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를아십니까

다시읽기 십자가를 아십니까 1 십자가와 예배 곽진계

아빠와 함께 2013. 1. 20. 09:14

 

다시읽기 십자가를 아십니까 1 십자가와 예배 곽진계

십자가를 아십니까? [다시읽기]요약은 늘푸른 교회 곽진계 교우님께서 자유게시판에 올려 놓은 것을 옮겨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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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님의 이 책은 이 목사님이 쓰신 두 번째 책일 것입니다. 평소에 이 목사님의 책과 논문들을 즐겨 읽는데, 그때 느낀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목사님이 쓰신 책들 중에서 가장 늦게 읽었지만,(이유가 절판되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먼저 서평을 작성하게 되는군요. 그러면 무엇 때문에 이 목사님은 이 책을 쓰게 된 것일까요?

그것은 현실교회의 비복음성에 멀미가 날 것 같다는 것입니다.(이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느꼈을 것이라고 하는데, 이 목사님의 생각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토할 것 같은 느낌. 여러분들은 이런 느낌을 받아보셨는가요? 차멀미나 배멀미할 때의 그 느낌? 이 목사님은 끊임없이 현실교회의 비복음성에 문제를 걸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 목사님의 글쓰기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이제는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할 정도로, 책들에서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왜 이렇게 현실교회가 거짓 복음을 전하게 되었을까요? 이 목사님은 단호하게 성경의 ‘십자가’정신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아니, 십자가를 아예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십자가가 무엇인지를, 십자가에서 무엇이 흘러나오는지를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피상적, 율법적으로 알았던 예배, 기도, 헌금, 주일성수, 상급, 전도 등에 대해서 ‘십자가’ 중심으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원래 이 목사님의 신앙의 모토가 “구약에서는 유월절 정신이 상실되면 우상이 되고, 신약에서는 십자가 정신이 상실되면 그것이 우상이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 목사님의 간절한 소망을 따라 ‘십자가’에서 나오는 예배, 기도 등등에 대해서 하나하나 살펴봅시다.

1. 십자가와 예배

이 목사님은, 현실교회는 “모든 교회는 예수님이 세웠다.”고 주장하면서 마태복음 16장의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를 그 근거로 내세운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인간의 힘으로 교회를 사수해야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음부의 권세는 주님만이 이길 수가 있기 때문에 인간의 힘으로 사수하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면, 무엇이 음부의 권세를 이겼을까요? 그것은 ‘율법 외에 한 의’가 음부의 권세를 이겼다는 것입니다. ‘율법 외에 한 의’가 바로 십자가이고, 이 십자가의 피가 머물러 있는 교회가 주님이 세우신 참된 교회이고, 성령께서 원하시는 교회라고 합니다.

이 목사님은 계속하여, 예수님은 구약의 성취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예배를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약의 성취에 의한 예배는 어떤 예배일까요? 여기에 대해서는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신령과 진정의 예배’에 잘나오는데,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서 예수님은 ‘진리와 영’으로 예배하여야 한다고 하니, 사마리아 여인은 ‘진리와 영’으로 드리는 예배는 그리스도가 오셔야 된다고 하자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내가 그로라”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여기서 눈여겨 볼 것은 왜 그리스도가 오셔야만 진정한 예배가 되는가? 입니다.

이것은 구약의 에스겔 예언의 성취를 바라보는 내용이라고 이 목사님은 말합니다. 에스겔서에 보면, 하나님이 한 목자를 세워 친히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릴 것인데, 그 목자는 다윗이고, 이 다윗이 왕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릴 것이고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말씀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메시야(왕)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직접 다스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맑은 물로 뿌려서 정결케 하고, 새 영을 자기 백성들 마음속에 두어 육신의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게 하겠다고 예언하였습니다. ‘진리와 영’으로 예배하는 방법은 오직 이스라엘의 왕이 오시고 그분에 의해 새 영이 주어질 때인데, 그 왕으로 오신 메시야가 예수님이라는 말씀에 사마리아 여인은 그 메시야되신 예수님을 증거하였습니다.

