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뜻

성막

아빠와 함께 2018. 3. 17. 07:19
 이근호 (IP:119.♡.83.168)18-03-12 23:52 
언약궤 안에 말씀을 새긴 비석뿐만 아니라 만나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도 들어가 있는 식으로 모형이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바깥에 있다는 것은 해설자 개인 의견일 뿐입니다. 성막구조 설명성막구조에 담긴 복음적 평은 다른 문제입니다. 해설자는 자신을 유댜교인이 아니라 기독교인이라고 했습니다. 마치 고급 차를 놓고서 설명할 때나 값싼 차를 놓고 설명할 때는 자동차 작동원리에서 차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가치는 10배 이상 차이나는 이치와 같습니다.

"성막이 어떻게 예수님의 복음과 연관되나요?" 라는 질문과
"성막으로 인해 우리 인간은 어떻게 죄씻음되어 구원받나요?" 하고는 의도 자체가 다른 겁니다.
'우리'라는 관심사가 성막에 개입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관심두고서 성막에 다가서는 것이 바로 '구원론적 입장'입니다.
이렇게 되면 성막 기능으로 자기 구원를 시도하는 그 행위가 예수님의 취지를 또다시 욕보이게 됩니다.

성막의 기능은,
인간들이 성막에서 자기 구원의 방식을 찾겠다는 바로 그 의도 자체를 철저하게 거부하는 식으로 진행됩니다.
그 이유는 인간은 성막의 무너짐과 같이 무너진 대상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모형에 해당되는 자가 실체인 것처럼 '의미의 종결점'에 서 있게 될 수는 없습니다.
성막의 기능은 예수님마저 죽게 하시므로서 이 세상 모든 것이 '통합적 모형'임을 드러냅니다.
그 다음에 진행되는 언약완성은 그 무너짐을 전제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됩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구원받을 자격이 애초에 없음이 합당하다는 식으로 진리가 드러납니다.
성막은 이처럼 심판 이후, 하나님의 사랑을 소개하는 모형이 아니라
도리어 끝까지 인간을 심판하는 기능으로 일관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세상으로 정립하기 위한 과정이며
이것이 인간이란 이유 때문에 도저히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은 성막모형을 통해서 직접 인간에게 전달될 수 없고
십자가 안에 성도 자신이 죽어 있다는 그 부정적 결과성 자체로서 표출됩니다.

즉 "나는 죽고, 나는 또 죽고, 나는 반복해서 또 죽고,
그런 식으로 그리스도가 계시고, 또 계시고, 또 계시는 것이 사랑이다"
는 주에 대한 증거형식으로만 나타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