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결혼식에 다녀와서>
결혼식이니까 잘 차려 입고 참석해서, 신랑 쪽이면 참 믿음직하게 잘 생겼다고, 신부 쪽이면 어쩜 그렇게 예쁘냐고, 그렇게 축하의 덕담을 나누면서 눈도장 찍고, 짧은 예식이 끝나면 뷔페음식 골라서 먹고 오면, 그걸로 끝나는 것이 결혼식 아닌가? 써야 할 이야기가 뭐가 있다고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글을 써야만 하는 것인지...별 일이 없었으면 안 썼을 것이지만, 쓸 수밖에 없는 발작이 일어난다.
늦잠이라도 자면 그 핑계로 안 가려고 했다. 무슨 일이 있는 날이면 더 일찍 눈이 떠지는 습관 때문에 늦잠을 자 본 역사가 없다. 어릴 때 학교에서 소풍갈 때면 평상시 등교시간보다 더 일찍 일어나서 설쳐댔었다. 잠에서 깨고 난 후에도, 그냥 가지 말고 다시 자버릴까, 라는 생각이 들만큼...참 이상한 기분이 드는 날이었다. 하지만 그 전날 늦은 밤에 예매해놓은 ktx시간이 대충 몇 시라는 기억이 떠오르니, 몸은 반사적으로 갈 준비를 하게 된다. Let's Go~광주!
용산 역에 도착해서 출발시간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재원씨는 갑자기 놀라면서 휴대폰 배터리가 10퍼센트밖에는 안 남았다고 한다. 어제 분명히 충전도 잘 해놓으라고 당부를 했었는데 제대로 충전 잭이 꽂아져있지를 않았었나보다. 그때부터 뭔가 슬슬 불안이 밀려왔다. 잘 확인 좀 하지 그랬냐고 신경질을 부렸다. 일단은 재원씨가 모바일예매를 했기에 휴대폰이 꺼지기 전에 몇 호차인지, 좌석번호는 몇 번인지를 알아서 메모해놓았다.
기차가 들어왔다. 근데 이상하게 우리 좌석에 두 분이 앉아 계셨다. 우린 좌석번호가 맞느냐고 물었더니 표를 확인하더니 맞는다고 한다. 당당하게 표를 꺼내기 전까지는 이 사람들이 잘못 찾아서 앉았을 것이라는 확신을 했었다. 그분들이 맞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틀린 것이다. 희미해진 휴대폰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다시 확인해보니 입석이었다. 어젯밤 재원씨는 예매를 할 때 계속 광주송정이 뜬다고 했다. 광주 역을 예매해야 하는데 광주송정역이 종착역이었다. 광주에 사는 아는 동생한테 물어보니 광주송정을 끊어도 광주역도 간다고 했단다. 재원씨는 도착역만 신경쓰다보니 매진된 것도 모르고 끊은 것이다. 어차피 매진이었기에 입석으로라도 가야했지만, 좌석인줄만 알았다가 입석이라고 하니 또 신경질이 나기 시작했다.
문이 닫히고 기차는 출발했다. 근데 바로 옆 칸에 빈 좌석이 많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우린 거기에 좋다고 앉아있는데 승무원이 와서는 여긴 특실이라 추가요금을 더 내야 한다고 한다. 특실이었구나.. 입석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그 안락한 의자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마음도 그랬고...이럴 때 아니면 언제 특실을 타볼까...승무원에게 물어보았다. 광주 역에도 차가서나요? ktx는 익산에서 한 번 서고, 그 다음 광주송정이 종착역이라고 한다. 물어볼 때 일반 기차인지 ktx인지를 분명히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광주송정 역에 도착하면 광주 역까지 셔틀열차가 있어서 17~18분정도 걸리니까 그렇게 해서 가라고 알려준다.
이젠 모르겠다. 어떻게 되겠지. 짜증을 낼 수도 없었다. 기차 문이 닫힌 후에는 도착할 때까지는 그냥 달리는 기차 안에서 앉아있어야만 할 뿐이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내리고 싶어도 내릴 수 없는 기차 안에서 맛본 두려움은 그 상황에 수동적이 되게 했다. 주님이 인생이라는 열차에 한 번 태우면 그걸로 끝이구나. 싫든 좋든 간에 종착역에 도착할 때까지는 내려달라고 한다고 해서 내릴 수 없다는 것을.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없다. 기차 안이라는 그 안은 수동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끝났겠지..더 이상 다른 일은 없겠지..그런 위로를 하면서 잠이 들었다. 광주송정 역에 도착했다. 내렸더니 바로 옆 플랫폼에 광주 역까지 갈 셔틀열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친절한 아저씨는 이 셔틀열차가 없었다면 광주 역까지 1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해줬다. 근데 이걸 타면 18분정도면 간다고 한다. ‘아, 다행이다. 이 셔틀열차가 있어서. 한 시간에 갈 것을 18분 만에 간다니!’ 대충 계산해보니 광주 역까지 가면 11시 30분, 바로 택시를 타면 17분 걸리니까 예식 전에 도착할 것 같았다. 이제 광주역만 간다면 택시로 금방 도착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서 셔틀열차가 떠나기만을 고대했다. 우린 뭔가에 홀린 사람들처럼 검색(내 핸드폰만 살아있기에 아껴 쓴다고)도 하지 않았고, 그 누구에게 길도 물어보지도 않았다. 아마도 그렇게 했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제 내가 검색한 정보를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광주 역에서 피엔 제이 웨딩홀 택시로 17분”이라는 정보를. 근데 금요일 밤은 너무 피곤해서 겨우 검색하고 예매하고 바로 곯아 떨어졌었다. 제대로 준비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광주 역에 도착했다. 택시를 타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희망이 깨지기 시작한다. 역에서 바로 나오면 빈 택시가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사람들이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기에. 이렇게 마냥 기다리고만 있을 수만은 없는데...속이 탔다. 근데 어떤 한 택시가 다른 곳에서 서는 것이 보였다. 우린 달려가서 그 택시를 무조건 탔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 낯익은 전라도 사투리로 혼내듯이 이야기하신다. 왜 광주송정 역에서 광주 역까지 왔느냐는 것이다. 광주송정 역에서 택시로 10분이면 가는데, 광주 역에서는 돌아서가는 것이고, 택시비도 배로 나오고 시간도 배로 더 걸린다고 한다. 그러면서 박근혜 욕을 하는 것이다. ‘역시 여긴 전라도였어...’ 원래는 광주역에 ktx가 섰는데 박근혜 그 XX가 광주송정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대통령이었을 당시에 친한 어떤 의원이 그렇게 하자고 하니 했다는 것이다. “광주에서는 북구 지역에 사람이 제일 많이 살고 광주하면 광주역이지 무슨 작은 간이역 같은 광주송정 역에 ktx가 서야 쓰것소? 그러면 쓰것냔 말이요?”라고 열변을 토해내셨다. “친지결혼식이요?” “네. 친지결혼식에 갑니다.” “추억 많이 쌓고 가것네. 하여튼 밟아봅시다.” 차선무시하고 끼어들기해서 이리저리 막 달렸다.
