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강의

연속성과 불연속성1

아빠와 함께 2021. 3. 29. 20:30

강남-누가복음 5장 36절 (연속성과 불연속성) 210316a-이근호 목사



오늘은 누가복음 5장 36절 “또 비유하여 이르시되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어울리지 아니하리라” 했는데 35절부터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나 그 날에 이르러 그들이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했는데 여기 신랑을 빼앗긴 이유부터 찾아내야 됩니다. 왜 신랑이 멀쩡히 결혼식 하는데 왜 빼앗기는가. 빼앗기는 이유가 뭐 때문에 빼앗기느냐 하면은 이것 때문에 빼앗겼어요. ‘금지’.


그 금지가 어디 나오느냐 하면은 33절에 “요한의 제자는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또한 그리하되” 라고 되어 있지요. 바로 금식, 고난주일, 고난주간 이런 것들을 지킨 겁니다. 일상적이 아니고 일상적인 음식을 금지하고 금하는 것.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은 왜 금지가 신랑 빼앗김으로 이어졌는가. 왜 빼앗김으로 이어졌느냐 하면은 인간들이 원하는 그 하나님은 이 안에 뭐가 포함되어 있느냐 하면은 금지가 포함된 하나님이에요. 금지가 포함된 하나님입니다.


그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 이 사람들이 구약 율법을 알잖아요. 구약의 그 사람들이 창세기 2장을 잘 알거다 이 말이죠. 선악과 과실을 따먹지 마라. 선악을 아는 과실을 따먹지 마라를 하나님 속에다가 집어넣고 하나님은 금지를 우리에게 가르쳤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는 그 금지된 것을 우리가 위반하지 아니하면 우리는 하나님과 서로 잘 아는 통하는 사이가 된다는 이런 논리에 도달하겠지요.


그런데 그 예수님께서 오시면서 특히 요한복음같은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깜짝 놀랄만한 이벤트가 준비되어 있어요. 그건 뭐냐 하면은 하나님이 사람이 되었다는 겁니다. 이것은 쇼킹한 거에요. 이게 아주 쇼킹한 겁니다. 아주 충격적인 거에요. 요즘 유튜브에 나오는 단어를 쓴다면 소름끼치는 거에요. 소름끼치는 것. 소름도 아니고 소오름.


왜 그러느냐 하면은 하나님이 구태여 사람이 될 이유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가 아는 게 없으면 하나님이 사람 되면 돼요. 우리가 아는 게 없으면. 그러나 이미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이 이미 금지한 것, 율법에 금지한 것 있잖아요.


금지한 것을 위반 안하면 되고 하라면 하면 되고 이미 그걸 충분하게 하나님에 대해서는 꽉 잡고 있다 하나님에 대해서는 우리가 모르는 게 없다. 익히 하나님에 대해서는 이미 정리가 끝난 상태다. 그 하나님이 시키는대로 하면 된다라고 모든 것이 안정돼 있다 이 말이죠. 그것이 그 시대의 하나님 상이 일반화되어있다. 보편화되어있다 이렇게 이해하면 돼요. 일반화되어있는 거에요.


일반화되어있다는 말은 하나님이 금하는 것을 안 하고 하라고 하는 것을 하면 된다.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면 지키면 된다라는 것에 대해서 누구도 토달 것이 없음. 거기에 대해 시비걸 것이 없음. 전부다 충분히 동의가 된 그런 하나님이다 이 말이죠. 이미 하나님이 다 갖추어져 있잖아요. 충분하게 하나님의 모든 것을 동의되어있지 않습니까. 알고 있다 이 말이죠.


그런데 굳이 하나님이 사람이 될 필요가 있을까요. 우리가 교회에 대해서 알고 성경에 대해서 알고 있는 세월이 몇 년입니까? 여기는 가까운 몇 년 된 사람도 있지만 수십 년 된 사람들이에요. 수십 년. 어릴 때부터 빵 얻어먹을려고 크리스마스 때부터 교회에 가서 수십 년 된 사람들이에요.


수십 년 된 사람인데 그동안 한번이라도 왜 하나님이 굳이 사람이 되었을까? 꼭 그럴 필요가 뭐가 있었을까. 라는 생각 해 본 적 있습니까? 이것은 하나의 이벤트 정도가 아니고 이것은 도발입니다. 도발이에요 이거는. 반칙이에요. 하나님이 그러시면 안돼요. 하나님이 이렇게 나오면 안돼요 이게. 이렇게 나오시면 안 된다고요.


대기업 빌딩 본사에 회장실이 따로 있어요. 그럼 회장님은 따로 엘리베이터 타고 출근해가지고 출근했는지 안했는지 모를 정도로 따로 단독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가가지고 거기서 비서를 통해서 또는 임원을 통해서 지시하면 돼요. 지시하면 된다고요. 지시에 따라서 대기업이 잘 굴러가고 돌아가고 그게 일반 사원들이 마음 편하고 일반화되어있고 거기에 대해서 우리가 다 일반 사람들이 토 달지 않습니다.


