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회자료

2강

아빠와 함께 2017. 9. 2. 17:23

하나님의 창조 제 2강




지난시간에 한 것을 복습하겠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눈에 보이는 사람들을 사귀면서 사는데, 여기서는 ‘내가 왜 사는지, 무엇 때문에 사는지’를 물어 봤자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다 같으니까 모릅니다. 그렇게 모른채 사는 것이 정상적입니다. 성경에서 골로새서 1장 16절, 17절에서 뭐라고 하던가요? ‘모든 세상 만물은 예수님께서 친히 창조하시고 창조하신 뒤에 손떼고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위하여 살게 되어 있다는 쪽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골로새서 1장 16절, 17절) 지워버리면 남는 것은 인간세계만 달랑 남잖아요. 이것만 남으니까 서로 서로가 다 정상적인 사람이 되는 겁니다. 지난시간에 강의한 것을 제가 적어 보면 이렇습니다. 골로새서 1장 16절, 17절을 알아야 예수님을 위하여 창조되었다는 것을 압니다. 만약에 우리가 이것을 안다면, 같은 인간인데 하나는 천국에 가고, 하나는 지옥에 가게 되거든요.




이것은 누구 맘대로 입니까? 이것은 예수님 맘대로 입니다. 그런데 골로새서 1장 16, 17절을 지워버리면, 천국이나 지옥은 의미 없고 우리가 그냥 하나 되어서 살아가는 겁니다. 이것은 창조를 모른다는 것이고, 창조의 뜻을 모른다는 것은 근본을 모르고 사는 겁니다. 이것을 적어 보겠습니다.




1. 인간은 창조(근본)를 모른다.


2. 인간은 근본을 알고 싶지 않다. 두번째가 정말 중요합니다. 별표 네 개. 강조!!!!


3. 사람은 무슨 낙으로 사는가? 외로우면 싫다. 사람은 이유 없이 혼자 살기 싫다.


4. 정(情)으로 산다. 인정으로 살아요. 정이 그리워. 정에 웃고 정에 울고.




사람이 혼자 사는 것보다 시집가는 것이 좋고, 애도 낳고, 하나가 아니라 세명낳고 얼마나 좋아요. 정으로 살지 근본이니 뭐니 다 귀찮아요. 그냥 몸과 몸이 부딪히는 그 정으로 사는 거예요. 지금 제가 이렇게 순서대로 적는 이유는 지금 강의한 이 내용을 누군가 불러내서 그대로 시킬 참입니다. 적은 그대로 하면 됩니다. 남자분도 시키고 여자 분도 시키고.




5. 남이 아는 신에 동의한다.




정으로 살려면 남과 의견이 일치가 되어야 하니까요. 옛날 우리나라 여성들에게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시집안간 예쁜 아가씨가 있다면 요새 같으면 남자와 사귀기 위해서 다방에 가든지 나이트클럽에 가면 되겠지요. 그런데 옛날의 양반집의 정숙한 규수는 절에 갑니다. 장옷으로 얼굴을 덮어 쓰고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있으면 그 뒤에 남정네가 멀쑥하게 서 있다가 자기도 거기서 합장을 하죠.




부처고 뭐고 그런 것에 관심 없고 그 여자를 사귀기 위한 거죠. 이렇게 두 손 모아 합장해서 부처 앞에 비는 것이나, 두 손 모아 꿇어 앉아 두 손 모아 기도하는 것이나, 남의 종교에 동의함으로써 자기가 땡기는 여자를 차지하고 싶은 정으로 사는 겁니다. 신이 뭐냐 하는 것은 물을 필요도 없이, 내가 정이 가고 마음에 드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 그것이 신이 되었든 뭐가 되었든 무조건 동의하는 겁니다. 이것이 다섯 번째입니다.




6. 화목을 이룬다.




화목을 이루면 정으로 산다는 것의 성취를 보는 겁니다.




7. 화목된다는 이것이 진리다.


요한복음의 나는 진리다 그런것은 다 필요 없어요. 나하고 마음맞춰 사는 그것이 진리라는 겁니다. 제가 안지웁니다. 곧 강의를 시킬겁니다.




8. 이것이 나의 종교다.


나의 종교이고, 우리가정의 종교다.




