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 젖은 땅 BLOOD LANDS] 티머시 스나이더 저 함규진 역 글항아리(파주 : 2021)
20세기 유럽을 휘저었던 두 개의 전체주의 국가가 벌린 거침없는 이웃나라 말살 작전에 대해 역사적으로 상세하게 서술한 책이다.
독일과 소련, 이들 두 나라는 그들 나라 사이에 끼어 있는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북부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2차 대전 전쟁 이전부터 시작해서 2차대전 끝난 그 이후까지 계획적으로 도살당했는데, 소련은 일국(一國)사회주의라는 이념에 맞는 국가건설을 위해서이고, 독일은 영토를 확장해서 유럽 서쪽에 에덴동산 같은 이상국가를 수립하기 위해서이다. 특히 둘 다 반드시 넓은 땅을 보유해야 경제적 자립을 일궈낼 수 있다고 믿었다. 풍부한 식량, 원자재, 광물자원으로 뒷받침되는 거대 규모의 제국주의적 경제 자립국가를 지향했다.
전쟁 이전부터 소련은 내무인민위원회라는 것을 통해서 우크라이나에서 식량을 강탈했는데 이는 농민들에게서 ‘잉여 농산물’을 빼앗아, 외국에 팔아 벌어들인 외화로 기계류를 수입하는 한편 증가하고 있는 노동계급의 배를 채워주자는 것이다. 즉 1927년 국가의 투자가 결정적으로 공업 위주로 바뀐 것이다.
원래 공산주의 이념은 국가 간의 구별에 의미 없고 전 세계의 노동자들이 하나의 계급으로 뭉치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러시아의 볼셰비키는 레닌에게서 ‘민주집중제’라는 유산을 물려받았는데 이는 마르크스주의 역사철학을 관료제적 실체로 전환시킨 제도다. 즉 ‘노동자는 역사의 진보적 흐름을 대표한다. 규율 잡힌 공산당은 노동자를 대표한다. 당 중앙위원회는 당을 대표한다. 소수 인사로 구성되는 정치국은 당 중앙위원회를 표현한다’라는 것이 그 이론의 틀이다.
이로써 사회는 국가에 종속되고, 그 국가는 당에, 당은 실질적으로 소수의 손에 좌우된다. 이 소수 집단 구성원 사이의 분란은 정치보다는 역사를 반영하며 그 결과가 바로 역사의 판결이라고 보는 것이다.
1928년, 스탈린은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농지를 몰수하고 곡물을 국가 재산으로 삼는다는 “집단화” 내놓았다. 토지, 정비, 사람은 모두 집단농장에 소속되고, 집단농장은 농기계센터를 중심으로 구성되며 이 센터는 현장 정치국원들에게 배분한다는 것이다.
1931년, 특별 정착지와 강제수용소는 ‘굴라크Gulag’라는 이름으로 476개의 수용소 단지에 살도록 1800만 명이 선고를 받았고, 150만 명에서 300만명이 감금 도중에 사망했다. 이처럼 자유로웠던 농민들은 노예가 되었고 스탈린은 소련 근대화에 필요하다고 믿는 거대 운하, 광산, 공산 건설에 투입되었다.
아직 전쟁 전의 이야기다. 소련령 우크라이나 농촌사회 대부분은 여전히 종교공동체였다. 그러나 무신론에 끌린 많은 젊은이들은 농촌을 떠나 대도시나 모스크바나 레닌그라드로 떠났다. 그 뒤 공산당원이라는 사탄이 농촌 지역에 나타났다. 그들은 ‘스탈린의 제1계명’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것은 “식량을 먼저 국가에 공급한 후, 그다음 인민에게 공급해야 한다”는 계명이었다. 농민들에게 결정적으로 총이 없었다. 곧 그들은 모든 양식을 그냥 놔두고 아무런 연고도 없는 중앙아시아로 강제추방을 당했다. 남아 있는 자나 고향을 버린 자나 모두 굶어 죽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죽은 자가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중앙아시아에서 1933년부터 1937년까지 800만 명이 죽었다. 스탈린이 자국민을 상대로 ‘계급 테러’를 범한 것이다.
2차대전이 일어나기 전, 독일에서는 히틀러의 나치 정부가 들어섰다. 나치의 세계관에 저항하는 것으로 일방적으로 낙인찍힌 자들을 아예 사회에서 사라지게 한다. 동성애자, 부랑자, 알코올 중독자, 마약 중독자, 일할 의지가 없는 자, 무정부자들인 ‘여호와 증인’들은 다섯 군데 세워진 수용소에 2만 명이 가두어졌다. 모두 자국민들이다.
1938년, 독일은 유대인의 재산을 박탈하려는 ‘아리아인화’에 돌입했다. 즉 독일에서 정통 독일인 계통인 아리안이 아니라 살 권한이 없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그리고 히틀러는 다음과 같이 거짓말한다. “모든 유대인들이 비유대인들을 상대로 세계적인 전쟁을 꾸미고 있다”고.
1930대 후반에 스탈린에 의해서 가장 많이 살육당한 자들은 독일계의 유대인이 아니라 600만 명의 폴란드계 소련인이었다. 단지 소수민족이 자체적으로 민족주의를 희망했다는 것이 학살당한 이유다. 소위 ‘폴란드 박멸 작전’이다.
1939년 9월 1일, 새벽 4시 20분, 독일은 폴란드를 침공한다. 침략 이유는 간단하다. “독일인이 주인이고 폴란드는 노예가 되어야 하니까” 독일의 공격 목표는 슬라브인들의 땅에서 슬라브 민족의 씨를 말리고 그 땅을 독일인의 땅으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반면에 소련이 폴란드를 공격하여 괴롭힌 이유는, “슬라브지역 전체를 일국사회주의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이다.”
