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정리

사색에서 새로움으로 건너옴

아빠와 함께 2023. 4. 20. 22:49

사색하는 나는 근사하다, 멋있다, 내가 말씀을 상고하는 게 멋있다는 이것을        어떻게        새로움,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누구로부터 우위를 점령할 자격조차...,이게 어떻게  바뀌어지는가? 

 

(창49:9-10)

9.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 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10.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창49:22-24)

22.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23.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그를 쏘며 그를 군박하였으나  24.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

 

요셉의 희생 때문에 야곱의 온 식구가 다 살았어요. 희생물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두 배나 하나님께서 복을 준 거예요. 두 배나 줌으로서 우리가 저 요셉을 학대했다는 것을 대대로 각인되도록 새겨지도록 한 거예요.십자가가 우리 마음속에 새겨져야 돼요

■그 장소가 뭐냐? 실로에요. 통합됐지요. 여호수아의 정복 이후에 여호수아도 실로에서 언약궤에 있었고, 정복 후에는 실로에서 언약궤가 중심역할 한 거예요. 어디? 실로란 지역에 통합된 겁니다.

성도에게만 해당되지만 사건을 일으켜서 내 하는 것을 뜻대로 안 되게 하죠. 그게 뭐냐? 나의 파괴, 나와 나의 이별을 반복시키는 겁니다.  목자의 시대가 끝나고  유다로 가는데  이스라엘을 파괴하는 왕이 오십니다. 이스라엘은 왕이 필요 없어요. 왕이 없어야 될 이스라엘에 다윗을 줬다는 것은 다윗의 후손에 의해서 다윗을 배태한 이스라엘이 심판 받고 파괴된다는 겁니다. 그 다윗의 자손이 누구지요? 예수님이 바로 이스라엘한테 배신당하고 죽으신 겁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날 위해 울지 말고 네 딸을 위해서 울어라. 내가 이스라엘을 대표로 작살내시는 바로 심판주다.
예언된 진짜 이스라엘 왕은 이스라엘을 앗수르가 찢어버리듯이 찢어버린 거예요. 예루살렘을 찢어버려요. 마치 옛날에 실로를 찢어버리듯이 오늘 시편대로 하게 되면 여호와를 믿는 이스라엘은 누구한테 심판 받습니까? 여호와한테 심판 받는 거예요. 예수 믿는 사람들은 누구로부터 지옥 보내집니까? 예수님으로부터 지옥 보내지는 거예요. 말씀이 먼저 와서 나를 파괴시켜줘야 돼요.새로움은 파괴를 통해서 나오게 돼 있습니다.

■그 말씀의 완성이 뭐냐? 십자가입니다. 십자가 앞에 우리가 설 때에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어느 정도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느냐 하면 주님이 나를 구원해도 그만이고 구원 안 해도 상관없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돼야 돼요. 그게 십자가에요. 그래야 내 인생이 내 것이 아니고 누구 것으로 전환되느냐 하면 그동안 내 인생 내가 주인 노릇했는데 이게 주님으로 인수인계됩니다. 그러니까 곱게 인수되지 않고 찢겨서 파괴되어서 인수된 거예요. 사나죽으나 이젠 주의 것이 되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주의할 것은 사나죽으나 주의 것이니까 나는 구원받았다고 하면 안 되지요.

내가  아무것도 아니란 말은 내가 원천부터 애초부터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비로소 발견했다는 거예요. 전부 다 하나님이 주신 것들로 살아왔어요. 햇빛이나 공기나 어느 것 하나, 하나님이 그냥 은혜로 주신 걸로 살았는데 그걸 받는 쪽쪽 마귀 품성이 있어서 전부 다 애써서 인생 내가 주인공으로 살아왔다 그걸 다 전환시켜버린 거예요. 그런데 에티오피아 내시처럼 성령을 받아버리니까 참 이거는 진짜 말도 안 돼. 내가 왜 마귀 짓을 해도 그렇게 독하게 했지? 그것을 알게 됩니다.
■시편 41편 이젠 안 봐도 됩니까? 아니죠. 내가 있던 내가 주인공 되는 그 자리에 나를 현실에 구체화하기 위해서 말씀이 들어와 버려요. 그러면 내가 아직도 안 죽고 있는 이유는, 말씀이 나의 중심에 차있다는 것을 구체화시키는 거예요. 이 ‘구체화’가 중요해요. 구체화란 말은 뭔 뜻이냐 하면 하나님은 없다, 보이지 않는다, 말씀도 안 보인다, 우리 인간들끼리 있다, 라고 생각하는 이 세상 한 복판에 여기 있잖아. 아무것도 아닌 채로 있잖아. 그 아무것도 아님이 시편 41편의 구현체로 완성체로 등장하는 거예요. 그게 뭐냐? 오늘 시편 41편에 온전함이 등장합니다.  
41편 12절, “주께서 나를 나의 완전한 중에 붙드시고” 이것은 노력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다 애쓰면 구원에 도달한다는 말이 아니고 어제 낮 설교처럼 구원은 완전해져서 시작되는 거예요. 완전함이 내 중앙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노력하면 다 탈락이에요. 선악 지식으로 애쓰고 최선을 다했다, 나름대로 바쁜 시간 짜내서 교회 봉사했다, 다 탈락이에요.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정도? 아버지가 아들 아는 것처럼, 아버지와 아들 아는 예수님처럼 완전하지 아니하면 다 탈락입니다.

그 완전을 뭐라고 하느냐? 그게 사랑입니다. 우리는 사랑에 주님을 미워한 요소로서 사랑을 구성하기 위해서 들어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고린도전서 16장 22절,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의 실질적인 구현체로서 실제적인 실체로서 우린 이 땅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결코 요한일서의 말씀처럼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주님이 계속해서 우리를 사랑해 온 거죠. 그래놓고 요한일서에 보면 이걸 알게 한 것은 성령이 너에게 임해서 그렇다고 이야기해버려요. 인간의 지식으로 아는 사람은 뭔가 보이지 않는 천국 가고 싶은데 내 쪽에서 할 게 있어야 되는데 성령이 와야 사랑을 알고 그 사랑 안에는 내가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 주님이 일방적으로 사랑했다는 내용이 있으니까 어느 것 하나 내 쪽에서 잡을 게 있다, 없다?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요한일서 마지막에 세상에 속한 사람 있고 하나님께 속한 사람 따로 있다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께서 오신 것도 기적이지만 이 땅에 예수 믿는 사람 성도가 발생된 것도 특혜요 기적으로 여기게 하여주시옵소서. 우리가 살아 있는 것은 주님의 약속을 드러내기 위한 조치이지 우리 이익을 위하지 않은 것을 다시 한 번 감사할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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