처음부터 다시 합시다. 1. 사람들은 근본을 모른다. 2. 근본을 알고 싶지 않다. 사람들은 근본을 알고 싶지 않아요. 사람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자기 몸에 관한 겁니다. 내 몸이 외로우면 싫어요. 창조고 신이고 우주의 비밀이고 다 귀찮아요. 몸이 힘들면 다 힘들어요. 아픈것도 힘들지만 아플때 내 곁에 아무도 없다는 그것이 더욱더 내 맘을 아프게 해요.




“많이 아프냐? 물 떠줄까? 약 사줄까?” 이런 이야기를 옆에서 누가 해주면 그것이 굉장히 큰 위로가 된다고요. 사람이 외로움보다 더 큰 아픔이 없어요. 외로우면 자살하잖아요. 자기 맘을 맞춰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의욕을 상실하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은 외로우니까 쉽게 말해서 땡긴다는 말이죠. 아주 노골적으로 이야기했습니다.




나중에 나와서 강의하실 때 정 힘들거든 동그라미 친 것만 이야기하세요. 1. 모른다. 2. 알고싶지 않다. 3. 땡긴다. 4. 님 그리워. 5. 같은 생각. 6. 화목이 된다. 7. 화목이 진리다. 8. 그 진리가 나의 종교이고 나의 안식이다. 9. 이 종교로 미래까지 보장함. 10. 이것이 나의 운명이다. 잘 보면 ‘인간은 창조를 모른다’에서 마지막에 무엇으로 끝납니까? ‘이것이 나의 운명이다’로 끝납니다.




전부다 1번부터 10번까지 화살표가 어디로 꽂힙니까? 결국 뭡니까? 나! 나인데 뭘 몰라요? 10번에서 11번으로 넘어가지 말고 1번으로 돌립시다. 10번이 나의 운명인데 뭘 모른다? 창조도 모르는채 나의 운명이 결정되었고, 근본은 알고 싶지 않은채 나의 운명이고 세 번째 나의 외로움이죠. 그러니까 나의 운명을 3번과 연결 지으면 뭡니까? 나는 결국 내 몸만 편하면 최고라는 겁니다.




이 열가지가 첫시간에 했던 강의를 정리한 것입니다. 김대식 선생님이 나와서 강의하세요. 1분정도의 시간에 다 할 수 있습니다. 강의의 주제는 ‘종교란 무엇인가?’ 김대식선생님을 궁굼해 하는 분들이 전 세계에 많으니까요. 저는 잠깐 빠져 있겠습니다.




(김대식선생님의 강의)


1. 인간은 창조를 모른다.


2. 인간은 근본을 알고 싶지 않다(***).


3. 사람들은 외롭다.


4. 정이 그립다.


5. 남의 신에 무조건 동의한다.


6. 그래야 화목한다.


7. 화목이 진리다.


8. 이 진리가 안식이고 종교다.


9. 이 종교가 미래를 보장한다.


10. 이것이 나의 운명이다.




잘하셨습니다. 이렇게 나와서 해 봐야 확실하게 이해가 되는 겁니다. 강구만 집사님이 나와서 해보세요. 그냥 읽기만 해 보세요. 저는 진도 많이 나가는것 싫어요. 하나라도 확실하게 내가 어떤 인간인지를 알기를 원합니다.




(강구만 집사님의 강의)




1. 인간은 창조(근본)를 모른다.


2. 인간은 근본을 알고 싶지 않다(***).


3. 사람은 외롭고


4. 정이 그리워서


5. 남의 신에 동의해서


6. 화목을 이루고


7. 그 화목이 진리고


8. 종교이며


9. 나의 미래이며


10. 나의 운명이다.




참 잘했습니다. 김도영 집사님 해보세요.




(김도영집사님의 강의)




1. 인간은 창조(근본)를 모른다.


2. 인간은 근본을 알고 싶지 않다(***).


3. 사람은 외롭다.


4. 정이 그립다.


5. 남의 신에 동의한다.


6. 그래서 화목을 이룬다.


7. 그 화목이 진리가 된다.


8. 그 진리가 종교가 된다.


9. 그 종교가 나의 미래까지 보장한다.


10. 이것이 나의 운명이다.




