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4강-YouTube강의(아름다움과 추함 아가 2:11)20210316-이 근호 목사
제344강, 제목은 ‘아름다움과 추함’. 성경에서 아름다움을 생각할 때 창세기 1장 그리고 2장이 후딱 생각나죠. 창세기 1장에 보면 “심히 좋았더라”, 아름답다는 뜻이죠. 창세기 2장에 보면 아담이 자기 아내가 될 그 여자를 보고 굉장히 만족스러워합니다. “내 살 중의 살이요 내 뼈 중의 뼈라” 참 아름다움의 극치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정하시면 됩니다. 아름다움은 완성이고 추하다는 것은 그 아름다움에서 빠진 것, 미완성이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창조를 아름답고 완성되게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완성이 시간이 가면서 미완성이 되는 게 아니고 완성된 그 상태를, 완성의 깊이를 더 뿜어내기 위해서, 완성의 범위를 좀 더 확대시키기 위해서 여기에 추함을 동원시켰습니다. 추함을 곁들임으로 말미암아 완성이 훼손된 것이 아니고 완성의 깊이가 더해지고 넓이가 더해지고 크기가 더해지고 그 정도가 더해지는 겁니다.
마지막에 최절정의 아름다움이 다 드러날 때까지 그 중간 과정에 걸쳐있는 것이 바로 시간입니다. 이 시간을 통해서 자연이 아름답다는 것이 퇴색하고 이제는 이 자연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새 하늘과 새 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추해보이는 이 세상 안에 완성, 아름다움은 내재되어 있고요. 그 내재되어 있는 것이 꽃이 만개하듯이 완전하게 다 드러났을 때 그 만개할 때까지 시간이 스톱될 때까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죠.
그래서 이렇게 보면 시간은 마치 물에 흠뻑 젖은 개와 같습니다. 개의 몸에 물을 흠뻑 젹서놓게 되면 개는 아주 주저없이 몸을 흔들어서 자기 몸에 붙어있는 물기를 다 바깥으로 튕겨내죠.
우리 성도가 아름답게 산다는 것은 시간에 자기 생각을 얹지 않는 겁니다. 시간에 아무것도 얹지 않아야 돼요. 물 젖은 개가 털어내듯이 시간은 하나님의 것만, 아름다운 것만 담기 때문에 인간의 자기 생각이 얹혀져버리면 쓸데없이 시간이 무거워집니다. 인생살이가 무거워지는 이유가 내 생각이 너무 많이 가미되어서 그렇습니다. 털어버리면 되는데. 그러면 가볍거든요.
그러니까 인생살이가 즐거우려면 시간이 흐르는 그것을 시간만이 흐를 수 있도록 내어버려두는 것이 가장 인생을 편하게 사는 방법입니다. 시간 위에다가 아무것도 나의 것을 얹어놓지 않는 거예요. 나의 욕망이나 나의 기대나 나의 계획이나 나의 스케줄이나 이런 것을 얹어놔 버리면 시간 그 자체를 즐기지 못합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조급해지죠. 빨리 빨리, 자꾸 빨리 업적을 남겨야 되고 실적을 거둬야 되고 성과를 얻어야 되고...... 그런 쓸데없는 짓거리를 하며 사서 고생하는 이유가 시간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조치에 의해서 완성으로 지금 잘 가고 있는데 인간들이 욕심을 내서 나의 욕망을, 욕심을 이루기 위한 시간으로 억지로 끌어당기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를 들면 아이를 아이로 보지 않고 조기에 어른을 만들려고 애쓰는 거예요, 엄마들이. 마치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는 다윗 나름대로의 어떤 전쟁방식이 있단 말이죠. 있는데 이 사울 왕이 어른들이 입는 갑옷을 소년 다윗에게 입혀버립니다. 다윗은 입고 좀 걸어보다가 여지없이 후딱 벗어버리죠.
주님의 하는 일, 그리고 거기에 병행되어 있는 주님의 시간에 그냥 인간들의 요소를 거기다 실어버리고 담게 되게 되면 결국 인간들이 자기 좋으라고 시간을 활용하는 것밖에 되지 않죠. 이것은 주님의 뜻이 드러나는 시간이 아니고 자기 욕망을 그냥 현실화시키고 보겠다는 억지스러운 인생살이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을 쭉 오게 되면서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시간이 어떤 것도 거기에 대해 치장되지 않고 순수한 시간이 그대로 노출될 때 그것이 아름다운 겁니다.
구약에 솔로몬의 아가 2장 11-13절까지 보게 되면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반구(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그 아름다움에 사랑하는 여인아 거기에 같이 참여하자 거기에 같이 포함시키자’ 이 말입니다. 시간이 시간답게 흐르고 있는 거기에 사랑하는 그 여자의 아름다움, 그리고 우리 자신의 아름다움은 시간이 스스로 하나님에 의해서 진행되고 있는 하나님만의 계획에 우리가 그냥 같이 합세하는 것, 이것이 바로 아름다움의 극치라는 거예요.
정말 그 본문을 다시 읽고 싶습니다.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인간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어요? 인간들이 계획한다고 겨울이 일찍 오고 늦게 오고 그런 것 없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할 때” 새 노래하라고 인간들이 협박 공갈했습니까? 아니잖아요. 왜 인간은 이렇게 못 삽니까? 왜 억지를 부리죠? “비둘기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새가 울고 싶어 우는데 우리가 요구하거나 재촉한 적 없잖아요.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듯이 사랑하는 나의 어여쁜 자여 거기에 합세하자” 이게 바로 아름다운 여인에게 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시간에다가 인간의 요소가 얹히면 안 된다는 거예요. 담겨버리면 하나님의 순수한 그 가벼움이 날라가버리고 나의 아주 간절함 그리고 나의 탐욕스러움이 추함으로 거기에 담기게 되는 겁니다.
끝으로 예레미야 17장 9절에 보면 이런 말씀 나옵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인간의 마음이죠. 아까 아가 할 때 만물 나왔죠. 비둘기, 무화과나무, 겨울 그리고 꽃, 만물이잖아요. 그런데 인간은 아름답지를 못해요. 추해요. 더러워요. 수상합니다. 괴물이 덮친 거예요. 그래서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 추한 것은 인간의 마음이다. 누가 이것을 능히 알리요.
바로 성도를 주님이 아름답게 보시는 것은 완벽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완벽하게 부패했다는 것을 완벽하게 알 때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이기 때문에 그 성도는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아름다운 겁니다.
'유튜브강의' 카테고리의 다른 글
꿈 (0) | 2021.04.07 |
---|---|
저항 (0) | 2021.03.17 |
343강-성신과 성령 (0) | 2021.03.03 |
342강-불러내심과 불러주심 (0) | 2021.03.03 |
빛과 어두움 (0) | 2021.0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