그 결과, 이 슬라브지역에서 전쟁이 끝났을 때, 슬라브족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3100만에서 4500만 명이 사라져야 했다.
폴란드는 독일과 소련, 양쪽에서 뜯어먹히게 된 것이다. 1939년 9월에서 1941년 6월 사이에는 독일과 소련은 20만 명의 폴란드인을 살해했고, 약 100만 명은 삶의 터전에서 쫓아내고 얼마 안 가서 그들도 다 죽게 했다.
독일은 전쟁 전체를 통틀어 1000만 명 이상을 계획적으로 죽였는데 (전투 중 말고) 여기에 500만 명이 웃도는 유대인과 300만 명이 넘는 전쟁 포로가 포함되어 있다.
1941년 9월, 독일은 소련의 레닌그라드를 포위하게 되는데 총 350만 명이 되는 주민들은 1944년 포위가 풀릴 때까지 그 안에서 100만 명을 잃게 된다. 독일군은 포로로 잡힌 소련군인들을 수용소에서 집어넣고 무조건 굶어죽게 했다. 그렇게 죽은 소련 포로가 310만 명에 달한다.
소련을 공격한 독일은 1942에 들어서서 군사 100만 명을 잃게 된다. 이제 후퇴하는 수밖에 없다. 벨라루스 숲에서는 빨치산들의 게릴라 공격이 빈번하다. 벨라루스의 경우, 독일을 피해 도망간 사람이 100만 명 이요 강제 노동에 끌려간 사람이 200만 명이라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전체 인구의 전반이 죽거나 사라졌다.
약 540만 명의 유대인들이 독일의 세력권에서 목숨을 잃었다. 게토, 즉 독일은 점령지역마다 유대인만 따로 모아놓은 지역을 만들었는데 여기에 유대인들로 구성된 경찰들이 같은 동족인 유대인들을 끌어모으고 학살하는데 협조했다. 하지만 이들 유대인 경찰들도 독일군에 의해서 다 죽는다.
전쟁 말에, 독일은 유대인들을 위한 ‘학살 공장’ 세운다. 유럽 각 점령 지역에서 이송해온 유대인들을 가스실을 통해서 다 죽여버리는 것이다. 유대인을 특별히 지목해서 집중 죽여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 독일은 자신의 국민들에게 전쟁을 계속할 명분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1944년 이후, 이제 전쟁 사태가 역전되었다. 소련의 붉은군대가 독일군인과 독일인들에게 못 할 짓을 한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포로수용소에서 죽은 독일인 약 60만 명이었다. 종전을 앞두고 동부전선에서 소련의 붉은 군대와 싸웠던 독일군은 황급히 서쪽으로 이동했는데 그것은 소련군이 아닌 미군이나 영국군에서 항복하기 위해서이다.
전쟁 동안, 폴란드에 있었던 독일 피란민 약 600만 명 가운데 100만 명 정도가 되돌아왔는데 폴란드 공산당은 새로 조직한 군대를 보내 ‘폴란드 영토’에서 독일인을 청소해 버리도록 했기 때문이다.
1945년 여름, 체코 슬로바키아 내에 독일계 소수민족인 약 300만 명 되었는데 5월 이후, 정부는 이들을 국경 너머로 내몰았다. 이 와중에서 3만 명 이상의 독일계 주민이 살해되었고 5558명이 자살했다. 소위 ‘복수’가 시작된 것이다.
폴란드의 경우, 전쟁 이후, 독일인들이 공산주의 폴란드에 의해 청소되었듯이 폴란드인들로 소련에 의해 청소되었다. 전쟁 중과 후에 자기 집을 잃은 독일인의 숫자는 1200만 명을 넘었다. 소련과 폴란드에서 1200만 명 이상의 우크라이나계, 폴란드계, 벨라루스계, 기타 등등이 강제이주 당했다. 이 숫자는 독일의 손에 의도적으로 학살된 1000만 명의 숫자는 제외된 것이다.
(평)
스탈린은 한 사람이다. 히틀러도 한 사람이다. 그러나 이 둘의 명령으로 죽은 사람은 3000만명이 넘는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그것은 정치적 이념에 모든 인간들이 녹아들어 간 것이다. 더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에 그들은 사로잡혔다. 즉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 줄로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다.
죽음이 어떤 식으로 자신에게 찾아오고 ‘지금보다 더 살 수 있다’라는 제안에 대해서 인간은 전혀 저항할 마음 준비가 되어있지 않는 것이다. 즉 ‘살겠다는 짓’이 곧 ‘죽음을 재촉하는 짓’이었던 것이다.
전체주의 정권은 늘 인간들이 마음속으로 요청하는 바이기에 언제든지 등장한다. 왜냐하면 ‘나’ 빼놓고 다 나에게는 ‘쓸모없이 남아도는 자’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전체주의 정권은 내가 하지 못하는 ‘남아도는 자’들을 소거해주는 권세자들이다. 하지만 타인이 볼 때에 우리 자신도 언제든지 ‘쓸모없는 잉여존재’로 바라보고 있다.
전체주의 국가에 열광적으로 협조했던 나치 시대의 독일국민이나 스탈린 시대의 무신론주의에 매료된 소련의 인민들은 그저 그들을 조정하는 스탈린의 ‘파블로프의 개’에 불과하다. ㅇ먹을 것만 주면 자동적으로 입 안에 침이 고이는 동물적 본능만 보이는 자들이다. 그래서 악마는 이 세상에는 인간들에 늘 이긴다. 악마만이 지금의 인간들이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한 그 인간들이 아님을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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