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께서 하셨다는 것은 쉽게 말해서 ‘인간들아, 네가 하나님에 대해서 알기는 아느냐? 하나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뭘 하겠다는 말인가?’ 아버지에 대해서 아시는 분은 우리가 아니고 오직 성령이십니다. 성령께서 다 해주시는 거예요. 성령께서 일을 하심으로써 인간들에서 나오는 모든 발상들……, 그 발상들은 우리가 맨날 선택하는 거지요. 쉬운 예로 ‘짬뽕 먹을까, 짜장면 먹을까?’ 이런 선택이지요.
성령께서는 분명히 언급하는 것은 이거예요. ‘네가 짬뽕을 먹으나 짜장면을 먹으나 거기에 대해서 일체 너한테 책임을 묻지 않겠다.’
그 말은 달리 이야기해서 인간에게는, 어떠한 진지함도 어떠한 심각함도 인간에게는 없습니다. 심지어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은 성령이 하는 일 앞에서는, 하나님을 유일하게 아는 성령입장에서는 인간에게는 심각한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문제점은 문제 거리도 아닌 것을 문제 거리로 삼는 것이 인간세계의 문제에요. 또 우리 자신의 문제지요. 그래서 우리가 문제 거리도 아닌 것을 예를 두 개 들면,
■내가 죽는 것과 내가 아픈 것, 이런 것은 전혀 문제 거리도 안됩니다. 원래 인간은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기 때문에 죽을 때 그냥 죽지 않고, 곱게 죽지 않고 아파서 죽는 것,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건데 새삼스럽게 인간들이 “주여, 저 아픕니다.” “너 원래 아프게 되어 있어.” “죽겠습니다.” “너 원래 죽도록 태어난 거야.” 인간이 문제 삼는 것은 전혀 이것은 시답지 않은 것들이에요.
■또 인간들은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하나님, 이런 것을 원합니다.”라고 기도를 하지요. 주님의 뜻은 간단합니다. “네가 굳이 원하는 게 있어야 돼? 네가 굳이 피조물 주제에 주는 대로 먹어야지 네가 원한다? 네가 뭔데 원해? 네가 뭔데? 그동안 내가 주는 은혜로 살아왔는데 네가 주제 파악도 안 되고 네가 뭘 나에게 원하는데?” 아직도 네 주제 파악이 안됐다는 뜻이거든요.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심지어 저에게 그런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어요. “복음 들어보니 인생이 참 허무합니다.” 인간이 자기에게 허무하다는 것을 논하는 것 자체가 시건방진 일이에요. 네가 뭔데 허무를 논해요? ‘참, 인생무상이다.’ 돌멩이가 무상한 게 있습니까? 인간은 죽으면 사물체가 돼요. 딱딱한 물체가 되는데 물체가 무슨 인생무상을 논합니까? 물건인데, 딱딱한 물건인 주제에요.
인간은 허무를 논할 자격조차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도 모르는 주체가 무슨 허무를 이야기하고 “이걸 원합니다, 하나님이여!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몸이 아픕니다.” “아프라고 만들었어, 아프라고!” 아파서 죽으라고 만든 거예요. 하나님은 인간이 자기 것 잃어버리는 데에 관심 1도 없습니다. 관심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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