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강-YouTube강의(국가의 정체)180403-이 근호 목사
228강, 제목은 ‘국가의 정체’입니다. 국가를 구분해야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국가라고 하는 것은, 국가라고 하는 것보다도 민족이라는 것이 더 강렬해요. 이스라엘 민족과 그 반대편에 있는 이방민족. 민족과 국가의 차이점은, 민족은 전통성이 있습니다. 전통성이라고 하는 것은 계속 이어져가는 것을 말합니다.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낳고, 아버지가 자식을 낳고, 자식이 손자를 낳고. 그래서 우리는 아무리 내가 늙어죽어도 이 민족이라는 것, 나를 태어나게 했던 그 원천, 이것은 한결같이 끊어짐이 없이 이어져 왔다는 사실을, 내가 여기 이 땅에 산다는 그것으로 증명이 된다는 것. 이게 옛날에는 국가라고 할 수가 있어요.
국가를 요약하면 그거는 ‘나’라는 연속성을 보장해주는 외부적인 이미지다, 라고 보면 됩니다. 내가 연속적으로 어디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을 보장해주는 외부의 이미지. 그래서 현대에서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있지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보다도 우리는 한 민족이라는, 민족으로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얻을 수가 있죠.
그래서 항상 그 근거는 뭐냐 하면 옛날 고대국가는, 우리 민족은 옛날부터 계속 이어져왔기 때문에 민족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시조가 중요하고, 족보가 중요하고, 그리고 역사가 중요해요. 여자가 시집을 갔다. 그러면 자기의 개인적인 행복을 위해서 간다고 하지만, 그거는 결혼하기 전이고, 막상 시집을 딱 가게 되면, 시집이라는 그 족보와 그 가문에 본인이 봉사해야 된다는 책무를 부여받게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피가 섞이지 않은 시아버지, 시어머니가 아프다면 며느리로서 마땅히 돌아봐야 된다. 만약 안 돌아보게 되면 어떻게 할 것이냐, 안 돌아보게 되면 우리 집안사람이 아니라는 거예요. ‘나는 이 집안하고 결혼한 게 아닌데, 왜 갑자기 집안이 거론되지? 아하! 나라는 것은 나의 자식의 성(姓)부터 해서, 나에게 속한 그것이 결혼하기 전까지는 다른 집안이었는데, 결혼하고 난 뒤에는 집안자체를 옮겨서, 이 집안의 연속성과 전통성과 영원성을 보장하는데, 내가 기여해야 한다는 책임을, 결혼할 때 이미 부여받고 결혼한 것이었구나.’
그래서 결혼이라는 것은 자기 둘이 마음 맞는다고 결혼하는 것이 아니고, 집안과 집안끼리 한다는 것을 옛날부터 했잖아요. 근데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면 어떻습니까? 상당히 좀 고리타분하다는 생각이 들죠. 그러면 여기서 오늘날의 국가가 뭐냐, 오늘날의 국가는 이게 하나의 자본주의 이후의 국가에요. 자본주의 국가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뭐로 돌아가느냐 하면 기계가, 좀 어렵게 말해서 생산수단이 기계가 되거든요. 기계를 통해서 많은 생산을 확대시키는 그 구조가 자본주의라고 하는 것입니다. 기계를 통해서.
그러면 인간이 기계하고 맞닥트릴 때, 그 회사에서 요구하는 것은 두 가지를 평가를 해요. 니가 산만하냐? 아니면 니가 집중 하냐? 니가 산만하느냐? 아니면 집중하느냐? 뭐를 붙들고 하느냐 하면 기계 앞에서요. 내가 기계를 다루고 있을 때, 내가 산만한지, 집중하고 있는지를 봐요. 내가 컴퓨터 앞에 있을 때, 내가 산만한지, 집중하는지. 내가 애를 양육할 때, 산만하게 하는지, 집중해서 하는지. 그렇게 되는 겁니다. 청소를 할 때, 내가 집중해서 청소기를 돌리는지, 아니면 딴 생각하면서 산만하게 청소기를 돌리느냐를 묻는 거예요.
그러한 기계와 맞닥트리는 현대구조가 그래요. 만약에 한약재를 기계로 만들 때, 복음 생각하다가는 손가락 잘못될 수가 있어요. 딴 생각하게 되면 크기가 균열하지 않죠. 그러면 이거는 아주 혼나죠. 그렇게 하려거든 때려치우라고 이렇게 나오죠. 이게 뭐냐 하면 기계 앞에 설 때 인간은 기계를 다루는 게 아닙니다. 기계가 원하는 인간으로 변화되는 거예요.
그러면 나는 이 시대에 자본을 키우는 기계로 변신해요. 하나의 기계가 되는 겁니다. 기계가 되려면 기계가 요구하는 것은 딴 생각하지 말고 집중하라는 거예요. 기계가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집중하라는 겁니다. 오직 이 시대는 집중, 집중밖에 없어요. 어떤 사람이 예를 들어서 컬링선수다. 그러면 그 선수는 국가를 위해서 집중해야 돼요.