잘 하셨습니다. 특히 두 번째요. ‘신에 대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왜 알고 싶지 않지?’라고 묻지도 않죠. 그렇다면 이 몸이 3번에 일치되니까 미래까지 보장된다는 말은, ‘내몸이 이세상에서 편하게 살았으니까, 아마 미래에도 내 몸 편하게 하는 그런 천국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걸’ 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면 이것은 나 중심의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지겠죠. 이것이 7번의 나의 종교이고, 이것이 8번의 진리가 되는 겁니다.




이것이 인생의 전부입니다. 어떤 심오한 철학책, 어떤 심오한 진리책, 불교든 뭐든 어떤 것을 해도 이것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아까 이야기 했잖아요. 한번 더 할까요? 어떤 예쁜 규수가 절에 가니까 불교에 관심도 없는 남정네들도 줄줄 따라 가서 합장하고 ‘나무아미타불’ 합니다. 그것이나 오늘날 교회 와서 두 손 모으고 기도하는 것이나, 관심사는 사람이 정이 그리우니까 하나 되기 위해서, 나를 위한 미래, 나를 위한 진리, 나를 위한 편안함을 추구하는 겁니다.




이렇게만 되면 이것을 사람들은 행복이라고 여깁니다. 이 행복을 깨는 것을 사람들은 “악!(惡)”이라고 봅니다. 행복을 깨는 것이 악입니다. 행복을 깨는 것이 어떤 것이 있는가? 행복이란 화목한 단합이고 이것을 깨는 것이 악입니다. 이 행복을 깨는 것이 어떤 종류가 있는가? 1. 부모공경 안하기. 2. 우리 가족 중의 하나가 탈레반에게 살해당함. 3. 간음당하기. 4. 도적질 당하기. 5. 사기 당하기. 6. 내 마음속에서 계속해서 욕심 올라오기.




여러분! 이 여섯 가지 어디서 많이 본 것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십계명에 나옵니다. 부부십계명도 있고 십계명이 좀 많습니다. 십계명의 앞에 있는 1-4계명까지를 고려하지 않고, 5-10계명 까지를 생각해 버리면, 이것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여긴다면 이것은 아까 이야기한 사람들의 행복, (아까 1부터 10까지 그 절차가 있었지요?) 열 가지 단계를 거쳐서 오는 이 화목한 단합에 반대되는 ‘악’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이것은 누구 중심의 ‘악’입니까? 나중심의, 내 몸 중심의 악이 되는 겁니다. 사람들은 부모공경 하라고 요구합니다. 이유는 화목한 행복을 깨는 ‘악’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우리 식구중의 누구 하나라도 죽기를 싫어해요. 왜? 화목한 나의 행복을 깨기 때문입니다. 간음당하고 도적질 당하는 것이 싫어요. 화목한 가정을 깨기 때문이죠. 사기 당하는 것도 싫어요. 화목한 나만의 삶을 깨잖아요. 내속에 욕심이 많은 이것도 내 속의 ‘악’이라고 여기는 겁니다.




문제 나갑니다. 평소에 이것을 안 하면 그 사람은 어떻게 돼요? 행복한 사람이 되지요. 이 행복한 사람의 미래, 죽고 난 다음에 어디로 갈까요? 천국 간다고 생각하지요. 이것이 바로 일반적인 종교입니다. 모든 교회 나가든, 천주교에 가든, 절에 가든, 뭘 믿든지 사람의 사고방식에는 바로 이런 악이 없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지금 나의 행복한 단합이 더욱더 증가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누구의 몸 중심이라고 했습니까? 내 몸 중심이죠. 만일에 연세가 한 80세가 되었다고 합시다. 내 몸이 80세가 되었을때 그 80세된 분이 단합과 행복을 추구했는데, 자기 스스로 5-10까지의 계명을 지킵니까? 못지킵니까? 몸이 불편한데 어떻게 지킵니까? 못지킵니다. 자꾸 살고 싶어 하고, 자식들이 잘 안찾아 온다고 짜증 잘 냅니다.




행복을 방해하는 악들을 내 몸이 부실하면 지켜내지 못합니다. 쉽게 해 봅시다. 자식들이 부모집에 가는 것이 부모공경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공경을 해야 행복을 이루는 가정이 되는 선한일임을 아는데, 자식이 그것을 알면서도 여름철에는 부모 집에 가기가 싫어요. 제가 지금 예를 드는 겁니다. 가기 싫은 이유가 부모 집에는 에어컨이 없어요.