그런데 굳이 회장님이 걸레 들고 화장실 청소할 필요 없단 말입니다. 굳이. 이거는 도발이에요. 이거는 인간에 대한 뭐냐 하면은 모독입니다. 인간 세계에 대한 모독이에요. 이거는 화해가 아닙니다. 선전포고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됨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마련해놓은 모든 거창한 하나님을 위한 잔치상 그거 엎어버립니다. 전부 다 이거는 뭐냐? 그냥 가위표입니다. 전부 다 찍 그어버리는 거에요. 모든 것을 부정해버리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구원같은 소리하고 있네. 안돼. 구원 없어. 하나님도 모르면서 무슨 구원이 돼요. 하나님을 이렇게 세워놓고 존재해놓고 거기에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어떤 언어라는 것, 율법이라는 것, 성경이라는 언어, 언어를 이렇게 사다리처럼 이렇게 쭉 세워놓고 우리가 차근차근 하나하나 추려가면서 지켜내고 지키고 지킨 것 제끼고 해가지고 만들어서 법칙을 만들어서 질서를 만들어서 이렇게 다가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하늘에 별이 떨어지는 것보다 달이 떨어지는 것보다 더 충격적인 이야기에요. 달 떨어지고 별 떨어지면 가서 주우면 되지요. 유성처럼. 이거는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거에요. 사도바울에 의하면 사람 정도가 아니라 죄인이 되신 거에요.


왜 하나님이 죄인이 되셔야 합니까. 그냥 오셔도 점잖게 오시지 왜 죄인이 되시고 그리고 그것이 어디에서 돌아가셨습니까? 사형장에서 돌아가셨어요. 사형장에서. 하나님께서는 한번 갈 때까지 가보자는 거에요. 너희들 인간세계를 관통해버리겠다는 겁니다.


너희들이 잘 해볼려고 마중한 그 마중에 그 첫 스타트부터 해가지고 마지막에 끝장날 때까지 인간들이 어떤 인간들을 사형시켰는가 그 인간들이 인간들이 싫어서 사형을 시킨 그 현장에 모든 인간이 동의해서 저런 인간은 살려둬서는 안됩니다. 저런 인간은 우리 인간 세계에 더 이상 살려둘 이유가 없습니다 하는 그 막장, 그 쓰레기장, 일종의 지옥이죠.


그 지옥을 이 세상에서 구현한다면 바로 그 장소가 되는 그 장소. 그건 바로 십자가 사형장이죠. 하나님은 끝까지 관통해서 너희들이 설정해놓은 모든 것에서 나는 끝까지 너희들 자리에 내가 가겠다는 겁니다. 이거는 정말 도발입니다.


주님이 사형장에 그냥 구경하게 되면 그냥 주님께서 사형장에 오셔가지고 나는 주님인데 너희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제대로 지키는가 시찰하는 식으로 인간 세계에 교도행정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교도소 사형수들은 어떻게 했지? 사형장 한번 구경해 볼까? 이렇게 해서 구경하는 거 말고요. 직접 죄인이 되어서 죽을 죄인이 되어서 죽으시거든요.


왜 이런 도발을 했는가. 이것은 바로 뭐냐 하면은 불연속성이에요. ‘불연속성’.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어떤 성질이 있다? 연결될 수 없는 불연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 오늘 아까 36절 읽어 드렸잖아요. 그럼 제가 37절을 한번 읽어드릴게요.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지요. 포도주의 가치가 땅에 쏟아진다고요. 이것은 연속적입니까? 불연속적입니까? 지금 새 포도주와 옛 부대가 연속적이 아니지요? 불연속적이죠.


담을 수 없는 것들을 인간들이 지금 지니고 있다 이 말이죠. 인간이 없다가 아닙니다. 지금 인간이 있어요. 있긴 있는데 뭘 담을 수 없냐 하면은 새로 등장한 하나님을 마음 속에 담을 수 없는 것들로 차 있다 이 말이죠. 이 세상이. 그래서 자꾸 하나님을 거론하는 거에요.


인간들은 뭐에 자신감을 갖고 있느냐 하면은 하나님이 금지한 것을 우리도 금지했으니까 고난주일해가지고 음식 먹지 말고 하나님을 위해서 마음을 낮추기 위해서 금식 시간 갖자. 얼마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는가. 자기들끼리 그렇게 정하는 거에요. 자기들끼리. 자기들끼리 정하면서 근거가 있다는 거에요. 뭐냐 하면 하나님께서 고난주간 지켜라고 한 겁니다.


이사야, 예레미야에 많이 나오거든요. 너희들이 너무 까불고 뛰고 해가지고 하나님께서 안식일날 더러워서 못 보겠다 하니까 그러면 우리가 금식하겠습니다. 금식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마음을 낮추고 마음을 괴롭게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가상히 여기셔서 이쁘게 보겠지. 뭔가 보너스라도 콩고물이라도 주시겠지 그런 아이디어가 나온 거에요.


그런 아이디어가 뭐다? 그들은 연속적으로 생각한 거에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끊어진 대목이 없다는 겁니다. 어떤 식으로도 연결되어있을 것이다 한 거에요. 아마 인간들은 이렇게 생각했을 거에요. 하나님이 정 우리 인간들이 하는 게 맘에 안 들면 추가적인 법을 더 주세요. 추가적인 법. 지금 법으로 연결이 안 된다면 연결될 수 있도록 또 다른 법을 또 주실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겁니다.


