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선

약속 뿐이고

아빠와 함께 2020. 10. 6. 08:36

설거지를 하는데 딸이 언제 왔는지 뒤에서 살며시 안아준다. “엄마는 내가 언제 제일 예뻐?...” 그때 어디선가 들었던 말씀 한 대목이 휙 지나간다. ‘초식동물 뒤에 사자가 올라타서 목적한 것을 뽑아낼 때까지 끝까지 달라붙는다...’ 그러나 딸은 나에게서 원하는 것을 뽑아내는 데 실패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을 말하기도 전에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사랑이라는 포장지 안에 잘 감춰둔 본색인 돈, 인정, 그리고 희망. 희생을 품은 초식동물은 그 자리에 없고 서로에게 이질적인 요소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그저 자신을 위한 사명감에 투철한 짐승 두 마리가 덩그러니 있었다. 패배감에 몸서리치며 자기 굴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딸과 속지 않으려고 당하지 않으려고 철저히 경계하며 서 있는 나라는 짐승 두 마리.

본래 존재하지 않던 초식동물을 하나님이 약속으로 만들어내신 것이 이스라엘이다. 그리고 없음이 있음이 된 존재 이유가 하나님이 이스라엘 안에 심어 놓으신 언약을 뽑아내시며 방출된다. 말씀이 이스라엘보다 먼저인 것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먹잇감을 보고 달려들어 등에 올라타 움키는 사자와 같이 하나님의 언약 추출작업에 결코 실패가 없으시다.

약속이 아무 착오 없이 하나님의 뜻대로 진행됨을 느끼는 것은 살아있음이 아니라 이미 죽었음만이 가능하다. 주머니에 담긴 언약이 터져 나와서 어린양의 향기로운 희생만 퍼지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탁월한 조치는 언약을 품고 있다 한들 육체를 입고 있는 한 어느 하나 예외 없이 율법으로 치시고 없애버리시는 일이다. 언약의 취지만을 살리고자 하는 하나님의 살육 작업의 최종 진수는 육체를 입고 오신 독생자 예수님을 버리시는 십자가에서 이루어진다. 십자가에서 언약이 폭발하며 분출된 어린양의 피가 세상을 이겼고 하나님의 아름다운 심판이 무지개처럼 펼쳐질 만발의 준비가 되었다.

언약대로 죽음 속에서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신 분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뿐이시다. 그리고 예수님의 뒤를 이어 주께 속한 자들을 성령으로 깨우실 때 산자가 아니라 여전히 죽은 자 행세하는 죽은 자로 깨우셔서 아들의 생명의 상대자가 되게 하신다. 죽었음을 아는 죽은 자로 이제 더이상 자신의 살아 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를 통해 비치는 참 생명만 말하게 하신다.

내가 알지 못하던 길, 원래 없던 길로 들어섰을 때, 그 길은 이질적인 언약 성취의 힘에 휘말려 내가 생각하는 죄와 선의 체계에서 벗어나 억지로 가게 하시는 여정이고, 매일 매일 단절되는 낯선 길의 끝에서 알지 못했던 죄의 원천을 마주하는 출구로 안내하는 길이다. 그 원천에서 예수님이 일방적으로 물으시는 질문과 만난다. 왜 내가 약속의 위반자인지, 왜 내가 실패했는지, 왜 정상이 아닌지, 그리고 주님을 사랑하는지 물으실 때 대답을 원하시는 질문이 아니라 이미 완성하신 최종 답을 압축시킨 시디가 삽입되었기에 나올 수 있는 고백을 하게 하신다. “주께서 아십니다”

예수님의 형편이 억지로 등에 메인 채 원하지 않는 길을 가고 있을 때 나에게서 나오는 질문은 ‘이것은 누가 주신 형편입니까?’라는 말뿐이다. 이미 완료된 모든 결과가 들어있는 CD(Compact Disc)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압축해제과정을 통해 죄에 대해, 의에 대해, 심판에 대해 아무 때고 환경을 만드시고 십자가 앞에 세워 나의 소망 없는 본질을 발각시키시고 피안에 집어넣어 나의 형상을 부인케 하심으로 오직 주의 형상만 빛나는 답을 수시로 보여주신다.

노아의 방주가 물심판을 통해 땅과 분리되고, 반석 앞에서 모세와 아론조차도 반석에서 쏟아지는 므리바 물 앞에서 배제되고, 요나단과 다윗이 서로 이별할 수밖에 없게 하시고, 제자들조차도 예수님과 떨어질 수밖에 없게 하시며 하나님은 끝까지 예수님을 결코 누구도 만질 수 없는 홀로 영광 받으실 거룩한 자리로 올리시는 분리작업을 멈춘 적이 없으시다.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패역을 문제 삼지 않으시고 우리가 행한 대로 갚지 아니하시는 이유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언약, 하나님 아들의 피 흘림의 언약을 기억하시기 때문이고 이스라엘 안에 울려 퍼지는 왕을 부르는 소리를 들으시기 때문이다. 왕의 백성은 부재하나 소리가 먼저 있었고 이 부재의 자리가 십자가를 지신 유대인의 진정한 왕을 통해 생산된 백성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로 채워진다.