에어컨이 없으니까 그 집에 가도 대화하기가 짜증이 나요. 옛날 금성 선풍기 덜그덕 덜그덕 거리면서 돌아가고, 땀이 죽 흐르면 한쪽은 땀 닦아야 되고, 그러면서 늙으신 부모님의 하소연을 다 들어줘야 되고. 더워서 탈출하고 싶어진다는 말이죠.




“야가 오랜만에 집에 와가지고 너는 부모와 함께 있는 것이 불편하나?”


“아임니더.” 


“근데 와 니 저녁도 안하고 집으로 도망치려고 하노?”


“그게 아이고 좀 덥네요.”


“야야! 그래도 늙은 이 부모는 이 더운데서 한여름 보낸다. 그래도 너그들만 기다린다. 휴가철만 되면 이제 오나 저제 오나. 강냉이 삶아놓고, 감자 삶아놓고, 가는 편에 줄라꼬 고추 따 놓고 이래 다 하는데 네가 그라나? 부모한테는 신경질 못내니까 아아덜 한테 조용히 하라고 ‘나가 놀아라’고 큰소리나 치고. 느그도 이 짧은 휴가인데 마 얼굴 봤시믄 됐다. 마 고추나 싸들고 가라마”


“너그들 때문에 부모님이 가라카잖아.”


“엄마! 어디 가는데?”


“풀장이나 가지뭐!”




화목한 행복을 위한 부모공경이라도 날씨가 더울 때는 이게 안 됩니다. 안되면 여기에 행복이 깨어지는 악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돌아오고 난 뒤에 부모가 ‘저애가 십년전만 해도 안저렇게 했는데.’ 그 때 부모가 뭐라고 합니까? “늙으면 죽어야지”라고 합니다. 늙어서 죽으면 어디 갑니까? 아까 몇 번에 그게 나왔습니까? ‘미래가 보장된다’가 아까 몇 번이었어요? 9번이었죠. 9번.




‘야, 부모 공경하는 자식 믿다가 자식도 이제 소용없구나.’ 하지만 ‘나는 부모 공경하라고 잔소리했기 때문에 그 덕으로 내 미래는 아마 천국에 갈걸’라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속성입니다. 그러면 부모공경하려면 자식들은 통밥을 잡고 다 알기 때문에 부모집에 갈 때 그냥 갈것이 아니라 하이마트에 가서 에어컨을 하나 사들고 가는 겁니다.




“어므이! 어떻십니꺼?”


“야아! 이 바람이 야야! 시원하다!”




뭐가 됩니까? 부모공경 되지요. 그때 다시 다운되던 행복이 업 되지요. 그러면 행복한 가정이 되면서 악은 일단 제거 되었습니다. 사람이 행동하는것, 생각하는 것 모두가 제가 아까 이야기한 1-10까지에 다 포함이 되어 있어요. 그런데 부모집에 에어컨 살 돈이 없다고 할 때 교회와서 기도하는 거예요. “하나님! 부모공경 해야 할텐데, 부모님집에 에어컨이 없습니다. 부모님 에어컨 하나 살정도의 돈은 주셔야겠습니다”라고 하죠.




아까 자기 종교가 몇 번입니까? 화목한 것이 진리고 그 진리가 곧 종교다. 6번, 7번이 해당됩니다. 이것이 기독교가 들어와도, 불교가 들어와도 아무런 차이가 없어요. 인간은 자기의 몸 편한 것 중심으로 돌아가고, 자기몸 안편하면 뭐라고 하는지 압니까? “아이고! 늙으면 죽어야지. 괜히 부모공경 안한다고 땀흘려 일하는 자식이나 험담하고. 이 늙은 내가 죽어야지. 내가 살아서 자식들 다 죄인 만든다. 내가 죽어야 돼. 자식들 죄인 만들지 말고. 내가 죽으면 자들 저희끼리 얼마나 행복한데 이 쓰레기 같은 내가 아직 살아 있어서 안돼.”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착하고 거룩하냐 이말이죠. 그러니까 그 사람의 미래는 뭡니까? 천국이 보장되는 거예요. 방금한 1-10까지의 단계를 다시 한번 적어야 하겠습니다. 지금 진도 빨리 나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창조의 근본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 모른다.


