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선

흔적

아빠와 함께 2020. 10. 18. 07:45

예전에 본 오락프로에서 폭탄을 옆으로 옮기며 릴레이를 하는 게임이 있었다. 제한 시간 안에 폭탄을 옆으로 전달할 때 할당받은 멘트를 완료 후 옆 사람에게 넘기면 옆에 있던 사람도 지시받은 멘트를 마치고 옆으로 넘기는 게임이다. 시간이 얼마 남았는지 알 수 없기때문에 일단 폭탄을 받은 사람은 최대한 빨리 말을 하고 옆으로 보내버린다. 폭탄이 터지면 스타일 구겨지는 참담한 결과를 만나기 때문이다.

인간이 존재하는 세계관은 상식이 통하고, 단절이 없기에 예측가능하고, 그래서 스스로 희망을 품고 계획을 세우고 능력을 쌓아 그 힘을 발휘해서 꿈을 이룬다는 믿음이 있다. 이 모든 것에 핵심 요소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허락된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는 시시콜콜한 거 집어치우더라도 내 능력으로 할 수 있고 살 수 있는 한계와 방식이 정해져 있다. 소박하든 원대하든 나에게는 나만큼의 세계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런데 다른 능력이 외부에서 침투되었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 단순히 이와 대조적이라면 세상과 통하지 않고, 단절되고, 나에게는 나의 세계가 없다고 믿으며 정형화해서 이론적으로 습득하기 딱 좋은데 실상 닥치는 형편은 비교되지 않고 초월적이다. 어느 쪽이든 내가 상정되고 무언가를 습득해 내가 한다는 마음이 아무리 애써도 여전히 있는 것은 전환일 뿐이지 초월이라 우길 수 없다. 인간이 설명할 수 없는 일에 참여된다는 것은 마치 주께서 일방적으로 질문을 유발하시고 스스로 그 정답이 되시어 나라는 것의 존재를 벽지 뜯어내듯 걷어내 주시고 십자가의 상처만 여실히 드러나는 통로 자체가 되는 것이다.

시골길을 운전하다 보면 로드킬 당한 동물시체가 왕왕 눈에 띄는데 치인 지 얼마 되지 않은 사체는 형체가 생생해서 눈에 두드러진다. 며칠 지나서 보면 쌩쌩 달리는 차바퀴에 눌려 길인지 사체인지 분간 안갈 정도로 바짝 말라 비틀어져서 길과 혼연일체가 되어있다.

목이 곧은 대로 강퍅한 마음으로 모든 결과가 최종 나로 마감되는 삶이 거짓되고 죄악된 삶인 것을 진실로 알게 되는 계기는 목을 자르시듯 마음의 할례를 행하신 낯선 분의 뜻이 들어오고 그 뜻의 주인이 임의대로 하고 계시는 언약 층을 감지하는 순간이다. 처음에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분별이 안 돼서 ‘나 왜 이렇게 사는 거야’라는 증상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겠지만, 말씀의 위력이 끊임없이 바퀴 자국을 내며 지나가면서 나라는 존재는 갈수록 희미해지고 모호해지도록 만드신다. 빠져 나왔기에 이전에 있었던 악마 층의 윤곽이 명확히 보이고 진짜 현실은 주님과 원수와의 전쟁터이고 폐허이며 무덤의 모습이다.

예수님의 원수를 모시고 튼튼한 벙커역할 해준 장본인이 나였음을 알리는 말씀이 폭탄처럼 계속 전달 될 때 주기도문 외우듯 말씀 겉핥기하고 터질까 봐 빨리 옆으로 보내지 못하게 하시고 치열하게 방어하는 저항 세력이 내가 아님을 까발리실 때까지 그 단단한 방어막이 찢어질 때까지 말씀을 품고 계속 폭발하게 하신다. 자아라는 막이 폭발하면 더이상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나 때도 가족도 친구도 그리고 말씀도 아무것도 담아지지 않는다.

자체 검열을 통해 에너지가 될만한 것만 본능적으로 걸러내던 막이 붕괴되면 나에 대한 엉터리 해석을 올바른 해석으로 바꿔주시고 나라는 것을 떼 내어 치워주시는 능력이 임하고, 마귀가 바꿔놓은 시작점을 원래대로 돌려주시며 진짜 원천이 들어와 스스로 주의 구원을 이루신다.

나의 죄가 예수님의 피로 사해졌고 용서받았다가 아니라 내가 나라고 믿었던 중심이 안개처럼 사라지고 몸뚱이만 덩그러니 남은 자에게 주의 존재가 내 머리로 자리 잡으시고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만 맺어진 관계가 머리 되신 주의 기능을 통해 유입되기에 더이상 죄의 관계가 아니라 의의 관계가 되고 이 관계 속에서 교차 되는 타이밍이 사건을 일으키며 만들어지는 접점에서 모든 것이 용납되는 영원한 죄 사함의 권능을 잠시 잠시 느끼게 해주신다.