인간은 없음에서 태어나 삶을 거쳐 다시 없음으로 가는 것이 인생인 줄 알고 있고 그래서 없음을 영생으로 전환하기 위해 하나님을 찾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기에 믿을 수 없기에 하나님을 찾고 필요로 한다. 오직 자신의 영생과 구원을 위해서.

그런데 없음에서 죽음이 태어나 죽은 자로 영원히 있음이 된다는 말씀은 영생은 고사하고 최종 희망을 유지하기 위한 자기변호 수단인 자살까지도 무의미로 만든다. 이 세상이 힘들어서 죽는다는 생각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죽고 싶어도 죽지 않는 죽은 자로 영원히 지옥 속에 살아 있게 된다는 사실은 죽고 나서야 생생히 알게 될 일이어야 한다.

그런데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으면 좋았을 뻔했다는 말씀을, 도무지 나를 모르시겠다는 말씀을 예수님께 직접 들어야 할 때가, 예수님께 가시 면류관을 씌우고 조롱하고 머리를 흔들었던 자신의 모습을 직접 봐야 할 때가 미리 앞당겨 오고 ‘맞습니다. 주님. 내가 태어날 이유가 저에게는 없습니다. 맞습니다. 저도 주님을 도무지 몰랐습니다. 그러니 주님이 누구신지 알게 하신 주의 뜻대로 저를 처리하심이 합당합니다’라는 고백을 할 수 있게 해주시는 은혜의 폭을 나라는 존재가 측량할 수 없음을 하루 또 하루를 더하시며 가르쳐주신다.

죽여버리셔도 되는데 하루를 더 살리심이 감사한 이유가 바뀌면서 여전히 세상에 남겨져 하나님이 허락하신 심판 속에서 함께 휘몰리며 예수님이 이 땅에서 품으셨던 절망의 끝이 어디에 닿아 있는지를 더 깊이 느낄 형편을 허락하신 것에 감사하게 되고 대신하시는 어린양의 희생만 바라보게 하시는 것을 고마워하게 된다.

내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 거울을 보고 타인을 찾으며 답을 구하고 의미를 조작하는 삶만 있는 것이 당연했는데 이런 행위들을 더 나아가 나를 무의미하고 헛되게 보고 본질상 진노의 자녀로 보게 하는 시선이 어디서 오고 있는지만 중요해진다. 사적인 것이 포기되기에 자기를 위해 추구했던 것들이 보이지 않으니 그제 서야 밖이 보이고 들풀이 보인다.

부귀영화와 세상의 모든 지식을 가졌다 한들 언약이 없으면 하나님이 친히 기르시는 들풀보다 못한 헛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임을 알게 하신 주께서 일방적으로 사랑을 입혀주실 때 그 사랑의 초점이 자신이 아니라 안에 심어진 하나님의 유일한 기쁨이고 사랑이신 아들에 대한 언약임을 알게 된 것이 솔로몬이 받은 최고의 지혜이다.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3:17)

글이 말이 말씀을 가로막는 수단이 된다. 말이 많아질 때 진짜 해야 할 말씀을 전달 못 하고 있고 안에서 작동되는 거짓 자아가 유혹 거리가 된 상태임을 직감한다. 그러나 내가 나를 밀어내는 작동은 결코 의식되며 일어나지 않는다. 벌어지고 난 뒤에 알게 될 뿐이지. ‘자아를 밀어내야지’라는 의식이 동반되면 그 또한 자아를 인정하는 행함의 일부이다. 마치 죄를 의식하는 것이 죄가 되는 것처럼.

누군가와 이야기를 할 때 잠시도 듣기가 힘든 말과 멈추지 않기를 바라는 말씀의 차이를 느끼는 것은 나 자신의 자아 있음에서 나오는 역겨운 말을 내가 듣고 있기에 그것과 다른 차원의 말씀, 피 안에서 만들어진 새로움이 귀를 노크할 때 낯선 사랑이 느껴진다. 형체 없는 말씀을 사모하게 되고 그 순간은 내가 죽었음이 내가 소실됨이 그렇게 기쁠 수 없고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오직 말씀에만 휘둘리게 하심을 항상 고마워할 수 있는 순간이다.

 

이근호  “주머니에 담긴 언약이 터져 나와서 어린양의 향기로운 희생만 퍼지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탁월한 조치”
성도가 주머니라면 그 주머니 속에는 찰랑대는 언약요소들이 들어 있다. 시간의 요소도 들어 있고 공간의 요소도 들어 있다. 시간은 그 성도의 수명이요 공간은 그 성도의 삶의 환경이다. 따라서 미안해하지 말자. 모두 다 주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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