2. 알고 싶지 않다.


3. 외롭다.


4. 정이 그립다.


5. 살고 싶어 남의 신에 동의.


6. 그래서 한마음(화목)되기


7. 이것이 진리다.


8. 이것이 종교다.


9. 이것이 미래보장


10 이것이 나의 운명이다.




이것이 1-4계명의 십계명을 대신해서 그 뒤에 5, 6, 7, 9, 10계명까지 이렇게 건너가는 거예요. 여러분은 십계명을 다 아시잖아요. 인간은 1-4계명을 빼버리고 그 빈자리에 나 중심의 10가지가 들어와서 5-10까지 되어서 이런 식으로 (기독교가 되었든 불교가 되었든) 종교생활, 신앙생활을 하는 겁니다.


  


“모른다. 몰라도 돼. 나 외롭다. 나를 안 외롭게 해줘. 그러면 뭐든지 다 해줄게. 내가 안외롭게 해줄게” 이것이 1-6까지입니다. 사람이 너무 욕심 많아도 자기가 괴로워요. ‘나의 유전자가 왜이래? 내가 자꾸 욕심을 크게 부려.’ 욕심 많아도 곤란하다고요. 남들은 고만고만하게 사는데 욕망이 한정이 없어요. 어제 밤에 별관에서 자는데 바로 밑에서 아주머니 둘이서 술을 잔뜩 먹고 “내가 운전한다!!! 내가 운전해!!!” 남자 둘이서 “이게 와이카노? 술먹고 네가 왜 운전을 해?” “?????”




밤새 잠을 못 잤어요. 새벽 세시가 되었는데 또 꽥꽥 거리고요. 그 사람들은 1-10까지에 포함된 사람들이에요. “아주머니 저 진리에 대해서.” “진리고 나발이고 내 몸 좋으면 그게 진리지 다른 진리가 어디 있어?” 알고 싶지도 않죠. 특히 2번. 알고 싶지 않다니까? “그런데 왜 외로운데?” “그냥 혼자 있으면, 그냥 외로워 그냥.”




혼자 노래방 가도 재미없고, 혼자 영화 보면 그것도 재미없고, 같이 영화 보러 가고, 같이 노래방 가고, 밥을 먹어도 혼자 먹으면 야윕니다. 싸우든 말든 부부가 같이 먹으면 살이 쪄요. 이상해요, 하여튼. 외롭고 그립고. 이 자리에다가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창조의 근본을 이야기합니다. 이 자리를 치워버리고 뭘 넣는가?




첫 번째 뭡니까?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이 말이죠. 그렇다면 아까 봤던 그 1-10까지의 그 중심에 누가 있습니까? 나 중심이죠. 나. 내가 중심인데 여기에 새로운 나가 등장합니다. 누구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등장해서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했어요. 네 번째 계명이 뭐냐 하면, 안식일이 나오죠.




안식일은 뭐냐? 제사입니다. 제사는 뭐냐? 죽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나 외에 다른 신은 누가 좋아서 만든거예요? 나 좋으라고, 나를 위하여 만든 다른 신이 들어가는데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라고 해서 다른 신에 대해서는 제사를 통해서 죽여 버리고, 우리의 생각을 꺽어 버립니다. 꺽어 버리고 그 다음에 “부모를 공경하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이렇게 되어 버리면 5-10까지의 계명은 누구 좋으라고? 내 몸 좋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이것은 중요하기 때문에 빨간색으로 써야 합니다) 사명입니다. 사명! ‘아하! 주님께서 나를 죽이고 나를 새사람으로 새로운 창조를 하신 것은 이런 사명을 감당하라고 하신거구나. 나 좋으라고 한것이 아니고 사명을 감당하는 거예요.’




여기서 ‘사명’과 ‘나 좋으라’고 하는 것의 차이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방금 사명이라고 했고, 전에 1-10까지 적은 것은 내 몸 편안함이라고 이야기 했지요. 이 둘의 차이는 사명은 새 창조가 나옵니다. 늘상 새로운 것이 나오는 반면에, 내 몸 편안함이란 ‘보수주의’입니다. 기존의 자기 것을 변명하고, 사수하고, 유지하려고 하는 겁니다. 새로운 것이 안나와요.