그럼 자기들은 뭡니까? 하나님이 주신 그 법이라는 언어 있잖아요 언어. 법은 언어로 되어있잖아요. 그 언어를 계속해서 인간의 이성으로 받아 챙겨서 그걸 실행에 옮기면 실천 옮기면 만사 오케이로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에요.


그런데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버린 거에요. 그러면 하나님이 사람이 되었다는 말은 인간들 눈에 보이겠습니까? 사람이 보이겠습니까? 사람이 보이겠지요. 사람이 보이는데 하나님이 사람이 되었다는 생각을 꿈에도 생각 못하기 때문에 이 사람 안에 하나님 들어있다는 생각을 했겠어요? 못했겠어요? 못하지요.


이 사람을 일반 사람, 일반화된 일반 사람 중에 한 사람으로 정한 거에요. 일반 사람으로 생각한 겁니다. 일반사람으로 생각했다는 말은 하나님이 이 사람 안에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들 상상에 의해서 따로 하나님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따로. 따로 하나님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지금 하나님과 인간의 불연속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불연속성. 불연속성 된 이유는 인간들이 하나님이 고분고분 시키는대로 다 해서 하나님이 금지한 것은 우리가 너무나 마음이 신앙심이 좋아서 우리가 안 금하고 싶지만 하나님이 금지했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욕구와 욕망을 억지로라도 끊어버리고 그 날만큼은 고난 주간이기 때문에 중지하자. 좀 참자.


그래서 지금 3월말 되면 교회마다 무슨 기간이 있습니까? 고난주간 하잖아요. 고난주간해서 모아놨던 사람 금요일날 6/25때 수제비를 생각해가지고 수제비해서 어려운 사람들 주고, 금요일 마지막 예수님 겟세마네 기도할 때까지만 참고 이제는 토요일날 아침에는 돈가스, 치킨, 탕수육 그동안 못 먹은 것 실컷 고난주간 지켰잖아요. 당당하게 먹을 권한 있다는 거에요.


고난주간 지나고 토요일 아침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겠어요. 어떤 사람은 성질 급한 사람은 토요일, 금요일 12시 땡 치자마자 미리 치킨 주문해가지고 12시 넘으면. 옛날에 그랬었어요. 고신측에서는 그런다고요. 토요일 되면 고난주일 끝나기 때문에. 아주 파티를 열어요.


하나님이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것이 우리의 욕망에 위배되지만 욕망하고 어긋나지만 그래도 그걸 이겨내고 금지하는 그 모습을 보고 하나님이 대견하게 여길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은 누가 대견하게 여기느냐 하면은 본인이 본인을 대견하게 여깁니다. 본인이. 내가 이것을 해냈어. 내가 이것을 해냈단 말인가. 진정. 이런 거.


여러분 40일 금식기도 해봤어요? 제가 자주 이야기합니다. 금식하라고 밥먹어가면서 금식하라고. 밥먹어가면서 금식하라 이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은 안줘도 되는데 주십니까 이렇게 그 마음이 금식하는 마음이에요. 먹을 자격도 없는데 주시니까 맛있게 먹겠습니다 이게 금식이라니까요. 그게 떡볶이라도 괜찮아요.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 이게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라는 것을 사전에 언질이라도 줬으면 기다렸겠죠. 그 언질도 없었어요. 인간들은 하나님이 사람 되길 요청한 적이 없다 이 말입니다. 하나님의 선지자가 오는 것은 요청했지만 하나님 본인이 사람 되는 것을 요청한 적이 없어요.


인간의 머릿속에는 이런 하나님의 뜻이 나오겠어요? 안 나오겠어요? 안 나오지요. 안 나온다면 그동안 인간의 머릿속에서 나온 있음, 수학, 과학, 철학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싹 쓸어 버리는 거에요. 하나님 안 받는 겁니다. 인간에게 납득이 되는 것, 인간에게 뭔가 연속성이 있다고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는 어떤 단계가 됐다고 여기는 모든 것들. 헌금, 기도, 전도, 금식 뭐 예배, 성경읽기, 공부, 전부 이것은 하나님 안 받습니다.


하나님이 받는 것은 이것 하나 밖에 없어요.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만 받습니다. 이건 안 받아요.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것을 내가 아는 것은 안 받습니다. 말 끝까지 들어야 돼요.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 내가 믿는 것은 안 받습니다. 하나님이 사람 되신 것만 받아요. 하나님이 사람 되신 것만. 왜? 이것만이 연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것만이.


그러면 인간들의 아이디어는 뭐냐? 인간들은 이래요. 살아있을 동안에는 바빠요. 같은 인간들끼리 같이 노닥거리고 일하고 자기 자식 키우고 하면서 뭐 하나님까지 그다지 그렇게 깊이 생각 안하고 굉장히 자기 코앞에 있는 자기 밥벌이하기에 급급한 거에요.


그런 종교, 철학 그런 거 없고 그냥 자기 일해서 그냥 돈 벌고 하루하루 살아가고 뭐 또 목표 세워가지고 내 것 이렇게 정리정돈하고 내 재산 모으고 거기에 몰두하다가 이제 좀 나이 좀 들었다 싶으면 무엇에 관심이 있느냐 하면은 산 자와 죽은 자가 어떻게 연결되는가? 연결점에 대해서 좀 관심을 갖게 됩니다.


