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려고 나서는 것은 안 지켜도 되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지키는 쪽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러면 목사님의 말씀대로 우리는 안 지킵니까?” 마지막 결론에서 대 반전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말씀대로 지킵니다. 이것은 앞의 강의를 다 엎어 치는 것과 같은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우리는 못 지킵니다. 못 지키면서도 매일 같이 뭔가를 지키려고 하는 겁니다. 참 재미있지요? 우리는 법칙, 규칙 없이는 한시도 생각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모든 사고는 원리, 원칙, 규칙을 다 동원합니다. 그것 없이 정신병자처럼 “주께서 지킨다. 나 잡아가라” 는 그런 사람은 없어요. 반드시 자기정당화, 자기합리화, 자기의를 평생이 다 가도록 만들어 내려고 시도합니다. 그 이유는 그것이 나를 먹여 살리기 때문입니다. ‘나는 살고 싶다. 그런데 살아야 될 이유가 있다. 왜? 나는 가치 있으니까. 나는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에. 내가 없으면 복음을 못 전하기 때문에. 내가 없으면 교회가 안 되기 때문에. 나는 당회장이기에. 다른 사람은 죽어도 나는 살아남아야 돼.’
이것이 저주받은 인간의 본색입니다. 이것이 평생 갑니다. 남편이 아내를 때려놓고서 하는 말이 “나니까 너하고 살아주지 나 아니면 누가 너하고 살아주겠나” 라고 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하는 행동을 또 다른 규칙들을 동원해서 자신이 얼마나 착하고 대단한 존재인가를 입증하고 싶어서 날마다 성경말씀을 아는 대로 다 끄집어 당겨요. 그러니까 성경공부를 하면 할수록 변명거리가 더욱 더 많아지죠. 포장지가 더 두꺼워져요.
그러니까 결국은 우리로 하여금 사랑을 깨닫도록 하는 것은, 성령님의 활동이지, 성령 받은 나의 깨달음이 나로 하여금 성령을 깨닫게 하도록 하지를 못해요. 성령께서 직접 놀랍게 기적적으로 십자가를 깨닫게 하고 내가 저주 받을 인간이라고 깨닫게 하지 않으면, 사람은 날마다 자기 정당화로 돌아섭니다. 그래서 성령 받고 난 뒤에 “맞아 나는 죄인이야”라고 하면서 돌아서면서 하는 말이 “이렇게 나처럼 자기가 죄인된 것을 깨닫는 사람이 있다면 나와 보라고 해. 그러니까 나는 복 받을 만하지.”
금방 깨달은 그 죄를 또다시 포장을 해서 나만의 괜찮은 의로 곱게 소유하는 것을 또 시도하는 겁니다. 이 구약성경의 사람들처럼. 그래서 성령께서는 ‘처음도 십자가고 마지막도 역시 십자가로 말미암아 구원되지, 그동안 내가 착실하게 산 것으로 구원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하며, 여러분은 그것을 아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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