목사가 설교를 하게 되면, “목사님은 우리교회 처음 오셨을때의 십년전이나 지금이나 어떻게 변한 것이 없습니까?” “나는 목사다. 내가 당회장을 해서 이 교회 숫자가 얼마나 불어났나?” 이것은 뭐예요? 보수주의죠. 사수하는 거죠. “그러면 목사님! 당신이 이 교회 당회장으로 온 것은 내 몸 전문직업인으로 편하기 위해서죠. 자기 몸 편하면 자기가족들이 편하고 교인들이 있으니까 정 때문에 살아가는 거예요.”




여러분! 선교사들이 선교를 하러 떠나는 이유가 정이 그리워서 갑니다. 하! 정말, 이거 아는데 오래 걸렸다. 선교사들이 가는 것은 ‘정 그리워’ 다른 말로 하면 ‘사랑이 그리워’입니다. 한국에서 당회장으로 오라고 하는 것을 거부한채 선교사로는 잘 안갑니다. 한국에서 부교역자로 갈데가 없어서 선교사 갑니다. 말 안 통하는데 가서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래서 일단 말이 통하는데를 가려니까 자리가 없지요.




사람은 떡으로만 살지 못하고 그리움에 사무쳐서 살거든요. 이런 좋은 말을 할때는 좀 적어 놓으세요. 사람이 밥을 못 먹으면 훔쳐서라도 먹고 살지만, 배신을 당하면 자살해 버립니다. 사람은 사랑에 배신당하면 자살해 버려요. 돈 10억 있고, 20억 있어도 사랑에 배신당하면 죽고 싶은 것이 인간입니다. 사랑에 울고 돈에 속고. “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문제냐?” 사람은 사랑없이는 살수 없어요. 남편이 월급준다고 해서 그것이 가정이 아닙니다.




예뻐 해줘야 돼요. 당신 없으면 못살겠다고 정을 표시 내 줘야 돼요. 둘 다 되면 너무 오지랖 넓은 것이 되고 최소한 둘 중의 하나는 있어야 되거든요. 정을 내야 그것이 가정입니다. 사람은 별게 아니에요. 외로워서 울고 배고프면 짐승처럼 먹을 것을 찾습니다. 여기서 종교라는 것이 나와요. “종교를 찾아서 빌어요. 외롭지 않게 해 달라. 사랑받는 사람이 되게 해 달라.”




사랑받는 재미로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먹고 사는 일에 힘들지 않도록 해 달라는 이 두 가지 빼놓고 뭐 다른게 있습니까? 사람은 정에 굶주리고, 돈에 굶주리고 이 두 가지를 빼놓고 말할것이 뭐가 있습니까? 없지요. 남자가 경마나 그 밖의 도박에 빠지고 스포츠에 푹 빠지는 이유가 뭡니까? 몰입할수 있는 다른 대상이 없어서 그래요. 한창 연애할 때는 남자가 자기 좋아하는 취미나 스포츠까지 다 끊습니다.




“네가 좋아하는 것이 뭐고? 네가 좋아하는 것 나도 좋아한다. 네가 가고 싶은데 내가 다 보내줄게.” 이렇게 나옵니다. 처음에 연애할 때는 자기 자아를 부인해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여자를 따라갑니다. 그러다가 결혼을 합니다. 결혼하면 그것으로 끝나요. 챙길 것을 챙겨버렸는데 더 이상 신경 안 써도 되잖아요.




사람은 정에 굶주립니다. 이것을 어려운 말로 하면 이렇습니다. ‘프로이드’는 말하기를 “아이들은 엄마의 자궁에서 나올 때부터 자아가 분열되어 나온다. 어머니의 자궁에서 끊어짐으로 어머니의 포근함을 그리워하면서 어머니의 대체물을 찾는 것이 인간이다. 그런데 엄마를 찾아가려니 아빠가 저지를 한다. 그것이 ‘외디푸스 콤플렉스’다. 아빠와 아들이 경쟁자가 되어서 아빠 하나를 차지 하려고 한다.”