사람이 살다가 죽잖아요. 장례식장 가보면 그런 사람들 많지요. 살아 있다가 죽는단 말이죠. 살아 있다가 죽을 때에 그 사람이 그 사람의 품위와 가치와 의미가 그대로 유지된 채 죽음세계까지 연결될거냐? 말거냐에 대해서 약간의 관심사를 두기 시작합니다.


거기서 나온 아이디어가 뭐냐 하면은 사람은 제 이야기가 아니고 종교생활 이야기하는 겁니다. 사람은 이 세상 살면서 참 죄를 많이 지었다. 나이 많아서 그런 생각한다고. 나이 젊을 때는 그런 생각 안하고. 죽을 때 되가지고. 사람은 살아가면서 밥 먹고 산다고 참 거짓말도 하고 죄도 많이 지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인간들의 이성에 의하면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거든요. 엄하신 분이고. 그리고 완전한 분이기 때문에 인간하고 다르기 때문에 철저하시고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심판하신다. 왜? 심판해야 공정한 하나님이고 정의로우신 하나님이시니까 심판을 하신다.


그런데 여기서 종교가 대안을 제시해요.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분이고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보다도 자기 자신 밥 먹고 사는데 급급했고 그것에만 거의 정신을 팔려서 그렇게 살아왔고. 그래서 여기서 협상테이블 앉아 가지고 의견 한번 조율 한번 해주세요. 조율. 밀고 당기는 거 있잖아요. 조율 한번 해주세요. 조율 들어가는 거에요.


어떻게 하느냐 하면은 불교에서의 아이디어인데요. 사람이 죽었을 때 선과 악을 행했으니까 선과 악을 행했는지 안 행했는지 어떻게 아느냐? 7번, 7번을 재판을 받아요. 죽고 난 뒤에 영혼이. 7번을 재판을 받는 가운데서 비로소 자기가 밥 먹고 산다고 죄 짓는 것이 막상 염라대왕이나 심판자 앞에서 보니까 좀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7번 동안에 회개하면되는 거에요. 일주일에 한 번씩 색다른 재판을 받아요. 색다른 서로 다른 재판을 7번 받는 겁니다. 그럼 기간이 총 몇 일 걸릴까요? 7일간 7번이면 몇 일 걸릴까요? 49번 받지요. 그것 끝나고 난 뒤에도 아직 회개 했느냐 안했느냐 마지막 보는 게 49제 에요. 49제. 그 49제는 영혼은 결정이 안 되고 유보상태에 있는 겁니다. 천주교의 연옥설 비슷한 거에요.


왜 그런 아이디어를 끄집어냈느냐 하면은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하늘은 너무나 높으시고 인간은 너무나 비천하지만 죽을 영혼에서는 그게 조율의 대상이 된다는 겁니다. 죽었으니까 밥 먹고 살 일은 없을 거 아닙니까. 이제 자기의 과거를 돌아보는 거에요. 그 때 내가 콩나물 값 너무 많이 받았다. 중국산 500원짜리를 2200원 받아 가지고 지금도 내가 깨름직하구나.


“네가 그런 일을 네가 회개하느냐?” “회개합니다.” “이놈은 봐줘라. 콩나물에 대해선 봐줘라.” 그럼 다른 재판 가면 “너는 왜 남편한테 너무 심한 말 잔소리를 너무 했잖아 남편한테. 설거지 똑바로 하라고 하면서 시댁까지 들먹이면서 일주일 동안 말 안 한 거 있지!” “그때 너무 성질나서 그랬습니다.” “그랬나?” “지금 그때 너무 했다고 생각합니다.” “옳지. 이것도 좀 감해줘라.” 이래 가지고 본격적으로 불연속성을 연속성으로 가는 거에요.


이게 뭐냐? 49제에요. 마지막 49제때는 산 사람이 협조를 해줘야 돼. 천주교랑 똑같아요. 산사람이. 죽은 사람한테 맡겨버리면 안 되니까 살아 있는 후손들이 으쌰으쌰 우리 선조님 힘내라 힘내라 정신차려 정신차려. 마지막 그걸 영락제라고 합니다. 영락을 얻기 위해서 마지막 그 49제에서 영락제를 지내는 거에요.


자, 이 이야기가 도를 아십니까 거기에 나오는 그 사람들 입에서도 나오고 다 나와요. 들어보니까 천주교가 연옥설을 해놓고 신부들한테 제사 미사해가지고 천주교 다녀본 적은 없지만 죽고 난 뒤에 보면 영혼이 야 이거 무섭구나 알게 될 때 그때 먼저 죽었던 기도빨 되는 사람들 12사도들 있잖아요.


성 베드로여, 성 요한이여, 성 루카여 망자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면서 또 천주교인들 25인승 버스 다 타가지고 화장터 갈 때까지 계속 연도, 연이어 기도. 계속 해요. 책자 있어요. A파트 읽고 B파트 해주고 다 하면 C파트 해주고. 같이 연도 해가지고. 지금 연속성과 불연속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연도하면서 갈 때 그게 바로 인간 종교의 연속을 시도하는 거에요. 죽은 영혼을 갖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어지간히 양심이 좀 있는 사람 같으면 뭘 천국 가서 승진할 생각 안 갖고 중간쯤이라도 들어갈 수 있는 사람 같으면 들어갈 수 있도록. 아주 악한 연옥에서도 악한 사람은 안 되고 괜찮은 사람들은 전부 다 받아주겠다는 거에요.


