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강의

시공간

아빠와 함께 2020. 11. 4. 08:49

330강-YouTube강의(시공간 마태복음 26:30-33)20201103-이 근호 목사


제330강, 제목은 ‘시공간’. 시공간이라는 말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말입니다. 시간과 공간에 대해서 모른다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태어나서 눈 뜨면서 만나는 게 시간과 공간입니다.

시간의식은 좀 더 있어야 되지만 공간의식은 애들한테는 세계적인, 지리적인 것은 모르겠지만 엄마와 가깝냐, 머냐 하는 건 본능적으로 알게 되어 있어요. 엄마가 있는 공간이 자신의 공간이니까. 시간도 엄마와 몇 시간 있느냐, 얼마나 함께 있느냐가 자기의 시간 의식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시공간이라 하는 것은 학교에서 배운 대로면 상당히 객관적이다. 이렇게 되지만 태어날 때부터 인간은 객관이라는 게 없습니다. 다 주관에서 만들어낸 객관입니다, 시공간도.

그래서 크면서 사람들이 뇌리에 기억되는 것은 본인이 다녀간 공간, 본인이 살았던 그 공간, 그 동네는 잘 알죠.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간도 어려울 때는 시간이 더디 가고 태평스러울 때는 시간이 기억나지 않아요. 언제 후딱 가버렸는지 실감나지 않아요.

이것이 어릴 때뿐만이 아니라 커서도 시간과 공간이라는 것은 너무나 주관적입니다. 한 평생 살아놓고 뭐 살만했다 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너무너무 힘들었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그 시공간 안에 어릴 때는 엄마의 몸이 있지만 커서는 누구의 몸이 있느냐. 본인의 몸이 있어요.

본인의 몸이 아프게 되면 세상의 시공간도 다 나를 힘들게 한 나쁜 시공간으로 이해합니다. 그런데 만약에 자기가 성공을 하게 되면 자기가 놀던, 살던 시공간은 아름다운 것이고 정말 보탬이 되는, 도움이 되는 좋은 시공간으로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시공간을 제가 언급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천국과 지옥을 생각할 때도 자기 몸이 기억하는 주관적인 시공간을 벗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그것 그대로 연장해서 옆 동네에 지옥과 천국이 있다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힘들게 산 사람은 천국 가서 보상받으려 할 것이고 동시에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은 지옥불에 처넣어라. 그래야 내가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겠다. 하는 식으로 천국과 지옥을 분류하죠. 자기를 그렇게 괴롭히고 힘들게 했고 못살게 굴었던 사람을 만약에 하나님께서 천국에 넣어준다. 이렇게 하게 되면 갑자기 그 천국 가기 싫죠. 왜? 나를 힘들게 했기 때문에. 진짜 천국 가서 멱살 쥐고 또 한바탕 싸울 준비가 되어 있죠.

그래서 교회에서 문제가 생기면 결국 마지막에 나오는 것이 극단적으로 저주한다는 게 “너 같은 인간들은 지옥 간다.” 그런 말을 해야 약간의 위로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말은 뭐냐. 나를 힘들게 한 그 이유로 인하여 내 몸이 만약에 천국 간다면 나를 힘들게 했기 때문에 지옥 간다. 그런 판정을 내리게 되는 겁니다. 이처럼 모든 인간은 천국과 지옥마저도 주관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벗어날 수가 없어요.

그러면 성경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이야기하느냐가 중요하겠죠. 마태복음 26장 30절에서 33절에 보면 이런 말씀 나옵니다. “이에 저희가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아가니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오늘밤. 감람산으로 갔는데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오늘밤에 너희가 나를 버리리라. 밤, 시간 나옵니다, ‘오늘밤’이라는 시간. 그 시간은 어떤 시간이냐 하면 제자들은 아직까지 그날 밤을 몰라요. 인간의 몸은 미래를 예측 못하고 예상 못합니다.

그래서 제자들한테 그 이야기하면 좀 생뚱맞죠. 그럴 리가. 현재 내 주관적 몸은 주님이 어느 곳에 가더라도 목숨 걸고 따라가겠다는 내 주관이 내 주관적인 몸을 알기 때문에 “오늘밤에 어떤 일이 있더라도 우리가 주님을 버릴, 그런 일은 있을 리가 없습니다.” 라고 장담하는 거예요.

