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나를 조롱할 때에, 나는 버티고 이겨내야지. 이거는 해결책이 아닙니다. 그들이 조롱하는 이유는 ‘나는 나를 지키고 싶어. 그렇게 살아가는 거야. 내 인생은 나를 지키는 거야.’ 세상 사람들은 그럴 수 있죠. 그렇다면 차이난다는 뜻은 뭐냐. 성도는 ‘나를 지키고 싶어’가 있다, 없다? 그런 마음이 전혀 없는 거예요. 없기 때문에 방어할 이유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방어할 이유가 없죠.
주님이 낯선 시간, 낯선 공간을 언급한 것은 나, 너라는 구분 자체가 이 낯선 시간과 낯선 공간에서는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그래요. 성립되지 않는데 이걸 크게 쓰겠습니다. 【남들이 나에게 뭐라든 상관없는 이야기가 예언이다.】
예언의 말씀은 복음입니다.【복음은 남들의 평가와 상관없는 이야기로 주어진다.】남들의 평가와 상관없는 이야기로 주어지는 거예요. 이게 바로 복음입니다. 여기서 뭐가 탈락이죠? 남이 탈락됐죠? 남이 없으면요. 그렇게 떼놓으려 해도 못 떼어놨던 나도 같이, 남 떨어지면 나도 같이 떨어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