그래서 소크라테스나 아리스토텔레스 이 사람들은 복음 모르잖아요. 하지만 천국 다 갔다는 거에요. 왜? 너는 똑똑하니까 “내 말 알아듣겠지?” “알아듣습니다.” “그럼 천국 와.” 중간 지역을 해주는 거에요. 누가? 천주교에서. 이래도 천주교가 이단 아니에요? 이단이라는 말 붙일 가치도 없어요. 불교에요.


그런데 말입니다. 기독교는 어때요? 기독교는 유대교에요. 바리새인이에요. 우리가 금지한 것을 안 함으로서 하나님께 의를 돌리고 거룩한 성화 된다는 겁니다.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는요 연속성이 없어요. 인간이라고 치고 하나님 앞에 연속성은 없습니다. 왜? 인간 자리는 누가 차지했는가? 예수님이 차지했기 때문에 인간은 그 하나님에 의해서 율법에 준해서 그냥 처음부터 저주받아야 돼요.


제가 어제 대구강의에 했잖아요. 인간이 죄 짓는 게 아니고 죄가 인간을 만들어낸다고요. 죄가 인간을 만들어냈어요. 이제 성령 받은 성도는 인간이 죄 짓는 것과 죄가 인간을 지었을 때에 그 차이를 성령 받은 성도는 그걸 알아낼 수가 있습니다. 그게 뭐냐? 옛 술은 피, 옛 부대에 담아요. 그리고 새 술은 피, 새 부대에 담아야 돼요.


새 술도 인간에게 없고 그 새 술을 담을 새 부대는 마련되지 않습니다. 왜? 불연속성이기 때문에. 인간이 쥐고 있는 것은 뭐냐 하면은 하나님께서 받지도 않는 옛 술과 옛 부대만 쥐고 이걸 으쌰으쌰 해가지고 이걸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될려고 헛된 시도를 벌이는가 이게 오늘 본문에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걸 설명하면서 아직도 그걸 설명 안했어요. 인간은 왜 신랑을 왜 빼앗기느냐 그걸 설명 안했어요. 신랑이 왜 빼앗기느냐? 빼앗긴다고 아까 언질을 드렸습니다. 예수님이라는 신랑. 신랑이 빼앗길 때가 온다는데 그 신랑이 빼앗기는 이유는 누가복음 5장에서는 이게 무엇 때문에 그렇습니까? 금지 때문이죠. 요한은 금식하는 왜 금식 안하느냐 이렇게 나왔지요.


그것과 신랑 빼앗기는 것과 무슨 상관있느냐. 이런 상관있어요. 방금 쭉 강의한 것을 들어보게 되면 인간들은 하나님에 대한 견해가 어떻느냐 하면은 금지를 집어넣음으로써 연속성을 갖추었다고 여깁니다. 금지를 집어넣음으로서. 이 금지는 일종의 인간이 할 수 있는 고난이죠. 자기의 욕구를 잠시 중단하는 거니까. 욕망을 줄이는 거니까.


나 하고싶은 것을 줄이는 것 이걸 가지고 자기 부정이라고 하지요. 자기 부정. 불교에서 많이 하고 있습니다. 자기 부정. 천주교에서는 뭐냐? 다 내 탓이요. 차 뒤에다가 내 탓이요 같은 스티커 붙여가지고 내 탓이요 내 탓이요. 자기 부정을 집어넣음으로서 하나님과 인간 나 사이에 자기 부정으로써 이걸 연결시킬려고 시도한 겁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인간 될 이유가 없지요. 이게 성사된다면. 이게 성공적이라면 하나님이 인간 될 이유가 없지요. 다시 묻습니다 왜 굳이 하나님이 인간이 돼야 됩니까? 이거는 근원적으로 하나님이라는 생각부터 해가지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생각, 그리고 하나님과 가까이 하겠다는 그 생각 모든 것을 전부 다 뒤엎어버렸어요. 뒤엎어버려요. 도발적으로 뒤엎어버립니다.


지금 테이블 보니까 중국집 생각나는데. 중국집에서 팔보채 시킨다든지 유산슬 짬뽕 시킨다든지. 와서 뒤엎어버렸어요. 음식값보다도 얼굴에 국수 붙은 게 더 우사스러워서 부끄러워서 너무나 치욕스럽지요. 인간 치욕스러우라고 하나님께서 사람되신 거에요. 너희들 하는 짓거리를 완전 뒤엎어버린 겁니다.


여기서 인간 배후에 악마가 있습니다. 악마는 ctrl V 라고 했지요. 악마의 주특기는 뭐냐 하늘나라를 그대로 복사하는데 있어요. ctrl V. 단축키 아닙니까. 복사가 되잖아요. 그대로 복사를 해버려요. 하나님께서 선악과 따먹지 마라 금지를 했거든요.