이런 기계를 앞장세워서, 기계구조 안에서, 기계 하나 앞장세워서 뒤에 자기 존재가 달린 채로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을 가지고 현대에서는 국가라고 이야기를 해요. 국가가 기계 앞에서 이루어지니까, 전부 다 기계가 돼요. 쉽게 이야기해서 기계라고 하는 것은 자기 전공분야에요. 자기 전공분야에 집중해서 모였으니까 그 국가는 뭐냐 하면 바로 기계가 되는 겁니다. 이 현대국가는 기계가 돼요.
기계가 되기 때문에 뭐가 빠지느냐 하면 시조, 역사, 전통, 족보, 전부 다 이게 소용이 없어요. 소용이 없다고요. 옛날에는 전통, 시조, 역사, 정통성, 족보, 이러한 것들이 중요합니다. 이게 중요하기 때문에, 그거는 나를 지키기 위한 외부이미지에요. “당신 소속이 어디야?” “나는 대한민국 사람이야.” 이렇게 나를 나타내는 외부이미지에요. 옛날에 중요한 것은 내가 중요하고, 내가 소속된 우리 집안이 중요한 거예요. 집안이 중요한데, 그 이유는 그 안에 내가 있기 때문에 중요한 겁니다.
그런데 현대국가에는 이러한 과거가 어떠니, 미래가 어떠니, 그게 아니라, 지금 나는 이 기계를 잘 다룰 수 있는 숙련된 사람이냐, 내가 맡고 있는 이 일이 남들 앞에 이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일 수 있는 사람일 경우에만, 그 국가에서 하나의 생각하는 기계로서 용납이 되는 겁니다.
그럴 때 뭐냐, 그 국가 단위의 움직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나와요. 생계비가 나오는 겁니다. 자, 그런 차이가 뭐가 중요하냐 하면은, 옛날에는 어디에 소속이 되면 그 자체가, 왕이 있고 양반이 있고 쌍놈이 있고, 집에 계급이 있어가지고 소속되어 있기만 하면, 말만 잘 들으면, 소속된 그 구조가 자기 생계를 책임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는 뭐냐 하면 기계 앞에 서기 때문에 권력이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 있어요. 내 안에. 내 안에 있어서 내가 낮에 직장생활 하면서 컴퓨터를 잘 못 다루었을 때는, 퇴근해서 밤이 돼도 그 권력이 나를 굉장히 힘들게 몰아붙입니다. ‘내가 이래가지고 내일 출근했을 때, 실적 한 번 보자고 한다든지, 일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회계장부 제대로 처리했는지 한 번 보자고 하면, 제대로 못해서 상사한테 꾸중 들으면 나는 사표를 써야 되나?’ 이래 돼요.
그러니까 이거는 자기 신체의 소속이 없어요. 일을 잘하면 그 일을 잘하는 동안에만, 기계처럼 집중해서 잘 한다는 조건하에만 그게 약간의 소속이 되고, 만약에 내가 몸이 아프다, 어깨가 아프다 해서 딴 데 신경 쓴다고 집중을 못하면, 거기서 추방이 되어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권력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고, 권력은 어디에 있느냐 하면 나한테 있어요. 그걸 뭐라고 하느냐 하면 자책이라고 합니다. 자책. ‘똑바로 정신 차리고 하지! 일을 왜 그렇게 해! 너는 요새 왜 그리 실수가 많아?’ 본인이 자책하니까 본인이 권력자고 본인이 피지배자가 되는 거예요.
법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옛날의 국가는 법이 바깥에 있어요. “어른 가라사대 우리 집안은 이런 집안이다.” 근데 자기 법은 뭐냐 하면, 내가 나를 못살게 굴어요. 내가 나를 힘들게 한다고요. 내가 나를 스스로 판단해요. ‘니 그 따위 식으로 하려거든 직장 때려치워라. 니 남한테 해코지한다. 치워라.’ 내가 그렇게 나한테 자책의 권력에 있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어느 게 더 무섭습니까? 늘 따라다니는 권력이 어느 거예요? 바로 내가 밤 잠 못 자게 만들고, 우울증 걸리게 만들고, 내일 일을 생각해서 지금 내가 밤을 설치게 만드는, 외부에서 나한테 주어져 숙제처럼 안기는, 이 국가가 우리로 하여금 스트레스를 더 주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적으로 말하면 옛날 국가는 좀 소박했지만, 지금 국가를 가지고 성경에서는 짐승이라고 합니다. 짐승. 악마라고 합니다. 니가 옛날에는 어디를 가도 이렇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섬기는 걸로 되었지만, 지금은 어떤 경우라도 우리는 악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미 권력 안에 우리가 잠겨있어요.
우리 힘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못하는, 그러한 하나의 기계로서 존재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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