여러분, 놀랍지 않은가요? 지금까지 들은 설교나 책들 중에서 요한복음 4장의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를 이런 식으로, 구약과 연결하여 설명하시는 분을 보신 적 있으신가요? 처음부터 이런 내용을 접하셨다면 별로 놀랄 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저에겐 너무나 새로운 내용이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입니다. 예수님의 행동 하나하나,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구약의 성취라는 것을 그후에 알고부터는 모든 성경이 예수님을 증거한다는 사실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성경은 온통 예수님에 관한 내용으로 ‘수’를 놓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새 영이 와야만 하나님의 규례를 지킬 수가 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의 현상태로는 율법을 주어도 지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율법이 가입한 것은 죄를 더할 뿐입니다. 이런 상태로는 하나님께 참예배를 드릴 수가 없기에 마음이 부드러워져야 되는데, 이것이 사람의 노력으로 될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새 영이 오셔서 이런 마음을 부드럽게 하여야만 하나님께 참예배를 드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문자로 지키는 율법 아래서는 진리와 영으로 드리는 예배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런 문자지킴이 새로운 우상이 되고, 그래서 예수님은 성전을 파괴하였으며, 이것은 제사의 종결을 의미한다고 이 목사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예배와 제사는 ‘영’으로 드리는데, 이것은 성전 대신에 성령을 ‘처소’로 삼고 그 안에서 예수님과 하나님을 함께 만나는 상태라고 합니다. 이 목사님은 여기서 요한복음 14장 2절의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중 ‘처소’를 성령으로 해석을 합니다. 이것도 처음 들어보는 내용이였는데, 우리는 그동안 ‘처소’를 장소적인 천국이라고 이해하고 있었지 않은가요? 하기야 성령과 함께 하는 곳이 천국이라면 그리 틀린 말도 아닌 것 같기도 하지만...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메시야(왕)의 사역을 감당하시고, 승천하셔야만 성령께서 오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예수님께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에스겔서의 성전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것은 성전되신 예수님이 성령을 주시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서 예수님이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요4:14) 그 성령을 통하여 예수님이 하나님 안에, 우리가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우리 안에 있게 된다(요14:20)는 말씀입니다. 그때는 ‘주의 이름’으로 구하는 모든 것은 예수님께서 시행하신다고 말씀(요14:14)하십니다. 이것이 예배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제가 좋아하는 표현으로 “예수 안이 예배다.”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메시야의 사역은 무엇이었습니까? 왕이시고 죄가 없으신 분이 종과 죄인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참예배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직접 대제사장이 되시고, 흠없고 점없고 티도 없는 제물이 되셔서 완전하고 완벽한 속죄와 화목의 예배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완전한 예배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끝입니까? 아닙니다. 3일 만에 무덤에서 부활하셨고, 다시 원래 고향이신 하늘로 승천하셔서 우리에게 성령을 내려주신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무너진 성전은 당신께서 직접 허무시고, 완전한 성전을 직접 세우셔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래서 성도가 성전입니다.(고전3:16)

여기서 잠깐 여담을 하면, 이 목사님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하심, 승천하심 등은 각각의 사역이지만 이 모든 것들이 십자가로 수렴된다고 다른 책에서 이야기합니다. 즉, 예수님 사역의 중심은 십자가이고, 이 안에서 부활도, 승천도 포괄한다고 합니다. 맞는 말 같기도 한데, 자세한 내용은 아직 잘 모르겠더라구요.(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의 내용이 시간적으로 뒤인 부활과 승천도 미리 선취하셨다는 내용인 것 같기고 합니다만.) 여러분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성령이 주어진 성도들은 어떤 고백(예배)을 할까요? 이 목사님은 회개하는 심령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시51:17)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 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치 아니 하신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또한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신다고 하십니다.(호6:6)

이사야서에서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짐승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이런 것들은 헛된 제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공의를 행하고,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고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즉,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는 이웃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회개하는 심령과 이웃사랑은 성령이 오셔야만 가능합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이 목사님의 주장에 동의를 하십니까? 성경의 내용대로 말씀하시니, 동의 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죠? 그런데, 현실교회는 왜 그렇습니까? ‘예배 성공하면 인생 성공한다.’는 헛소리나 하고. 그러니 이 목사님이나 복음을 전하는 목사님들이 미치죠. 매 주일 예배를 드리면서도 딴 생각을 하니, 이런 성경의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알 리가 없죠.

요지는 참된 예배는 메시야이신 예수님이 성령을 보내주셔야만 참된 예배가 되는데, 그 메시야이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하나님께 참된 예배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와 ‘예배’입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이렇게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요4:23)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예수님이 이렇게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고 주장하시다가 노회에서 쫓겨난 목사님(박신일)도 계시더라구요. 그러니 미칠 만도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