그래서 인간들은 악마의 사주를 받은 이 인간들은 이 금지조항이 금지조항을 삽입함으로써 하나님이 금지한 것과 인간이 자기가 금지조항을 만들었다는 이 사실로 경쟁관계에 돌입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지적하기 전에 하나님이 지적한 것을 내가 익히 압니다 라고 여기면서 자기가 자기 스스로 하나님이 지적할만한 것을 여기다 장착해버려요. 그러면 더 이상 하나님의 잔소리가 나한테 도달될 필요가 없지요.


그런 것은 여러분 결혼한 사람들은 잘 알거에요. 아내가 하도 잔소리를 하니까 남편이 과도하게 잔소리에 관한 벌칙을 자기가 먼저 해버려요. 왜? 내가 고통스러운 것보다도 아내의 잔소리가 더 고통스럽기 때문에. 더 고통스럽기 때문에. “입 좀 다물어라 내가 알아서 긴다 지금. 너 눈에 보이지? 이 정도로 네 잔소리는 지긋지긋해. 지긋지긋해.”


들어올 때 양말 거꾸로 하지 말고 바로 빨래하기 좋도록 바로 딱 벗어놔야지 거꾸로 벗어서 던져놓고 하지 마 라고 잔소리를 딱 기억한다면 남편은 양말 바로 벗어놓으면 되는데 그걸 또 들고 온다. 보란 듯이. 잔소리 stop! 잔소리 stop.


이건 뭐냐 하면은 네가 나한테 잔소리를 함으로써 이 가정에서 네가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착각하지 마. 너는 이 가정에서는 나는 너의 주도권에 밀리고 싶지 않아 이런 뜻이거든요. 여자들은 그 마음을 알까? 남편들은 그 마음을 알지요.


하나님을 상대하면서 얼추 하나님에 대해서 나도 제법 압니다라는 티를 냄으로써 하나님한테 안 밀리고 싶은 것이 악마의 마음이에요. ctrl V. 복제를 했으니까. 하나님께서 원하는 것을 그대로 다 도입해가지고 여기서 유사품을 만드는 거에요.


하나님이 굳이 안 시켜도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하나님의 원칙을 누가 나서서 누가 실천한다? 내가 나서서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을 내가 실천해 옮긴다는 모습을 하나님 앞에서 자랑스럽게 내비치고 싶은 거에요. 꾸지람할 여지를 사전에 없애버리는 겁니다.


거기에 대해서 예수님은 산상설교에서 어떻게 했느냐 하면은 지난주일 낮에도 그런 이야기했습니다만은 산상설교 어떻게 하느냐 하면은 살인한 적도 없는 인간은 굳이 살인자로 만들어 버려요. 그렇지요? 간음한 적도 없는 인간은 굳이 간음자로 만들어 버려요. 이제 손예진 사진 보기만 해봐라.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자가 천국가기가 얼마나 힘든지 낙타가 바늘구멍 이야기했거든요. 낙타와 바늘구멍을 거론한다는 이것은 힘들다는 정도일까요? 불가능하다는 정도일까요? 불가능하다는 말이에요. 예를 들면 굵은 실이 좁은 바늘구멍 가기가 얼마나 힘들지? 이렇게만 이야기해도 아 힘든 것은 기정 사실이지만 한 천번으르 뚫으면 한번은 뚫리겠다 이런 여지가 있잖아요.


그런데 굵은 실이 아니고 낙타를 왜 바늘에 왜 집어넣습니까? 그걸 할 필요가 없잖아요. 낙타가지고 직물 짤 일 있습니까? 낙타가 바늘구멍이라는 말은 못 간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에요. 못 간다는 것을 강조. 다시 말해서 부자가 그렇다는 말은 더 나아가서 무슨 뜻입니까? 은근히 아이고 집안 참 서글프다. 나도 좀 사람 사는 것처럼 살아보자 은근히 돈 많아지기를 올해는 돈 많아지기를 은근히 기대한다면 그 사람은 천국에 막혀있는 사람입니다.


모든 말씀이 그래요 모든 말씀이. 뭐 오른눈 빼는 것은 기본이고요. 팔 없는 것은 기본이고요.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는 것은 천국 다 갔어요. 그건 지옥 갈 사람들 하는 짓이에요. 그건 이방인들이 하는 짓이라고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그 이야기를 누구한테 했습니까? 바리새인보다 더 의가 낫지 아니하면 천국 못 간다 되어있지요.


자, 천국 가는 것하고 누구하고 배틀 붙었느냐 하면은 바리새인하고 붙은 거에요. 그전에 예수님께서 하는 말이 모든 율법은 다 이룬다 했지요. 일점일획 다 이루는데 바리새인이 하는 것이 기껏 인간이 할 수 있는 역량의 최고치가 바리새인이에요. 그래서 바리새인보다 더 도약 하지 않으면 천국 못 간다는 말은 지금 바리새인이 천국 간다? 못 간다? 못 간다는 말을 그렇게 하시는 거에요. 못 간다는 말을.


야 너 참 공부 잘한다. 딱 서울대학 못 갈만큼 공부 잘한다. 이게 무슨 뜻이에요 지금. 무슨 뜻입니까? 누구든지 얘만큼 공부 더 잘하지 아니하면 땡 탈락이다 이 말이거든. 천국 탈락이에요. 그러면 바리새인들은 뭐라고 했습니까? 바리새인들이 금지할 것은 금지하고 지킬 것은 지킨다 해서 얼추 자기 안에 하나님의 뜻을 복사, ctrl V 해가지고 완전히 복제해서 있지요.


