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인들 보기에, 목사들은 예수를 믿는 줄로 안다. 실제로는 안 믿는다. 그 대신 교회를 믿는다. 달리 말해서 교회를 소지하려고 한다. 목사들은 교회 때문에 울고 웃지 결코 예수 때문에 울고 웃지 않는다. 목사들이 교회 때문에 울고 웃는다는 말은 곧 돈에 울고 돈에 웃는다는 말이다.
목사들은 말한다. "우리는 평범한 인간이고 사람이다. 나는 결코 예수도 아니요 신도 아니다. 더이상 우리보고 어쩌란 말인가?"라고 교인들보고 항변한다.
사람들 끼리만 서로 용납해도 천국에 넉넉하게 들어갈 수 있는 교회라면 목사의 이런 항변도 참을 수 있다. 문제는 이런 목사들이 어쩔 수 없이 십자가를 모독해야만이 자기 주장이 정당화 된다는데 있다. 즉 십자가 복음의 구원 능력을 공개적으로 욕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교인들의 관심사를 교회 돈 내는 쪽으로 유도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이다.
성도들이 교회 온 것은 목사 개인 사정이나 들으려고 온 것이 아니다.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님께서 못난 우리들에게 무슨 은혜를 주시고 친히 인도하시는가를 알아서 오로지 예수님에게만 영광을 돌리고, 오직 주님만 관심을 갖고 있는 형제들을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목사 자신부터 주님 은혜의 고마움을 공개적으로 깨부수면서, 주님의 공로만을 듣기를 고대하는 교인들을 '염치 없는 놈'으로 공격하기를 주저하지 않을 때, 그 교회는 십자가 희생에 대한 감사가 넘치는 교회가 아니라 목사 본인의 불신앙을 교인들이 너그럽게 이해 안해준다고 목사가 온갖 행패부리는 공간이 되어버린다.
교회가 뭔가? 에베소서 1장에 보면 부활의 권세가 작렬하는 곳이요 우주의 중심이다. (1:21) 그까지껏 목사 하나 굶어죽거나 아파죽어도 예수님의 부활 능력은 여전한 위세로 발휘되는 곳이 교회다. 목사부터 이런 영적 세계에 눈이 뜨여져야 한다.
복음 듣기 위해 오신 교인들이 비록 손이 돈 한 푼 없다할지라도 목사 그저 고맙고 감사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현존하는 주님께서 부활의 능력으로 그 교인들을 복음 듣기 위해 예배당에 모이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비록 돈은 없어도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 때문에 삽니다"라는 고백을 목사가 선창 할 때, 참된 성도라면 목사의 공로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주님의 공로에 감격하여 주님의 보이지 않는 절대 사랑에 합류하게 된다.
"환란이나 핍박이나 그 어느 것도 그리스도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롬 8: 35)
교인들이 목사의 불신앙을 걱정해야 될 판국이라면 교인들의 마음이 얼마나 괴롭겠는가!
목사 본인들이 믿음이 없어 예수 안믿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더라도 그런 이유로 주님만 바라보고 사는 교인들을 핍박해 버리면 바로 그런 목사가 가룟 유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