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테르 효과도 아닌데....산다는 것이 우울하고 귀찮다는 생각에 두 아이를 남겨두고 죽은, 세상의 인기를 한몸에 다 받았
던 여인이 생각이 납니다.
이름없이 그냥 존재하여도 인간은 자신에게 미쳐있는 존재인데.... 자기 이름에 대단한 명예와 자부심이 대단한 자에게
악성루머라는 환경이 주어지니 자신이라는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였겠다는 동정이 일어납니다. 나이도 거의 비슷합니다.
속설에 40대에 나타나는 권태로움이 위험하다고들 하던데.....
이 죽음은-대중의 인기스타였기에-세간에 알려져 관심을 끌었지만 오늘도 이름없이 알려지지 않은 죽음들이
수 없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이유가 되었든 자신이라는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서 죽어버리는 죽음들이....라는 극단적인 생각을 해봅니다.
바퀴벌레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을까???
"바퀴벌레 자살하다...오후 00시에 바퀴벌레 자신의 자택에서 스스로 목을 졸라서 생을 마감하다"
스포츠신문 1면 머릿기사에 나오고 인터넷 검색 1위가 되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애도하고 명복을 빌어주는 일이 일어난다....
바퀴벌레는 왜 자살을 선택했을까요??? 자살을 선택 할만한 절박한 심정과 상황은 무엇이었을까요???
가족들과 지인들의 증언을 토대로 자살의 내막을 추리해 들어간다....
바퀴벌레의 자살은 이 세상에서 일어날 수 없는 가상시나리오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바퀴벌레가 자살했다는 것에 어느 누가 관심을 가질 것입니까???
또 바퀴벌레가 무엇 때문에 자살하겠습니까???
자살할 이유가 없습니다. 다만 사람들의 손에 재수없이 걸려서 맞아 죽거나 약품에 의해서 대량살상되거나 어떤 상대에 의
해서 희생되거나 하는 것이 바퀴벌레의 인생이겠지요.
바퀴벌레는 돈 때문에 죽지 않습니다.
바퀴벌레는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죽지 않습니다.
바퀴벌레로 만들어졌으니 바퀴벌레로서 주어진대로 사는 것 뿐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지맘대로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합니다.
고상한 사람이라는 가치에 위장된 그 깊고도 깊은 내면에는
어떤 분의 말씀처럼 예수 믿기 싫은데 잘됐다는 것이 사람들의 본심이었습니다.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함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로마서 1:28-32)
사람은 이미 사형에 해당한 자라는 하나님의 정하심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죄 때문에 모든 죄가 나오는 죄인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형에 해당하는 자들 때문에--저주 아래 갇힌 만물-- 정하신 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사도행전 17:30-31)
가지말라고 대성통곡을 하며 날뛰며 되돌리고 싶다면 되돌리고 싶고 붙잡을 수만 있다면 붙잡고 싶은
그 애절함에 목메인...가족과 친구들...
그 광경에 괜히 감정에 북받쳐서 아무런 연고도 없이 이유도 없이 함께 울었습니다(이것이 나라는 실상이구나)
그러나 나라는 죄인 때문에 대신 죽으신, 정하신 한 사람의 죽음 앞에는 눈물은 고사하고 콧방귀만 뀌는 현실입니다.
"33살의 예수라는 젊은 청년의 대신 죽음..."이라는 뉴스에 온 국민이... 온 세상이 눈물을 흘리겠습니까???
쯧쯧..혀를 차면서 안됐네... 불쌍하네...어떡하냐...그것으로 끝하고 즉각적으로 자신에게 돌아서버리겠지요.
이 세상은 어떤 한 여인의 죽음에 추모비를 세웠지만 이 세상에 대해서 예레미야는 애가를 지었습니다.
"슬프다 이 성이여.......밤새도록 애곡하니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 사랑하던 자 중에 위로하는 자가 없고 친구도 다 배반하여
원수가 되었도다 저의 대적이 머리가 되고 저의 원수가 형통함은 저의 죄가 많으므로 여호와께서 곤고케 하셨음이라
어린 자녀들이 대적에게 사로잡혔도다...처녀 시온의 모든 영광이 떠나감이여....예루살렘이 환난과 군박을 당하는 날에
옛날의 모든 즐거움을 생각함이여 백성이 대적의 손에 빠지나 돕는 자가 없고 대적은 보고 그 황적함을 비웃도다.......
저의 더러움이 그 치마에 있으나 결국을 생각지 아니함이여 그러므로 놀랍게 낮아져도 위로할 자가 없도다 여호와여 원수가
스스로 큰 체 하오니 나의 환난을 감찰하소서........그 모든 백성이 생명을 소성시키려고 보물로 식물들을 바꾸었더니 지금도
탄식하며 양식을 구하나이다 나는 비천하오니 여호와여 나를 권고 하옵소서
무릇 지나가는 자여 너희에게는 관계가 없는가 내게 임한 근심 같은 근심이 있는가, 볼지어다 여호와께서 진노하신 날에
나를 괴롭게 하신 것이로다..."(예레미야 애가1장)
십자가에 죽으사 다 이루신 피흘리심만으로 구원된다는 새 언약을 소망하면서......그 시대에 예레미야만이.....
하나님의 공의와 긍휼과 사랑앞에 울었습니다.
자기 백성을 대적의 손에 내어주고 아들을 죽이셔야만 하는 하나님의 심정을 헤아렸습니다.
다 떠나가도 진짜 하나님의 심정을 전해야만 하는 사명에 붙잡혀 있었던 자신에게서 빠져 나올 수 없음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외로움에 지나가는 자를 붙잡고서라도 토해내고 싶었던 것입니다.
너희에게는 관계가 없는 일이냐 내게 임한 근심 같은 근심이 있느냐...도대체 너희가 관계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며
도대체 너희의 근심은 이 근심 말고 어떤 것이 근심이냐는 것입니다.
성도000 성도000의 영정 사진을 보면서 저 교회 목사는 무엇을 전했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시대에 목사들이 무엇을 전파하기에 성도가 자살을 해야하는 것입니까?
죄를 죄라고 하고 죄인을 죄인이라고 하고 망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하고 예수님의 피 값이 아니면 구원받을 수 없
다고 하고 인간은 자기 밖에 모르는데 그렇기에 예수님의 공로가 아니면 천국갈 수 없다고 하고 예수님만이 우리 대신 죽었
다고 하고 바퀴벌레보다 못한, 죽은 개 같은 존재에도 미치지 못하는 자들인데 예수님의 공로 때문에 살고 있다고 하고
돈 없이 사는 세상도 있다 라고 하는......
제발 속 시원하게 진실만을 말해 주는 이 시대의 예레미야가 그립기만 합니다.
그래야 성도는 죽지 않습니다. 그래야 예수님의 공로만을 자랑합니다. 그래야 예수님만을 자랑하고 싶어서 환장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