내가 지킬 수 있는 역량의 그 메뉴들이 있지요. 율법들이 있잖아요. 지킬 수 있는 것만 율법이지 못 지킬 율법을 왜 하겠어요? 인간이 가능한 율법들만 지키는 거에요.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은 지키고 저 개, 돼지같은 저 세리나 창기들은 못 지키지만 자기들은 지키는 거에요. 자기도 못 지키는 율법을 줘가지고 이거는 게임이 룰이 잘못된 거 아닙니까. 잘못되었지요.


농구시합하면서 농구골대 있는데 농구 제일 잘하는 사람이 한골도 못 넣는다. 그러면 농구 골대 왜 있습니까? 안되지요. 천국이라는 골대 있다는 말은 그걸 하나의 자기 게임의 룰로 바리새인들이 만들었잖아요. 인간세계에서 만들었지요. 그럼 누구는 들어간다? 나처럼 하면 들어간다 이거 아닙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뭐라고 합니까? 너처럼 한다고 들어간다는 자는 못 들어간다 이렇게 이야기한 거에요. 그래서 그 근거를 위해서 율법을 모세는 이렇게 했지만 나는 이렇게 한다 해가지고 주님께서 진짜 하나님으로써 율법을 추가적으로 율법을 계속 주시는 거에요.


율법에는 맹세하라고 했지만 너희들은 나는 너에게 말한다. 맹세하지마라. 이혼할 때 이혼증서 써주면 된다고 모세는 말했지만 나는 말한다. 이혼은 간음이다. 어떤 사람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말했지만 나는 이야기한다. 다 털어줘버려라. 이것은 그걸 지킬 사람이 이 세상에 있어서 하신 말씀입니까? 없어서 하는 말씀입니까? 없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너희들이 설정해 놓은 금지어조항 그리고 준칙조항 너희들이 하는 이 모든 것 너희들은 연속성을 주려했지만 직접 하나님이 땅에 내려와서 하는 말이 그 연속성을 뭐로 바꿨습니까? 불연속성을 바꾸신 거에요. 그게 뭐냐? 옛 술은 옛 부대에만 담기고 새 부대에 절대로 담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 다음에 여기에 누가복음 5장 봅시다. 5장 36절에 보게 되면 “또 비유하여 이르시되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새 옷을? “찢는다”고 되어 있지요. 이거는 파괴입니다. ‘파괴’. 그냥 어설프게 협상, 타협될 관계가 사이가 아니고 어느 한쪽은 찢어져야 되는 거에요.


자, 신랑으로 오신 예수님하고 바리새인하고 좋게 좋게 이야기를 좋게 할 관계가 아니고 어느 쪽은 찢어져야 되는 거에요. 찢어져야 돼요. 인간들이 주장하는 연속성, 49제, 유효기간. 영혼이 자기 구원을 위해서 죽고 난 뒤에 그때는 죽었으니까 애 키울 일도 없고 돈 벌 일도 없고 자기 영혼만 생각하면 돼. 그 영혼 49일 동안에 잘 구슬리면 자기 요령, 처신 잘하면 천국 갈수 있는 여지를 주겠다는 아이디어가 인간의 이성에서 나왔잖아요.


그래서 인간은 지옥가야 되는 거에요 그게. 그런 아이디어를 왜 만들어내느냐 이 말입니다. 인간 네 배후에 누가 있느냐 이 말입니다. 누가? 가짜 하나님, 가짜 메시야를 끊임없이 창안해 내는 괴물, 괴물이 있었던 거에요. 그 괴물이 시킵니다. 바리새인보고 저 인간이 살아있을래? 네가 죽을래? 둘 중에 하나 골라라. 어떻게 됩니까?


자기는 지금 구원받아야 될 인간이 저주 받아 죽을 일 없잖아요. 그럼 내가 저주받아서 지옥 안 갈려면 천국 갈려면 누가 걸림돌이 됩니까? 나보고 천국 못 간다 하는 자를 어떻게 해야 돼요? 제거 대상이죠. 가차없이 목을 쳐라. 저 자의 목을 쳐라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신랑 빼앗기는 이유에요. 신랑 빼앗기는 이유는 바로 인간들이 불연속성을 자기는 연속성이라고 오해하는데서 오는 거고 그 오해는 인간들 내부의 유사 율법, 그들이 마음만 굳게 먹으면 지킬 수 있는 율법을 계속 계속 만들어냈던 겁니다. 오늘날 교회처럼. 오늘날 교회처럼.


십일조는 어떻게 합니까? 그냥 오지 않고 돈을 빳빳이 다려야 합니다. 그래서 돈 세탁기에 넣다가 날라간 사람 더러 있어요. 주님 앞에 깨끗이 드린다고. 다림질 하다가 좀 타기도 하고. 어떻게 예배 참석해야 하느냐? 마음가짐을 정갈하게. 마음가짐을 정갈하게 한다고요? 그 정갈이 어떤 게 정갈한 거에요? 마음가짐이 정갈한 것. 젓갈도 아니고 뭐에요?