이 세상에서 주의 백성의 역할은 악마의 목구멍으로 다시 들어가 지정된 주변 환경을 뚫고 지나가며 부여받은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인데 이는 마치 양이 이리 소굴로 들어가는 것처럼 세상에 완전 무방비상태이다. 말씀의 전신갑주를 준비하고 주의 이름을 무기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나를 부재로 만드는 주의 능력으로 주의 이름이 친히 싸우시기에 잡아먹히면서도 죽으면서도 사도행전의 사도들처럼 “우리는 죽지 아니한다”를 자신만만하게 외치게 하신다. 믿음의 원천인 예수그리스도만이 살아계시고 그분만이 영원한 생명 되심을 알기에.

나 자신이 마귀 들러리로 예수님을 박해하고 핍박하는 자로 십자가 사건을 반복시키는 재료였었음을 알게 하셨다면 이 어둠의 세계에서 예상치 못한 핍박과 괴로움이 내가 자처한 것이 아니라 주체가 바뀐 주님의 관계성 안에서 당연스러운 일이 되고 겪는 모든 것이 저주이고 지옥 생활이 된다. 주님이 동행하시지 않는다면 먹을 게 없어서 굶는 것과 태평양에서 요트를 타는 것이 하등 차이가 없는 저주받은 지옥이고, 주 안에서 겪는 것은 무엇이든지 예수님이 겪으신 동일한 환경이 반복되기에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합류된 천국이다. 이렇게 성도는 이 세상에서 자체가 경계선이 되어 지옥과 천국을 그네 타듯 오가며 죽도록 충성한다.

땡전 한 푼 없이 서울에 올라갔는데 누군가 호의를 베풀고 도와주겠다는 것은 99.9프로 사기이다. 내세울 거 없고 별 볼 일 없는 자에게 성도라며 치켜세우고 호의를 베푼다면 이것 또한 99.9프로 사기이다. 자기에게 접근한 사람이 지극히 작은 소자에게 베푸는 것이 예수님에게 하는 것이라는 말씀을 의지해 자신의 의를 이루는 사기극에 이용당하든지 구원받은 자 맞다고 부추기며 사람과 재물을 물어오는 앵벌이로 이용당하든지 그 사기극에 말리고 속은 것에 누구도 탓할 수 없고 다만 자신에게 속은 자신의 실체를 보게 하는 십자가 언약이 찾아와 주셨다면 속고 다 빼앗기고 찢겨 진들 두 다리만 건져주심도 황송해서 고개를 못들 일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지옥 폭탄 속에 던져버리심이 마땅하고 터져서 시커멓게 탄 조각이라도 파편이라도 끄집어내 주신다면 그것만도 가슴 벅찰 일이다.

여전히 속지 않으려고 정신 바짝 차리며 자신을 단속하고 있다면 결코 진짜 예수님을 알아볼 수 없고 그 예수님 안에 계시는 참 하나님을 알 수 없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하나님은 말씀 그대로 거지들의 왕초였고, 있으면 불편하고 더러워서 짜내버리고 싶은 고름 같은 아무짝에 필요 없는 치욕스러운 모습이기에 결국 인간 세상에 항상 함께 있어도 없는 하나님이다.

예수님이 하늘의 격에 맞는 이 세상 권세의 자리를 택하지 않고 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자리 잡으신 비밀을 풀어놓으시기 위해 하루하루 성도의 죽은 몸을 광야의 원리가 재현되는 시공간으로 살려내시어 진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전하게 하신다. 이때 되돌아오는 세상의 어떤 반응에도 토 달수 없고 다만 자신이 예수님을 주라 부르는 것이 자신의 능력이 아님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감사하게 된다.

폭발해 터져서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그 파편을 전달했을 때 상대의 반응은 터지기 전에 옆으로 치워버리거나 무시하는 것이 당연한데 상대방 또한 터져서 조각조각 난 자신의 파편을 내놓는다면 이것이 홍해 바다 갈라진 것보다 더 큰 기적으로 느껴질 것이고 절로 기쁨과 감사가 터져 나올 것이다. 기적을 받는 곳에 있음을 아는 자는 이곳이 곧 철수해야 할 허구의 공간이고 기적의 주체자가 계신 곳이 실재이고 현실인 것을 안다. 우리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주께서 창세 전부터 알고 계신 주의 몸을 기억하시고 사랑을 부어주시어 성전 되게 하셨기에 한 걸음 한 걸음이 성령으로 호흡하며 예수님의 흔적을 남기고 사라질 뿐이다.

이근호 

  속지 않으려고 애쓰고 버티는 자는 자기 안에 지켜야 할 것이 있다고 믿는다. "지켜 줄게. 기어이 지켜줄게!"  그런데 그것이 뭘까? 죽을 때까지 그것을 모른다. 따라서 인간은 날때부터 본인에게 속고 사는 것이다. 십자가 사건은 인간에게는 아무 것도 지킬 것이 없음을 까발려준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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