신랑은 축가를 부르고 있었다. 한 곡은 잔잔하게, 그 다음엔 이벤트로 선글라스까지 쓰고 신나게. 그리고 신랑신부 행진~~!! 한 숨 돌리고 나니 정말 반가운 얼굴들이 보였다. 우인숙 집사님, 김인철 장로님, 황영자 전도사님, 최종훈 장로님, 이윤자 권사님, 우인정 집사님, 김정휴 집사님, 조정순 집사님, 영암(?)에 사시는 집사님. 그리고 맨 앞에 앉아계셨던 신부의 아버지 김을수 집사님이 뒤로 오셔서 만나니 눈물 날 정도로 반갑기만 했다.
음식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충 담아서 둘러보니 김인철 장로님, 황영자 전도사님, 최종훈 장로님, 이윤자 권사님께서 앉아계신 테이블에 자리가 남아 있어 함께 먹게 되었다. 나중에 이근호 목사님께서 먼저 가신다고 오셨는데, 김인철 장로님과 황영자 전도사님께서 청도 가는 길에 대구에 들러 내려드리고 가신다고 기다리라고 하셨다. 그럼 기다리겠다고 하시면서 이근호 목사님께서는 재원씨 옆으로 앉으셨는데, 재원씨가 늦게 도착해서 주례사를 못 들었다고 말씀드리니 친절하게 다시 주례사의 핵심을 짧게 요약해서 들려주셨다.
“가정은 과정입니다. 완료가 아닙니다. 가정 너머에 있는 세계를 더 보기 위해서 디딤돌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가정에 얽매이지 마세요. 남자는 일한다고 세세한 것을 보지 못하니, 현숙한 아내는 남편에게 감시와 조언을 해줘야 하는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여호와의 지혜는 현숙한 아내를 통해서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주시매, 왜 그렇게 와야 했던 것인지, 모든 게 한방에 다 날아갔다. 주님이 억지를 부리신 게 아니셨다. 억지는 인간이 부린 것이다. 인간의 억지는 사후적으로 모든 것을 부끄럽게 한다. 만약에 내 생각대로 아침부터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오기 싫더니 짐작대로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고 그렇게 결론 내린다면, 난 아마도 점 잘 치는 용한 기독교인으로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다 가시고, 마지막까지 남아서 김을수 집사님하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참 부끄러웠다. 미안하고 숨고 싶었다. 자꾸 고맙다고 하시고...난 내 진심으로 하지 못한 내 마음이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모르겠고...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렇게 속 썩였던 큰딸, 큰딸이 속 썩인 게 아니라 아버지가, 그 아버지가 종교적으로 큰딸을 속 썩였던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주례사를 통해서 아버지로서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해주셨음에), 을수 집사님의 쓸쓸함을 뒤로 한 채 예식장을 빠져나왔다.
하늘은 왜 그렇게 맑은지..예식장 옆 상무시민공원을 둘이서 걸었다. 길가에 핀 코스모스가 아니라 채송화가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휴대폰 카메라에 담았다. 주님의 하루를 담았다. “주님! 오늘 기쁘시죠? 꼼짝할 수 없도록 수동적으로 굴리셨으니 말이에요?” 축의금보다 더 많이 받아온 차비, 내 알 바 아니다. 공은주 집사님이 주님이 주신 좋은 시간 보내고 오라고 한 저주 값(?)을 내가 대신 받았을 뿐이다. 나보다 공은주 집사님이 더 오고 싶어 했었다.
'이미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련회를 다녀와서 170113 이미아 (0) | 2018.01.16 |
---|---|
서경수목사님 유튜브 설교 171006 이근호 (0) | 2018.01.16 |
수련회요약 170805 이미아 (0) | 2018.01.16 |
광주강의 녹취를 마치고 171229 이미아 (0) | 2018.01.16 |
수련회 요약-180114 이미아 (0) | 2018.0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