마음가짐을 정갈하게 한다. 그 정갈의 개념의 표준은 어디서 나왔느냐 하면은 내가 할 수 있는 역량의 범위 안에서의 정갈이에요. 인간은 자기가 기억된 것 중에서 실천한 걸 골라잡거든요. 오늘 본문을 풀을려고 하면 뭐부터 정리해야 되느냐 하면은 도대체 인간 세계는 도대체 일반화를 어떤 식으로 체계를 잡는가 그것을 여러분들이 아셔야 돼요. 일반화를.


다 납득이 되는 고개 끄덕이는 일반화가 어떤 식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그거 지금부터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인간 세계를 알아야 돼요. 안 그러면 이 본문을 이해 못해요. 신랑을 왜 빼앗겨야 되는지. 왜 하나님이 인간이 되었는지 그걸 모른다고요. 인간이 이 세상을 일반화하는 방법이 이겁니다.


정의역, 공역, 치역.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안 들어 본 것 같기도 하지요. 집합론을 가지고 함수를 설명할 때 필히 등장하는 개념이에요. 필히 등장하는 개념. 정의 한다는 것을 뭔가 본질을 설명한 거에요. 정의한다. ‘定義域’


공역은 공통적으로 모아져 있는 영역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영역, field. 정의하는 field, 공통적인 field. 치역이라고 하는 것은 통치. 통치하는 영역. 뭐를 정의하는 영역하고 정의하는 이것을 함수라 하고 함수라고 하는 것은 보통 f(x) 이렇게 시작되는 이런 함수는 그 공식을 가지고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 끄집어내는 게 함수에요. ‘함수’.


어떤 미래가 이렇게 될 것이라고 딱 예측하고 그 때까지 동일한 법칙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공식을 만든 거에요. 중간에 달라짐이 없어야죠. 예를 들어서 뉴턴의 만유인력의 공식, 방정식같은 거에요. 함수. 그 함수를 딱 정해놓고 공역이 있고 통치력 있다. 이걸 하나가 아니고 개념이 몇 개입니까? 세 개로 나눴다는 말은 세 개를 따로 구분했다는 말은 인간이 이 세상을 일반화시키는 법칙같은 거에요. 일반화시키는 법칙같은 것.


하나의 예를 들면 야근하는 회사원이 있다. 이게 함수에요. 이게 정의역이에요. 공역은 뭐냐 하면은 배달할 음식 메뉴의 총 집합이 이게 공역이에요. 그 다음에 그 공역 중에서 치킨 시키고 탕수육 시켰다면 치킨 탕수육이 치역입니다. 이래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요? 지금 목표가 뭐냐 하면은 야근하는데 배고프다가 목표에요. 야근하는데 배고프다.


이 배고프다를 누가 정합니까? 야근하는 회사원들이 정했지요. 정했으니까 이게 뭐가 되겠어요? 선택이죠. 선택하고 난 뒤에 그 다음에 마음의 결정했지요? 결정, 선택 권한은 누구한테 있다? 우리 인간에게 있소이다 이것이 바로 옛 부대고 옛 술이에요. 특징이.


하나님을 믿되 하나님을 믿는 결정된 주도권을 여전히 자기가 갖겠다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알다시피 구원은 자기 이름으로 구원받아요? 주의 이름으로 구원받습니까? 하나님이 받아주기를 결정과 예정과 선택을 네가 했어? 아니면 너 말고 예수님이 했어를 묻는다고요.


왜냐하면 아버지가 아들을 보냈잖아요. 그럼 보낼 때 아무 대책도 없이 보냅니까? 천국 올 수 있는 사람은 너 인간들이 결정하지 않고 아버지가 보냈던 이 아들이 아들의 이름이니까 아들의 이름을 걸고 아들의 선택과 예정 창세전에 있던 결정에 의해서 뽑혀나온 사람들, 그 사람들만 천국 가는 겁니다. 아시겠어요 여러분?


로마서 8장에 나오잖아요. 미리 아신 자를 부르시고 미리 정하신 자를 부르시고 부르신 자를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시잖아요. 그 일을 우리 이름으로 하는 게 아니에요. 아브라함의 이름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그게 사람의 노아 이름으로 하는 게 아니에요. 배후에 누가 있어요? 주님이 계셔요.


지금 인간 배후에 누가 있습니까? 인간 배후에 악마가 있다는 말은 인간 속에 뭐가 있다? 하나님의 법을 유사 법을 인간들이 창안하고 만들었다는 말은 인간 배후에 영적인 세계를 알고 있는 악마가 복사, 복제를 한 거에요. 유사품을 만든 거에요.


하나님은 금지하는 분이라서 네 마음의 욕망을 낮춰서 금지해라. 이런 하나님이 모든 것을 오케이 할 정도로 모든 완벽의 완벽을 갖춘 법을 만들어내고 있었던 겁니다. 왜? 불연속적이 아니고 어쨌든 간에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연결시켜 볼려고. 그걸 주님께서는 염두해두시는 거에요. 그래서 내 선택과 내 결정 이거 안 통합니다. 그러면 주님의 결정, 선택은 어떻게 통하는지 그거는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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