아빠가 “엄마를 넘보지 마!”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고, “너는 오줌을 똑바로 누고, 너는 밥 제자리에 앉아서 먹고, 밥풀 흘리지 말아야지.” 이러한 윤리적인 모습을 띠면서 “이제 너는 엄마는 잊어버리고 네 짝은 네가 알아서 찾는 식으로 너 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요하게 된다는 식으로 ‘프로이드’의 이론이 진행됩니다.




인간의 머리에는 뭐가 담겨 있습니까? ‘이것은 나쁜 일, 이것은 좋은 일.’ 그것을 통해서 자기 몸 편한대로 살아가다가 부모를 떠나면 그 외로움을 가정이라는 대체물로 또는 다른 대체물로 찾는 거예요. 찾아서 내 몸 위주의 외로움도 덜하고 밥도 먹을수 있고, 그것을 통해서 미래까지 보장되고, 자기에게 해가되지 않는 것을 위해서 새벽으로 밤으로 교회와서 그저 기도하는 겁니다.




“우리 남편 사고 안나게 해주시고, 우리 자식 말썽 안나게 해주시고.” 이것이 전부다 뭐냐 하면, ‘내가 확보한 행복이 깨어지는 것이 싫다’는 말이죠. 교회 가서 기도할 것이 그것뿐입니다. 돈과 사랑. 그것 외에는 달리 기도할 것이 없어요. 엊그제 십자가마을 수련회에서 욥기를 강의 했거든요. 마귀가 하는 말이 “이 세상에 이유 없이 교회 가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이렇게 나온 거예요.




“하나님! 이 세상에 이유 없이 교회 가는 사람 없습니다. 다 자기몸 편하기 위해서 갑니다.” 욥이 돈 되고 사람 되거든요. 돈도 있고, 몸도 건강하고, 가족도 평안하고. “그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을 믿었겠지 이 세상에 이유 없이 교회 가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다 자기 챙길것 챙기기 위해서 가는 겁니다”라고 마귀가 이야기를 하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너는 없다고 보나?”


“나는 없다고 봅니다.”


“나는 있다고 보는데.”  


“그런 사람 누구입니까?”


“욥을 봐라!”


“욥은 이유없이 하나님을 사랑한 사람이다.”




그것은 오늘날 교회에다가 “이유있고 교회 온 사람은 나가주세요”라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이유 달고, 얻고자하고, 뭔가 챙기기 위해서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다 교회에서 나가주세요” 하는 이야기 하고 똑같습니다. 까닭없이 이유없이 하나님을 찾는 것을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께 선택받았다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버릴수 없는 입장.




그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씀하는 새로운 창조, 끊임없는 창조입니다. 사명에서는 새 창조가 나오고, 내 몸 위주로 하면 사람은 보수주의가 돼요. ‘옛날에 나도 한가락 기도했다’ 이런 식으로 자꾸 자기를 지키고, 소극적으로 ‘이것 깨지면 안 돼. 이것 깨지면 안 돼.’ 이렇게 되는 거예요. 새로울 것이 없어요.




부부사이에서 힘든 것이 있어요. 남편은 남편대로 새로운 것이 계속 나오면 여자는 부부생활 할 맘이 듭니다. 마찬가지로 남편은 여자한테 새로운 면, “당신에게 그런 면이? 그렇게 좋은 솜씨가?” 이렇게 자꾸 새로운 면이 나올 때는 참 신기해요. 뭐든지 사람이 옛날 것을 회상한다는 것이 참 서글픕니다. 하지만 옛날 것이 회상이 안 될 정도로 새로움이 새록 새록 나와야 돼요.




아까 제가 이야기하다가 말았습니다만, 어떤 목사가 날마다 새로움이 나와야 할텐데 새로움이 안나오니까 교인들이 짜증을 내는 거예요. “목사님은 사명을 받은 거예요. 아니면 그냥 밥이나 먹고 살려고 하는 사람입니까?” “사명? 그런 것이 어디 있나? 내가 여러분을 통해서 밥이나 먹고 살면 되지.”




이러면 그 사람은 다른 종교, ‘까닭있는’ 종교, 마귀손에 잡힌 그런 주의 종이 되는 겁니다. 날마다 새로운 것이 어떤 것이 나오는가? 10분 쉬면서 나에게는 어떤 새로운 것이 있는가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한가지 주의 할것은, 20대에는 새로운 것이 나와요. 그런데 90넘어서 새로운것이 나오기가 상당히 힘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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