그 다음에 보게 되면 32절에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갈릴리. 공간 나오죠. 시간과 공간 모두다 인간의 주관이 아니라 예수님의 몸, 예수님이 하신 일을 위하여 엮여져 있는 시간과 공간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이 점을 알 수 없었어요. 왜냐하면 제자들이 보고 있는 시간과 공간은 너무 자기 몸에 묶여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자기 몸이 자기 예상대로 행복하게 잘 될 것이라는 그런 기대에 차서, 그런 주관적인 기대 때문에 시간과 공간도 의당 그렇게 될 것이라고 강렬하게 시간과 공간에게 자기가 자신의 뜻을 어필하는 거예요.

되어라 되어라 되어라 내 뜻대로 되어라. 내 뜻이라 함은 자기 몸이 갖고 있던 주관이잖아요. 내 뜻대로 내 주관대로 되어져라. 부탁이다, 미래야. 부탁이다, 내가 어딜 가든지 그 장소야, 나를 실망시키지 마라. 이런 식으로 인간들은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안 그런다고 할 수 있겠어요? 여러분들이, 저도 마찬가지지만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 기다리면, 내가 여기 왔다. 30초 내에 나 가는 방향으로 버스 앞에 대령해. 대령하란 말이야. 이거 누구보고 윽박지르는 거예요? 물론 명령조는 아니지만 please, 제발. 30초 만에 오길 바란다. 그런데 딱 보니까 내가 타는 차는 방금 떠났어. 30초 전에 떠났어. 앞으로 10분을 더 기다려야 돼. 그래도 난 복음을 믿으니까 아주 기분 좋고 그런 생각 들던가요? 뭐 천국이 있으니까 참을 수 있다. 그렇게 되던가요?

평소에 우리 생활하는 모습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통해서 우리가 이런 식이라는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겁니다. 어떤 일을 보여주느냐 하면 어쨌든 저쨌든 간에 인간의 네 생각과 예수님의 생각은 이렇게 틀어진다. 같지 아니하다. 그래서 너희들의 뜻 때문에 내가 십자가라는 힘든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 너희들은 나를 순수하게 믿고 사랑한다고 했지만 그것은 너희 자신을 너희가 몰라서 그래. 나를 힘들게 한 요소만 폭발하고 있어. 나를 괴롭게 하는 요소만 튀어나온다고. 주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주의 뜻을 간단하게 말하면 “절대로 난 네 뜻대로 해주지 않으리라.” 이런 뜻이에요. 이 시간과 공간은 누구 말 듣느냐 하면 예수님 말 들어요. 우리 말은 듣지 않습니다. 그런데 행여 여러분들이 아, 이거 내 소원대로 내 기대대로 딱딱 맞아떨어져가네. 내가 원하는 대로 딱 됐잖아. 할 때는 여러분의 소원을 시공간이 들어준 게 아니고 주님께서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주신 거예요. 하나님의 선물을 주신 겁니다. 뭐하라고? 주제 파악하라고.

이것을 네 뜻대로 생각한다면 선물 받고도 너는 건방지다. 아직까지 네 주관에 문제 있다는 것을 네가 모르고 있으니까 네가 건방지다. 네가 어떤 것이 네 뜻대로 되거든 “주여, 이것은 뜻대로 되길 기대했던 그 자체가 미처 몰랐던 나의 죄였습니다.” 라는 것을 자백하라고, 그걸 내놓으라고 하나님께서 우리 뜻대로 해주시는 거예요.

기도해서 암 나았다 하지 말고 ‘기도해서 암 낫겠다는 자체가 주님을 힘들게 했고 내 주관이었습니다. 주님 죄송합니다. 내 소원을 기도해서 죄송합니다.’ 하는 그런 마음을 가질 때 천국 자체가 우리에게 선물이 돼요, 천국 자체가. 내가 행해서 가는, 따내는 세계가 아니라 천국 자체가 늘 우리에게 놀라운 선물로 다가오는 하루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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