는 언제냐 하면 남자를 만날 때만 자기가 여자가 됩니다. 세 살 때, 여섯 살 때, 일곱 살 때…, 너 몇 살? 열다섯 살? 아직 열다섯 살도 여자가 아니야. 그냥 사람이야. 뭐, 국민여동생 하는데 국민여동생이 아니고 그냥 국민이야.

사람이 언제 여자이고 싶으냐 하면, 내가 남자를 원할 때, 내가 어떤 남자를 사귀고 싶을 때 그 순간 나는 한 마리의 학 같은 사슴 같은, ‘난 이런 것 못 먹어요. 난 이슬만 먹고 살아요.’ 하나의 여자가 돼요. 그러다 결혼해서 한 20년 있어 보세요. 여자는 사라지고 사람이 돼요. 그 때는 남자가 있어도 아무 감각도 없어요.

그러니까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남자든 여자든 여자도 여자이고 싶을 때는 반드시 여자가 있어야 되고 내가 남자인 것을 알려면 여자를 만날 때 비로소 자기가 남자인 것을 알아요. 그런데 이것이 젊을 때 그런데 나중에 나이 많으면 남자 여자 아무 구분 없고 그냥 인간으로 돌아가는데 이 아담 안에 뭐가 들어 있느냐?

아담 안에 뭐가 들어 있는 줄 알아요? 흙입니다. 아담 안에 흙이 들어 있어요. 인간 안에 흙이 들어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 이름은 뭐냐? 이름이 아담이라고 했는데 그것도 거짓말이에요. 이름이 뭡니까? 그냥 흙이에요. 몸무게 좀 나가면 굴러다니는 흙이에요. 좀 야윈 사람 같으면 바람에 불려 다니는 흙이고. 그래서 ‘흙에 속한 사람은 가라 흙으로.’

그래서 죽고 나면 태우든지 흙속에 묻든지 흙으로 돌아갑니다. 정 이것이 실감이 안 나면 집에 가셔서 엑스레이 찍어보세요. 다 흙이 되지요. 엑스레이 찍어보면 해골 나오지요. 뼈 부러진 사람은 그 부러진 것 그대로 나오고. 사람은 겉모습이 판사, 의사여도 소용없어요. 엑스레이 찍어보면 똑같이 흙이 돼요. 다 갈빗대, 엉치뼈 발목뼈 이런 것 만 나오지요.

그냥 흙이란 말이지요. 그냥 사람으로 살다가 사라져 버려요. 그런데 주의 이름은 뭐냐? 주의 이름은 하나님이에요.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흙에 속한 이 노선이 끝장나고 예수님의 형상,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처럼 광채 나는 그런 사람으로서 부르고 싶거든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이름을 부르지 마세요.

여러분의 명예를 위해서 여러분의 자존심을 위해서 여러분들의 위신을 위해서 살지 마세요. 이제는 내 이름은 기껏 불러봐야 흙에 불과해요. 어떤 사람은 미실이 보고 ‘미실이 아깝다. 미실이 다시 나와라.’ 하는데 미실이고 그냥 흙이고 덕만이도 죽으면 그냥 흙이고 자기가 여왕 되어 봤자 늙으면 여왕도 아니고 그냥 왕이에요. 왕도 끝납니다. 그냥 흙이에요.

그러니까 진짜 이 세상에서 죽은데서 부활하신 분은 누구냐? 바로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기이름, 네 이름을 위해서 살지 말고’ 오직 누구 이름을?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너희들이 구원을 얻을 것이다. 변하고 있는 너희들, 쇠퇴하는 너희들, 해체되어 가는 너희들, 거기에 신경 쓰지 말고 너를 구원하신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예수님처럼 하늘의 형상을 입을 것이다.’ 라고 약속을 해준 겁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예수 믿으면 살고 예수님을 모르면 그냥 흙으로 와서 나중에 지옥에서 저주 받는다, 하는 그것이 이 성경의 내용이에요. 그게 하나님의 일관된 마음이에요. 이제 우리 의존교회가 이런 마음, 성경 다시 읽겠습니다. 2장 1절부터 “너희가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 하여.”

‘마음을 같이 하라’는 말은 자기 이름을 내세우라는 말이 아니지요? ‘나는 똑똑한데 너는 왜 바보야. 나는 이렇게 봉사하는데 너는 왜 봉사 안 해. 나는 헌금 하는데 왜 너는 헌금 안 해.’ 그런 식으로 따지면 안 되고 ‘나는 봉사해도 흙이고 그래도 나는 예수를 믿는데 집사님은 헌금도 한 주일에 점심값 천원만 내고 집사님은 누구 믿습니까?’ ‘나는 그래도 예수 믿어요.’ ‘아이고, 우리 한 마음이네.’

이처럼 예수님 귀한 줄 알고, 예수님 때문에 구원받은 줄 안다면 그것은 누가 뭐래도 예수님과 함께 있는 한 마음 된 구원받는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습니다. 의인 열 명이 없다고 단호하게 심판 내릴 때 하나님께서는 롯에게 복음 전해서 빼돌려서 나머지 사람들은 다 유황불로 심판하고 롯만은 살려주었습니다. 똑같은 조치가 십자가 복음을 통해서 이 교회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왜 복음이 귀하며 왜 복음이 우리를 살리는지 예수님의 십자가 피를 통해서 우리가 영원히 사는 길이 열렸음을 저희들이 남들에게 자랑스러워서 이야기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2009-11-19 14:05:31 녹취 : 오용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